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은 수필＜"미나리"에서 교훈을 얻다＞

[김영훈]

미나리’ 에서 교훈을 얻다.

황 지은

한인 이민 가족의 미국 정착 과정을 그린 영화 ‘미나리‘로 배우 윤여정이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탔다. 시상식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미국 최대의 영화제로 수상자에게 주는 트로피 이름을 따서 ’오스카 상’ 이라고도 한다. 93년 역사에서 수상자가 거의 백인이었다. 아시아인이 연기상을 수상한 것은 초창기 일본이 한번 있었고 이번에 한국이 두 번째라고 한다. 한국영화 백년사에 처음 있는 경사이다.

그러한 의미를 찾아 나는 ‘미나리’를 극장에서 관람했다.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서 고난의 과정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였다. ‘그래, 맞아’ 공감대가 클수록 느낌도 크게 다가왔다. 다만 ‘미나리는 강인하므로 어디에서든 잘 자란다.’는 예시만으로 끝나서 마음이 좀 아쉬웠다. 영화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은 고생하는 딸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던 어미가 어이없는 실수를 하여 화재를 낸 사건이었다. 불이 화마처럼 번져나가 자식이 온 힘을 다해 키우고 수확해서 저장한 작물 창고를 순식간에 다 태워버렸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지쳐 잠든 가족 모습을 바라보는 윤 여정의 표정 연기가 인상 깊었다. 늙고 병든 어미의 눈동자에 담긴 그 암담한 우수가 뇌리에 깊이 박혔다. 경우는 다르지만 내 딸이 미국에 살고 있으니 영화를 보는 감상이 남달랐다.

기회의 땅이라고 할 만큼 기반만 탄탄히 잡으면 잘 살 수 있는 곳이 미국이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다. 이민자들은 치열한 삶 가운데서도 고국의 소식에 늘 귀를 기울이고 산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상을 받는 이번 영화제에 이민자들은 촉각을 세웠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에 혈육이 살고 있어서인지, 그렇지 않으면 애국심 때문인지, 나 역시도 시상식에서 우리나라 배우가 상 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언론에서는 윤 여정이 탈것으로 예상하였지만 막상 이름이 호명되자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윤여정이 시상식 무대에 오르는 순간 한국인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 같아서 더욱 좋았다. 미국에 있는 딸의 감정은 더 감격스러웠을 게다. 윤여정은 수상소감을 통역 없이 영어로 말했다. 유창한 영어는 아니어도 유머 있고 위트가 넘치는 말솜씨가 믿기지 않을 정도여서 자랑스러웠다. 우리나라 나이로 75세이니 고령이다. 그럼에도 당당하고 솔직하게 때로는 겸손하게 수상소감을 말하여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인기를 얻었다. 무대 위에서 영어로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윤여정을 바라보며 대리만족인지 내속이 다 시원했다.

국제무대에 나가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올곧게 살아온 인생 경륜과 실력이 뒷받침 되어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생충’으로 지난해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 한 봉준호 감독은 위트가 있고 스마트해서 미국인들도 알아보고 좋아한다고 한다. 윤여정이 수상 한 것을 내 일처럼 축하하고 모두 함께 기뻐해주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30대에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시작하여 밑바닥부터 열심히 살아온 윤여정. 50년 인생역정을 알고 있으니 모두 인정하는 것이다. 살면서 누군가로 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되는 일이 아니다.

윤여정은 어릴 때부터 자립심이 강했다고 한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딸이 셋인 집안의 맏이였다. 열세 살 때, 공부는 잘하는데 환경이 어려운 학생을 돕는 장학재단에 장학생으로 뽑혀서 꾸준히 공부했다고 한다. 노후에 ‘월드스타’ 라는 영광된 타이틀을 갖게 된 것이 변함없이 성실한 자세로 살았기 때문이라고 하니 노력에 대한 보상이고 축복이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이 인종차별을 당하는 어두운 기사를 간혹 보게 된다. 그럼에도 미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라고 한다. 실력을 인정받으면 얼마든지 뻗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나라이다. 미국에서 작년에 ‘기생충’ 영화에 이어 올해는 ‘미나리’가 상영되고 있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에 연이어 올해 배우 윤여정이 상을 탄 것은, 일찍부터 넓은 세계로 진출하려는 도전 정신과 남다른 노력으로 가능했다니, 우연히 잘되는 일이란 거의 없는 셈이다.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한다. 자력으로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강할수록 스스로에게 기회가 다가올 것 같다. 75세 윤여정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어로 수상소감을 말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나의 영어 실력은 단어 몇 개를 붙여서 말하는 정도로 그나마 외국인 앞에 서면 도대체 입이 굳어버리고 만다. 딸이 미국에 간 지 17년째이고 손자 돌보느라 여러 차례 가서 몇 달씩 머물렀음에도 이제 겨우 말이 트인 어린 아이 수준이다. 손자가 집에서라도 한국말을 쓰게 하려고 영어는 전혀 사용하지 않은 구실도 있으나 어쩌면 편리한 핑게 이다. 지금부터라도 영어회화 공부에 열중해서 대화에 사랑을 담아야 하이 스쿨 손자 앞에서 체면이 설 것 같다.

배우고 책장 덮으면 잊어버린다는 지금 나이에 뭔가를 시작하기란 자신이 없다. 다만, 미나리와 같은 생명력으로 끈질기게 공부하면 될 것이라는 믿음은 생겼다. 영화를 보고 나서 얻은 소득이다. 오늘따라 윤여정이 더욱 부럽고 자랑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