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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은 인간들에게 많은 것을 제공합니다. 예로부터 인간들은 동물들에게서 얻은 고기로 주린 배를 채웠고 기름으로 어둔 밤을 밝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가죽을 이용해서 추위를 이겨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들은 무늬가 아름다운 가죽을 가진 동물들이 있으면 그 고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 가죽을 얻기 위해서 죽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희생되어간 동물들을 구하기 위한 모피 안 입기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을 보면 수긍이 갈 정도입니다. 이번에는 한때는 인간의 겨울을 잘 지나게 한, 동시에 지금은 또 필요악이라는 관념도 동시에 지니게 된 가죽에 관련된 한자들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죽은 동물들의 죽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피가 보이는 사진은 전부 흑백으로 처리하였습니다. 일단 가죽을 얻으려면 동물들의 몸에서 가죽을 분리해야 합니다. 바로 다음의 사진처럼 말입니다. 동물의 몸에서 오른손으로 가죽을 분리해내는 모습을 나타낸 글자가 바로 "가죽 피(皮)"자입니다. 가죽 피(皮) 갑골문-금문대전-소전-해서 갑골문과 금문의 자형을 보면 동물의 머리와 선으로 표현된 몸통이 보이고 오른손으로 몸통에서 벗겨내는 가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동물의 몸에서 갓 벗겨낸 가죽은 바로 옷으로 만들어 입을 수가 없고 일련의 가공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일단 판 같은 데다 곱게 펴서 가장자리를 못이나 핀 등으로 고정을 시켜서 말려야겠죠. 바로 다음의 사진처럼 말입니다. 저런 과정을 거쳐서 잘 말리면 다음과 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이 정도 단계가 되면 가죽을 조금만 더 부드럽게 가공을 하면 옷이나 허리띠, 지갑 등 다른 피혁제품으로 만들어서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아래의 "가죽 혁(革)"자는 바로 위 피(皮)에서 혁(革)으로 가는 일련의 가공과정에서 착안한 글자입니다. 가죽 혁(革) 갑골문-금문대전-소전-해서 갑골문에서는 머리와 꼬리 부분 사이로 가죽을 말리기 위해서 펼쳐놓은 모습이 보입니다. 금문은 혁(革)자의 가공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자형입니다. 머리와 꼬리가 분명하게 보이는 물론이고 편 가죽을 고정시키기 위한 못이나 핀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피(皮)와 혁(革)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피는 당장 사용할 수 없는 갓 동물의 몸에서 떼어낸 피도 안 마른 가죽을 말합니다. 반면에 혁은 잘 펴서 말리어 당장이라도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상태의 가죽을 말합니다. 피의 단계에서 보면 혁은 같은 가죽이지만 그 성질이 확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의 모습에서 일신하여 확 바뀐 상태를 또한 혁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개혁(改革)이라든가 혁명(革命) 같은 경우처럼 말입니다. 그야말로 피가 혁신(革新)적으로 바뀌게 된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자전을 찾아보면 위의 두 글자 외에도 가죽을 나타내는 글자가 또 있습니다. 바로 "가죽 위(韋)"자입니다. 정확한 뜻은 무두질한 당장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보들보들한 가죽끈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위(韋)자는 원래는 가죽과는 상관이 없는 글자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두 사람이 길에서 엇갈리는 모습을 찍은 것입니다. 위(韋)자는 원래 이렇게 어떤 지점(口)을 사이에 두고 왼쪽으로 향하는 발과 오른쪽으로 향하는 발을 그린 것입니다. 원래의 뜻은 어긋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래의 자형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가죽 위(韋)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그러면 위(韋)가 어째서 가죽이라는 뜻을 얻게 되었을까요? 책(冊)자에서 알아보았던 것처럼 죽간이나 목간의 경우에는 하나밖에 없을 때에는 상관이 없지만 두 개 이상만 되면 순서가 서로 어긋나지 않게 묶어놓아야 했습니다. 이때 사용한 것이 바로 위(韋)였던 것이지요. 공자가 만년에 『주역』에 몰두하여 주역을 제본해놓은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열심히 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를 성어로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고 하는데 곧 책을 엮은 가죽끈이 세 번 끊어졌다는 말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비유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 책을 엮은 끈으로 사용한 가죽끈이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위(韋)는 아마 세로를 나타내는 위(緯)일 것이라고 추론하기도 했습니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됩니다. 중국에서는 세로로 쓰고 가로로 엮었으니까요. 어쨌던 간에 뜻밖에도 이 위(韋)자가 본래의 어긋나다라는 뜻과 달리 가죽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기 때문에 어긋난다는 뜻을 나타내는 원래의 의미를 보존하고 있는 글자를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이 글자가 바로 "어긋날 위(違)"자입니다. 어긋날 위(違) 위(韋)자에 길을 나타내는 "조금 걸을 척(彳)"자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이동 수단인 발을 나타내는 "갈 지(止: 그칠 지)"자가 합쳐진 "쉬엄쉬엄갈 착(辵, 辶)자가 더하여 어긋난 곳이 길이라는 것을 표시하여 뜻을 구분한 것이지요. 착(辵)자는 글자의 왼쪽과 아래쪽을 감싸는 받침(辶)으로 쓰이기 때문에 "착받침"이라 하는데 지금은 "책받침"이라고 합니다. 이 요소가 들어가는 글자의 첫 번째 뜻은 거의 "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긋나는 것도 길을 가는 행위 등에서 발생하는 것이지요. 위(韋)자의 뜻이 원래 한 지점을 두고 서로 상반된 곳을 향하여 어긋난다는 뜻을 가진 글자라고 했지요? 그럼 아래 사진처럼 성 같은 지점을 두고 사방을 뺑 돌아가며 성을 지키는 것을 나타내는 글자도 있는데 무슨 글자일까요? 위 사진은 올 가을에 답사여행을 할 만리장성의 서쪽 끝 관문인 가욕관(嘉峪關, 지아위꽌)의 모습입니다. 시간에 맞춰 관광객을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일단 먼저 갑골문의 이체자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지요. 재미있는 글자입니다. 위 위(韋)자에 비하여 상하 뿐만 아니라 좌우로도 상반된 방향을 나타낸 발모양을 표현하였네요. 곧 위 사진처럼 성을 돌면서 지키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글자는 곧 다음과 같은 형태로 바뀌게 됩니다. 지킬 위(衛)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바로 "지킬 위(衛)"자인데 자형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위(韋)자는 음의 요소인 음소로, 그리고 행(行)자가 뜻을 나타내는 형체소의 형태로 변형된 것이지요. 그러나 이 글자는 위 갑골문의 한 형태로 보아 성밖을 돌며 성을 호위(護衛)하는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킨다는 뜻이지요. 원래 발과 상관있는 글자가 원래의 뜻에 가깝게 쓰인 것입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革이 뒤집다의 뜻이 확연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