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는 왜
곽 흥 렬
그것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모르긴 해도, 내 생애에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은 감격적인 순간으로 지금도 가슴에 잔잔한 떨림을 준다.
동화 속에 나오는 파랑새처럼, 꿈 많은 소년 시절부터 얼마나 찾고 싶어 마음속 깊이 품어 온 소리의 정체이던가. 그 소리의 주인공을 사십 년 세월 만에 비로소 만난 것이다. 살아가다 보노라면 짜릿한 감동은 때로 지극히 의외의 곳에서도 찾아올 수 있는 것인가 보다.
보리 누름철인 유월 초순경의 어느 날이었다. 하오의 식곤증이나 깨울 겸 해서, 화원동산을 거닐며 한가로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쉬엄쉬엄한 걸음은 어느덧 동산의 가장 높은 지점인 전망대에까지 이르렀다.
바로 그때였다. ‘뻐꾹~, 뻐꾹~’, 어디선가 난데없이 뻐꾸기 울음소리가 애틋한 정감을 불러일으키며 구성지게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몽롱하던 의식은 확 달아나고 번쩍 정신이 돌아왔다.
어디서 나는 소릴까. 걸음을 멈추고서 소리의 행방을 좇아 귀를 모았다. 한참 동안 초조한 기다림은 이어지고 주위엔 정적만이 흐른다. 그새 녀석이 사람의 기척을 눈치 채고 종적을 감추어 버렸나? 적이 실망감에 허탈해지려는 찰나, 뻐꾹 뻐꾹 그 반가운 메조소프라노가 다시 이어진다.
분명 머리 위에서 나는 소리임에 틀림이 없다 싶었다. 고개를 젖혀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놀랍게도 뻐꾸기 한 마리가 바로 코앞의 은행나무 꼭대기에 앉아 그 특유의 나른하면서도 애조 띤 음색으로 연신 목청을 뽑고 있는 게 아닌가.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뻐꾸기란 놈은 유달리 경계심이 강해서 우스갯말로 삼 대가 적선을 하지 않고는 만날 수 없는 새이다. 심지어 세상이 변하면서 요사이 들어선 모습은커녕 소리조차 듣기가 힘들어져 버렸다. 그러니, 더군다나 이런 대도시 언저리에서 뻐꾸기를 목격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하지만 의심은 금세 확신으로 바뀌었다. 특유의 울음소리로 미루어 영락없는 뻐꾸기였다. 오래 헤어져 있었던 지기知己와의 해후에도 반가움이 이러할까. 설레는 마음에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을 해댄다.
은밀한 장면을 엿보기라도 하듯 숨을 죽이고서 녀석의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놈은 한 번 “뻐꾹” 하고는 구십 도로 돌아앉더니 또 한 번 “뻐꾹” 하고는 다시 구십 도로 돌아앉는다. 마치 풍향계가 돌아가듯 계속 방향을 바꾸어 가면서 소리를 뽑아내는 게 실로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수십 년 동안 한 해에 한 철씩 뻐꾸기 소리를 들어 왔으되, 여태껏 놈들이 이 산 저 산에서 메아리처럼 서로 화답을 하며 우는 줄로만 알았다. 그 생각이 너무도 어이없는 판단이었음을 비로소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오랜 세월 간직해 온 의문이 마침내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동물의 생태에 관해 문외한인 나로선 참으로 희한한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뻐꾸기는 왜 같은 자리에서 자꾸 뱅뱅 맴을 돌며 우는 것일까. 어떤 이는 짝을 찾는 구애의 노래라고 했고, 어떤 이는 위험을 알리는 경계의 신호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탁란하도록 맡겨 놓은 개개비가 자신의 알을 보살피지 않고 내쳐버릴까 봐 걱정이 되어 그렇게 우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한 놈이 내는 소리가 마치 여러 마리의 소리로 들린 것은, 다름 아닌 뻐꾸기의 그런 특이한 습성 때문이었던가 보다.
어찌 뻐꾸기 소리에 대한 생각뿐이겠는가. 일상에서 마음의 눈이 멀어 있음으로 하여 옳은 판단을 방해하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왜곡된 가치가 일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을 부르고 관계맺음을 성글게 만든다.
이제껏 나는 늘 세상일들에 대하여 오직 내 생각만이 옳고 다른 이의 생각은 그르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것은 일종의 착시며 착각이었다. 아니, 착시나 착각이 아니라 강한 아상我相 때문일 것도 같다.
사람의 판단력이란 항용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이냐. 끊임없이 달라붙어 괴롭히는 ‘나’로 인해 둘러쳐진 아집의 울타리가 세상의 소리를 듣는 귀를 막아 버렸던 탓일 게다.
“너를 벗어던져라”,
“너를 벗어던져라”
그날 뻐꾸기 소리는 쉴 새 없이 나에게 탈자아를 가르치고 있었다.
첫댓글 좋은 아침에 어울리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의 비루한 영혼에 공명하는 한마디가 인상적이네요.
너를 벗어던져라. 가슴에 담아갑니다.
일에 있어서나 일상적인 일에서나 들어나는 오해들을 대할때 마다 자신의 처신을 생각합니다. 마음을 표현하며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살이 입니다. 나를 벗어 던짐이 모든이들에 웃음거리로 변색되어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대하며 귓가에 뻐꾸기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뻐꾹 뻐꾹....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올려주셔서,순간순간 배우고 있습니다.어떤때는 댓글을 달아놓고 출근해서 생각 해보면, 표현이 잘못되어 가만히 계시는 분께 실례가 되는 내용 일때가 있었습니다. 뻐꾸기 도 새롭습니다.
뻐구기를 보며 가슴 두근거리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숨소리를 죽이고 고개를 젖히고 놀라면서 반가워 하는 표정을 혼자 상상해 봅니다.
강한 에고, 편견, 아집. 늘 버리고 싶지만 집요하게 따라붙는, 그래서 심신을 고갈시키는 고약한 녀석들입니다. 가르쳐 주신대로 제목이 정말 중요하네요. ^^
뻐꾸기의 사자후를 들으셨군요. 업식의 구경에 비치는 상은 개시 허망이라는 경구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직 저의 귀에는 뻐꾸기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