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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잠언서 강해(20) /
“분노를 이기고 승리하는 신앙생활”
+ 본 문 : 잠 언 12장 13절 - 28절 (구약 p.922)
13.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14.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16.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17.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
18.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19.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20.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
21. 의인에게는 어떤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려니와,
악인에게는 앙화가 가득하리라.
22.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23.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
2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25.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26.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
27.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28.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아멘!
+ 서로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
+ 찬양하겠습니다. /
오늘 본문 가운데 16절을 중심으로 말씀드릴 때, 함께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아멘!
무슨 말씀입니까?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 걸핏하면 화내며,
큰소리로 악을 쓰듯이 혈기를 부리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아닌가?’
만약에 혈기를 부리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미련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화를 잘 내는 미련한 사람에 대한 잠언의 말씀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잠언 14:17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잠언 14:29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잠언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언 15: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언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은,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17:12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콤을 만날찌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래 곰은 짐승 가운데서도 미련한 짐승으로 취급받습니다.
그래서 맡겨진 일을 잘 못한 사람을 두고 ‘미련 곰탱이’ 라고 놀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미련한 곰이 그 새끼를 빼았겼다면, 얼마나 미련하게 분풀이를 하겠습니까?
미련한 사람도 그와 같으니, 미련한 일하는 사람 곁에는 아예 접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손해를 보지 않게 됩니다. 어쩌면 이것은 슬기로운 지혜입니다.
그래서 잠언 19장 11절, 19절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라!"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그런 일이 생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22:24-25 에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영어 단어에 “화낸다.” 는 단어를 ‘앵그리 - angry' 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주,
심하게 화가 난 것을 보고는 ‘mad' 라고 하는데, 그 뜻은 '미친 사람' 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심하게 화내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 정상인가 할 정도로 거의 미친 사람 같습니다.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화내는 사람과는 사귀거나 동행하지 말라고 잠언은 경고합니다.
잠언 25:15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우리 예수님께서도 산상설교 중에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 고 말씀하셨는데, 온유한 마음은 쉽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온유한 사람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 축복을 받게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유한 것이 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강합니다.
우리 지체 중에 대조적인 것이 함께 모여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입 속의 혀와 이빨인데, 혀는 부드러운 지체요, 이는 강한 지체입니다.
같은 지체이면서도 어떻게 잘못해서 혀가 강한 이빨에 깨물려 피를 흘립니다.
이처럼 혀는 한없이 약해 보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부드럽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약해 보이는 혀는 죽을 때까지 문제가 없으나, 강한 이빨은 성한 곳이 없습니다.
그렇게 강해 보여도 20세가 지나면서부터, 이빨은 고장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40세, 50세, 60세가 되면, 실상 다 고장이 나고 빠져서 없어지고 맙니다.
나이 많은 분 가운데 80세가 되어도 자기 치아를 그대로 가지고 계신 분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많지를 않습니다. 대부분은 의치를 하고 다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혀는 고장 안 납니다. 바꾸고 살 수도 없습니다.
잠언 25:28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잠언 26:21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잠언 29:22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구약성경 창세기에 보면,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인과 아벨이 다 성장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제물을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아담의 큰 아들인 가인이 심히 분해서, 안색이 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즉 자기의 잘못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아니하고, 화부터 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가인에게 크게 책망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야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아멘!
결국 안색이 변할 만큼 화를 냈던 가인은 그의 동생 아벨을 쳐 죽이고야 말았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살인이라는, 그것도 존속 살인의 참극을 빚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시편 37편 8절에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갈라디아서 5:20에 “육체의 열매를 알면서 분냄이 그 중에 하나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4장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지 말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성 내는 것과, 분노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여 드린 일은 없습니까?
그래서 에베소서 4장 26절, 27절 말씀에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살다보면, 분한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대한 분한 생각은 얼마 안 갑니다. 곧 잊어버리고 풀어지고 맙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분한 생각을 품으면, 그것을 오래 가지고 있어 자기 자신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고, 결국 다른 사람에게도 손해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분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한 생각은 결코 오래 품지 말아야 합니다. 분노를 품으면 죄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처럼 마귀가 틈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내가 분한 마음을 품고 있는 동안, 내 마음에서 마귀가 제일 많이 활동을 합니다.
사울 왕이 얼마나 훌륭했습니까? 정말 겸손했고, 능하게 나라를 치리했습니다.
그런데 불레셋 나라 골리앗이 도전할 때, 이스라엘에서는 나가 싸울 사람이 없었습니다.
골리앗이 아침저녁으로 나와서 싸움을 걸어오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였지만,
이스라엘 군대는 골리앗만 나서면 도무지 꼼짝하지 못하고,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그때 형들의 안부를 알려고 아버지의 심부름을 왔던 소년 다윗이, 이 광경을 보고,
자기가 나가서 저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하자, 사울 왕이 허락을 하면서 주었던,
칼과 갑옷이 도무지 맞지 않아, 목자 생활하던 때 양을 공격하는 짐승들을 물리쳤던,
물맷돌 다섯 개를 가지고 나가서, 거인 골리앗에게 물맷돌을 던져 죽이고 이겼습니다.
그 때 양치기 소년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은총을 힘입어 이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대적을 물리치게 된 것이 통쾌해 다윗을 환영하며 외쳤습니다.
“사울은 천 천이요. 다윗은 만 만이로다.“ 이 말이 사울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은 다윗을 미워하는 생각이 나고, 분해서 어쩔 줄을 모르게 되었고,
결국은 사울 왕이 마귀에게 틈을 주어서 미치광이가 되고,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게 되었고, 인간의 모든 추태를 드러내다 결국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분을 내는 것은 마귀로 틈타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분을 내지 않는 것은 소극적인 행동입니다. 우리는 소극적인 행동으로,
분을 내지 말아야 할 뿐더러, 적극적으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참아야 합니다.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는다.” 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17:13-14 “누구든지 악으로 선을 갚으면, 악이 그 집에 떠나지 아니하리라.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 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이유는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싸움은 맞부딪쳐야 생기고, 큰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싸움이 생기기 전, 이유 있지만, 참아서 화평을 이루는 것이 덕스러운 일입니다.
잠언 20:22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잠언 24장 29절 “너는 그가 내게 행함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 - 분노보다는 인내하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5절 - 7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고 사도 베드로는 권면하였습니다.
로마서 12장 17절부터 21절에서는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라나님의,
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 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독일의 철학자 가운데 니체라는 사람은 이와 같은 성경의 교훈을 읽고,
기독교 도덕에 대해서 비난 하는 말이 '기독교 도덕은 노예 도덕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도덕은 약자의 도덕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이고, 강자의 도덕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세요! 상대방이 내 오른편 뺨을 치려면 왼손이 아니면, 오른편 손등으로 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뒤에서 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왼편 뺨은 오른편 손으로 맞는 것입니다.
이것은 약한 사람이 피해서 도망가는 것이 아닙니다. 마주 나가서 맞아 주는 것입니다.
약하게 맞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하게 맞는 자세입니다. 이 얼마나 적극적인 자세입니까?
내게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선으로써 악을 이기는 여유있는 자세를 엿볼 수 있읍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참아야 합니까? 히브리서 10장 35절, 36절 말씀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아멘!
우리가 화가 나지만 참아야만 하는 이유는,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해서 권면하신 말씀이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그러면서 우리가 어려운 일 당하여,
피곤하고 낙심하지 않기 위해, 죄인들이 거역한 것도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라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님은 얼마나 참으셨습니까? “사랑은 오래 참고”
예수님의 생애는 인내였습니다. 이 세상에 오시는 순간부터 가난을 참으셨습니다.
나신 곳이 마구간, 피난살이, 목수일, 주님 친히 말씀하신대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세상에 오시는 순간부터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빈곤과 질고를 겪으셨습니다.
고향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낭떠러지에 밀쳐서 떨어뜨리려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참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중상모략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예수님의 일생은 중상과 모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고 견디었습니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해서 마음 상하게 한 일이 얼마나 됩니까!
뿐만 아니라 제자 중 한 사람에 의해 팔리는 기막힌 일을 당하셨지만 참으셨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고통도 참으셨습니다. 문자 고대로 우리 주님은 인내의 주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모든 어려움, 예수님처럼 인내함으로,
반드시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