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태어나 20년 동안 롯데의 '광팬'이었던 신현재씨(28·하나로통신 송파지점 대리)는 올해 스포츠뉴스를 '끊었다'.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롯데의 '패전소식'을 매일 확인하는 일이 짜증났기 때문이다. 신씨는 99년 롯데가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을 때 대학 기말고사도 제쳐두고 경기장을 찾을 만큼 야구응원에 몸바쳤다. 99년 롯데가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잠실구장을 찾았던 신씨는 2002년에는 한번도 잠실구장에 가지 않았다. 신씨는 "올해는 '내가 야구 없이도 살 수 있구나' 하고 확인한 해"라며 "어디 나 없이도 잘 되는지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평균관중 4,500명―출범 이후 최악의 해
한국프로야구가 가장 잘나갔던 95년의 경기당 평균관중은 1만727명이었다. 그러나 97년 말 IMF 한파를 겪으며 급감한 관중수는 98년 절반 수준인 5,236명으로 줄어들더니 2000년에는 출범 이후 처음으로 5,000명선이 무너졌고(4,713명), 2002년에는 4,500명으로 평균 최소관중을 기록하고 말았다. 평균관중 1만명의 꿈은 진짜 '꿈'으로 끝날 것인가.
▲롯데 가는 곳에 사람 없다
올해 프로야구 관중 급감의 원인 중에는 롯데의 부진이 가장 컸다. 95년 평균관중 1만8,739명을 기록했던 롯데는 올시즌 평균 1,722명을 불러들이는 데 그쳤다. '구도 부산'이 야구를 버리자 관중수는 급격하게 떨어졌고, 부산뿐만 아니라 롯데가 가는 곳마다 팬들은 발길을 돌렸다. 롯데는 '관중 쫓는' 구단이 됐다.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6월의 2002년 한·일월드컵도 야구 인기 감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스포츠에 관심이 없어 아는 야구선수라고는 삼성 이승엽과 기아 이종범이 전부였던 김모양(26·회사원)은 월드컵 기간 중 '태극전사' 22명의 이름은 물론 소속팀이며 나이를 모두 기억하는 '붉은악마'가 됐다.
정규시즌을 중단해 가며 드림팀을 출전시켰던 부산아시안게임도 야구인기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시즌 중단 때문에 낮아진 관심이 야구장 문턱만 잔뜩 높여 놓았다.
▲미국 답답, 일본 여유
메이저리그도 올시즌 야구장을 찾는 팬이 줄어드는 바람에 발만 동동 굴렀다. 2001년 7,258만1,101명이 야구장을 찾았으나 올해는 6,794만1,211명으로 6.9%가 줄었다. 메이저리그 관중 감소의 가장 큰 이유는 전반기가 끝난 뒤 예정됐던 선수노조 파업. 팬들은 천문학적 숫자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또다시 파업을 결의하자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비록 파업예정일 전날인 8월31일 극적으로 합의를 했지만 이미 돌아선 팬들의 마음을 돌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팬들은 여전한 야구사랑을 자랑했다. 한국과 함께 치른 월드컵의 열풍에도 불구하고 '국민구단'인 요미우리의 홈경기에는 팬들이 그득했다. 일본 센트럴리그의 올해 평균관중은 3만1,532명. 메이저리그의 평균관중 2만7,859명보다 3,763명이나 많다.
▲입장료를 낮춰라?
2002년 포스트시즌 입장료는 1만2,000원. 팬들은 정규시즌(5,000원)보다 훨씬 비싼 입장료에 대해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진형 홍보과장은 "절대 비싼 금액이 아니다"라며 "프로야구 출범 당시 정규시즌 입장료는 3,000원이었다. 21년 동안 2배도 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뉴욕 양키스의 홈경기 때 고급 좌석의 요금은 37달러(약 4만4,000원). 일본 요미우리의 홈경기 입장료는 7,000엔(약 7만원)이나 한다. 이에 비해 한국야구의 5,000원은 비싼 편이 아니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다양한 시즌티켓의 개발과 좌석의 위치에 따라 요금을 다르게 하는 요금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급하다"고 말한다.
▲평균관중 1만명을 위해
삼성 김응용 감독은 "팬들을 다시 불러모으기 위해서는 재미있는 야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야구인기 회복은 제도의 개선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경기'를 통해 가능하다는 뜻. 기아 김성한 감독도 "프로야구 출범 당시 세련되지 않아도 화끈했던 공격야구를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평균관중 1만명 복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사람들의 몫이 크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