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편 강해 / 이레교회 새벽기도회 20110803 水曜日 정인준 목사]
사도신경 찬송가 279(337)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통성 기도(3분) 말씀 봉독(시편 6:1-10), 설교(15분),
◈ 시편 6편의 ‘표제’를 보면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라 되어 있습니다.
여덟 개의 줄을 가진 현악기로, 또는 그 악기의 여덟 번째 줄로 반주하라는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여덟 번째 줄을 사용할 경우 비교적 높은 음역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높이가 다른 같은 음인 ‘옥타브’를 의미한다고도 봅니다.
역대상 15장 21절에,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과 아사시야는
수금을 타서 여덟째 음에 맞추어 인도하는 자요”란 말씀이 나옵니다.
주로 축제적인 음악을 연주할 때 ‘여덟째 음에 맞추어’ 노래했습니다.
◈ 그런데 이러한 반주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오늘 시편 6편의 내용은 ‘참회의 시’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이
죄를 전혀 짓지 않은 깨끗한 사람이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다윗도 여러 가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죄를 깨달았을 때 사울 왕처럼 변명하지 아니하고
매우 빠르고 솔직히, 그리고 철저하게 회개하였습니다.
오늘의 본문이 바로 그 회개의 기도, 참회의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 다윗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용서를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라고 간청합니다.
“노여움으로 꾸짖지 마시고, 불같은 분노로 벌하지 마소서”라는 뜻입니다.
아이들 표현으로, ‘화내시면 나 무서워요~’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하면 얼마다 무서운지 2절에서는 “내가 수척하였사오니”라고 말합니다.
“기운이 빠졌다”라는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모래시계 버전으로 ‘나 지금 떨고 있나요?’ 그럽니다.
2절 하반절에서는 “나의 뼈가 떨리오니”,
그리고 3절에서는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뼈가 마디마디 떨리고,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떨리나이다”라는 표현입니다.
몸은 병들었고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는 겁니다.
회개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참으로 뉘우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6절에서는 침대가 눈물범벅이 될 정도로 울었다고 말합니다.
자기 스스로 뿐 아니라, 적으로부터 고통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7절에서 그는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표준 새번역 성경’을 보니까
“사무친 울화로, 내 눈은 시력까지 흐려지고, 대적들 등쌀에 하도 울어서 눈이 침침합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고백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근심과 고통, 고민과 갈등을 아버지에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혼날 것이 빤한데도 아빠에게 ‘잘못했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자녀는
참으로 복되고 지혜로운 자녀입니다.
마태복음 6장 9절의 ‘주기도문’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빠 아버지”가 되시는 줄 믿습니다.
로마서 8장 14-16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이런 증언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가 잘못을 빌면 반드시 용서하십니다.
꾸지람의 매를 들고 계셔도 그 품에 안겨들 수 있는 것이 자녀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그렇습니다. 주의 인자, 그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무궁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아침마다 새벽마다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어제도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오늘도 서는 것은
바로 그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때문인 줄 믿습니다.
◈ ‘고통의 호소’가 8절에서 갑자기 ‘찬양의 노래’로 바뀌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받으셨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충만히 받으시기 바랍니다.
요일 5장 14-15절,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아멘!
첫댓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