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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자리 인문학 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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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게시판 창세기에 대한 개인의 사색-타자의 신학(1)
평화세상 추천 0 조회 110 26.03.15 15:02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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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3.15 20:44

    첫댓글 이번 창세기를 공부하며 저에게 다가온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저는 신학자도, 목회자도 아닌 한 명의 크리스천입니다. 다만 신앙은 제 삶을 움직이는 중심이고, 성경은 삶을 관통하는 메시지로 — 하나님께 붙어 있음으로 보다 자유로운 구원의 삶을 살고 싶은 소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성경에 대한 감흥이 없어졌었습니다. 대학 시절 열심히 파고든 신학 공부가 사회에 나온 후 역동적인 세상 속에서는 더 이상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창세기에서는 뭔가 완전체가 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계보만이 아닌, 세상 전체를 볼 수 있는 관점을 열어주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공부하던 중 어느 순간, 성경이 역사가 아닌 세상의 일을 설명하는 완벽한 메타포로 다가왔습니다. 오늘 28장 5-9절의 에서에 대한 언급은 그야말로 전율이었습니다. 그의 태도는 우리 일상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지난주 27장의 막장 드라마 속 네 주인공의 마음들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계보를 잇는 축복 따위에는 관심이 없지만 악하지는 않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 26.03.15 20:45

    (이어서)

    그리고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된 것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그다지 별볼일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엄청난 축복을 받았지만, 그들이 누린 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매우 힘들게 자식을 얻었고, 그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위기를, 두 아들이 피터지게 싸우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겨우 사라를 묻을 땅 한 뙈기를 얻은 아브라함이나, 별미(מַטְעַמִּים)에 눈이 어두워 말년에 엄청난 실수를 한 이삭이나 — 세상의 권력이나 부귀와는 꽤 거리가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어떤 복을 바라는 것이었을까?' 깊이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제 결론은 마음의 평화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하지 못하는 평화 속에서 겸손하게 하나님과 행하는 삶. 야곱을 보니, 그 경지에 가려면 지난한 세월 고난을 통해 내 안의 때를 벗기는 과정이 필요한 듯합니다. 저도 그 과정을 거쳐 왔고, 여전히 그 과정 중에 있습니다. 여전히 새로워질 것이 남아 있고, 여전히 과거의 때로 괴롭기도 하면서도 — 그러면서도 또 조금씩 진화하고 있음을 느끼기도 하는.

  • 26.03.15 20:46

    (이어서)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이 입체적인 창세기를 공부하면서 찾아온 내면의 평화입니다. 세뇌되고 입력된 하나님의 상이나 보수 신학을 뛰어넘어 — 내가 경험한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성경의 다른 관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함으로 인한 평화. 내 생각의 그릇으로는 하나님의 계획을 담을 수 없다는 자각 — 그것이 오히려 제게 엄청난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납득해야만 믿을 수 있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것이랄까요. 이제야 비로소 창조자 앞에 피조물로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아비멜렉, 하갈, 리브가, 에서, 라반의 이야기까지 통합해서 바라보았을 때 — 비로소 창세기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담은 완전체로 다가옵니다. 주연과 조연 모두를 동등하게 이해했을 때,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성경은 아주 흥미롭게 보여줍니다. 이 주연과 조연들을 바라보다 보니, 나 역시 이들 중 어느 지점의 혼합체로 인식됩니다. 드디어 성경의 메시지를 세상 속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작은 기쁨이 샘솟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 언약 안의 사람과 바깥의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우월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이제는 분명하게 다가옵니다

  • 26.03.15 21:05

    언약 바깥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이제야 내 인식의 차원을 훨씬 너머에 계신 — 온전히 알 수 없는 타자로서의 하나님을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수고에 감사 드립니다. - 박미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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