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43호
개 요 : 조선후기의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가인 추사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사고택은 80.5평으로 솟을 대문의
문간채, ㄱ자형의 사랑채, ㅁ자형의 안채와 추사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으로 이루
어져 있는 가옥이다. ㄱ자형의 사랑채는 남쪽엔 한칸, 동쪽에 두칸의 온돌방과 나머지는 대
청과 마루로 되어 있다. 안채에는 6칸 대청과 2간통의 안방, 건넌방이 있다. 이밖에도 추사
선생의 묘소와 증조부이신 김한신과 부인인 화순옹주의 합장묘 그리고 화순옹주 열녀문 즉,
홍문이 있다. 또한 추사고택에서 북쪽으로 600미터쯤 올라가면 천연기념물 제 106호인 백송
을 볼 수 있는데 백송은 중국북부 지방이 원산지로 우리 나라에 몇 그루없는 희귀한 수종이
다.
예산의 백송은 추사선생이 25세 때 청나라 연경에서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붓대 속에 넣
어가지고 와서 고조부 김흥경의 묘 입구에 심었던 것으로, 원래는 밑에서 50cm부터 세줄기
로 자라다가 서쪽과 중앙의 두 줄기는 부러져 없어지고 동쪽의 줄기만이 남아서 자라고 있
다.
1980년도에 줄기의 피해 부분을 외과 수술하여 치유하였고, 그 후부터는 철저하게 보호, 관
리하고 있다.
아산호와 삽교호 지나 만난 내포 땅. 느린 걸음으로 올듯말듯 애태우는 봄이건만 햇볕이 따사롭게 쏟아지고 있다. 펑퍼짐한 들녘엔 보리가 파릇파릇 피어나고, 부드러운 언덕에서 자라고 있는 사과나무들은 구름꽃 핀 하늘을 향해 팔을 뻗으며 힘차게 기지개를 켠다.
▲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조선시대 지리학자인 이중환은 일찍이 '택리지'에서 우리나라의 많은 내포 땅 중에서 서산·당진·아산·홍성·예산 등 가야산 둘레의 10개 현을 지칭하는 충청도 내포 땅이 가장 살기에 좋다고 했다. 나지막한 언덕들에 둘러싸여 있는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의 추사고택은 내포 땅의 특질을 잘 보여주는 곳. 풍수전문가들은 "추사고택은 문자의 향기(문자향)와 서권의 기운(서권기)이 감도는 명당"이라고 말한다.
조선 시대의 탁월한 서예가이자 실학자로서 '세한도' 등의 작품을 남긴 추사 김정희(1786∼1856년)는 내포 땅이 배출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학문에서는 실사구시를 주장하였고, 서예에서는 독특한 추사체를 대성시켜 새로운 경지를 이룩한 추사는 서예를 통해 예술의 정수를 널리 떨쳤다.
▲ 추사 김정희 선생의 영정. 보물 547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함흥 황초령에 있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고석하였고, 1816년에는 북한산 비봉에 있는 비석이 조선 초 무학대사가 세운 것이 아니라 진흥왕 순수비라는 사실을 밝혔던 금석학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백파선사와 서간으로 논쟁을 벌이며 조사선에 대해 비판을 가할 정도로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다.
추사고택은 현재 전체가 80.5평으로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사당채가 남아있는데, 추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1720∼1758년)이 이 집을 지을 때 충청도의 53군현이 모두 1칸씩 부조하여 53칸 집을 지었다는 일화는 당시 월성위 집안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
▲ 사랑채 댓돌 앞에 추사체로 '石年'이라 새겨진 비석. 추사가 그림자를 이용해 시간을 알아보던 해시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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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댓돌 앞에는 추사체로 ‘석년’이라고 새겨진 높이 1m 정도의 돌기둥이 있는데, 이는 태양의 위치에 따라서 생기는 그림자를 보고 시간을 알 수 있는 해시계로 추사가 만든 것이라 한다. 추사고택에서 눈에 특히 띄는 건 주련들.
서예의 대가 집답게 수많은 주련이 대문 옆에도, 현관 앞에도, 기둥에도, 바람벽에도 걸려 있다. 추사고택에서 이 주련들만 음미해도 ‘문자향과 서권기에 취해서’ 이른 봄날의 정취마저도 잊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