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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 ☆
2023년 8월 27일 주일 예배
( 인도,설교: 정성욱 선교사 )
❤ 다같이 기도함으로 8월 27일
주일 예배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들에게
안식할 수 있는 주일을 허락해 주시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온라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에 다함께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저희들에게 주시는 말씀의
은혜 받게 해주시고 저희와 가족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응답해 주실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오며
곧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주일 예배 본문말씀입니다.
요한복음 20장
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오늘은 고대 동방 기독교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마지막때에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과 교훈을 듣고자 합니다.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서
휴거와 7년 환난과 짐승의 표등
마지막때를 지혜롭게 전하는
것으로 알려진 카이로스님의
글을 가져왔습니다.
"아시아는 매우 넓은 지역이다
이스라엘과 중동은 물론 중앙아시아, 인도, 동남아시아, 극동 아시아를 포함한다
국가 수는 48개국(24%)이지만 인구는 45억 명(60%)에 이른다
아시아의 기독교 전파는 일반적으로 근대에 전해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고대에 이미 한번 전해진 역사가 있다
아시아를 향한 복음은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를 통하여 동쪽으로 전파되었다
바울팀이 지중해 해안을 따라 서양에 복음을 전파하는 때에
베드로팀은 근동과 아시아로 향했고 그 이후에도 아시아에 전해진 복음을 동방 기독교라 부른다
누가의 사도행전은 바울을 중심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동방 기독교는 교회사에서 잃어버린 역사가 되었다
경교(景敎)라 불리는 네스토리안(Nestorianism) 기독교 종파는 동양에 복음을 전파하였다
역사가인 존 스튜어트에 따르면
"네스토리안 교회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교회보다도 더 선교적인 교회였다"고 한다
그들은 로마와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 페르시아와 아라비아반도로 진출했으며 조로아스터교와 이슬람의 저항에 부딪치자 다시 더 동쪽으로 이동하여 중앙아시아와 인도, 티베트, 중국 등지로 동진했다
635년 경에는 당나라 장안(長安)에 복음이 전파되었다
13세기경에는 27명 이상의 대감독과 200명 이상의 감독들이 활동하였다(장안의 봄)
경교의 중국 전파에 관한 가장 중요한 자료인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는 781년에 세워졌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 : 중국 당나라 장안의 경교(景敎) 사원인 대태사에 건립된 비석으로 중국에 전래한 경교의 교리와 역사를 적어 그 유행을 기념하였다
비문은 경교 총주교였던 경정(景淨)이 새겼고, 글과 제목은 조의랑이 작성하였다
비석의 높이는 2.36m, 너비 86cm, 두께는 25cm로 총 1870자와 40개의 시리아어, 성직자 82명이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그중 77명은 시리아의 성직자 이름이다
당시 중국은 당나라 태종(太宗) 때였는데 각 지역의 문화와 종교를 모두 포용하였다
네스토리안도 경교로서 수용되어 폭넓게 전파되었다
한편 일본까지 기독교가 전파된 기록이 남아 있다
일본 문헌인 ≪속일본서기 續日本書紀≫ 성무천황기(聖武天皇紀)에는 783년 당나라 사람 황보(皇甫)가 경교 선교사 밀리스(Millis)를 동반하여 천황을 만났다는 기록이 있다
남만주에서도 1928년에 경교도의 분묘와 7개의 와제(瓦製) 경교 십자가, 그리고 동방박사의 아기예수 경배도가 조각된 바위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흉노족과 돌궐족도 중국 선교 이전에 기독교를 수용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확인되었다
경교의 영향력은 한반도에도 전해진 것으로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1956년 경주에서 출토된 신라시대의 유물 중 석제 십자가, 동제 십자가와 더불어 마리아상이 발견되어 경교적인 흔적을 확연히 보여주었다.
유물들은 통일신라시대의 기독교가 한반도까지 전파된 것을 증명하는 자료로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캄보디아 개신교 초기 선교사 중 한 명인 데이비드 엘리슨의 아들 폴 엘리슨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캄보디아와 베트남 문화에는 인도차이나 지역에 초기 기독교인들의 활동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450년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있었던 동방교회 총회에 인도차이나 지역 대표가 참석했다"
그러나 네스토리안 교회의 엄청난 선교적 업적은 곧잘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네스토리안을 이단으로 정죄하였기 때문이다
네스토리우스는 4세기 말(375-399)에 시리아 땅 유프라덴시스 지방에서 한 페르시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안디옥에서 교육을 받고 거기서 장로로 서품을 받았고 428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단자로 파면당했다
첫째는 '테오토코스' 즉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마리아 신모설(神母說)을 반대하였다는 이유다
둘째는 그를 양성론자로 오해하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삼위일체가 성립되는 과도기였고 그리스도의 위격을 두고 단성론과 양성론으로 많은 교리적 논쟁이 있었던 시기다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인성과 신성의 격체가 따로 있다는 양성론자로 몰리면서 네스토리우스는 이단 정죄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네스토리안 교리에는 삼위일체를 인정하였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412-444년까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 재직했던 키릴이 교권적 야심을 품고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였고 431년 에베소 공의회를 열게 하여 네스토리우스를 파면시켜 추방했다
에베소 공의회를 도적 회의 또는 강도 회의라 칭하는 이유다
서방교회가 황제의 지원과 강력해진 교황의 권위로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동방 교회는 서방교회의 이단정죄 외에도 이슬람의 칼리프에 의한 지하드와 종교 인두세로 어려움을 겪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가옥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무슬림으로 개종했다
676년에 아랍 주교들의 마지막 회의가 걸프에서 열린 후 아라비아 지역에서 기독교는 쇠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동방 교회에 대한 박해는 이들을 이단으로 몰아세웠던 서방교회에 의한 것이 더 컸다
어느 시대나 교리를 두고 서로 이단으로 정죄하며 더 큰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조금만 달라도 서로 이단이라 싸운다
이런 상황을 두고 안티들조차 "지들끼리 싸운다"며 손가락질 한다
초대교회 역사 기록에 의하면 일찍이 사도 도마가 중앙아시아와 인도에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역사학자 왕치심에 의하면 사도 바돌로매도 아르메니아와 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했다고 <중국기독교사강>에 기록했다
635년 페르시아의 사절단과 함께 알로펜 주교 일행이 당나라의 장안을 공식 방문하였다
당시 서역의 왕자가 방문했는데 제상 방현령이 서문 밖까지 나가 일행을 맞이했다
당태종은 알로펜 일행이 황제의 장서류(藏書樓)에서 성경을 번역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3년 후에는 태사(泰寺)라는 예배당 한 채를 지었다
당시 중국은 기독교를 불교와 함께 서쪽에서 전래된 종교들을 총칭하여 양교(洋敎)라고 불렀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는 1623년 장안에서 출토되었다
당시 어떤 사람이 성서(城西) 근처에서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던 중에 땅에서 커다란 돌을 하나 발견하였는데 큰 비석이었다
서양 선교사들은 비문을 탁본해서 본국으로 보냈고 이후 번역하고 연구함으로 중국 경교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한편 가톨릭 교황청은 경교비가 위작이라며 동방 기독교가 네리토리안에 의해 전래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한편 마르코폴로는 신장 각지에서도 경교도, 불교도, 이슬람교도들이 섞여 사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기록했다
그런데 아시아 각처에 전해졌던 기독교는 14세기에 이르러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러 이유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슬람과 불교의 박해, 징기스칸의 진출로 약화되었을 것이란 추측도 있다
잔인한 성품을 가졌던 측천무후는 열렬한 불교도로 691년 불교를 국교로 선포하였다
698년에는 한 불교도가 낙양의 거리에서 경교도에게 모욕을 가하면서 양측 간 충돌이 생겼고 경교에 대한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712년에는 최초의 교회당인 대태사(大泰寺)가 파괴되었다
그러나 742년에 다시 교회당이 복구되었고 그 뜰에 경교비를 건립할 정도로 부흥했다
879년에 일어난 황소의 난으로 12만 명의 이슬람, 유대, 페르시안과 경교 신자들이 살해되었다
그중에 3000명은 경교 신자였다
이때의 핍박을 기점으로 중국의 모든 지역에서 경교의 불씨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왜 경교를 사라지게 하셨을까?
당시 대태사 교회당에는 당조 5대 황제의 초상화를 안치했고 일부는 토착화의 과정에서 불교와 융화됨으로 변질되었다
십자가 아래에 연꽃이 달린 문양은 일찍이 인도의 도마 십자가상에도 나타났는데 이것이 변질의 상징인지 단순히 인도의 국화인 연꽃을 사용한 것인지는 논란이 있다
경교는 정치와 너무 밀착되었고 외래 종교로 인식되었으며 경교의 수장 중에는 중국인이 한 명도 없었다
성경을 번역하여 신자들에게 보급하는데도 소홀했고 고대 시리아어 사용을 고집했다
반면에 불교는 살아남았다
교회 지도자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어떤 전략으로 사역을 할 것인지 실패한 역사를 볼 수 있다
아시아에서 17세기 사라졌던 기독교는 약 200년이 지난 후 1807년 영국의 모리슨 선교사에 의해 다시 전해졌다
그는 1815년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였다
1863년 영국의 토마스 선교사는 중국에 도착하였고 1866년에는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목적지인 평양 대동강에 도착했으나 조선 관군에 의해 참수되었다
그때 순교하면서 나누어준 성경이 500권이 넘었다고 한다
지금 중국과 한국에는 약 1억 명의 기독교 신자가 있고 양쪽 다 정부의 박해를 받고 있다
한국 교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저는 항상 우리나라 고대 기독교
역사를 배우면서 동방의 고대 기독교
전파가 사실이라면 무엇때문에 동방
교회가 사라지고 지금까지 감추어
졌는지 알 수가 없어 고대 기독교사에
의혹을 가지며 최근에 그 원인을 가르쳐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카이로스 사역자를 통하여
복음이 변질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경교를
사라지게 하시고 감추셨다는 것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지막때를 맞은 현대
교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이
있다고 믿습니다.
즉 동방 교회가 우상을 겸하여
섬기며 변질이 되었습니다.
북한의 교회가 김일성을 지지하고
받아들여서 멸망을 당하였듯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황제)을 교회에서
섬기고 불교등과 융화됨으로써 멸망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참고로 일본에는 불상으로 위장한
성모마리아상이 있습니다.
1차 일본 선교에서도 우연히
들어간 절에도 여자 불상이
있었지요.
그런데 마지막때를 맞은 지금도
똑같은 현상이 우리나라와 전세계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잘아시다시피 현대 교회들이 황제를
섬기듯이 정치 지도자와 결탁하고 WCC.WEA등으로 다른 종교와
통합하고 융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루시퍼레이즈 사탄의 이름이
들어간 코로나 백신을 영접함으로
현대 교회는 경교처럼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데살로니가후서 2장
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코로나 백신을 맞고 종교 통합하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 (6+6+6)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이시간에는 우리나라의 고대
기독교사를 자료를 참고하여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부족한 지식과 자료를 가지고 감추어진
우리나라 고대 기독교사를 파헤치는
것이니 참고로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경북 영주시에 가면 사도도마
석상이 있습니다.
순회전도 초기때 그곳에 다녀온
일기도 있지요.
영주시 사도도마 석상에는 히브리어로
"타우멤" 즉 도마라고 적혀있으며
옆으로는 도마의 눈과 손이 그려져
있고 다음으로는 예수님께서 옆구리를
가리키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말씀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그렇다면 도마 석상은 찾아가기도
힘든 산골짜기에 왜 만들어 졌을까요?
아래는 교회 카페에서 가져왔습니다.
"1.도마석상의 지형은 천지창조 할 때 하나님께서 그런 지형을 만드셨다. 도마에게 명하여 성령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 석상을 만들었다.
2.앞산은 불로산(성령의 불)이고 비둘기(성령비둘기)가 바위를 향하여 석상을 앉는 형상(모습)이다.
3.오른쪽 산은 왕두산(왕머리)이며 열대(자물통)바위가 있다.
4.마을은 왕유(왕이 있는)마을이다.
5.석상 앞 골짜기는 왕이 있는 골짜기이다.(왕유골)
6.이 석상에 대하여는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7.이 석상은 머리가 없는 석상이다. 머리의 비밀을 알려면 목걸이에 오른손 세 번째 손가락 끝에 천국 열쇠가 있다. 두 번째 손가락은 하늘을 향해 있으니 천국 열쇠를 받은 사람만이 머리의 비밀을 알 수 있다. 석상의 방향은 상형문자를 가르킨다.
상형문자는 이 석상에 관한 비밀을 풀이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는 석상의
주인공이 사도 도마일 것이라고 보았는데 최근 다른 자료를 보니깐 석상의 주인공은
예수님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튼 아래는 순회전도 초기때 도마
석상에 다녀와서 남긴 글의 일부입니다.
"마애불상으로 알려진 그 석상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오면서
석상 앞에서 제물이나 음식을 갖다 놓고 복을 빈 일이 없었다고 하며 석상이 있는 곳은 왕머리 마을 또는 왕유리로 불리는데
고려시대 공민왕이 이 지역을 지나가다 머문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였고 석상 근처에는 내성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도마 박물관장에 말에 따르면 이곳은 육로의 실크로도와 해상의 실크로드가 만나는 땅끝 지점이라 석상이 새겨져야 되는 장소에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래전에는 석상 앞
내성천까지 배가 다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석상 아래에는 지전행 이라는 한자어가 적혀있었는데 지전행(地全行)은 예서체로 새겨져 있으며
기원전 02~기원후 220년에 사용되었던 글자 형태라고 하고 지전행을 풀이를 하면
'땅 전부를(땅 끝까지) 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 막16:15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사도행전 1:6 -
"그런데 석상을 찾느라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석상을 찾고 그 앞에 있을 때에는 신비로움과 함께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이 참으로 평안하였다는 것입니다.
돌아오면서 마음이 평안한 이유에 대해서 강도사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석상이 있는 지역 이름이 평은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평은면에 첫 글자인 평은 평안이고 평은에 은은 은혜로 풀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안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가기도 힘든 오지 같은 그곳에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마침 목사님이 계셔서 조금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자신도 동네에 있는 마애불상이 도마 석상이라고 믿고 있다고 하셨으며 이런 산골짜기에서 어떻게 목회를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여자 전도사가 땅을 기증을 하였고 후원을 해주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교회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 산골짜기에도 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는데 그곳은 의미있는 장소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워주신 것 같았습니다."
신기한 일은 경북의 기독교율이 8%인데 영주는 30%입니다.
전도 일기와 영상에서도 자주 언급한
청도에는 오래전 소국 이서국이 있었는데
이서국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세운
국가로 보고 있습니다.
즉 "이서"는 이스라엘 지명을
뜻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금도 이서국이 있었던
청도에는 유대인 워렌버핏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가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에
귀화한 일본의 장수 사야가의
후손들의 집성촌이 있습니다.
아래는 관련 자료입니다.
"사야가는 1592년 4월15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가 이끄는 왜군 제2진의 선봉을 맡아 부산포에 상륙했다가 곧바로 부하들과 함께 귀순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모하당 문집>을 보면 단순한 항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출정 전부터 “의롭지 못한 전쟁에 나섰지만 동방예의지국인 조선에 가서 동방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귀화한다”고 밝혔다.
조선 조정은 그런 사야가를 가상하게 여겨 자헌대부(정 2품)를 제수했다. 그러면서 김해 김씨의 성를 내리고, 충성스럽고 착하다는 뜻의 ‘충선(忠善)’이란 이름을 내렸다. 김충선의 본관은 임금이 하사한 성이라 해서 ‘사성(賜姓) 김해 김씨’라 했다.
김충선은 임진왜란 때 무공을 세웠고, 조총과 화포를 다뤘으며, 화약제조법을 전수했다. 또 이괄의 난(1624년)과 병자호란(1636년) 때도 공을 세웠다. 김충선이 임진왜란·이괄의 난(갑자년)·병자호란 등에서 모두 공을 세웠다고 해서 ‘임갑병 3난의 공신’이라는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최치원이 지은 「석이정전(釋利貞傳)」에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가야 산신 정견 모주(正見母主)는 천신 이비가지(夷毗訶之)에게 응감하여, 대가야의 왕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국의 왕 뇌질청예(惱窒靑裔) 두 사람을 낳았다.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별칭이고, 청예는 수로왕의 별칭이다.”
그러니깐 김수로왕은 이서국 왕의
둘째 아들로 AD 42년에 사로국(신라)
이 이서국을 쳐들어와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에 패한 이서국 왕의 첫째 아들
뇌질주일은 피신하여 제가 여러번
전도갔었던 고령 지역에서 대가야를
세웠고 둘째 아들 뇌질청예는 김해에서
금관가야를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김수로왕의 "수로"도 이스라엘
히브리어 "사르"(왕,지도자)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그렇다면 신라는 무엇 때문에 그당시
형제 국가인 이서국을 공격하였을까요?
이것은 종교전쟁과도 같은 것이였습니다.
사도 도마는 도마행전에도 나오듯이
현재 터키지역인 에뎃사에서 부터
선교를 시작하여 복음을 전하며 땅끝으로 알았던 인도까지 선교를 갔다가 인도가
땅끝이 아니라 그 당시에 인도와
무역을 하였던 한반도가 땅끝이라는
것을 알게되어 AD 41년에 해상
실크로드를 따라 제가 살았던 김해
지역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사도 도마가 한반도까지 복음을
전하러 온것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한반도에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살았고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태복음 10장
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그리고 오래전 유럽에서도 구교(카톨릭)와 신교(개신교)간에 전쟁이 일어났듯이
유대인 이서국이 사도 도마의 전도로
복음을 받아드리자 그 당시 구교인
(유대교)를 믿었던 신라가 종교전쟁을
일으켰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김수로왕은 AD 42년에 도마에게
세례를 받고 부활절 날에 김해
구지봉에서 가야국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근래에 촬영한
김수로왕릉 현판에 보면
오병이어로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를 사람이 먹는 모습의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오병이어 그림 안에는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의 불을
상징하는 붉은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현재는 불교에서 오병이어 그림을
왜곡시켜 보리떡 다섯개와 사람의
얼굴과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의 불을
전부 지워버렸습니다.)
그리고 고대 한반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제가 선교가는
일본으로 이주를 하였는데
제가 선교가는 오사카 중심에 있는
사천왕사에는 유대인 적이고
기독교적인 문양들이 많습니다.
그 당시 일본에는 사찰을 건축할
기술이 부족해서 578년 쇼토쿠 태자가
우리나라 백제 장인 세사람을 불러서
사천왕사를 설계하고 593년에
완공을 하였습니다.
그때 백제에서 건너간 목수 유중광이란
사람이 세운 곤고구미 건축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텐노지(사천왕사)를 건축한 세 명의 목수 중 한 명인 금강중광(金剛重光: 곤고 시게미츠)이 일본에 남아 대대손손 시텐노지의 증축과 유지보수를 하게 되었고, 이 것이 곤고구미의 시작이다. - 나무위키 -"
그런데 사천왕사를 만든
쇼토구 태자의 탄생이
예수님의 탄생과 닮아있습니다.
쇼토구 태자의 본명은 '우마야도'로
마구간 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마구간 앞에서 태어났다고
하고 서방의 구세관음보살이 황녀의
입을 통해 태내로 들어와 '우마야도'를
몸에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천왕사 절안에 있는
세사람의 그림 속에는 십자가 모양과
다윗의 별과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를
뜻하는 문양이 많이 있습니다.
사천왕의 뜻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뜻하는 것이고 사천왕사 절은
사복음서를 상징하는 교회였다고
일본의 학자들이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경주에도 사천왕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훼손이 되어 터만
남아있습니다.
일본의 사천왕사 마크에는
십자가 문양도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불국사에서도
십자가 돌이 발견되었는데 그래서
우리나라 기독교 학자들도 불국사가
오래전에 교회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전파된
도마의 십자가는 위아래 좌우가
같은 + 모양의 십자가 입니다.
도마의 좌우가 긴 십자가는
못박히신 예수님의 손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려
십자가의 못박히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의 고백처럼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처럼 동방 교회는 사도 도마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참고로 지금의 그리스 러시아등을 장악한
동방정교회는 카톨릭에서 떨어져
나온 것입니다.
아래는 우리 교회 카페에서 무명한자님에
글을 발췌했습니다.
다음 보시는 성경은 히브리어
마태복음 1장 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예수님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발음은 Yeshua 예슈아 입니다.
오래된 히브리어 알파벳은
상형문자입니다.
한자처럼 뜻과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예수님의 존함에는 어떤 뜻이
있을까요?
히브리어 예수님의 이름에 비춰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hand two tent peg see.
손에 2개의 못을 보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출처: 대한성서공회
개역한글판 로마서 6장 6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출처: 대한성서공회 개역한글판
빌립보서 2장 5절~11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출처: 대한성서공회 개역한글판
사도행전 2장 36절
아래의 글은
"사도 도마와 아시아 교회"의
저자이신 이용봉 목사님의
영상을 참고하였습니다.
제가 이번에 선교가는 교토시에는
경상도 사투리가 변형된 우지마사
(울지 마소)라는 지역이 있는데
"일본서기"에 보면 백제에서 궁월군이
120현의 사람들을 이곳으로 인솔하여
왔다고 나옵니다.(신라계 포함)
이곳에는 현재도 재일교포들이
많이 모여서 살고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신사에
현판에 보면 이곳은 경교의 유적지이며
그리스도교 네스토리안교파가 있었던
장소라로 보인다는 글이 적혀있습니다.
(참고로 네스토리안파는 나중에 도마파와
연합하여 동방 선교를 감당하게 됩니다.)
또한 우지마사 가이코노야시로역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코노시마니마스아마테루미타마 신사"
안에 삼족도리라고 하는 문이 있습니다.
일본어로 "도리"는 문을 뜻하는데
보통 문의 기둥은 두개이지만
삼족도리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기둥이 세개입니다.
이처럼 삼족도리의 세개의 기둥은
삼위일체를 뜻하고 삼주도리
중앙에는 돌들이 쌓여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보좌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돌 위에는 번개의 형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또한 한편으로는 흰색 번개 모양은
성령의 바람을 상징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사도행전 2장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곳에 있는 현판의 설명을
보면 삼족도리는 다비드의 문양인
육각형의 다윗의 별로 되어
있으며 일본으로 건너온
도래인(한반도)의 후손들이 섬겼던
신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삼족도리에서 물이 발원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삼족도리에서 물이 흘러나와
그 아래에 일본의 베데스다 못으로
흘러갑니다.
(옛날에는 샘물이 풍부하였고
현재는 하지때마다 물을 채워넣습니다.)
이곳은 그 당시에 세례를 받은
곳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목욕하면
병이 안걸린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여담이지만 간혹 안식일 즉
주일에 선교 전도 다닌다고
비판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예수님께서도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전도와 선교에 있어서는
율법에서 벗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데스다 못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거기 벽에는 "이사라 우물"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라는
이스라엘 이라는 뜻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지마사가 있는 교토에는 이스라엘의
갈릴리 호수 같은 큰 호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우물 근처에는
다박국 신사가 있는데 이것은 다윗을
상징하는 신사입니다.
즉 다윗의 신사는 교회가
있었던 장소였습니다.
이처럼 이 마을 전체에
이러한 유교적이고 기독교적인
유물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학자들은 그들을
중앙아시아를 거쳐온 기독교인들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오사카와 교토에
선교를 가면 관련 장소를
방문하여 영상을 촬영하겠습니다.)
참고로 중국의 기록을 보면 경교는
중국에서 635년에 시작이 되었고
700~800년에 번성하였습니다.
오사카에 해운서원 박물관에 가면
경교 성경책이 지금도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과 우리나라에도
오래전 아일랜드의 골든 여사의 도움을
받아 경교비가 세워졌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 장안사에 세워졌습니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경교비의 탁본이 소장 전시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어느 목사님이 수원에
한옥으로 기독교 박물관을 만들고
그곳에 경교비를 만들어서 세워
놓았습니다.
그런데 우지마사에
처음 정착하였던 사람들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하다씨 일족으로
AD 356년이나 372년 이거나
더 일찍 간 사람들은 BC 20년
이전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하다씨 가문은 고대 일본에서
크게 산업을 일으키고 고대 일본의
기초를 세운 사람들입니다.
1988년 1월에 경북 울진군 죽변면
봉평2리 118번지 논바닥에서
비문이 발견 되었습니다.
"이 비는 524년 정월 15일에 세웠다."
(소를 잡아 제사를 드림)
울진지역은 파단국이 있었던 곳으로
울진군 해곡현의 옛 이름입니다.
이 파단은 일어로 "하타" 이며 하타 씨의
일족이 1990년에 이 지역을 방문하여
이곳이 자신들이 살던 곳이라고 했습니다.
(이 파단, 하타란 말은 바다를 건너다의
의미로 히브리라는 말과 같습니다.)
히브리 말은
1. '셈'의 아들인 에벨(Eber)의 뜻으로
'강을 건넌 자' 즉 유브라데스 강을 건너
온 자라는 말에서 Hebrew 란 말이
나왔습니다.
2.아브라함이 처음 '히브리인' 이라고
불리우고 그 후 그의 자손 이삭과
야곱이 '히브리인'으로 불리기 때문에
'히브리'란 말이 아브라함으로 부터
시작된 것으로 봅니다.
이 중에서 에벨에서 유래되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고 합니다.
즉 고대 한반도에는 디아스포라
이스라엘인들도 살았고 일부가
일본으로도 건너갔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9장
16.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 가운데에 그들을 흩어 버리고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시편 59장
11. 그들을 죽이지 마옵소서 나의 백성이 잊을까 하나이다 우리 방패 되신 주여 주의 능력으로 그들을 흩으시고 낮추소서
사도행전 24장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참고로 1차 일본 선교에서
언급을 했었던 일본의 마쯔리행사는
이스라엘 제사장이 언약궤를
메고가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래는 일본에 사는 재일교포의
글입니다.
(우리 동네 마쯔리는 낮 12시가 되면
동네 신사에서 미꼬시가 출발을 한다
미꼬시는 간단히 말하면 동네를 지키는
신이 타는 가마이다
신이 타는 가마인 미꼬시를 메고 온 동네 골목 골목을 누빈다
신이 동네 골목 골목을 둘러 보며 악운을 쫓아 내고 좋은 기운을 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골목에 미꼬시가
들어 와 주길 바라고 동네 마쯔리에 크게 찬조금을 낸 집 앞에선 미꼬시가 특별히 집 앞에서 한번 멈춰서 준다
아마도 그 집에 복을 넣어 주는 것이리라)
사무엘하 6장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마쯔리 행렬의 선두에는 음악담당인 "오하야시다이"가 하루종일 풍악을 울린다)
역대상 15장
28.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뿔나팔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
또한 일본의 다도 문화는 성찬식을
뜻한다고 합니다.
"프란시스 사비에르(1506~1552)와
싸스페데스(1551~1611)등이 기록한
일본 선교의 역사기록에서 다도의
시작이 성찬 의식이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차는 예수님의 피로, 과자는
예수님의 살을 상징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리고 일본의 정월이 되면 3일동안
포도주와 떡을 나누는 오도소라는
풍습이 있는데 이 풍습은 죽어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로 예수님의 3일만에
부활하심을 나타내는 의식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9장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그리고 사이타마 현의 중앙 부근에 위치한 요시미 마을에는 "요시미백혈"로
불리는 돌을 파서 만든 6세기말 7세기
후반 구릉사면에 바위를 파서 만든
횡혈묘군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람을 매장할때 사용하였던
돌무덤 형태로 많이 남아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오래전 남해 순회전도 일기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남해에는 "도마 마을"이
있고 그곳에는 이스라엘 형태의 우물과
12제자 또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연상시키는
12개의 돌기둥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는 이서국(일본식:lsobe)의
지명과 제가 전도다녔던 함안에 있는
안나(일본식:Annaka) 가야의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하다씨 일족은 사도 도마가
복음을 전한 가야를 통해
복음을 받아드렸고 이 복음을
가지고 일본으로 가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또한 교토의 우주마사 등의
기독교 유적들은 경교 이전의
것으로 가야의 영향으로 일본으로
전파된 것으로 우리나라 기독교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제가 자주 전도갔었던 포항의
연오랑과 세오녀도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선교사라고
합니다.
아래는 삼국유사 제1권에는
나오는 내용입니다.
"제8대 아달라왕(阿達羅王) 즉위 4년인 정유(서기 157)에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오가 바다에 나가 해초를 따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바위[혹은 물고기라고도 한다.]가 나타나 연오를 싣고 일본으로 갔다. 그러자 이를 본 그 나라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다.”
그리고는 연오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일본제기(日本帝記)』를 살펴보면, 이 무렵 신라 사람으로 왕이 된 사람은 없었다. 연오는 변방 고을의 작은 왕이지, 진정한 왕은 아닐 것이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세오는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남편이 벗어놓은 신발을 발견하고 역시 그 바위에 올라갔다. 그랬더니 그 바위도 예전처럼 세오를 태우고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이를 보고 놀라서 왕에게 아뢰었다. 이리하여 부부가 다시 만나게 되었고, 세오는 귀비(貴妃)가 되었다.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어버렸다. 일관(日官, 하늘의 조짐을 살피고 점을 치는 일을 담당한 사람)이 말하였다.
“해와 달의 정기가 우리나라에 내려와 있었는데, 지금 일본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괴이한 변고가 생긴 것입니다.”
왕은 사신을 일본에 보내어 두 사람에게 돌아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연오가 말하였다.
“내가 이 나라에 도착한 것은 하늘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이오. 그러니 이제 어찌 돌아갈 수 있겠소. 그 대신 내 왕비가 짠 고운 명주 비단이 있으니, 이것을 가지고 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잘 해결될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곧 비단을 내려주었고 사신은 돌아가 이 일을 아뢰었다. 그리고 그 말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해와 달이 예전처럼 빛이 났다. 그 비단을 임금의 창고에 보관하고 국보로 삼았으며 그 창고의 이름을 귀비고(貴妃庫)라고 하였다. 하늘에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고도 하였다."
핵심 내용을 다시 보겠습니다.
“내가 이 나라에 도착한 것은 하늘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이오. 그러니 이제 어찌 돌아갈 수 있겠소."
일본에서 종군목사로 와서
사역을 하는 케니요셉 목사의
"일본의 지장 대 예수"라는 저서에
보면 "일본에 199년에 복음이 들어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부산,울산,포항 등을 거쳐
제주도를 경유하여 복음이 일본으로
들어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반태락사"가 말하기를
도마 순교 후 120년, 2개 선교
단체가 인도에 도달해 선교를 했다고
주장합니다.(아주기독교회사)
이들이 인도에서 선교한 때가
170년이니 그가 백제나 가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때가 199년이라고
보면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일본 고대 기독교사를
결론적으로 말하면 파사왕(신자)때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복음을
들고 갔습니다.
이 땅에 살던 하다씨의 일족이
도마가 전한 복음을 듣고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일부는 유대교를 가지고 건너 갔습니다.
이것이 일본의 고대
기독교입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 얼마나
많은 도래인(한반도)들이
일본으로 건너갔을까요?
아래는 학생의 질문에
답변한 어느 교수의 글입니다.
"1. 일본 도래인들이 대부분 한반도에서 건너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당연합니다.
다만 시차를 두고 대거 일본에 유입되게 됩니다. 즉 조몬 시대, 야요이 시대(주전 3C~주후 3C), 야마토 시대 반도에서 대거 열도로 유입했을 것이지요.
고조선의 변고, 부여의 변고, 원삼국 시대(마한, 진한, 변한 땅)의 변고, 가야의 변고, 백제의 변고, 고구려의 변고 등이 대표적으로 열도로의 이동을 야기했을 것이라 볼 수 있겠지요.
그 가운데 703년 멸망한 고구려 마지막 보장왕의 아들 약광이 이주 망명해오자 일본 조정은 703년 王性을 내리고 716년까지 7지방에 산재해 있던 고구려사람 1799인을 무사시노(武藏野, 지금의 동경 근처)에 이주시킵니다. 그래서 그곳에 지금도 유명한 고마신사(고려신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대한민국 남한땅에서 최초 고구려비가 발견된 충주시와 공무원을 교환 방문할 정도로 교류를 합니다.
일본 동경대 교수였던 하니하라(埴原和郞)는 서기 700년 당시 일본 이주민 대 원주민 비율을 9 :1 내지 8:1이라고 했습니다. 이주민의 국적을 두루뭉실하게 한반도를 경유한 아시아 대륙인이라고 했으나 당연히 한민족의 줄기들이었습니다.
일본 고대 야마토(大和倭)의 중심을 이루던 지금의 나라, 쿄토,오사카 지역을 백제인들이 터를 닦았다는 것은 일본인들도 인정하는 것으로 결국 일본 천왕가조차 가야계(신라계 포함)를 거쳐 백제계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일본이 아무리 감추고 싶어 하더라도 사실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구마모토(熊本)라는 지명은 구마모토에 정착한 사람들이 "우리들이 본래 출발한 원 고향은 곰나루(구두래) 즉 공주(熊津=곰나루)"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만든 자연스러운 지명(우리의 본은 웅본이다)인 것이지요. 야마토왜의 실제적 지배자 蘇我氏와 重臣 物部氏도 당연히 백제계였습니다. 규슈의 에다후나야마 고문은 규슈가 백제계의 땅이었음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하니하라는 일본 고대 야요이시대부터 나라시대까지 약 1천년동안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은 약 1백만 명이라고 추정했습니다(동경대학 <인류학> 지, 고대 일본 이주자수 추정, 1987). 유전자 분석을 통해 서울대 의대 서정선교수는 오늘날 일본인의 24%는 한인계라고 했습니다. 일본 유명 작가 시바료타로司馬遼太郞도 1985년 방한하여 백제로부터 도래한 한인 약 20만명이 일본 율령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자신들(일본인)의 조상은 한국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고대사를 연구하는 일본의 사학자들은 반드시 한국고대사를 연구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한반도가 자신들 조상의 출발지였다는 것이 무어 그리 인정하기 싫어서, 자신들 일본에 불리한 자료들은 애써 외면하려 들거나 왜곡된 <일본서기>를 기초로 일본이 한국보다 우월한 문화와 국력을 가졌던 고대 시기가 있었다는 말도 안 되는(임나일본부 같은) 주장에 집착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비록 국가와 민족은 달라졌으나 혈통적으로는 이 세상 어느 민족보다도 가까운 한일 관계를 복원시키는 길은 오직 복음밖에 없다고 저는 늘 주장합니다."
제가 선교가는 오사카 일대에는
많은 재일 교포들이 살고 있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저의 이번 일본 2차 선교는
잃어버린 우리들의 후손들을 구원하러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태복음 10장
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아래는 가져온 글입니다.
"30만 명이 넘은 순교자를 내고, 현재 복음화율 0.2%로 선교사의 무덤으로 불리는 일본은 신기할 정도로 결신율이 낮다.
일본 선교사들은 열심히 땅을 파고 거름을 주었는데도 원체 척박한 땅이다 보니 좀처럼 열매가 맺히지 않는 답답한 선교를 감당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일본선교 무용론을 말하기도 한다."
위에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선교사의 무덤이며
복음의 황무지 같은 매우
척박한 땅입니다.
요나 선지자의 무덤은 니느웨에
있다고 하는데 부족한 종이지만
저도 요나의 사명을 받아 니느웨
같은 일본으로 선교사로 떠나는
것입니다.
또한 저는 앞서 일본으로 입국할때
입국심사에서 잡혀서 마지막때 전도지와
복음의 플랜카드와 말씀 시트지등을
모두 들켜서 저의 모든 신상정보가
일본 정부에 들어갔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험한 상황속에서도
규슈섬에 일본어 전도지 2천장을
전하고 복음의 플랜카드를 규슈섬
곳곳에 붙여있으며 차량으로 말씀 전도와
복음의 옷을 입고 규슈 일대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즉 앞서 일본 선교로 이번에 일본으로
들어가면 붙잡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저는 오는 29일 화요일에 일본으로
선교를 떠납니다.
이번에 일본 제3의 도시
나고야에서 노방 전도하시는
성도님께서 저를 초청하여
나고야 에서도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나고야는 인구 233만명에 대도시이면서
성도님에게 듣기로는 일본에서도
두번째로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는
강팍한 곳이라고 합니다.
또한 주님의 뜻이 계시면
오사카에서 노방전도 하시는
성도분도 만나려고 하는데
두 사역자와 동역을 위해서도
기도부탁드립니다.
사실 저는 이번에 몸을 다치고
거기다가 일본 입국 방역시스템을
염려하여 일본 선교를 머뭇거리다가
나고야 성도님의 방문 요청이 성경에
나오는 마게도냐 사람같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사도행전 16장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말씀을 듣고 함께 예배드리는
성도분들에게 요청을 합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지 건너와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도래인 같이 젊은 시절
일본으로 건너온 나고야 성도님 같이
일본으로 건너와 선교사로 헌신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일본 선교사로 헌신을 할 수 없으면
저희들 같이 일본 선교를 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며
물질로 후원하는 것이 건너와서
우리를 돕는 것이 될 것입니다.
끝으로 국내 전도와 일본 선교를 하는데
물질이 채워질 수 있도록 그리고
제가 무사히 일본에 입국하고 출국할 수 있도록 성도님들의 중보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코로나 방역 시스템에서도
보호하심을 받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중보기도와 동역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도록 기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만왕의 주인 되시는 주님,
부족한 종이 성령에 매여서
일본으로 다시 선교를 갑니다.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지는
모르겠으나 천사를 보내시사
마지막때 주의 복음을 전하러 가는
주의 종을 지켜 보호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주님 오시기 가까운
마지막때 잃어버린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게 하옵소서!
또한 저에게 맡겨주신 한국에 있는
성도들을 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지켜보호하여 주옵소서!
응답해 주시고 역사하여 주실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오며 곧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일본 선교 후원계좌:
농협 352 0425 0825 73 정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