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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선생님이 어제 불쑥 찾아와서 내민 책이다.
마스터 힐러까지 해보겠다고. 의식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느낌이었다.
진지하게 읽어보려 한다.
panic bird......
4년전쯤이다.
내 안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그 변화를 단 두마디로 정리하면 "處處佛像 -> 頓悟漸修"였다.
그 당시 내의식의 출발은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level표의 자존심이었다. 자존심->용기->중립->자발성->포용->이성->사랑->기쁨->평화->깨달음. 이후로 뇌과학공부, 심리학공부, DCC, HC코칭, 에니어그램 등을 통해 간절한 물음과 노력의 덕분으로 이성의 단계에 도달하였다. 이성의 앞에서는 한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었다. 종교가 필요하구나. 그리고 종교를 찾기 시작했다. 원불교(소태산 대종사님), 부처님, 예수님 그 누구의 말씀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를 선택하고 싶었다.
우연히 나원장님으로부터 찾아온 일지 이승헌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총장님의 말씀은 나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선택은 "깨달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존심도 선택이요. 용기도 선택이요, 이성도 선택이요, 평화깨달음도 선택이라는 놀라운 말이었다. 깨달음을 선택했으면 "실천(점수)"을 하면 되는 아주 심플한 게임이었다.
평화, 깨달음을 선택한 나의 행동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평화, 깨달음을 선택한 나의 생각과 사고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평화, 깨달음을 선택한 나의 감정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평화, 깨달음을 선택한 나의 무의식(고정관념)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평화, 깨달음을 선택한 나의 본질(자아, 진아)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과 실천이 필요한 중요한 시점이다.
2009년 09월 15일. 아침 7:44 나의 서재에서
panic bird..
1.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의 자유
- 우리는 배우는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배운대로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때로는 죄의식까지 느낀다. 그러나 배움에 대한 강박이 우리의 삶을 점점 더 조각내고 더 의존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 자연스러움이 창조성의 원천이다.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의 자유가 창조적인 삶의 시작이다. 지식은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올바른 판단과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목적자체를 선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니다.
- 우리의 삶의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문명생활이라 부르는 낭비적이고 파괴적인 삶의 방식은 근본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 삶의 방식이 뿌리에서부터 변화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사려깊은 전략이 필요하겠지만 변화하겠다는 선택은 지금 바로 할 수 있다. 평화와 깨달음은 선택일뿐이다. 평화와 깨달음을 선택하고 "실천"은 시간과 더불어 가능하다.
- 성품의 변화는 흔히 깨달음이라고 부르는 선택으로부터 시작한다.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 습관의 변화는 자신의 선택, 자신의 깨달음을 일상생활속에서 실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성품과 습관, 기술은 어떤 과정을 통해 바뀌는가?
첫째, 성품의 변화는 깨달음이라고 부르는 선택으로부터 시작한다.
둘째, 습관의 변화는 자신의 선택, 깨달음을 일상생활속에서 실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자신의 선택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습관을 교정해야 하고 연습을 해야 한다. 그 연습이란 당신의 선택인 깨달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성품의 변화는 습관의 변화를 가져오고 습관의 변화는 성품의 변화를 가져온다.
셋째, 기술의 변화는 작은 기술들의 발견 및 재발견으로부터 시작된다. 출발점이 되는 기술의 변화는 우리의 삶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면서 쉽고 편하여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배움은 선택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선택한 것(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 이제 나는 내가 선택한 것(깨달음. 처처불상-돈오점수)을 이루기 위해 배울 것이다.
2. 태어난 것은 축복이 아니다.
- 왜 우리는 행복하려고 하는가? 왜 행복하기 위해 그토록 노력하는가? 내 삶은 가치있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나의 행복을 창조한다. 수많은 자기 최면과 자기 감시, 자기 동기부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 진정한 행복은 보다 행복한 삶의 조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행복의 조건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행, 불행을 넘어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 그것이 참 행복이다.
참행복을 위한 세가지 깨달음
첫째, 인생이 고통이라는 것을 아는 것
- 나는 누구인가? 왜 태어났는가? 왜 사는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러한 질문들이 진지해지고 깊어질수록 우리는 자신이 애써 구축해온 삶의 의미들이 하나씩 해체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자신의 삶이 뿌리가 없다는 느낌이 들고 끝없는 공허감이 밀려온다.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접어버리는 것은 대개 이 공허감을 감당하기 어려워서이다.
둘째, 내몸이 내가 아니라 내것임을 아는 것
- 우리가 남에게 무시당했을때, 삶이 비참하다고 느낄때.
- 모든 행복과 불행의 느낌은 사실 우리가 자신을 자신의 몸과 동일시하는데서 생긴다. 내몸은 내가 아니라 내것일 뿐이다.
셋째, 비전을 통해 스스로의 신성을 완전히 꽃 피우는 것, 이것이 완전한 깨달음이다.
- 비전은 백일몽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머리속에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기쁨으로 빛날만큼 좋고, 지치지 않고 계속앞으로 나아갈만한 동기를 부여하고, 모든 관심과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며, 주위사람들로부터 지지와 격려를 얻을 수 있을만큼 유용하고, 달성여부를 자신도 남도 모두 알 수 있을만큼 구체적인 것이다.
3. 섬기는 신에서 활용하는 신으로
- 우리는 신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한다. 그런데 신의 이름으로 실현되는 많은 일이 그토록 자기중심적이고 완고하고 편협한 이유는 무엇일까? 신은 왜 그렇게 자주 분노하고 질투하며 편애를 하는 걸까?
- 신은 우리의 욕구와 소망, 그리고 에고와 더불어 성장해왔다. 인간의 의식이 부족단위에 있을때 부족의 신이 생겨났고, 그 단위가 민족이 되었을때 국가와 민족의 신이 생겨났다. 우리의 신들은 정복을 통해 자라났다. 우리의 욕구와 소망이 자라면서 점점 더 큰 신들이 생겨났고, 동시에 크기가 다른 신들 사이에 위계가 생기고 힘에 바탕을 둔 질서가 자리잡게 되었다. 신은 그 신을 만든 에고가 성장하면서 함께 성장하지만, 신이 생겨날때의 조건을 마치 지문처럼 기본속성으로 가지고 있다. 분노의 신은 여전히 분노하고, 질투의 신은 여전히 질투한다. 민족의 신은 여전히 그 민족의 편에 서 있다. 단지 더 체계적으로 자신의 분노와 질투를 표현하고 더 교묘하게 자신의 편애를 실현하고 있을 뿐이다.
- 신의 국적을 살펴보라. 거의 모든 신들은 본질적으로 민족신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우주 전체는 고사하고 지구를 대표할 신조차 없다. 우리의 신들은 본질적으로 미숙한 민족적, 집단적 에고의 표현이다.
- 신들의 모습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신이 우리를 자신의 모습대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모습대로 신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신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자신의 의식수준이다.
- 우리가 신이라는 정보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죄의식과 두려움때문이다. 모르기때문에 두려워하며 누군가 그것에 대해 특별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 쉽게 그 권위에 복종하게 된다.
- 당신은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삶의 목적이 스스로 모른다고 생각하는가?
- 그리고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가?
- 당신이 누구인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당신자신보다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 당신이 모른다면 누가 알 수 있는가?
- 아무도 모르는 문제, 신도 모르는 문제의 답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 그 문제의 답을 아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선택"이다.
-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이기를 원하는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살기를 원하는지를 선택하라.
- 깨달음을 선택하고 앎을 선택하라. 무지와 그 무지에서 비롯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바로 이 선택을 통해서이다.
- 우리가 앎을 선택했을때, 죽음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해석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무지를 벗어났을때, 그리고 당신이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을때, 당신은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더이상 신의 이름이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고, 신은 더이상 죄의식과 두려움으로 당신을 묶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당신은 자신의 선택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신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가 신이라 부르는 개념을 구성하는 정보들이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 인류의 평화와 지구환경보호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 우리 자신과 사회와 지구를 치유하고, 본래의 건강과 조화를 찾게 하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 우리가 앞으로 창조하고자 하는 삶의 모델에 그 정보가 아직도 유용한가?
-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것인지 선택하고 그 선택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신을 활용할 수 있다. 신은 당신이 자신의 삶을 창조하기 위해 활용할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조하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라.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당신은 정보의 주인이고 당신 삶의 주인이다. 당신은 창조주이다.
- 신은 정보이며 우리가 가진 집단의식의 표현이다. 신의 이름으로 실현되는 것은 다름아닌 우리 자신의 욕구이다. 신이 우리 자신의 모습대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모습대로 신을 창조하고 있다. 신은 우리가 모셔두고 섬길 대상이 아니라 창조의 도구로서 마음껏 활용할 대상이다. 우리는 신이라는 정보의 주인이다.
4. 생명의 새로운 정의, 심장에서 뇌로
- 생명이란 무엇일까?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육체가 생명일까? 우리 몸을 돌던 따뜻한 피가 멈추고 힘차게 박동하던 심장이 멈추는 순간이 정말 생명이 끝나는 순간일까?
- 세가지 몸( 육체, 에너지체, 정보체)
- 육체는 볼수있고 만질 수 있다. 에너지체는 보거나 만질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다. 정보체는 오감으로 감지되지 않는 정보의 영역이다. 절대자유니 무한한 존재니 하는 것은 이러한 정보체의 차원을 말하는 것이다.
- 인류역사에서 생명의 상징은 심장과 혈액이었다. 만약 우리의 인식이 에너지체와 정보체로까지 확대되면서 생명을 훨씬 더 통합적이고 근원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게 되고 그러한 자각과 이해가 보편적인 상식이 되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까?
- 당신은 얼마나 다차원적인 존재인가?
- 용기에 담긴 물질에서 창조주에 이르기까지 당신은 어떤 영역을 기준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는가?
- 이 모든 것이 생명현상인데 그중에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있다고 말해야 할까?
- 또 살아있음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
- 상해를 입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피가 나고 멍이 드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에너지체나 정보체에 손상을 입히는 것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정보체가 바르면 에너지체가 바르고 에너지체가 바르면 육체에 지금 손상이 있다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치유가 일어난다.
- 정보체가 망가지면 어떻게 될까? 정보체가 가장 심각하게 손상되는 경우는 정보체 안에 잘못된 신념체계와 왜곡된 가치체계를 심어줄때이다.
우리시대 최악의 바이러스 "오염된 정보"
- 깨달음을 선택이라고 한 것은 사실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깨달음을 관념적이고 신비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이런 환상을 깨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자유나 구원, 깨달음과 같이 우리 사회가 진보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정보들조차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원래 상태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다면, 우리를 두려움과 죄의식에 머물게 하는 부정적인 정보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 우리의 정보체는 지금도 이러한 부정적인 정보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그것들에 의해 움츠러들고 오염되고 손상되고 있다. 정보체의 손상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왜곡시키며, 왜곡된 정보가 그 사람의 행동을 통해 출력될때는 자신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와 지구의 생명에까지도 심각한 위협을 주게 된다.
- 우리는 자신의 정보체가 불구인줄도 모르고, 그것이 감옥에 갇혀 있는줄도 모른다. 정보체가 불구이기 때문에 인식과 판단이 바르지 못하고 정보체가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에 사고가 자유롭지 못하다. 갇혀 있으면서도 갇혀 있는 줄 모르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것이다.
- 생물학적인 바이러스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전파속도가 빠르고 영향력도 크다. 지금 우리가 가진 수준의 정보통신수단으로 지구 정도의 규모에서는 사실 시간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인유가 문자 그대로 동시에 같은 정보를 접할 수 있으며 우리의 정보체는 그러한 수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다.
- 우리는 육체가 곧 우리 자신이고 생명의 전부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생명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육체를 넘어 에너지체, 정보체로까지 확대되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성숙하고 수준높은 죽음의 문화를 갖게될 것이고, 심장과 혈액이 아니라 뇌와 정보를 생명의 상징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생명을 가진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5. ㅇ점을 회복하라.
- 왜 우리는 서로 다른 가치기준을 갖고 있을까? 왜 같은 것을 재는데도 가치의 저울눈금은 서로 다른 수치를 가리킬까? 누군가의 저울이 고장났기 때문일까? 아니다. 저울은 완전한데 저울눈금이 0에 맞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 분쟁의 소지가 되는 것은 물리적인 양의 척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의 척도이다.
-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깨끗한 자연환경의 시장가치는 얼마일까?
- 건강한 삶에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세계관의 값은 얼마이고 종교에 서 다루는 구원과 영생의 값은 얼마일까?
- 당신이 만약 깨달음을 살 수 있다면 얼마를 지불하겠는가?
- 지금 당신의 인식은 완전한가?
- 만일 당신의 인식이 완전하지 못하다면 완전한 인식을 하지 못하는게 당신인가?
- 자신의 인식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게 당신인가?
- 그리고 당신은 자신의 인식이 완전하지 못함을 어떻게 아는가?
- 우리가 자신의 인식이 불완전함을 아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처음부터 주어져 있는 완전한 앎을 통해서이다. 우리안에는 우리가 그것을 알든 모르든 완전한 앎이 존재한다. 그것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 완전한 앎이 바로 깨달음이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선택이다. 그래서 깨달음을 선택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완전한 앎이 모든 인식의 근거이다. 우리의 저울에 결함이 없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의미이다.
- 항상 저울의 0을 유지하는 것이 깨달음이 아니라 완전하고 정확한 저울자체가 깨달음이다. 사원안에서 동굴안에 머물며 늘 그 완전한 의식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저울위에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고 항상 0을 유지하는 것과 같으며, 그 상태에 머무는 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다.
- 하지만 깨달음은 저울눈금이 0이거나 10이거나 상관이 없다. 올려져 있는 대로 정확히 무게를 표시하는 그 완전한 저울 자체가 우리 자신이고 깨달음이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 올려져 있을때 올려져 있다는 것을 알고 내려놓을 줄 알면 되는 것이다. 필요할때 안경을 끼고 보고 자신이 안경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필요없을때 벗어놓을 줄 알면 되는 것이다.
0점을 회복하는 네가지 원칙
- 우리는 살아있는 이상 활동하지 않을 수 없고 활동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우리의 선택은 평형을 끊임없이 교란시킨다. 그 교란을 다시 평형상태로 돌려놓는 것이 기의 으름이고 도의 작용이다. 생명활동은 끊임없는 교란을 만들고 도의 흐름은 그 교란을 잠재운다.
- 지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잠시 이용하도록 허락받은 것이지 돈을 주고 산것이 아니다. 허락받은 기간동안 우리가 얻을 것은 무엇보다 넓은 땅덩이나 보다 높은 건물이 아니라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그 무엇에 의해 파괴될 수도 없는 내적인 성장이다.
첫째원칙, 자신이 완전한 거울임을 인정
둘째원칙,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념의 무게 때문에 그 저울 눈금이 0점에 맞추여져 있지 않음을 알기
셋째원칙, 우리 삶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선택, 가치가 자신의 인격이나 종교, 민족이 아니라 "지구임"을 알기
넷째원칙, 그 중심가치가 지구를 중심에 두고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에서 0점 회복의 책임을 받아들여야.
- 삶의 모든 영역에서 바른 거래가 이루어지려면 먼저 자신이 완전한 저울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념의 무게때문에 저울 눈금이 0에 맞추어져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서로 다른 가치를 비교하고 평가할 수 있는 가치들의 가치, 중심가치는 개인의 인격이나 사상, 종교나 민족을 초월한 지구밖에 없다. 지구를 중심에 놓을때 비로소 우리는 0점을 가리키는 공평한 저울을 가질 수 있다
6. 지구의 입장에서 선민은 없다.
-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뒤에 숨은 것은 무엇인가? 주목받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함께 인정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특별함에 대한 강박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신이 자신을 특별히 선택했다는 믿음이다.
- 특별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의 배후에 있는 근본동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다. 우리가 흔히 "선민의식"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이야말로 특별함에 대한 강박 중 가장 심각하고 위험하다.
-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지구를 중심으로 한 가치체계요, 지구인의 의식이다. 지구인이 된다는 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지구인으로서 지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신의 가족이나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단지 집이나 국토를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지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구환경을 보호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 남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특별하고자 하는 강박은 왜곡된 에고의 표현이다. 그러나 강박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신이 자신을 특별히 선택했다는 선민의식이다. 신은 그 민족의 신념체계의 일부이며, 그 민족의 집단의식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선민의식은 일종의 왜곡된 자기사랑이다. 우리는 지구인이고, 지구에게는 모든 인류가 지구인이다. 지구의 입장에서 선민은 없다.
지구에게는 인류가 특별하지 않다.
- 지구에게는 인류가 전부가 아니다. 보살피고 부양할 생명이 인간말고도 많이 있다. 지구에게는 스스로 지켜야할 자신의 생명이 있다. 지구가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고 판단할때는 결국 어떤 선택을 할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녹색별 지구는 한 종의 포유류의 오판과 게으름, 무지, 방종으로 사라지기에는 너무나 값진 우주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7.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 순간의 재미와 행복을 추구하며 살다가도 문득 뒤를 돌아보면 불안하고 초조하지 않는가? 세상사에 초연한 듯 맑고 고요하게 살다가도 문득 뒤돌아보면 권태롭고 허망하지 않은가?
- 존재의 근원을 찾기 위해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망원경으로 하는 먼곳을 바라보고 현미경으로 작디작은 입자를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망원경, 현미경으로 존재의 근원은 보이지 않는다.
존재의 근원이 되는 삼원
- 첫째, 존재의 배경(무, 공)
- 둘째, 무, 공 위를 움직이며 온갖 무늬를 그려내는 생명전자
- 셋째, 정보를 출력하기 위한 질료
- 성, 명, 정
- 이, 기, 상
- 심, 기, 신
- 영, 혼, 백
- 천, 인, 지
- 언어화된 진리 즉 이해된 진리는 신체 진리의 그림자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진리의 흔적이고 자취이고 배설물이다. 이 글도 마찬가지이고 모든 경전, 모든 성인의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 사실 이 모든 것, 진리를 설명하기 위한 말들을 다 합쳐도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진리에 관한 모든 설명을 다 합쳐도 차라리 졸릴때 하품하는 것만큼도 참되지 못하다. 그것이 우리 언어의 한계이다.
창조 진화 편집
- 생명전자에는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 있고,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것을 가리켜 "신성의 편재'라 할 수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활성도에 따라 모양과 성질과 존재하는 방식에 차이가 난다.
- 생명전자의 활성도가 높을수록 진동수가 높고, 운동성이 크고, 창조성이 크다. 생명전자의 활성도가 낮으면 우리는 그것을 살아있지 않다고 표현한다. 같은 개체 안에서도 생명전자가 활성화된 정도에 따라 진동수와 운동성과 밝기가 다른데, 이것을 "의식의 밝기'라고 표현한다.
- 생명전자가 활성화되어 의식이 일정한 밝기가 되었을때, 비로소 자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것은 문학적 은유보다는 물리적 사실에 가깝다. 생명전자의 활성도가 높아짐에 따라 점점 더 의식이 밝아져 더 많은 것을 알게된다. 활성도가 임계점에 달하면 다른 양태로 바뀌는데, 이것은 마치 에벌레가 나비로 다시 태어난 것과 같다. 이것이 진화의 진정한 의미이다.
- 하나의 생명이 자신의 생명에너지를 점점 활성화시켜 나가는 이 진화의 고정은 "혼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한다. 혼이란 생명전자가 핵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혼의 핵은 한생각, 흩어지지 않는 집중된 한 생각인데, 주로 강력한 욕구나 소망이 그런 역할을 한다. 그것을 恨이라고 한다.
한생각으로부터 시작되는 여행
- 혼의 핵을 이루는 한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
- 그것은 누구의 생각일까?
- 누가 책임져야 할까?
- 그 생각을 씨앗으로 해서 생겨난 혼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생겨나고자 선택한 것도 아닌데 그 고생스러운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 혹시 억울하지나 않을까?
- 하나의 혼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여행을 해야 할까?
깨달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 한 생각의 씨앗에서 시작해서, 씨앗을 피우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이 여행의 과정이다. 이 여행의 끝을 사람들은 흔히 깨달음이라고 한다.
-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 무엇을 아는 것이 깨달음일까? 그것이 정말 끝일까? 그 뒤에는 뭐가 있을까?
- 깨달음의 핵심은 깨달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 깨닫고자 하는 마음은 실체가 없고, 참마음은 이미 개달음 그 자체이니 도대체 누가 무엇을 깨닫겠다는 것인가?
-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 당신의 가슴을 희망과 기쁨으로 벅차게 하는 게 무엇인가?
- 당신의 혼에게, 당신의 가슴에 물어보라.
- 당신이 자신의 가슴에 물어보고 무엇을 위해 살지를 선택했다면, 그 다음 모든 방법에 관해서는 뇌에게 물어보라. 당신의 뇌와 대화를 하고, 당신의 뇌와 영적인 교류를 하라.
- 아무리 큰 깨달음을 얻고 아무리 높은 지혜를 얻어도, 정직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있게 사는 것 외에 달리 바른 삶의 방법은 없다. 이것이 내가 아는 도의 요체다.
나는 왜 이일을 하는가?
- 모든 사람이 방황을 덜 하고 좀더 일찍 자기안의 신성을 찾아 그 신성을 꽃피우고 돌아갈 곳으로 돌아갈 수 잇는 좋은 여건, 다시말해 이 지구에 영적 완성을 위한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나의 선택이다.
- 자녀를 낳는 것은 당신이 그 사실을 알건 모르건 완성을 위해 한 영혼을 지구로 초대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집이 신성의 실현이라는 지고한 소망을 품은 손님을 초대할 만한 상태인가? 당신은 지금 우리의 지구가 혼을 성장시키고 영적인 완성을 이루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하는가?
- 나는 지구의 조건을 지금보다 낫게 만들고 싶다. 지구를 혼을 성장시키고 영적인 완성을 이루기에 아주 좋은 곳으로 그래서 한번 방문하려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오래 기다려야 될 만큼 영혼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 나에게는 사회를 힐링하고 지구를 힐링하는 일이 나의 깨달음을 실천하는 길이고 나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길이다.
- 우리의 삶은 0에서 시작해서 0으로 돌아가는 대순환의 일부이다. 허공에서 일어나 허공으로 사라지는 생명전자의 운동이다. 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삶이 그러함을 알고 존재의 뿌리를 허공에 두고, 가슴에는 찬란한 비전을 품고, 지금을 의연하게 사는 것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있게 사는 것외에 더 잘 사는 방법은 달리 없다.
8. 힐링할 것인가? 킬링한 것인가?
- 지구와 인간을 창조한 존재가 있다면 그들은 아마 지금쯤 초비상일 것이다. 종의 패권을 휘두르며 지구의 독재자로 군림해온 인류는 과연 이 지구에 얼마나 더 오래 머물 수 있을까?
- 지구가 생긴지 50억년, 300만년전부터 인류가 지구에 거주, 인류가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지구의 지배종으로 산것은 4만년
진화에 관한 두가지 수수께끼
- 진화에 관한 수수께끼 중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두가지는 공룡의 갑작스러운 멸종과 인류의 급속한 지배종으로의 부상, 공룡은 그야말로 연기처럼 사라졌고, 인류는 혜성처럼 나타났다.
- 과연 앞으로 인류는 지구에 얼마나 더 오래 머물게 될까?
- 수백만년을 큰 변화없이 진화의 길을 걸어온 인류는 4만년전부터 빠른 진화의 조짐을 보이다가 1만 5천년전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대뇌피질이 커지면서 놀라운 지성과 창조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 왜 공룡은 그렇게 갑자기 사라졌을까? 또 다른 영장류들은 별 변화없이 지금도 숲속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어떻게 현생 인류는 갑자기 지구 전체의 존립을 좌우할만한 위협적인 지성을 갖게 되었을까?
저자의 상상력
- 50억년 전 나름대로 진화의 길을 걸어와서 창조의 비밀을 알고 있는 신들의 회의에서 중요한 프로젝트가 제안
- 여러 생명체가 한곳에 모여있을때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사는지를 알고 싶어함.
- 지구를 설계하여 중력, 태양과의 거리 등 조절하고, 대기, 물이 순환하도록 "달"을 둠
- 신들은 자신의 유전정보에 에너지를 싫어 자신을 닮은 생명체가 생겨나게 함
- 신들은 창조력이 잘못 사용되면 얼마나 위험한 도구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은 유전정보 중에서 창조력부분은 자물쇠를 달아 작동되지 않게 하고, 그 신성정보를 작동시킬지 여부는 생명체가 일정한 진화단계에 이르렀을때 경과를 보기로 결정함
- 프로젝트는 잘 진행되고 있었는데 신들의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였는데, 그 첫번째가 "공룡의 폭발적인 증가"였다. 먹이사슬 맨 위에서 하늘, 땅, 물속까지 닥치는대로 다른 종을 해치는 공룡은 그 수가 임계점을 넘어서자 신들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신들은 만장일치로 공룡을 제거하기로 결정하고 지구상에서 공룡은 화석으로만 그 존재가 남음
- 생명체들이 일정한 진화의 수준에 이르렀을때, 신들의 회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신성(창조력) 정보를 작동시킬지의 여부
- 그 후보로 인간이 결정됨
- 직립보행으로 신성을 발현하기 쉬운 조건을 갖추고 연약하고 겁이 많고 온순하다는 점이 참작됨.
- 신성정보가 작동되고 지성이 생겨도 다른 종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함
- 신들의 논쟁
- 흰옷을 입은 신은 "신성을 작동"시켜야 한다고 주장.
- 검은 옷을 입은 신은 "신성정보를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
-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합의(즉 만약 잘못된 결정이 었을 경우 흰옷을 입은 사람들의 주장을 철회하고 검은 옷을 입기로)를 하고 인간의 유전정보 속에 자물쇠가 잠긴상태로 잠재되어 있던 신성정보를 풀었다.
- 인간의 뇌는 이스트를 넣은 빵처럼 짧은 기간동안에 지구를 지배할만큼 성장했다. 성장속도를 지켜보던 신들도 놀랄정도
- 흰옷을 입은 신들은 인간이 스스로의 신성을 자각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계속보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정보를 부지런히 청소를 하고 다님
- 어떤 흰옷을 입은 신들은 자원자가 직접 지구를 방문하여 어떻게 신성을 발현시키는지 모범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신화의 형태로 후세에 전해지거나 잊혀져버리기도 함.
- 신들은 비상회의를 소집할 사건이 터짐. 인간이 원자에너지의 비밀을 알아내고 그것을 폭탄으로 만들어 동료인류를 대량살상
- 비상회의 결과 50년 안에 인류의식이 충분한 진화의 가능성을 보이지 않으면 인류를 정리하는 것으로 회의는 종결
- 당시 인류의 의식수준은 130이었고 거의 수천년 동안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신들은 인류가 50년 후에 종결될 것으로 생각
- 흰옷을 입은 신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인류의 의식은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하여 1998년 의식수준 200을 넘어섬.
- 신들은 향후 30년을 sudden death게임에 들어감. 인류의 의식수준이 180이하로 떨어지면 바로 인류를 정리
- 30년 안에 300 이상 오르면 인류를 정리하는 계획이 취소.
- 30년이 경과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인류의 평균의식수준이 300에 못 미치면 인류를 선택종으로 한 신성 발현 프로젝트는 실패인 것으로 최종확정되고, 인류는 총300만년, 그리고 지배종으로서 약 4만년 동안 지구에 머문 것을 끝으로 우주역사에서 사라진다.
- 흰옷을 이븐 신들은 이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우주경영에 대한 입장을 바꾸어야 하므로 적극적으로 인류를 도움.
- 상황이 이렇게 되니 검은 옷을 입은 신들도 반대편에서 이작전에 전면적으로 참여하기로 결정.
- 이렇게 해서 지구는 우주의 신들이 참여한 우주 역사이래 가장 큰 승부가 펼쳐지는 게임의 장이 되었다.
당신의 배역을 결정하라.
- 한사람의 예외도 없이 우리 모두 이 시나리오에 참여하고 있다.
- 당신은 이 시나리오의 결말이 어떻게 끝나리라고 예상하는가?
- 당신은 이 시나리오의 결말이 어떻게 끝나기를 원하는가?
- 당신이 이 시나리오에서 맡은 역할은 무엇인가?
- 당신은 지금 자신의 배역을 선택하고 실천할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역할이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아닐수도 있다. 당신은 나중에 그것인 줄 알았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게임에 몰랐다는 핑계는 있을 수 없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어떤 진영에 참여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 잘 살펴보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역할이 자기가 정말 원하는 배역이 아니라고 판단될때는 다시 선택하라. 진영을 바꾸어라. 당신에서 선택은 두가지 밖에 없다.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 나는 힐링하는 쪽에 내 모든 것을 걸었다. 그것이 곧 내 신성의 참된 증거이기 때문이다.
9. 정신문명을 여는 새로운 언어. 氣
- 말로 표현된 진리는 이미 진리가 아니다. 우리는 말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이름 붙여진 것만 보고 살아간다. 언어가 채우지 못하는 기준의 무한 간극, 그 빈틈을 메워줄 새로운 언어는 없을까?
- 진리란 진리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지금 살아 움직이고 있는 진리의 율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와 하나될 수 는 있지만 인식하거나 설명할 수는 없다. 진리를 인식하기 우해서는 진리로부터 분리되어야 하고, 말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식과 분리되어야 한다. 그래서 언어화된 진리는 진리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 우리가 진리를 아는 유일한 방법은 진리가 되는 것이다. 생명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생명을 자신의 몸으로 느끼고 생명의 흐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기가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내가 선택한 깨달음의 검증 기준
- 우리가 진리를 아는 유일한 방법은 진리가 되는 것이다. 생명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생명을 자신의 몸으로 느끼고 생명의 흐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기가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 기는 어디에나 있다. 그것은 빛이고 소리이며 파장이다. 기는 무엇으로 가둘 수 없는 자유로운 생명자체이고 생명의 흐름이다. 기는 영혼의 언어이다.
섬세하고 풍부한 영혼의 언어
- 개미나 박쥐는 어떻게 지진이나 홍수를 미리 알 수 있을까?
- 연어는 어떻게 자기가 태어난 곳을 찾아올까?
- 철새들은 어떻게 자신의 보금자리를 찾아 날아들까?
- 이러한 에너지의 미세한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은 모든 생명체가 다 가지고 있다. 인간은 언어와 이성에 의존하고 말초적인 오감의 자극에 집착함으로써 그처럼 섬세한 감각이 둔해질 뿐이다.
- 기라는 느낌의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감각을 깨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려면 노력이 필요하지만 기를 느끼는 감각은 사실 배우는 게 아니다. 기는 원래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므로 막혀있는 곳을 열고 잠들어 있는 것을 깨움녀 저절로 회복된다.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찾고 활기를 띄게 된다.
10. 도인이 되는 세가지 공부
- 많은 사람들이 책임지기가 두려워 자신의 앎을 인정하지 않고, 앎을 인정하고도 애써서 무엇이 옳은지 들여다 보려하지 않고, 무엇이 옳은지 알아도 옳은 것보다는 편한 것을 선택하고 바른 선택을 하였다 해도 그 선택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다.
- 깨닫지 못했음을 핑계로 어떻게 살지에 대한 선택을 미루지 않기를 바란다. 깨달음이 누구나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라면 도인이란 뭘까? 도인은 자신의 깨달음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근본적으로 깨닫지 않은 사람이란 없다.
- 단학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법이 아니다.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이다. 깨달음을 토대로 자신이 선택한 삶의 목적을 실현할수 있도록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방법이다.
깨달음은 출발점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 그러므로 깨달음은 출발점이지 도착지가 아니다. 깨달음은 방황의 끝을 의미하지 삶의 완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 완전한 인간, 이상적인 인간이란 매우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동시에 아주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다. 그것은 결국 자기가 되고자 했던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선택한 삶의 목적을 이룸으로써 자기를 실현하고 궁극적으로 자기를 완성해가는 과정이 바로 '혼의 완성"이다.
- 깨달은 뒤에도 힘들때도 있고 귀찮을 때도 있고 경주를 포기하고 싶을때도 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혼의 완성을 위한 세가지 공부방법
- 원리공부, 수행공부, 생활공부
1) 원리공부는 진리에 대한 자각
- 원리공부의 핵심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내가 곧 천지기운이고 천지마음임을 아는 것이다.
2) 수행공부는 그 자각을 몸에 익혀가는 과정을 의미
- 자신의 실체에 대한 자각을 근육과 뼈에 그리고 자신의 세포 하나한에까지 각인시킴으로써 자신의 몸과 삶자체를 진리로 만들어 가는 것
3) 생활공부는 그 진리를 삶 속에서 현실화시키는 것을 의미
- 뭔가 진리를 알았다고 생각되면 그 상태에 머물고자 하여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멀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회적 삶을 떠나서 얻는 것은 결국 자기만족일뿐 혼의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다. 혼을 드러내주는 것이 "성품"이다. 성품은 관계속에서 드러나는 혼의 모습이다. 그래서 당신의 성품이 당신 혼의 성장정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생활공부를 위한 세가지 나침반
- 공전과 자전의 법칙
- 구심력과 원심력의 법칙
- 공평과 평등의 법칙
- 공전과 자전의 법칙 : 모든 운동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운동의 중심이 제대로 맞추어져 있어야 하고
- 구심력과 원심력의 법칙 : 그 다음으로 각 부분의 운동에너지가 전체의 운동에너지와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 공평과 평등의 법칙 : 부조화가 있다면 넘치는 곳에서 모자라는 곳으로 저절로 에너지가 흘러가야
전체 완성이 없는 개인완성은 환상이다
- 우리의 사회적 활동이 이러한 원칙에 맞게 이루어질때 그 모든 활동을 통합하는 최종적인 구심점은 과연 무엇일까?
- 우리의 사회적 활동에 이러한 법칙을 어떻게 적용할까?
- 우리가 지구를 중심에 놓고 공전과 자전, 구심력과 원심력, 공평과 평등의 법칙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다. 이러한 법칙을 지키지 않는 어떤 운동도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하나의 생명체 내에서도 그렇고 세포도 그렇고, 사회안에서 개인이나 조직도 그렇고, 지구 전체에서 인류도 마찬가지이다. 도의 작용은 우리 눈에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결코 시기를 늦추는 법없이 자신의 측량할 수 없는 큰 사랑, 엄정한 자비를 실현하기 때문이다.
11. 철난 부모가 만드는 홍익가정
- 많은 사람들이 사회를 걱정하고 지구를 걱정한다. 그러나 결론은 대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로 끝나고 만다. 그리고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습관적인 일상으로 돌아간다. 지금 여기서 나부터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선택까지도 외면한채...
- 깨달음의 결과로 어떤 변화가 오든 깨달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깨달음은 선택이다. 어떻게 살지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자신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영적인 건강의 지표
- 첫째, 삶의 목적을 아는 것
- 둘째, 세상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
- 셋째, 열린 마음
- 넷째, 조화와 어울림
- 다섯째, 양심
- 우리는 내가 먼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이제는 그 깨달음을 실천해야 할때다.
홍익가정 사람들의 세가지 실천
1) 자녀교육의 기본을 스스로 책임진다. 이를 위해 자녀로 하여금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스승의 역할을 해야 한다.
2) 가족의 건강을 스스로 지킨다.
30 가정을 신나는 놀이터로 만든다. 이를 위해 부모는 무엇보다 잘 노는 사람이어야 한다.
12. 문명전환, 물질문명에서 정신문명으로
- 10년후에 지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 10년 뒤의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 지금부터 10년후에 지금우리에게 허락된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지닌 미래를 열어두기 위해서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 역사가 시작한 이후로 우리는 줄곧 한방향으로만 달려왔으며 주자가 바뀌었을뿐 방향자체가 바뀐적은 한번도 없다. 나와 남을 구분하고, 서로를 대립적인 경쟁관계로 보고, 경쟁상대를 이기고 지배함으로써 자신의 외적인 힘을 키우는 것이 우리 문명이 일관되게 지켜온 방향이다.
- 요즘 우리는 뭔가 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다. 차는 계속 달리고 있는데 운전자가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채고 놀라서 허둥대는 승객들처럼 보이고 들리는 것은 심상찮은데 차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 당신의 느낌은 어떠한가?
- 우리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되는가?
- 나는 예언가도 아니고 경제학자나 생태학자도 아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나의 깨달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 대립적 이원론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 이원론의 양극을 이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 그 양극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차원의 창조가 일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회복해야할 "잃어버린 중간"은 무엇일까?
- 천부경은 없음(0)에서 하나가 나오고 하나에서 셋으로 다시 여섯으로 아홉으로 나누어지며 아홉이 다시 아홉번 반복되는 81수에 가서 완성을 이룸으로써 대립과 경쟁이 아닌 조화와 상생의 세계상을 보여준다.
문명전환
- 지속가능하지 않은 문명에서 지속가능한 문명으로
- 물질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문명에서 혼의 성장을 위해 물질을 활용하는 문명으로
- 물리적 힘을 키우는 문명에서 성품을 가꾸고 혼을 키우는 문명으로
- 경쟁과 성공을 목적으로 하는 문명에서 성장과 완성을 하는 문명으로
- 이론과 실천이 서로 배반되는 위선적인 문명에서 일상적 삶이 곧 진리가 되는 정직하고 진실한 문명으로
- 자신까지 파괴하는 문명에서 치유력을 힘으로 보는 문명으로
-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폐기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어리고 기생적인 문명에서 자신의 선택에 따른 모든 행위의 결과를 원상회복시키는 성숙하고 책임있는 문명으로
- 자기 행위의 결과를 보상하고 배워야할 것을 배우기 위해 수없는 윤회를 되풀이 해야 하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문명에서 한번의 삶으로 하늘과 땅, 사람에 관한 모든 진리를 깨우치고 자신이 선택한 삶의 목적을 이루는 밝은 지혜가 있는 문명으로.
- 민족, 종교, 이념이 중심이 되는 문명에서 지구가 중심이 되는 문명으로
- 한국인, 미국인, 중국인, 유럽인이 사는 문명에서 지구인이 사는 문명으로
- 기독교인, 불교인, 이슬람교인, 유대교인이 각자의 신을 섬기는 문명에서 모든 지구인이 자기안의 신성을 찾는 문명으로
- 구원과 깨달음이라는 환상을 쫒는 문명에서 자신안의 깨달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깨달음이 상식이 되는 문명으로
- 같은 사람끼리도 마음이 통할 수 없는 단절되고 소외된 문명에서 지구 전체와 전일적으로 교류하는 통하는 문명으로
- 당신은 이러한 전한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 깨달음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지켜나가는 가운데 새로운 습관이 형성되고 새로운 품성이 길러지고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 진다.
SUN(spiritual union of new humans)
- 개인은 결코 작지 않다. 깨달은 개인은 더욱 그렇다. 그 깨달음을 실천하는 개인은 더더욱 그렇다. 당신 한사람이 바뀌면 우주가 바뀐다.
산은 깊고 물은 높다.
산은 깊고 물은 높다.
장군의 팔뚝은 가늘고 어린아이의 다리는굵구나
천년 묵은 용이 미꾸라지에게 잡아 먹힌다.
초생달 옆에 있는 저 보름달은 언제부터 대지를 비추었는가?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고 묻는 이가 있다면 아기는 뛰고 어른은 긴다고 말하리라.
권위적인 것은 다 가고 새로운 것이 온다.
물질문명이 가고 정신문명이 온다.
지구인 선언문
1. 나는 인류 영혼의 분리될 수 없는 일부로서 본질적이고 여원한 영적인 존재임을 선언합니다.
2. 지구상의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나의 권리와 안전임을 아는 한 인간임을 선언합니다.
3. 나는 이 지구상의 모든 삶의 공동체를 위하여 홍익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지구의 자녀임을 선언합니다.
4. 나는 이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분리와 분쟁을 치유할 수 있는 힘과 사명의식을 지닌 힐러임을 선언합니다.
5. 나는 지구가 본래의 조화와 아름다움을 회복하도록 도와줄 책임을 자각한 수호자임을 선언합니다.
6. 나는 내가 속한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사명과 능력을 갖춘 활동가임을 선언합니다.
첫댓글 제가 작년 4월에 추간판탈출증, 그러니까 좌골신경통 판정을 받아서 고생하던 차에 이곳을 알게되었더랬지요. 제가 서울에 살고 있어서 원장님께 치료를 받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대신 원장님께서 올려주신 자료를 보면서 많은 희망을 얻었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병세가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반드시 해야할 운동이 몇가지가 있습니다. 철봉매달리기, 대흉근 스트레칭, 복부크런치, 허리회전운동, 스쿼트, 빨리걷기, 그리고 한발로 계단올랐다 내리기 등
감사합니다. 지금 하는 운동은 30분 걷기 3회(처음 시속2km도 힘겨웠으나 4개월이 지난 지금은 시속5-7km를 유지합니다), 철봉매달리기, 스쿼트, 대흉근 스트레칭입니다. 앞으로 복부크런치,허리회전운동,한발로 계단올랐다 내리기도 추가하겠습니다.
피드백이 빠르고 정확해서 좋네요..한발로 계단오르내리기의 효과에 놀라움을 경험하게 될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