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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잘츠부르크는 출장과 휴가를 모두 합쳐서 네 번째 방문입니다. 유럽에서 지도를 들고 다니지 않는 도시들이 몇 군데 있는데, 아마도 잘츠부르크는 우선에 꼽힐 거에요. 이 다리를 건널 때마다 모차르트의 마법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일기도 하지요.
축제를 알리는 포스터와 모차르트가 들고 있는 초콜릿이 묘하게 어울립니다. 초콜릿이든 축제든 어쨌든 이 도시는 모차르트로 먹고 사는 도시일 거에요. 이 도시에 나흘간 온전히 체류하면서 예전과 지금, 달라진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뜻하지 않게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만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어요.
잘츠부르크에는 모차르트의 생가가 두 곳 있어요. 태어난 생가와 그 이후에 이사간 집이지요. 둘 다 7유로씩 입장료를 받고 두 군데 모두 방문할 경우 12유로로 할인해줍니다. 개인적으로는 모차르트에 대한 그리움만 고이 간직하고 정문 앞에서 사진을 찍으신 뒤, 그 돈으로 근처 찻집에서 차를 한 잔 드시는 게 경제적 효과와 심리적 만족도 모두 높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굳이 들어가실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
요즘 직업적 이유가 아니면 좀처럼 책을 읽지 않아요. 실용적, 기능적 독서로 점점 바뀌고 있다는 뜻이지요. 특히 프랑스 전철에서 문고판을 읽고 있는 시민들을 볼 때마다 반성을 많이 합니다. 실은 음악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담당 기자를 할 때 개인적으로 가장 곤혹스러웠던 질문 가운데 하나가 '어떤 작곡가를 좋아하세요'라는 것이었지요.
'쇼스타코비치의 해'에는 쇼스타코비치, '말러의 해'에는 말러, 20세기 음악이 화두일 적에는 현대 음악이라는 식으로 언젠가부터 기능적이고 실용적으로 음악을 듣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감동 자체가 증발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끔씩은 무척 서글프기도 하지요. (제 책에 대한 정성스러운 리뷰에서 '오늘의 클래식' 추천 음반이 음반사 제공 음반이 아닐까 물으시기도 하셨는데, 정말로 그러면 두 번 속상합니다. "그 책에 실린 괴상망측한 음악들을 추천하기 위해서 작곡가마다 평균 3~4배의 음반을 구입했고 그 가운데 직접 가려서 뽑은 것들입니다"가 제 비공식 대답입니다.)
여기는 모차르트가 태어난 생가입니다. 이 작곡가에 대한 흥미로운 논쟁 중에 하나는 '모차르트는 선천적 천재인가,당대 사회에서 후천적으로 재능을 만개한 경우인가'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학문적 접근으로 치열하게 번지기도 하지만, 실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정답이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성인으로 자라는 과정에서 '잘츠부르크-아버지 레오폴트-봉건적 구질서'에 극심하게 반발했던 이 청년이 만약 빈으로 탈출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어쩌면 '피가로의 결혼'은 보지 못했을 지도 모르지요. (대신 미사곡만 잔뜩 듣고 있겠지요. 대주교님 기념일, 대주교님 친구들 기념일, 대주교님 친구들의 친구들의 기념일 같은 식으로 말이에요.)
이 영리하고 친절한 오스트리아인들은 행여 우리가 입장이라도 못할까봐 각국의 글씨로 친절하게 입장료와 할인 조건까지 생가 입구 복도에 내걸고 있습니다. 왼쪽에 중국, 조금 옆에 일본이 있지만 아직 한국어 안내판은 없어요. (그러니깐 주변에서 그 돈으로 커피 드셔도 됩니다~.) 모차르트가 그렇게 넌더리를 냈던 도시가 250여 년 뒤에도 여전히 작곡가로 먹고 산다는 건 잘츠부르크에서 만날 수 있는, 유쾌한 역설입니다.
소년 바렌보임이 잘츠부르크를 처음 찾았을 때, 마침 극장에서는 칼 뵘의 지휘로 '마술피리'를 공연 중이었지요. 안내원의 눈을 피해서 극장에 잠입했지만 서곡 끝날 즈음에 그만 잠이 들었나 봅니다. 막상 깨어났을 때에는 여기가 어디이고, 저 광경이 무엇인지 도통 짐작할 길이 없어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하지요. 쫓겨난 소년이 울면서 거리를 헤매다가, 부모님을 다시 만난 곳이 바로 이 카페입니다. 나중에 바렌보임이 뵘에게 이 일화를 들려드렸더니 정작 뵘은 웃으시기보다는 기분 살짝 나빠하더라는 후일담까지 그의 한글판 자서전에서 모두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중간 광고입니다. 으흐흐)
1차 대전이 끝난 직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후고 폰 호프만슈탈, 막스 라인하르트 등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 끝에 여기 광장에서 '예더만'을 공연한 것이 잘츠부르크 축제의 시작이었지요. 이들 개국 공신조차 훗날 축제가 이렇게 번성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든 출발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한 법입니다.
죽고 나서 동상이 무슨 소용 있느냐고 흔히 이야기하지만, 죽고 나서도 분명 효용 가치가 있습니다. '관광 자원'이 되니까요. 그의 동상 앞에 피어있는 꽃들이 오히려 정겨워서 셔터를 눌렀습니다. 모차르트가 우리 '토벤이' 형 비슷하게 낭만적 영웅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도 같지요.
다시 저녁 종소리가 울리면 모차르트의 마법이 거리를 지배합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어요. 제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고 따뜻한 장조 풍의 곡들을 좋아하는 제가 비틀스의 음악 중에서도 지금껏 흥얼거리는 선율은 존 레넌보다는 대부분 폴 매카트니의 것이에요.
누군가 다시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그때는 이렇게 답할 것 같아요.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아들 볼프강의 음악을 가장 좋아합니다." 물론 '토벤이' 형을 사이에 놓고서 한참이나 고민하겠지만, 오늘 이 거리에서는 어쩐지 모차르트에게 기울고 맙니다. 모든 여행의 끝에서는 반드시 한번쯤 자기 자신과 마주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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