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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꽃은 역광이나 반역광으로 접근하라
형식이 내용을 보장해 주리라는 믿음은 어딘지 불안했다. 단순한 등산이나 여행에 그치지 않고 카메라를 통해 엣센스를 보는 것까지는 좋아도 한편으론 성공률 낮은 도박과 같은 것이기에-. 통계상 매년 5월 첫 주에서 둘째 주 사이가 만개 시기였는데, 올해는 기온이 낮아 1주일 정도 개화가 늦었다. 황매산 철쭉 군락지는 차에서 내린 곳에서 불과 10여 분이라는 정보에 따라 헤드램프와 재킷만을 챙겼다. 그리고 28~70mm 렌즈를 장착한 35mm 필름 카메라에 105mm 마이크로 렌즈를 가방에 넣었다. 여기에 추가로 캐논 익서스 750까지. 충분한 장비는 사진의 질을 높여주지만 언제나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때론 '똑딱이' 디지털 카메라 하나만 있어도 좋다. 중요한 건 제 때에 현장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황매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깡그리 담아오겠다는 게 목적이지만, 젯밥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후 7시가 되어가지만 아직 서산으로 해가 지기 전이라 포인트 헌팅이 가능했다. 현장을 유심히 살펴보니 꽃에 비해 색깔이 떨어진다는 말과 달리 색깔은 봐줄 만한데 꽃이 시들어가는 중이다. 몇 군데 장소를 정하고 스케치 촬영을 해보니 황매평전의 포인트는 서에서 동쪽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만일 새벽에 눈이 떠지지 않는다든지 구름이 해를 가릴 때는 모든 게 허사다. 인물촬영에서 날씨가 차지하는 비율이 한 30% 정도라면 풍경에서 날씨가 좌지우지하는 비율은 70%에 달한다. 그래서 풍경사진가들은 날씨에 따라 울고 웃는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러나 돌연 비가 내리면 촬영은 끝이다. 특히 만개시기엔 더 그렇다. 교묘하게 렌즈의 트릭으로 숨길 수는 있겠지만 한계가 있다. 이 시기의 꽃 촬영, 특히 군락을 이루는 계절 꽃들은 개체수가 많음으로 해서 촬영동기가 부여된다. 하나의 꽃을 상징적으로 묘사할 수는 있어도 절대 느낌은 그 수에 따라 확연히 다르다. 2002 월드컵 때 붉은 악마가 동일한 색의 티셔츠를 입고 시청 앞 광장을 메웠을 때처럼 사방 천지가 꽃으로 쌓인 상황은 현장이 아니면 느낄 수 없다. 그런데 바람이 하늘에 통했는지 초록빛 잎들이 돋보이기 시작했다. 구름이 걷혀 가는 것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카메라를 목에 걸었다. 어제 헌팅한 장소에 머리 위로 해가 떴다면 볼 장 다 보는 것인데, 아직은 눈높이에 있다.
아침 7시. 주어진 시간은 2시간. 그 안에 감을 잡아야 한다. 특히 기승전결이 필요한 사진에서 메인 감이 잡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이후의 일은 술술 풀리게 마련이다. 철쭉 사진의 기본은 말할 것도 없이 광선의 방향이다. 특별한 목적이 아니라면 철쭉은 무조건 역광 또는 반역광으로 접근해야 한다. 디지털 카메라는 사진이 찍힌 상태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때문에 여러 사람과 느낌의 공유가 가능하다.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흐름으로 연결되는가, 전봇대와 인공구조물 등 이질적인 요소들은 없는가를 살핀 후 원근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가며 찍는다. 온갖 사물이 널려 있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것을 제거해야 하는 사진은 늘 뺄셈을 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며 늘 적용하는 방법이긴 하다. 그런데 창작에서 정형화된 이론을 말할 때는 언제나 뒤가 구리다.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데 형식과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잘 지키는 사람이 훌륭한 작가란 등식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의 시도를 분수령으로 사진의 의미와 가치는 굳이 예술이 아니어도 좋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독창적인 예술가는 언제나 럭비공처럼 예상외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보다 더 어렵게’라는 등로주의를 실천해 보인 머메리처럼 예술도 그와 다를 바 없다. 여기를 이렇게 넣고 저렇게 자르고 하는 식의 이론은 알자마자 곧 버려야할 사족일 뿐이다. 굳이 정상은 이번 여행의 목적이 아니지만 일행들은 어디론가 가야할 것 같은 태세다. 황매평전에서 북쪽으로 1.8km 떨어진 1,008m의 정상을 향해 관성처럼 발길을 옮겼다. 1,000m가 넘는 황매산의 바람은 시원하고 상쾌하다. 쿠션이 느껴지는 황토를 밟으며 부드러운 능선을 오르는 일은 그 자체로 기분 좋은 일이다.
빛깔 고운 철쭉 촬영하고나자 발걸음 가벼워져 이곳에서 다시 남서쪽 사면은 또 하나의 철쭉 군락. 얼핏 순광으로 그곳을 바라보면 그저 밋밋할 뿐이다. 발걸음을 옮겨 그 현장에서 역광을 받은 군락을 보기 전까지는 판단할 수 없다. 베틀봉에 오르면 황매산 정상은 정확히 북쪽을 향해 있다. 그곳도 아스라이 보이지만 40여 분 걸음이면 도달이 가능하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급한 계단을 올라야 한다. 약 10여 분의 걸음이면 황매평전의 편안한 능선 전모가 드러난다. 정상인 황매봉은 각진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오래 머물 수가 없다. 다시 능선 너머 중봉과 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5분 정도 내려가면 편안한 쉼터들이 나온다. 그곳에서부터 동쪽 멀리 합천호가 조망된다. 그들 틈에 끼어 키 낮은 풀밭에 피어나는 민들레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그 위에 벌렁 드러눕기도 한다. 거리낌이 없다. 형식이건 내용이건 무엇일지라도 이런 자유와 견줄 바가 아니다. 모처럼 여유로운 공간을 만났고, 빛깔 고운 철쭉을 사진으로 남겼다는 사실로 돌아가는 걸음이 날듯 가볍다.
#황매산 촬영 가이드 황매산 철쭉 촬영에 필요한 것은 장비보다 시기를 맞추는 일이다. 보통 5월 초순에서 중순 사이에 만개가 되는 황매산은 다른 어떤 곳보다 정확한 시기를 잡을 수 있다. 현장 확인이 손쉽기 때문이다. 올해는 5월13일에서 14일이 만개시기였는데 예년보다 조금 때가 늦었다. 보통 철쭉제전 행사일이 만개시기로 보면 된다. 주간 예보를 참고하여 촬영 일자를 잡은 후에 비 소식이 있다면 촬영을 앞당겨야 한다. 철쭉 촬영의 날씨는 맑은 날이 좋으며, 아침해가 뜬 후 2시간 정도까지가 좋다. 대기가 흐려지지 않는다면 오후 2시 이후에서 일몰까지도 무난하지만, 꽃 촬영은 수분이 마르지 않은 아침나절이 더 좋다. 황매산의 촬영 조건은 덕만 주차장에서 철쭉 행사장까지 승용차로 접근이 가능하다. 차를 세우면 남쪽 방향의 군락지에 올라서는 데 10분이면 된다. 그곳에서 동쪽 방향의 능선 모두가 촬영 포인트다. 보통 능선 상에서 아래쪽을 향해 촬영이 이루어진다. 눈으로 보기엔 만개한 철쭉만으로도 좋은 사진이 찍혀질 것 같지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원경이다. 멀리 원경이 깔려야 풍부한 느낌의 사진이 된다. 광선은 반드시 역광을 이용해야 하며 약간 노출이 부족한 듯 찍어야 깊이감이 있는 사진을 만들 수 있다. 디지털 카메라는 확인이 가능하지만 필름 카메라는 적어도 한 스텝 이상까지 노출이 부족하게 브라케팅하는 것이 좋다. 황매산에선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그러나 장비는 항상 거추장스럽지 않아야 한다. 카메라 가방을 메고 목에 카메라를 메는 것 이상은 피하는 것이 좋다. 렌즈는 35mm 카메라의 경우 24mm에서 105mm 정도면 무난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러나 200mm 이상의 망원렌즈로 박진감 넘는 사진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황매산은 합천과 산청으로 오르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황매평전이 있는 합천쪽은 서울에서 승용차로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를 탄다. 단성 나들목에서 빠져나간 다음 합천군 가회면 방향으로 가면 된다. 나들목을 빠져나오면 황매산 영화테마공원과 철쭉 행사장이라는 안내판이 갈림길목마다 붙어 있다. 산청 방향으로 갈 때는 산청읍에서 59번 도로를 타고 중말에서 임도를 타고 영화주제공원을 통해 군락지까지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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