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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22 19:56:49 수정 : 2015-01-23 16:16:01
향나무 두 그루가 맞자란 수령 800년의 '쌍향수'. 전남 순천 송광사에 있다. 부산일보DB
향나무는 향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강한 향기를 내는 식물이 수없이 많은데, 유독 향나무에 '향'이란 이름을 붙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향나무의 향내가 엄청나게 진한 데다 그저 향기로운 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향나무는 근처에만 가도 향내가 코끝에 와 닿으며, 향불 가까이에서 맡으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이다. 그래서 향나무에는 병과 해충이 얼씬대지 않는다.
게다가, 향나무의 향은 실로 오묘하다. 향기롭지도 역겹지도 않으면서 소소(蕭蕭)한 향내가 정신을 맑게 한다. 그 때문에 궁궐과 사대부 저택의 재목이나 가구 장식재로 귀하게 쓰였고, 부정을 물리는 영험이 있다 하여 향불 피우기를 즐겼다. 피부병이 생기면 향나무 열매의 정유를 바르거나 나뭇가지를 삶아 우려낸 물에 속옷을 담가놓았다가 입었다. 장례나 제례 때에는 넋을 부르는 초혼향(招魂香)으로, 불교에선 극락과 닿는 영매향(靈媒香)으로 분향한다. 고려 시대에는 향나무를 잘라 통째로 바다와 만나는 강가에 묻어두면 미륵이 나타난다는 매향(埋香)의식이 성했다. 염분과 습기가 많은 곳에 수년간 향나무를 묻어 두었다가 파내 응달에서 건조하면 향 중 으뜸으로 꼽는 침향(沈香)이 된다. 침향의 향내는 그윽하면서도 청량하여 진종일 맡아도 싫지 않으며, 지친 심신을 안정시키는 효험 덕에 최상급 향으로 꼽는다.
향나무의 그윽한 향내를 맡은 지 참 오래다. 세간은 물론이고 사찰에서도 향나무의 속살을 잘게 쪼갠 편향(片香) 대신, 향로에 꽂아 편하게 쓰도록 만든 연향(練香)을 사용하면서부터이다. 시중 연향의 대부분은 메케함과 함께 두통을 일으키기 일쑤이다. 조잡한 수입 재료에 잘 타도록 돕는 점화 성분을 섞어서 만든 탓이다. 침향으로 만든 연향을 사려면 100g 상자 기준으로 10만 원 이상 지불해야 한다. 1g에 1천 원 이상인 셈이다. 이런 고급 연향은 모두 일본산이다. 토종 향나무로 제대로 만든 편향은 구경하기도 어렵다. 어쩌다 조상의 제사상에 일본산과 동남아산 향을 올리게 되었는지 한심스럽다.
향나무는 주목과 함께 200만 년 이상 한반도에서 번성했던 수종이다. 그러나 향나무는 멸종위기종 가운데 '관심 필요' 종으로 분류되었다. 일제 수탈과 해방 이후 남·도벌 탓이 크지만, 1970년대 이후 정원수종으로 일본에서 들여온 세칭 '가이스카'라 불리는 왜향나무의 인기에 밀리면서 토종 향나무를 심지 않은 것도 한몫을 더 했다. 토종 향나무 군락지를 보려면 경북 울진의 깊은 산과 울릉도를 찾아야 하며, 노송 대우를 받는 향나무의 고고함을 그나마 쉽게 만나려면 궁궐이나 고택에 남은 몇 안 되는 보호수를 찾아야 한다.
토종 향나무보다 경제성이 뛰어난 수종은 없을 성싶다. 전남 강진군에 있는 수령 700년 향나무를 한 조경업자가 2억 3천만 원에 사려 했지만 주인이 팔지 않았다. 시중에서 수령 70년은 600만 원, 수령 30년만 되어도 100만 원 이상 호가한다. 안타깝게도, 팔린 향나무 대부분은 일본으로 반출된다고 한다.
토종 향나무는 햇빛과 배수가 좋은 곳이면 심은 뒤 보살피지 않아도 잘 산다. 불과 몇천 원짜리 묘목을 심은 뒤 그윽한 향내와 고고한 자태를 즐기다 30년을 넘기면 '황금나무'로 변한다. 이보다 멋진 고소득 보험상품은 없을 법하다. 노후를 위해 향나무를 심자. 어린 자녀를 위해 향나무를 더 많이 심자. 그 덕에 잊힌 향내를 되찾고 싶다. 다음 회(1월 30일 자)의 주제는 '복수초'이다.
박중환/'식물의 인문학' 저자 hhog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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