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사람 다석 류영모(上) - 박영호 지음, 131쪽
1905년 봄부터 류영모는 서울 연동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 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 지 112년이 되고 개신교가
들어온지 22년이 된 때이다. 어느 신앙인들 값싼 신앙이 있으리요만 류영모의 신앙은 값비싼 신앙이다. 부모를 팔아서
친구를 산다는 속담이 있지만 류영모는 나라를 팔아서(빼앗기고) 산 믿음이다. 1905년은 이 나라가 사실상 망한 해이다.
숨은 붙어 있지만 뇌사(腦死)한 환자와 같았다. 1910년에는 온전히 심장도 멈추고 호흡도 멈춘 것이다. 1905년에 나라가
멸망하지 않았다면 류영모가 크리스천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류영모의 입신(入信)은 조선왕조의
멸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말로 옮긴 성경은 신약성경이 1887년에 나오고 구약성경은 1910년에 나왔다. 류영모는 아브라함을 아백라한이라 옮긴
중국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을 읽었다. 류영모는 연동교회에 다닐 때 산 신약전서를 일생 동안 고이 간직하면서 날마다 읽었다.
1909년(대한 융희 3면 기유년) 미국 성서공회가 출판한 것으로 실제로 인쇄하고 제본한 곳은 일본이었다. 공자는 경전을 묶어
맨 쇠가죽 끈이 세 번씩이나 끊어지도록 경서(經書)를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 류영모는 신약전서를 한지(韓紙)로 여러 겹
싸서 간직해 왔다. 표지를 몇 번이나 갈았는지 모른다. 6·25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 갈 때도 이 신약전서는 들고 갔다. 류영모는
이 신약전서를 자신이 가진 것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겼다.
첫댓글 잘알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