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8월 31일 KBS악단 단장 이봉조가 56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작곡가이자 색소폰 연주가로서 이름이 높았는데, 1964년 김기덕 감독, 서윤성 각본 영화 <맨발의 청춘> 음악을 맡기도 했다. 이 영화에는 신성일, 엄앵란, 이예춘, 윤일봉 등이 배우로 출연했다. 이봉조 작곡, 유호 작사, 최희준 노래 <맨발의 청춘> 노랫말은 아래와 같다.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
밤거리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녀도
사랑만은 단 하나의 목숨을 걸었다
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말라
그대를 태양처럼 우러러보는
사나이 이 가슴을 알아줄 날 있으리라
외롭고 슬프면 하늘만 바라보면서
맨발로 걸어왔네 사나이 험한 길
상처뿐인 이 가슴에 나 홀로 달랬네
내버린 자식이라 비웃지 말라
내 생전 처음으로 바친 순정은
머나먼 천국에서 그대 옆에 피어나리
이 노래는 1997년에 벅Buck, 2006년에 캔Can이 리메이크했다. 벅과 캔의 노랫말이 같은지 알 수 없고, 인터넷에 떠 있는 대로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이렇다 할 빽도 비전도 지금 당장은 없고
젊은 것 빼면 시체지만 난 꿈이 있어
먼 훗날 내 덕에 호강할 너의 모습 그려봐
밑져야 본전 아니겠니, 니 인생 걸어보렴
용하다는 도사 그렇게 열나게 찾아다닐
것 없어 두고 봐 이제부터 모든 게
원대로 뜻대로 맘대로 잘 풀릴 걸
속는 셈치고 날 믿고 따라 줘
니가 보는 지금의 나의 모습 그게 전부는 아니야
머지않아 열릴 거야 나의 전성시대 . . .
갈 길이 멀기에 서글픈 나는 지금 맨발의 청춘
나 하지만 여기서 멈추진 않을 거야 간다 와다다다다
그저 넌 내 곁에 머문 채 나를 지켜보면 돼
나 언젠간 너의 앞에 이 세상을 전부 가져다 줄 거야
1964년 <맨발의 청춘>은 비록 대중가요이지만 그래도 약간의 문학적 수사가 깃들어 있어 그런대로 감칠맛이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30∼40년 뒤에 나온 <맨발의 청춘>은 “밑져야 본전 아니겠니?”, “속는 셈 치고 날 믿고 따라와 줘!” 식이어서 말 그대로 시쳇말이 둥둥 떠다닌다.
세상이 점점 천박해지고 있다. 조선 세종 시대의 우리나라는 대단한 문화강국이었던 듯한데, 임진왜란, 독립운동 시기, 동족상잔 전쟁 기간, 독재정권 인권말살 시대를 거치면서 그렇게 되고 말았다.
늙은 기성세대의 완고와 비루함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맨발의 청춘’들은 마음이 젊고 순수해야 할 텐데 별로 그렇지 못하다. “나 언젠가 너의 앞에 이 세상을 전부 가져다 줄 거야”라는 말은 농담도 못 된다. 사람을 “속는 셈 치고” 교유하고, “밑져야 본전” 식으로 대할 수는 없다. “단 하나의 목숨을 걸고” 살아갈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