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준비하지 못해 노인들의 서운함을
오륙도의 바닷가에 날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챙겼어야 마땅한 일이었는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쓰다보니 긴 글이 되었지만
참고 읽어주시어 좋은 말슴을 남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여행은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지만
고요히 머무르며 가슴에 안아가는
정신의 자유로운 여행은
우리를 훨씬 행복하게 하여 줄것입니다.
---------------------------------------------------------------------------
여행은 즐거워야 한다.
마음에 드는곳을 정하여 놓고 가끔씩
내집처럼 편안하게 쉬었다 올수 있다면
여행이 주는 신비로운 호기심에 속아
하루종일 차에 갇혀 먼곳을 돌아오는 일보다
훨씬 바람직스러운 일이 될것이다.
여행은 길 위에서 시작되고 길 위에서 끝이나는 법이다.
추억이 아름다운 건 우리의 어린시절
동구밖을 돌아서 오솔길로 이어지던
마을과 마을길들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차가 귀했던 시절에 길도 귀했고
길 위를 걷는 사람도 귀했던 시절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의 마음도
참 평화스럽고 행복한 여행이었던 것 같다.
요즘에는 한시간 이상을 차를 타야
원하는 곳을 겨우 갈 수 있지만
옛날에는 날마다 한시간 이상을 걸어다녔다.
학교 다니는 길도 한시간이 넘게 걸렸고
친구들과 이 마을 저 마을 앞산 뒷산으로 놀러다닐때면
끝없이 걸었던 길 위에서의 모든 아름다운 추억들이
아직도 따뜻하게 가슴에 살아남아있다.
어느때인가부터 길다운 길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걸어도 발한번 아프지않던 푹신한 흙길이
먼지 하나 빗물 한방울 용납하지 않는 독하디 독한 시멘트로
잔인하게 짓밟혀지기 시작하였다.
그 다음부터 길 위의 사람들을 밀어내고 위협하며
온갖 차들이 미친듯 달리기 시작하였다.
휘적휘적 걸으며 정신의 여행으로
몸도 마음도 평화를 찾아 행복한 아름다움에 젖어가는
길 위의 자유로운 여행이
질주하는 자동차의 미친 몸부림 앞에 산산히 부서져 버리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점점 빨라지고 난폭해지는
자동차라는 괴물에게 스스로 자진하여 납치되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납치를 모면한 시골노인들이 서운하였던지
한달에 한번씩 노인회비를 내고
일년에 한번 날을 잡아 관광버스를 모셔다가
스스로 납치되어 먼길을 떠나는 날에
풀천지 새마을 지도자가 납치 경험이 많은 마을 부녀회장과 함께
노인들 시중을 들게 되었다.
운이 좋은 노인들은
그동안 남들보다 관광버스에 납치된 경험이 많음을
무슨 훈장인양 자랑해대며
새벽 여섯시에 좋은 모자 꺼내쓰고 썬그라스 가슴에 감추고
할머니들은 모처럼 일상에서 해방된 기쁨에 젖어
굽은 허리를 애써 펴며 크나큰 관광버스 안으로 놀러가게 되었다.
작년에는 꽉찼던 버스가
올해는 자꾸만 아픈 노인들이 많아져
넓은 자리가 3 분의 1 이나 썰렁하게 비어있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할머니를 두고온 할아버지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하였고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두고 혼자나온 할머니의 안색은
미안함이 역력 하였다.
치매걸린 할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아예 나오지도 못한
할아버지의 안부를 물어보지만
그럴수록 작년 겨울과 금년들어 몇번씩이나 연이어 일어났던
동네 초상의 아픈 기억만 쓰다듬을 뿐이다.
먼길을 떠나는 관광버스비 40 만원에
웃돈을 주어야 마음이 편한 습관이 되버린 인정으로
10 만원을 더하여 50 만원을 지불하고
스물 한명의 노인분들과 50 이 넘은 젊은 사람 세명을 합해
전부 스물 네명의 춘양면 석현 1리 노인관광단이
조용히 설레이는 머언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낙천적인 풀천지가 제일 싫어하는 일 중에 하나가
관광버스에 납치되는 일이다.
일단 납치 되면 인솔자의 명령에 따라
먹어야 되고 마셔야 되고 흔들어야 된다.
잘 먹지도 않고 신나게 마시지 않고 정신없이 흔들지 않으면
하루종일 벗어나지도 못하고 계속 욕을 얻어 먹어야 하는
관광버스에 납치된다는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때문이다...^^
귀농 7 년 동안 기회 있을 때 마다
마을 어른들의 협박과 회유를 꿋꿋이 견뎌내며 잘 모면해 왔는데
이번에 새마을 지도자를 맡게 되어 꼼짝 없이 동행하게 되었다.
농촌의 들녘을 지켜온 훌륭하신 농부님들을 모시는 일 만큼
중요한 임무가 어디 있겠는가 ?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야 하루가 내 것 같은데
늦게 자고 새벽 네시에 일어나 이런저런 준비를 하다보니
어김없이 예정된 새벽 여섯시가 되자
크나큰 관광 버스가 좁은 시골길을 꽉 메우며 들어선다.
떡집에서 떡하고 바나나 한박스 찾아 싣고
슈퍼에서 술하고 음료수와 과자 찾아 싣고
치킨집에서 치킨을 찾아 함께실으니
먼 길여행 먹거리 준비가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이 났다.
무엇부터 할 줄 몰라 서성거리는 나를 제치고
경험 많은 부녀회장이 잽싼 손놀림 몸놀림으로
봉지에 따로 따로 싼 떡 한조각을 먼저 돌리더니
봉지에 골고루 싼 오징어포와 땅콩과자에 곁들어 사탕도 함께 넣어 두었고
작은 박스에 1 인분씩 담은 후라이드 치킨 한박스와 종이컵 한개씩을
숨쉴틀도 없이 주욱 나누어 준다.
술은 아침에 먹어야 하고
밥은 낮에 잘 먹어야 하고
저녁엔 일찍 자야 건강한 법이다.
해떨어지면 그때부터 눈을 빛내며
자정이 넘도록 마셔대는 현대인들을 위해
늘어나는 병원들이 눈부시게 발전할 수 밖에 없음을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해장술이 무엇인가 ?
아침부터 마시는 술이다.
건강한 하루를 위해 건강한 세포를 기분좋게 깨우기 위함이다.
평생을 새벽부터 마셔온 노인들이니만큼
아침부터 물마시듯 소주로 목을 축이며 여행의 갈증을 달래기 시작한다.
새마을 지도자와 부녀회장의 오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흔들리는 차안에서 하루종일 앞에서 뒤까지 왔다갔다 하며
노인들께 술을 따라드리는 일이다.
한잔씩 드리면 자네도 내 술 한잔 받으라고 정으로 다시 따라주니
어쩔 수 없이 한잔씩 받아먹다 보면 얼큰해지며
하루종일 술을 따라야 되는 노인회 관광이
쩡쩡 울리는 트로트 리듬에 맞춰 흥겹게 시작이 되었다.
옛날 고생했던 이야기도 듣고
아파서 오지 못한 노인분들 걱정도 하다보니
첫번째 행선지 울산 광역시 인근의 언양에 위치한
자수정동굴로 차를 대준다.
기사가 중국에서 온 어린애들의 묘기가 볼만하니
꼭 쇼를 보고 나오시라며 생색을 낸다.
유원지화 되어있는 자수정 동굴 체험을 위해
일인당 경로 우대 할인 요금 3,500 원씩 스물 네명분 8만 4천원을 내고
컴컴한 동굴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버스 관광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유로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대열에서 이탈해서도 안되고 꾸물거려서도 안되고 구경도 눈치 빠르게 해야한다.
혼자 늦으면 모처럼 구경나온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도 큰 폐가 되기 때문이다.
조금 들어가니 기생오라비같은 엿장수가 보이고
작은 무대가 보이더니 잠시후에 쇼가 시작되었다.
불쌍한 애들이 나와 불쌍하게 잘하는 모습을 보고
미련없이 돌아서 나오며 한마디씩 하신다.
천원짜리가 있었으면 애들한테 주었으면 참 좋아했을텐데 안타까워하신다.
손주나 자식이 그런 고생 하는걸 두고볼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애들의 부모는 어디로 여행을 떠난 것일까 ?
일차 관광은 컴컴한 동굴에서 불쌍한 애들의 묘기를 구경하는걸로 끝이 났다.
휴게소에 들렀을 때 화장실 갔다 오니
어느새 올라왔는지 인삼 파스라고 파는 장사꾼이
쑤시고 결리는곳 투성이인 노인들에게 싸게 주는거라며
금방 한아름 팔고 내려간다.
말릴새도 없이 노인들끼리 그것 아주 신통한 거라며 서로 격려하며
너도나도 하나씩 노인관광 기념으로 하나씩 사들고 즐거워들 하신다.
서울에 있을 때 관광버스 여행을 지인들과 딱 한번 해본적이 있었는데
노래방 기계 처럼 열심히 도와주는 도우미가 없었는데
노인 관광은 노래방 기계를 전혀 작동 안하고
대신 노래 안부르시면 벌금 5 천원을 물어야 된다며 엄포를 놓는
부녀 회장의 넉살에 음정박자를 뛰어 넘어 생각보다 곱고 힘찬 목청으로
그동안 흥얼거려온 노래들을 돌아가며 부르시는데
음정박자가 노래에 있어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노인들의 즐거움 속에서
아침부터 마셔댔던 술때문이었는지
정겨운 이야기에 취했던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거짓말처럼 벌써 부산 앞바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예정대로 해운대쪽으로 방향을 잡아 선착장 가는길목에 위치한
한식 뷔페 점에서 점심을 해결하였다.
번화한 거리 5 층에 위치한 한식 뷔페는 생각보다 작았는데
6 천원 요금이 아깝지 않도록 음식도 좋았고 시내 손님들도 꽤 많았다.
평소 입담이 좋은 노인께서 할머니들이 늦게 나온다며
농으로 짐짓 화를 내는 시골스러움이 또한 정겹기만 하였다.
드디어 오륙도를 돌아오는 유람선을 타게 되었다.
경로 우대 요금이 일인당 만 천원이나 된다.
노인회 총무의 지갑에서 빳빳한 십만원 수표 3 장이
아낌없이 지불되고 출렁거리는 유람선에
멀미 걱정들은 어떡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즐겁게들 배에 오르셨다.
적당한 크기의 여객 유람선의 정원은 줄잡아 백명 안팎 정도의
날렵한 유람선 이었는데 할머님들은 거의 칸막이가 되어있는 선실로 들어가시고
용감한 할아버지들은 모두 갑판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며 드넓은 바다의 장쾌함에 먼 여행의 피로를 마음껏 풀게 되었다.
하얀물살을 가르며 출렁이는 파도속에
그지없이 상쾌한 바람이 철썩이는 파도조각을 날리며
바다가 주는 장쾌한 기운으로
시들어가는 노인들의 가슴속을 시원히 뚫어 주고 있음을
나 자신부터 터질듯 느끼고 있었다.
저멀리 해변가에 바다위를 가로질러 위용을 자랑하는
광안대교가 보인다.
그 엄살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부산 시내를 질주하는 콘테이너 수송차량들 때문에 무서워 죽겠다 하자
저토록 어마어마한 다리를 바닷속을 뚫고 들어가 기초를 쌓고
국내 최장 길이를 자랑하며
일층은 가는 차량 2 층은 오는 차량 아이디어까지 발휘해
관광도시 부산 항구를 위해 무려 7 km 가 넘는
어마어마한 다리를 건설해 놓았다.
멀쩡한 바다 위에 2 층으로 몸부림 친 컨테이너 수송도로인
광안대교를 쳐다보니
돈과 인간의 모진 생각만 있으면 참 못할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쪽에서 보면 섬이 여섯개인데
저쪽에서 보면 섬이 다섯개로 보여 오륙도라 하였다는데
조용필의 꽃피는 동백섬에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이
입속에서 오고간지 수십년이 넘었건만
오늘에서야 가까이서 직접 확인하게 되다니
풍광 좋은 오륙도 등대 바위섬에서 손을 흔드는
낚시꾼들의 팔자 또한 기가 막혔다.
생각보다 좋았던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광안대교를 지나 용두산 공원으로 가 전망대를 둘러볼 참이었는데
부산의 명물 자갈치 시장이 지척이라
구수한 꼼장어 냄새의 유혹을 쉽게 물리칠수 없는 채로
다시 경로우대요금 2 천원씩을 지불하고
개인이 정부에서 낙찰받아 운영하는 부산 전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용두산 공원의 전망대를 오르게 되었다.
입구쪽에 위치한 전망대를 오르는 엘리베이터의 정원대로 13 명씩 끊고보니
마지막으로 노인회 총무와 나만 둘이 남아 호젓이 오르게 되었다.
자그마한 엘리베이터 안에 안내 아가씨가 둘이나 근무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40 초 밖에 시간이 없어 엘리베이터의 속도를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며 120 m 높이를 40 초 걸린단다.
그래서 그렇다면 초속 3 m 아니냐며 간단한걸 왜 모르냐며 짖궂게 물었더니
여자는 원래 숫자에 약하단다.
그럼 여자가 강한게 뭐냐고 물어보니 대답도 하기전에 문이 열리고 만다.
여자가 강한게 무엇일까 ?
잘은 모르지만 숫자는 약해도 돈에는 강할 것이다...^^
둘러보고 다시 내려오는 길에
나를 보고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들을 위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서
하루 종일 엘리베이터 갇혀 지내기가 답답하지 않느냐며 친절하게 물어보니
괜찮다는 대답과 함께 문이 열리고 만다.
다시 닫혀진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들은 웃었을까 울엇을까?
아마 얼굴로 먼저 웃다가 마음으로 슬퍼하게 되었을것이다...
부산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의 전경은
분주한 항구의 모습은 그럴듯 한데
전국에서 없는 사람이 제일 벌어먹기 좋다는 부산 시내의 모습은
내장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듯 삭막하여 푸른 옷을 입혀주고 싶었다.
일정을 책임지는 회장과 총무의 계획대로라면
차대기 복잡하고 자칫하면 바가지 쓰는 자갈치 시장의 회먹기를 포기하고
올라가는 길에 간단한 저녁을 먹기로 예정되 있었는데
모처럼 큰맘 먹고 부산까지 내려와 부산의 명물 자갈치 시장에서
꼼장어라도 한점 먹어보지 않고서야 어찌 부산 여행을 말할 수 있겠냐며
다그치는 회원들의 압력에 못이겨 결국 기사의 친절한 안내대로
일인분 만 오천원씩의 거금을 지불하고 회를 먹으러 가게 되었다.
관광버스를 이용한 관광에서 기사가 이끄는 횟집에서 회를 먹게 되면
바가지 쓰기 쉽상임을 알면서도 단체로 움직이는 특성상
인정을 앞세우게 되고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꼭 먹게 되기 마련이다.
말로만 듣던 자갈치 시장은 역시
말로만 듣던대로 궁금하게 남겨둘걸 그랬나 보다.
나에게 부산은 여러가지 추억이 교차하는 곳이다.
작은 아버님과 작은 어머님이 그 먼 전라도 목포에서 부산으로 이사온 덕으로
온갖 해산물이 풍부한 목포에서 유일하게 구경을 못하는 고래고기를
가끔씩 작은 아버님의 초대로 부산에 가서도 실컷 먹었고
한번씩 목포에 다녀가실 때면 우리가 좋아하는 고래고기를 꼭 사오시곤 하셨다.
어린시절 나에게 부산은 고우셨던 작은 어머님의 인정만큼이나
여러가지 맛을 내는 고래고기의 별난 맛을 실컷 맛 볼수 있는 좋은 곳이었다.
그러다 군대가기전 첫사랑에 실패하고 나이만 들어가는 큰 형을 위해
걱정이 태산같은 어머님의 염려도 덜어 드릴 겸
해운대 해수욕장과 태종대 해수욕장을 돌며
큰형한테 어울릴 여자들을 꼬셔 주겠다며 큰소리 치다가
예쁜 여자들을 보고 나부터 껄떡거리다
형한테 욕 깨나 얻어먹었던 즐거운 추억에서부터
겁없던 총각 시절 회사를 운영하며 하늘 높은줄 모르고 날뛰다가
두번의 처참한 부도를 맞고 자살하러
서울에서 도망치듯 내려갔던 곳 역시 부산이었고
신혼 여행때 제주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김포공항의 짙은 안개 덕분에
착륙을 하지 못하고 부산에서 가까운 공항으로 회항하여
항공사 측에서 책임을 지고 숙식을 책임지게 되어 부산 특급 호텔에 투숙하며
신혼 여행에 1 박을 더한 것도 부산이었다.
나에게 부산은 돌아온 누님같은 포근한 추억이 가득했던 곳이다.
부산 여자들이 화끈한 줄도 알고
비릿한 바다내음과 도시의 깔끔함이 교차되어
넉넉한 품이기만 했던 곳이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기르고 살다보니
이미 추억에 묻혀버린 부산이었는데
다시 마을 노인들에 의해 묵은 추억을 꺼내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도 자갈치 시작은 말로만 들었을 뿐
오늘 이렇게 노인분들 덕분에 자갈치 시장을 둘러볼수 있게 되니
여행이 주는 설레이는 감회보다
뻔하기만한 장삿속이 활개치는 어디서나 변함없는 시장의 그런저런 모습들로
이제 말로만 듣던 자갈치 시장의 신비는 맛없는 회만큼이나 사라지게 되었다.
맛깔스런 냉면을 포기하고 선택한
먼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부산 자갈치 시장 횟집에서
의외로 회를 즐기지 않는 노인분들의 모습을 대하게 되니
감칠맛이 없는 실망과 함께 결국 한분이 불만을 터뜨리게 되었지만
많이 남겨진 회들 만큼이나 씁쓰레한 후회가 밀려왔다.
여행에 있어서 음식 선택이 잘못되면
여행의 즐거움은 사라지며 돈만 아까운 생각이 드는 법이다.
다만 세월이 지나면 재미난 추억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매운탕으로 저녁까지 해결하고 횟집을 나와 차에 오르니
서서히 어둠이 둘러지며 하루의 관광을 아쉬운대로 접고
귀향길에 오르게 되었다.
일정이 끝났음을 알리는 기사의 목소리에
전속력을 다하여 귀향의 의지를 밝히면서
남은 시간 후회없이 마음껏 흔드시고 놀길 당부도 잊지 않는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신나게 흔들 시간이다.
할머니들이 부끄러움 없이 마음껏 흔들수 있도록
나는 빠져주기로 마음먹고 맨 뒷좌석에서 일부러 잠을 청하였다.
일을 무리하게 하면 관절이 상하지만
춤을 신나게 추면 신명나는 흥으로 관절이 좋아질 것이다.
가장 좋은 춤과 노래는 일부러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흥이 날 때 이다.
오늘은 부녀회장이 너무 수고가 많았다.
노인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며 하루종일 정성스런 대접으로 잘 모시었다.
많은 경험탓도 있겠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하루종일 저리 잘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 농사도 잘 짓는데 역시 농사를 잘하면
무엇이든 잘 할수 있는게 틀림이 없다.
노인 회장 친구분 아들이 관광버스 기사인 덕분에
하루 종일 정겨운 말한마디라도 더 하며 따뜻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었고
먼 부산길을 하나라도 더 보여드리기 위해 늦게까지 애를 쓰고 부지런히 달려
밤 열한시가되어서야 춘양에 도착하였다.
부지런히 달렸더니 세시간 반 걸렸다는데 부산에서 이곳까지 그시간에 올 수 있다니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노인들의 마음속에 내년에도 이차를 또 탈 수 있을지 기약을 할 수 없을 테지만
세월은 멈추지 않고 흘러갈 것이고 노인들은 또 기다렸다 다시 타게 될것이다.
언젠가는 돌아오지 못하시겠지만 남겨진 추억은 빈자리를 지켜가게 될 것이다.
곧 있으면 어버이날이다.
마을 일각에서 노인 관광을 다녀왔으니
어버이날 행사를 그만두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나오곤 하는데
없앨것이 따로 있지 그날만이라도 노인분들의 외로움을
함께모여 살피지 않으면 또 어느날에
일부러 찾아가 위로해 드리겠는가 ?
세월과 인생은 젊음을 원하지만
빛바랜 아름다운 추억은 노인들의 깊게 패여가는 주름살에
보석처럼 숨어있을 것이다.
나도 곧 노인이 될 것이다.
그때쯤 나의 빛바랜 추억은 무슨 색을 띄고 있을 까 ?
평화롭고 행복한 색이었으면 좋겠다...^^
첫댓글 큰 행사를 마치고 지금쯤 몸살이 나셨을것 같습니다. 덕분에 노인분들의 가슴은 시원하게 뚫였을테지요. 고생많으셨어요. 석현의 새마을 지도자님 화이팅!!!
시원하게 뚫렸을 노인들의 가슴은 결국 다시 아프게 닫혔습니다... 호사스럽지 못한 죄책감으로 애꿎은 세월만 탓하며 말입니다... 제 몸은 멀쩡한데 마음만 아프군요. 좀 더 호사스러워야 했을텐데 말입니다... 대신 신선생님께 따뜻한 격려 받으니 너무 좋군요...^^
마냥 흐뭇하게 바라볼 수 없음이 안타깝군요 모처럼 부산에 얽힌 얘기들을 읽으면서 애증의 세월이 고스란히 기억속에 박힌 그곳으로 마음을 실어봅니다,
재미있게 쓰고 싶었는데 늘 자신에게 인색한 노인들의 소박함이 야속했나 봅니다...
여행은 길 위에서 시작되고 길 위에서 끝이나는 법이다. 추억이 아름다운 건 우리의 어린시절 동구밖을 돌아서 오솔길로 이어지던 마을과 마을길들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차가 귀했던 시절에 길도 귀했고 길 위를 걷는 사람도 귀했던 시절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의 마음도 참 평화스럽고 행복한 여행이었던 것 같다. ㅡ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세월일까요 흙길을 걸으면 관절통도, 요통도 없는데, 잘 포장된 도로를 걸으면 왜 그리도 통증들이 수반이 되는지.
온나라가 도로 공사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우리가 걸을 수 있는 길다운 길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네요.시골길만 해도 세맨 포장이 안된곳이 없으니... 그래서 참 편리하고 빠르게 병들어 갑니다...^^
님의글을 읽을때마다 느끼지만 비디오를 보는듯한 맛깔스런 글에 입맛을 다십니다 저도 님처럼 글로 표현하는 재주가 있다면 이곳에서의 한인들의 모습과 사교육비 지출에 눌려 이 곳까지와서 인종의 차별과 언어장벽에 안절 부절하며 타국에서 눈치보며 사는 나의 동포형제 마음을 대변해서 표현해 2ㅜ고픈 심정입니다만... 암튼 여울할매가 없는 부산 그리고 광안대교 가까이 있는 저의 집 근처를 지나갔을 흔적에 묘한 마음입니다 항상 건강 하시고 건필 하세요 반갑게 보고 갑니다
여울님이 떠난 부산의 허전함을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 갑판위에서 가슴 뚫리는 시원한 바다 바람으로 달랠수 있었습니다... 외국 여행 하시느라 피곤 하실텐데 풀천지를 생각하시어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시니 감격합니다... 이번에 한의사들 모임에서도 사교육비 얘기가 나왔는데 중고등학생 한명당 한달 사교육비가 보통 300 ~ 500 만원씩 지출 된다는 소릴듣고 기가 막혔습니다. 세상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고 신속하게 미쳐가는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스스로 자진하여 힘들게 고생하는지 잘날수록 멍청한것 같습니다...^^
고향생각이 많이 나네요 향수병에 걸릴것 같아요 고생 많이 하셨어요
드넓은 바다를 품에 안은 부산은 넉넉한 곳이더군요... 정이 들면 고향이라지만 추억 속에 각인된 고향의 그리움은 평생 잊을수 없겠지요... 자주 자주 고향을 들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