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종 소리
신학생 시절이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시골 교회를 담임하는 전도사 친구가 자기 집으로 놀러 가자고 하였다. 친구네 집은 경남 거창 지방이었다. 친구 집에 도착한 날 친구의 모친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모친이 다니는 교회에 전도사님이 그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여 내일 주일 예배를 인도할 사람이 없다고 걱정을 하셨다. 모친 전화를 받고난 친구가 어이! 서상준 내일 우리 고향 교회에 가서 주일 예배를 좀 인도하고 가라 하였다. 겨우 신학교 1학년인 나는 말이 신학생이지 사실 교회에서 설교를 해본 경험이 없다. 사양하는 나를 친구가 억지로 자기 고향 교회로 데리고 갔다. 당시에는 길이 비포장도로라 먼지가 많이 났다. 한 여름 날씨가 더워 에어컨이 없던 당시 버스는 창문을 모두 열어 놓고 달려 차 안에서도 먼지를 마시면서 찾아간 곳이 거창군 신원면 신원교회였다.
주일 낮 예배를 인도하고 났더니 교인들이 사택으로 모여서 나를 그 교회 전도사로 있어 달라고 붙잡았다. 당시는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다가 실패한 화병으로 돌아가신지 겨우 1년이 되어 혼자 살고 계시는 어머니께 가기도 그렇고 해서 방학동안만 있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잡혀 3년을 그 곳에서 전도사로 봉사했다.
교회를 처음 담임한 신학생인 나는 새벽마다 종치는 것이 재미가 있어 종을 한차례 50번 정도 쳤다. 교인들이 새벽에 종을 너무 많이 친다고 했다. 면 소재지 중앙으로 가로질러 난 큰 길을 가운데 두고 교회 정문과 늑대 영감님의 집 대문이 마주 보고 있었다. 영감님은 성격이 거칠고 무서운 사람으로 전에 전도사님이 종을 오래 치다가 영감님께 혼이 났다고 하였다. 새벽기도 시간에 늑대영감이 몽둥이를 들고 예배당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는 전도사님을 향해 야 이놈아! 종소리 때문에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다. 너 이놈의 자식 한번만 종 더 쳐봐라 내가 때려죽인다. 하고는 몽둥이를 예배당 안에 던져 놓고 가버렸다고 했다.
천성이 호전적이고 사회생활에 세련되지 못했던 나는 그 말을 듣고 나니 괜히 심통이 생겼다. 이놈의 영감쟁이 할 테면 해봐라. 어디 교회를 도전하느냐? 하고는 오리려 백 번씩을 쳐버렸다. 만약 영감님이 몽둥이를 가져왔다면 어떻게 할 능력도 없으면서 괜히 호기를 부리고 있었다. 하루는 어느 교인이 내게 늑대영감이 이번에 온 전도사가 종을 너무 쳐서 잠을 못 자겠다며 한번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하드라 했다. 그때부터 적게 치자니 그렇고 그렇다고 계속 많이 치기도 은근히 겁이 나서 슬그머니 전처럼 50번씩만 쳤다. 말이 50번이지 예배당 종은 50번을 치자면 상당히 오래 쳐야 한다. 교인들은 걱정이 되어 그렇게 많이 치면 안 된다고 하였지만 호전적인 성격에 철부지였던 나는 계속 그대로 쳤다. 그러나 아무런 탈 없이 겨울 방학이 되었다. 방학 동안은 교회에 상주하다보니 새벽마다 내가 종을 치니 영감님에게는 상당히 불편했을 것이다. 들리는 소문에 영감님이 총각전도사라 봐 줬는데 안 되겠다고 하신다는 말이 들렸다.
대한 추위로 며칠 춥더니 갑자기 날씨가 따뜻해진 어느 날 늑대영감님 댁에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렸다.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늑대 영감님 영애 결혼식 날이었다. 거창에 있는 예식장에서 예식을 하고 오후에 집에서 마을 손님과 잔치를 한다고 했다. 일찌감치 편지 봉투에 축의금을 넣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1,000원씩 부조를 하고 있었다. 큰마음으로 3,000원을 넣어 오후 3시쯤 되어서 양복을 차려입고 나가니 마침 면장님과 농협조합장님 우체국장님 지서(파출소)장님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님 등 면내 기관장들이 모여 오고 있었다. 인사를 하자 평소 친하던 면장님이 전도사님 잔치 집에 같이 갑시다. 하셨다. 저도 그 댁에 가려고 나왔다며 함께 늑대영감님 댁으로 들어갔다. 기관장님들과 한패가 되어 늑대영감님 댁에 갔더니. 잔치 집에서 기관장님들이 오셨다고 큰방을 하나 특별이 비워주었다. 일행 중에 제일 젊은 내가 기관장들 축의금을 챙겨서 영감님께 직접 드리면서 어른 귀한 따님의 화혼을 축하드립니다. 하였더니 늑대 영감님이 무척 반가워하시면서 교회 전도사님이 우리 집에를 다 오시고, 하시면서 악수를 하고 무척 좋아하셨다.
술도 안 잡숫는 전도사님에게 무얼 대접해야 하나? 야들아! 여기 전도사님 잡수실 것 좀 가져 오너라, 사이다 좀 빨리 가져 오너라, 면장 이 사람아 자네나, 조합장 자네들보다 우리 전도사님이 참 큰 손님이다. 술도 안 잡수시고, 대접하기가 참 어렵다. 뭘 대접해야 하나? 하시면서 영감님이 아랫사람들을 불러 이것저것 가져오라고 시키셨다. 기관장님들과 같이 들어가서 전도사 점수가 더 올라갔을 것이다. 그 후에 늑대 영감님이 길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사람들에게 이번에 온 전도사는 총각이라도 사람이 참 훌륭하고 또 예배당 종을 어떻게나 잘 치는지 내가 새벽잠이 없는데 종소리를 듣기가 참 좋다. 라고 하신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사람은 이렇게 먼저 친하게 되면 모든 것이 좋게 양해가 되는가 보다. 예배당 종소리가 시끄럽다고 하셨다는 말에 심술을 부렸던 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그 때부터 새벽종을 열 대 여섯 번만 치면서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되었다. (끝)
첫댓글 어릴 적 예배당 종소리가 새벽이면 들려 왔는데 요즘 들을 수 없어 옛 정취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워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요즘은 정취라기 보다 소음이라 여기지요. 건강하시고 창필하십시오.
바쁨에 다녀 와서 읽어 보겠습니다
다녀오셔서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샬롬!!
잘 읽었습니다. 난 이 예배당 종소리가 좋아서, 그 옛날 밧줄로 당겨가며 치던 무쇠종을 살려고 골동가게 마다 들락거려 보았지만 종이 온전하게 나오는게 없더군요. 그나마 가격도 비싸고. 실제로 빔을 세워 농장에 설치하고 한 번씩 처볼려고 하는데 구하기가 어려워요.
소담님 하회마을 장승촌에 가면 실제 칠 수 있도록 걸어놓은 종이 있답니다. 언제 같이 가시어 한번 쳐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