1절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은혜의 보좌는 성막의 지성소이며 바로 주님이 말씀하신 그 골방입니다.
은밀한 중에 하나님이 갚으시리라 하는 그곳입니다. 그곳을 상세히 설명하기 위해서
5장에서 다시 대제사장의 얘기를 끄집어내는 겁니다. 대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일하는 직분입니다. 그런데 왜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느냐?
예물은 헌신입니다. 지성소까지 나아가야 되는 헌신입니다. 속죄하는 제사는
번제 단에서 피를 흘리고 태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 대신 짐승이
죽으므로 죄 사함을 받았으면 다시 산 자로서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됩니다.
속죄하는 제사를 얻었으면 반드시 산 자로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됩니다.
죄 사함은 반드시 예물이 되어 주님 앞에 열납이 되어져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물과 함께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속죄 제물도 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드려져 예물도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는 속죄 제물이 되십니다.
제사로 드려지고 우리의 거룩한 산제사를 도와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미의 제물이 되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 앞에 드려진
예물과 속죄 하는 제사를 절대로 돈으로 대신 하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 자신의 존재
자체를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리는 것이 예물과 속죄제사입니다.
그 후에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진정으로 구속의 은총이 감사하고 그분의 사랑에
감사가 될 때에 주님의 일을 위해 사용하는 겁니다. 돈이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대신 할 수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빌립보서를 보면 믿음도
제물이 되고, 바울에게 그들이 연보를 보내는 것도 향기로운 제물(빌4:18)이라고
표현한 적은 있습니다만 그것도 먼저 믿음이 제물이 되어야 하는 전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 연보자체가 제물이란 말이 아닙니다. 빌립보 교인들의 향기로운 심령이
주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이 된 것입니다.
2절 “저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니라”
용납할 수 있다는 말은 ‘고통을 함께 할 수 있다, 수용한다’는 말입니다.
대제사장에게는 하나님이 이렇게 오더를 내리십니다. 죄인을 위해서 아무
소리하지 말고 어떤 죄든지 제물만 가지고 오면 대신 제사를 드려라 하는 겁니다.
대제사장의 의무는 죄의 경중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속죄제물만 가져오면 하나님 앞에
속죄 제사를 드려라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제사장이면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를 수용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을 깊이
생각하라는 말은 언제든지 그분 앞에 갈 때마다 그분은 우리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을 너무 괴롭게
생각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바로 다시 일어나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아론의 지파 대제사장은 무지하고 미혹 당한 자를 용납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도 연약한 육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로
무지로 인해 미혹당하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미혹 당합니다.
이는 말씀을 증거하는 주의 종들의 책임입니다. 그렇지만 주의 종이 그렇다 해서
성도들이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있는데,
그 사이에 말씀을 받은 주의 종이 있습니다. 주의 종은 요3장에서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참된 주의 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그렇습니다. 그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주의 종입니다. 주의 종이 그리스도와 인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중매를 시킵니다. 그런데 중매를 잘못 시키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지하면 안 됩니다. 무지하면 미혹을 당하게 됩니다.
마지막 때에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을 당하지 말아야 됩니다. 계시록은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진리의 교회 즉 해 입은 여자와 음녀의 싸움입니다.
바로 교회 싸움입니다. 무엇으로 싸우느냐? 말로 싸웁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일에 무지하면 안 됩니다.
3절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람으로 난 대제사장은 자신의 죄를 위한 속죄 제사를 반드시 드려야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분이므로 속죄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4절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인간인 대제사장은 그 존귀를 스스로 취하지 못합니다.
부르심을 받고 세움을 받아야 됩니다.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위임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만 이런 존귀함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를 보면
대제사장이 한 사람만 있어야 되는데 ‘대제사장들’이라고 했습니다. 헤롯이
임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만큼 혼란스러웠습니다. 요즘도 교단이 임명을 합니다.
사도바울이 고전9장에서 ‘내가 사도가 아니냐’라고 항변을 합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가 임명장을 내 놔라 하니까 사도 바울이 답답해서 내가 사도이다,
내가 자유자다, 내가 사도라는 표가 뭐냐 바로 너희들이 아니냐. 너희들이 내게
복음을 받아 구원을 받은 성도가 되었지 않느냐고 대답을 합니다. 그 당시는 사도의
조건에 예수님과 함께 다녔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봐야 되고,
오순절까지 같이 가야 되는 그런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아야 되는 조건이 있었지만 바울에게는 그러한 외증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직접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이건 자기의 내적인
증거일 뿐 외적인 증거가 아닙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믿음으로 성령이 임재하시므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정하심과
내 안에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가 있다는 것과 주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이 모든 사실에 대한 성령의 증거를 꼭 받아야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반드시 성령의
보증을 받아야 됩니다.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위임을 받을 때 거룩한 기름을 바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 앞에 드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5절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면서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천사들보다 뛰어난 이름을 가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아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택하신 백성이며 왕 같은 제사장(벧전2:9)이면서 아들입니다.
신분이 엄청나게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요 선지자와 제사장이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왕이요 선지자와 제사장직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왕직을 가졌다 선지자 직을 가졌다 제사장직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이 되면 그와 같은 권세가 실제로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역할만 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생명을 나눠주는
역할을 합니다. 말씀을 증거하기도 하고 또 그 말씀 자체가 생명이 됩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말씀 아들의 영이 아니면 구원이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6절 “또한 이와 같이 다른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다 하셨으니”
드디어 멜기세덱의 반차가 나옵니다. 영원한 대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 이분이 누구냐면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입니다. 아론은 레위지파입니다.
예수님은 유다지파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는 아론의 반차가 아니고, 유다지파 곧
하나님의 족보를 통한 제사장이 바로 멜기세덱의 반차입니다. 아론의 지파로
말미암은 제사장이냐 유다 지파로 말미암는 제사장이냐?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한번 나타났다가 사라졌는데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 어떤 계통을
타고 내려오느냐? 유다는 원래 제사장 지파가 아닌데 어떻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느냐를 지금 성경이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유다지파는 대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어찌하여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느냐는 겁니다.
성경이 말하기를 아론의 지파인 제사장은 자기가 약하기 때문에 자기 죄를 위하여
속죄 제물을 드리는 그런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된다는 것을 지금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5장1절부터 6절 까지는 대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했지만
7절부터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어떻게 나아가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히4장 16절의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길을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