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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鐵原) - 슬픈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이 공존하는 곳
신라사람 궁예가 강릉에서 원주를 거처 지금의 철원에 도읍 했는데 그때 철원을 쇠둘래. 쇠울 이라 했읍니다. 쇠둘래란 철옹성을 뜻합니다. 지금도 철원 동송을 가면 쇠둘래라는 간판이 많이 있습니다. 철(쇠)로 둘러진 울(도시)을 뜻하지요 이 말이 서울로 통요 되다가 일제가 지명을 장부에 기록하기 위하여 쇠를 한자 철로 울을 한자 둥글원으로 기록했다가 뜰원자로 바꾸었습니다.
철원 문화관광 http://tour.cwg.go.kr/tour/
철원 관광지 및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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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안보관광 http://igbs.kr/popup/player.asp?tabid=R5&mediano=9918&speed=
철원 안보관광 - 철의삼각전적관 - 제2땅굴 - 철의삼각전망대 - 월정리역 - 백마고지 위령비와 기념비 - 토교저수지 - 노동당사 - 승일교
철원 홍보영상 http://igbs.kr/popup/player.asp?tabid=R5&mediano=7847&speed=
철원8경
1.고석정 2.삼부연폭포 3.순담계곡 4.도피안사 5.제2땅굴 6.직탕폭포 7.토쿄저수지 8.메월대폭포
고석정[孤石亭 철원8경]
임거정(林巨正)이 '임꺽정'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한 전설에 의하면 백성들이 그가 철원 한탄강에 있는 '고석정'에서 낮에는 산을 뛰어오르고 밤에 관군에게 쫓겨 피할 재간이 없게 되면 변화무쌍한 재주를 부려 '꺽지'라는 민물고기로 변신, 강물 속으로 몸을 숨기곤 했다고 해서 '꺽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고석정 일대의 경치가 단연 빼어난데 강 중앙에 위치한 23m높이의 거대한 기암봉에는 임꺽정이 은신하였다는 자연 석실이 남아있다
한탄강(漢灘江)이란 이름이 붙여진 유래는 옛날, 후고구려의 궁예가 왕좌를 빼앗기고 쫓기며 이 강을 건너며 한탄했다고 해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3.1 운동 때 애국지사들이 일제를 피해 피신하다가 그렇게 불렀다는 설이 있습니다. 형상이 은하수같이 넓고 큰 여울[灘]이라 하여 한탄(漢灘)강
도피안사[到彼岸寺 철원8경]
기록에 의하면 도선대사가 철조비로자나불을 만들어 철원의 안양사(安養寺)에 모시려고 했으나 운반 도중에 불상이 없어져서 찾아보니 도피안사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절을 세우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여기에는 도선국사가 건립·주조하였다는 3층석탑(보물 223)과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坐像:국보 63)이 있다.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到彼岸寺鐵造毘盧遮那佛坐像) [국보 제63호]
신라말에서 고려초에는 철로 만든 불상이 크게 유행했는데, 이 작품은 그 대표적인 예로,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臺座)까지도 철로 만든 보기 드문 작품이다.
불상 뒷면에 신라 경문왕 5년(865)에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남아 있어서 만든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던 철조비로자나불상의 새로운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능숙한 조형수법과 알맞은 신체 비례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삼부연폭포[三釜淵瀑布 철원8경]
순담계곡[蓴潭溪谷 철원8경]
신철원에서 북서쪽으로 5 km 떨어진 곳에 있다. 한탄강이 크게 굽이지면서 협곡을 이루는 곳으로, 상류에 있는 고석정(孤石亭)까지의 1.5 km가 한탄강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답다. 계곡 이름은 조선시대 정조 때 김관주(金觀柱)가 이곳에 연못을 파고 순약초(蓴藥草)를 재배하여 복용한 데서 유래한다. 주변에는 직탕폭포·삼부연폭포 ·산정호수 등이 있다.
제2땅굴(철원8경)
직탕폭포[直湯瀑布 철원8경]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을 자랑하는 직탕관광지. 현무암의 거무스름한 색상과 떨어지는 물줄기가 만들어 내는 하얀색이 대조를 이루면서 떨어지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 현무암으로 맷돌, 공예품 등을 만든다
철원 노동당사[鐵原勞動黨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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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으로 1개 리(里)당 쌀 200가마씩 거두었고, 지역 주민들로부터 강제 모금과 노동력 동원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내부 작업은 비밀유지를 위해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이곳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도 하였으며, KBS 열린음악회가 녹화되기도 하였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3-2번지 외 4필지에 있다.
철원 승일교[鐵原承日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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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에 대해서는 김일성(金日成) 시절에 만들기 시작해서 이승만(李承晩) 시절에 완성했다고 해서 이승만의 ‘승(承)’자와 김일성의 ‘일(日)’자를 따서 지었다는 설과 6·25전쟁 때 한탄강을 건너 북진하던 중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박승일(朴昇日) 대령의 이름을 땄다는 설이 있으나, 현재는 후자의 설이 정설로 되어 있다. <우측. 한탄대교>
철원 평화 전망대
바로 코 앞에 보이는 남방한계선 철책. 그 넘어가 비무장 지대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각각 2km씩 간격을 두고 남한과 북한이 철책선을 치고 오늘도 이렇게 대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장장 동서로 155마일<248km>에 달하는 휴전선인 것이다. 철원 최북단 강산저수지가 보인다
토교저수지[土橋貯水池 철원8경]
철원 안보 관광의 중심지인 제2땅굴 진입도로변에 위치하여 수려한 호수경관을 형성하면서, 겨울철에는 월동 철새들의 잠자리가 되기도 하는데 겨울철 새벽(7시경)에 일제히 먹이를 찾아 비상하여 저녁에 돌아오는 두루루 두루루 운다해서 두루미 및 기러기떼의 군무 광경은 탐조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토교저수지 인근에 철새 보는 집이 조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한탄강 대교천 현무암 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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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 양측절벽 현무암의 절대연령은 약 27만 년 전에 분출한 용암이 최소한 3번의 분출 단위를 보이는 추가령 현무암으로 구성되며, 협곡 곡벽 곳곳에 현무암의 주상절리가 아름답게 분포한다. 주상절리는 지표로 분출한 용암이 냉각될 때 용암이 수축되면서 형성된 육각기둥이다. 이 주상절리는 협곡의 하상뿐만이 아니라 협곡의 양측 절벽에도 발달하며, 국지적으로서는 단순한 수직절리가 발달하기도 한다.
이 현무암 협곡의 총 길이는 약 1.5Km이고 협곡의 깊이는 20∼30m로 경관이 빼어나며 현무암 내에 보존되어 있는 주상절리의 우수한 보존성 등은 제4기 지질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천연기념물 제436호
용암 지하에 녹아있던 마그마가 지각의 약한 틈을 타고 지표 위로 분출하여 녹아있는 상태로 있는 것. 경우에 따라서는 마그마가 굳어져서 된 암석을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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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대폭포(철원8경)
강원도 철원군의 중동부 근남면 잠곡리에 위치한 절벽이다. 『여지도서』에 "창암(蒼巖)은 현 남쪽 20리에 있는데, 옛날에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이 왕래하면서 이 바위 아래에 작은 집을 짓고 수년간 소요하였다. 지금도 유적이 남아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현의 남동쪽에 창암이라고 묘사되어 있다. 언제부터 매월대로 불리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김시습(1435~1493)이 이곳에서 은거하였기 때문에 그 호에서 유래한 지명임을 짐작할 수 있다. 김시습과 여덟 의사(義士)가 새겼다고 하는 바둑판이 있다. 매월대는 복계산(1,057m) 기슭에 우뚝 솟은 높이 40m의 깎아 세운 듯한 절벽 바위이다.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이 펼쳐지는데, 특히 맞은편 산기슭에서 쏟아져 내리는 선암폭포(일명 매월대폭포)가 절경을 이룬다. 매월약수 · 매월동 · 매월대폭포 등에서 관련 지명을 엿볼 수 있다.
백마고지[白馬高地] 395고지라고도 한다. 철원읍 북서쪽 약 12km 지점인 휴전선 남쪽 DMZ 내부에 있다. 심한 포격으로 온통 파괴되어 공중에서 보니 백마(白馬)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52년 10월 6~15일 정예군으로 알려진 중공군 제38군이 국군 제9사단(사단장 金鐘五 소장)이 지키고 있는 395고지에 공격을 개시하여 고지의 주인이 24회나 바뀔 정도로 혈전을 벌였다. 중공군은 이 전투에 1개 군단의 병력을 투입하여 1개 사단 병력을 잃었으며, 아군(9사단)도 3,4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도 끝까지 고지를 사수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 전투의 대승으로 휴전을 앞둔 군사적 요지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유엔(UN)군은 휴전 회담에서 계속 유리한 입장을 지킬 수 있었다.
월정리역(月井里驛) 서울에서 원산까지 이어졌던 경원선의 간이역이었다. 신탄리역 다음 역으로, 남방한계선에 근접한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현재는 폐역 상태다. 6·25전쟁 당시 월정리역에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잔해 일부분과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숴진 인민군의 화물열차 골격이 보존되어 있다. 그 앞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현재의 역사건물은 철원안보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88년 복원된 것이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에 위치해 있다.
철의 삼각지대
북위 38 ° 북방 중부의 평강(平康)을 정점(頂點)으로 하여 철원(鐵原)과 김화(金化)를 잇는 지리적 삼각지대.
6 ·25전쟁 당시 중부전선의 심장부라고도 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대로서, 이 지역의 확보 없이는 중부전선을 장악하기 어려웠으므로 전쟁의 전기간을 통해서 피아간(彼我間)의 쟁탈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공산군의 남침을 위한 중부전선의 본거지이기도 하였다. 철의 삼각지대라는 말은 이 지역 일대가 아군이 공격하기에는 불리하고 적이 방어하기에는 최적의 지형적 특징을 지니고 있어, 천연적인 난공불락의 여건을 구비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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