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에 대한 실망
[사 5:1-7]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 히브리어 원문은 '내가 노래하리라'로 시작한다. 그 노래는 '살아하는 자가 소유하고 있는 포도원'에 관한 것이다. 남자 친구 사이에 맺어진 깊은 우정을 가리키는 '야디드'와 '도드'가 본문에서는 동일하게 '사랑하는 자'로 번역되었다. 선지자가 자신의 벗이라고 부른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일컫는 친숙한 비유어이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 포도원에 기울인 주인의 정성과 수고가 연이어 기술된다. 그는 좋은 장소를 선택하였을 뿐 아니라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 경작하였다. '땅을 파다'는 곡괭이로 땅을 푸석푸석하게 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구약 성경에서는 여기에만 나온다. 그 다음 단계는 여기저기 박혀 있는 다돌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칼' 동사는 '아자크'와 더불어 피엘 동사로 쓰여서 '돌을 옮기다'는 뜻을 갖는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 -
이처럼 할 수 있는 모든 수고를 다했으니 주인으로서는 좋은 포도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즉 '들포도'를 낸 것이다. '베우쉼'은 '악취를 풍기다'는 뜻의 '바아쉬'에서 파생된 명사로, 조악하고 쓴 야생 포도를 가리킨다. 70인역은 이것을 '가시나무로 해석했다. 여기에서 선지자의 노래가 끝나고 다음절에 선지자의 친구이며 포도원 주인인 여호와의 노래가 1인칭으로 이어진다.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 '이제' 현재 시점을 말한다기보다는 '사정이 이와 같으니'라는 뜻의 논리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예루살렘과 유다 주민들은 판단하는 자로서 소환된다. 그들은-칼빈의 주장처럼-그들 자신을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낯선 사람과 그의 포도원 사이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도록 소환된 것이다. 그들은 아직 이 이야기 속에서 말해지고 있는 대상이 자신들임을 알지 못한다.
구약에 있어서 이와 동일한 경우는 삼하 12:1-6에 나오며, 신약에서는 마 21:33-41에 나온다. 두 경우 모두 처음에는 이야기 속의 대상들이 자기 자신임을 모르고 판단하다가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판단을 구하는 내용이 다음절에서 의문형으로 제시된다.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있었으랴 - 본문과 다음절 사이에는 휴지가 있어서, 마치 청중들이 주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포도원을 위하여는 어떠한 변명도 주어질 수 없음을 침묵으로써 시인하는 듯하다. 그러나 주인의 단호한 말이 이 침묵을 깨뜨린다.
그 울타리를 걷어...그 담을 헐어 짓밝히게 할 것이요 - 주인의 진노는 먼저 포도원을 보호하고 있던 울타리와 담을 허물어뜨리는 것으로 표출된다. 포도원은 대개 '가시 울타리'혹은 '돌담벽'으로 둘렀으며 때로 완전성을 기하기 위하여 울타리와 돌담벽을 이중으로 두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울타리와 돌담이 제거될 때, 포도원이 사람과 짐승에 의해 '짓밟히고 먹힘을 당할 것임'은 명약 관화한 일이다.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 주인에 의해 더 이상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포도원은 자연 황폐해질 수 밖에 없다. '질려와 형극''가시덤불과 가시'란 뜻이다. '가시덤불'은 '황무한 땅'에 어울린다. 인간의 범죄로 인해 저주받은 땅, 즉 실락원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라듯이,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아 황무하게 된 포도원에 가시덤불만 무성하다. 가시나무는 종종 인간의 여러 죄악을 상징하기도 한다.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 이것은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에 대한 설명이다. 여호와께서 기대하신 좋은 포도는 '공평'과 '의로움'이었다. 그러나 정작 맺힌 것은 '포학'과 '울부짖음'이었다. '미쉬파트'와 '미스파흐', 그리고 '체다카'와 '체아카'는 언뜻 들어서는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발음이 유사하다.
이런 유사성을 이용하여 선지자는 속내용은 변질되었음에도 겉모양만 비슷한 이스라엘의 범죄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미쉬파트'와 대조 '체다카'와 대조되는 '미스파흐'는 '피흘림', '억압'을 뜻하며 '체다카'와 대조되는 '체아카'는 '억눌린 자의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출 3:9)를 뜻한다. 이 억압과 부르짖음이 여섯 번의 '화 있을진저'모음 속에서 상세하게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