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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하늘이 준 기회를 확실히 살려라
성을 함락시키고 보니, 안에 또 하나의 성이...
기산에서 본대와 합류한 공명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위수의 북쪽 연안에 있는 진창성을 포위했다. 진창성을 지키고 있던 사람은 사마중달이 비장의 무기로 여기고 있는 학소였다. 학소는 태원 출신의 무장으로 실전 경험이 풍부한 지휘관으로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성의 외곽에 도달하자, 공명은 곧 작전회의를 열었다. 막료들은 이구동성으로 속전 속결을 주장하였다. 그 중에서도 청년 장군인 강유는, 즉시 성을 공격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주장하였다. "위수의 남쪽에는 사마중달이 이끄는 적의 주력군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군대가 이곳 진창을 점령하면, 적군은 강을 건너지 않고, 북쪽 연안을 따라 동쪽으로 진격하여 북쪽으로부터 장안을 공격할 수가 있습니다. 한시 바삐 진창성을 함락시켜야만 합니다." "음, 분명히 그렇기는 하지만..." 공명은 잠시 생각한 후에, "성을 지키고 있는 학소는 전쟁에 능숙한 사람이다. 성 안에는 식량도 충분히 있을 테고, 힘으로 밀고 들어가면 적의 저항이 심할 것이다," 그래서 공명은 같은 태원 출신이며, 더욱이 학소와 어릴 때에 친구였던 사람을 찾아내어 성 안에서 항복하도록 권고하였다. 그러나 성주인 학소는 촉군에서 파견된 옛 친구에게, "나는 사마중달님에게서 큰 은덕을 입었으며, 그 기대를 걸머지고서 이 성을 지키는 몸일세. 항복이라니, 당치도 않는 소리다." "그렇지만 중과부적 아니겠나. 승산이 없을 것이야. 모처럼 우리 정승님이 온정을 베풀고 계시니 허세부리지 말고 투항하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이네." "자네의 말은 고마우나 사적인 정과 대의는 별개일세. 나의 결심에는 변함이 없으니 돌아가서 제갈량에게 전해주게. 언제든지 공격해 오라고." 학소는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투항을 권고하는 일이 소용없는 것인 줄을 알자, 공명은 즉시 성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촉군은 먼저 긴 사다리를 사용하였다. 소방수가 쓰는 사다리차의 일종으로서, 당시로는 진귀한 과학적인 무기였다. 몸소 성벽 위에 서서 방위전을 지휘하고 있던 학소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촉군이 긴 사다리를 동원해 온 것을 보고,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불화살을 쏘도록 하였다. 나무와 대나무로 엮어 만든 사다리는 불에 약했다. 위로 올라가고 있던 촉군의 병사는 모조리 불에 타 죽었다. 사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자, 공명은 성벽보다 높은 망루를 짜서 거기로부터 성 안쪽으로 활을 빗발같이 쏘아대었다. 이것은 제법 효과가 있었으며,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이 푹푹 쓰러졌다. 그 사이에 공명은 위차라고 부르는 성문 돌파용의 수레를 사용하였다. 그토록 두꺼운 성문도 위차가 내뿜는 커다란 철추에 의해 파괴되었다. 학소는 성문이 파괴된 것을 보자 전군에게 퇴각명령을 내리고, 전에 만들어 두었던 내성으로 도피하였다. 성문을 깨뜨리고 돌입한 촉군은 성 안에 또 하나의 성벽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당시 중국의 성으로서는 내,외벽이 있는 것은 드물었으며, 사전의 정보에서도 이런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
쌍칼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하나의 칼만 보라
"음, 학소란 놈, 대단한 짓을 하는군." 공명은 감탄을 하면서, 이번에는 굴을 파고 밑으로 기어들어가 공격하는 작전을 취했다.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는 안 될 것이라며, 학소는 옆에서 굴을 파고 들어가 공명이 파는 터널을 막아버렸다. 이런 식으로 숨 돌릴 사이도 없는 공방전이 십여 일간 계속되었지만 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사마중달이 이끄는 본부대가 위수의 도하 작전을 강행하여 진창으로 접근하여 왔다. 공명은 진창성 공략을 단념하고 진창 북쪽의 산악지대까지 후퇴하여 위나라의 대군과 마주보며 대치하였다. 진창성의 점령에는 실패했으나, 촉군은 아직도 충분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산과 계곡의 복잡한 지형을 이용하여, 공명은 여기에서 가장 특기로 여기고 있는 '팔진지도'를 폈다. 예전, 백제성에서 오나라 제일의 전술가 육손이 이 '팔진지도'로 고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위나라에서 작전이 가장 능숙하다는 사마중달도 이 희한한 포진의 형태에 경탄해마지 않았다. 그도 역시 이 복잡하기 그지없는 포진과 대치한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이 때에, 공명이 쳤던 진형을 <삼국지연의>에서는 '팔괘의 진'이라고 부르고 있다. 요컨데 여덟 개의 진으로 이루어 지고 있으며, 남이 볼 때는 그 가운데 어느 것이 주진이고 어느 것이 후진인지 모르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공격하는 부대로서는 공격조를 여덟으로 나누자니 병력이 지나치게 분산될 우려가 있으며, 공격 방법이 틀려지면, 반대로 포위되어 섬멸당할 위험도 있는 것이다. 진영은 여덟 개가 있지만, 병력이 군등하게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여덟개의 진영 중에서 어느 것이 주력적인 진영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선결 문제이다. 검술을 수업한 사람이면 경험이 있겠지만, 이도류(二刀流)와 대련을 할 때에는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칼의 움직임을 동등하게 보려고 하며는 패배한다. 일본의 미야모토 무사시가 고안했다고 전해지는 이도류에서는, 왼 손에 짧은 칼을 쥐고 정안(正眼 칼 끝이 상대방의 눈을 향함)의 자세를 취하고, 오른 손에는 긴 칼로 대상단(大上段 칼을 머리 위로 높이 쳐든 모양)의 자세를 취한다. 이것이 이도류의 비법이다. 그런데 대개의 적은 두 개의 칼이 움직이는 것을 균등하게 보려고, 시선을 좌우로 번갈아 보기 때문에 틈새를 보이게 되어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도류와 대항할 때는, 상대방의 취한 정안 자세의 짧은 칼만 보고 있으면 된다. 대상단의 긴 칼을 내리치기 직전에는, 그 순간의 움직임이 반드시 짧은 칼을 쥔 왼 손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상대방으로서는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있게 된다. 긴 시간이 지나면 오른쪽 손이 피로해져서, 결국 이도의 자세가 무너지게 되므로 허점이 생긴다. 그 순간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쳐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도류를 패배시키는 요령이다. 팔진도를 격파하는 방법도 이와 마찬가지의 이치이다. 여덟 개의 진영 중에서 주진을 알아내고 그곳으로 전병력을 투입시켜 공격을 하는 것이 유일한 격파 방법이었다. 작전을 연구한 끝에 사마중달도 이 전술밖에 없다고 깨달았다. 연일 계속하여 정찰을 한 결과, 사마중달은 적진의 진영가운데 특별히 연기가 많이 오르고, 밤이 되면 작은 등불이 밀집되어 있는 진영이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틀림없이 저곳이 적의 본진이다. 공명은 필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렇게 판단한 사마중달은 위나라 군대의 정예군 3만으 선발하고, 몸소 선두에 나서서 단숨에 그 진영으로 돌진하였다. 이때, 사마중달이 여기야말로 촉군의 주력 부대가 잠복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지역이 '호로곡'이라고 불리우는 장소이다. 호로라는 것은 중국에서는 표주박을 가리키는 말이다. 표주박의 모양을 하고 있는 골짜기로서, 출입구는 좁지만 안이 넓어서 대병력을 주둔시키기에는 다시 없는 지형이었다. 호로곡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것은 촉군의 위연장군이었다. 위연은 당시 촉군에서는 가장 무서운 무장으로 지목되고 있었다. 위연은 그 용맹에 어긋나지 않게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결국은 당해내지 못하고 깊은 골짜기로 패주하였다. '위연이 지키고 있었을 정도이니, 이 호로곡은 틀림없이 촉군의 본진일것이다.' 라고 판단한 사마중달은 주의깊게 말을 전진시켰다. 정찰병으로 하여금 주위를 살펴보게 한즉, "주위의 산에는 적이 매복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골짜기 깊은 곳에는 대부대가 집결해 있는 모양입니다." 라는 보고를 받았다. 주변의 산은 쥐죽은 듯이 고요하고, 아직 이른 아침이라서 엷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으나, 그래도 골짜기 깊은 곳에 많은 깃발들이 세워져 있고, 막사들이 밀집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이것이 공명의 본진이로구나! 사마중달은 전군에게 일제히 공격하도록 하는 신호를 보냈다. 곁에 있던 장남인 사마사가 당황하며, "아버님, 골짜기 입구가 막히면 큰일 납니다. 병력의 일부를 남기시지요." "아니다. 적은 대군이다. 지금 병력을 분산시키면 오히려 위험하다." 겨냥하고 있던 적의 진영에 돌입했을 때에야, 사마중달은 비로소 이 진영이 빈 껍질이었음을 일게 되었다. "아차! 적이 안 보인다." 그참에 막료들이 달려와서, "사령관님, 속았습니다. 빨리 돌아가시지요." "알았다. 전군 퇴각!" 그러나 이미 때가 늦어 있었다. 주변의 산에서 일제히 함성이 울렸다. 눈 앞의 산정에는 정승기가 올려지고, 공명은 커다란 목소리로, "자. 골짜기에 불을 붙여라." 산꼭대기로 부터 활활 타는 횃불이 빗발처럼 던져져 내려오고, 호로곡의 좁은 입구는 불길로 차단되었다. 도망갈 길을 잃은 위나라의 군병들은 그저 우왕좌왕 할 뿐이다. 그 중에는 촉군이 쏘는 불화살, 횃불, 폭죽에 맞아 온몸이 불덩어리가 된 병사들도 많았다. 골짜기는 이미 불바다였다. 그 대단한 사마중달도 새파랗게 질려서, "우리들 부자도 여기서 죽는 것인가." 하고 분하다는 듯이 장남인 사마사에게 중얼거렸다. 한편 산정에서 바라보고 있던 공명은 곁에 있는 강유를 돌아보며, "이겼다!" "정승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멋진 작전이었습니다 대단히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강유, 앞으로의 전투에는 칼이나 창마이 아니라 화력이 불가결의 것이 될 것이다. 이 점을 잊지 말라." 공명에게는 이로써 유비가 사망한 후의 고생들이 일시에 날아가 버리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사마중달만 없애면 위나라를 멸망시키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행운의 여신'의 앞머리를 움켜 잡아라
그러나 역사는 위나라 군대의 편을 들고, 촉군에게는 냉정하였다. 그 전날 밤부터 흐려 있었던 하늘은 갑자기 비구름을 몰고와, 이 때에는 심한 폭우를 좁은 골짜기에 퍼부었다. 강우량이 적은 이 지방으로서는 드문 일이었으며, 그야말로 물동이로 퍼다 붓는 듯한 호우였다. 골짜기를 메우고 있던 일면의 불바다는 사라지고, 사마중달의 부자는 목숨만을 겨우 건져 호로곡을 빠져나갔다. 자신도 비에 흠뻑 젖으면서 공명은 맥없이 중얼거렸다. "아! 하늘은 우리의 편이 아니로구나." 진창의 공방전과 호로곡의 전투는 촉군이 단연코 이기고 있던 싸움이다. 특히 공명의 신기한 전략과 교묘한 용병술이 빛나고 있었다. 야구로 비교하자면 동점인 가운데 공명이 이끄는 촉나라 팀이 9회말 노아웃에 만루로 공격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압승을 하고 있던 공명이 막판에 사마중달을 놓친 것은 그가 적절하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승운이 없었다." 라는 것에 틀림이 없다. 단순히 말해서 운이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승부를 겨루는 놀이에는 '운'이라는 요소가 따르기 마련이다. 카드를 할 때 잘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리 명수인 사람이라도 운이 없으면 던지는 카드가 모두 예상과 어긋난다. 반대로 운이 있을 때에는 서투른 사람이라도 크게 이길 수 있다. 전쟁이나 회사의 경영은 단순한 도박과는 다르므로, 운만을 의지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운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도 수긍할 수가 없다. 운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으로, 톱으로서는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서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이라는 자세로 경영 전쟁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운을 불러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인생도 도박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은 언제나 운이 좋은데, 자신만은 언제까지나 불운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일생동안에는 반드시 하늘이 주는 찬스가 있고, 운이 돌아올 때가 있다. 그 찬스를 놓치지 않는 것이 승리와 성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