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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물고기자리... 원문보기 글쓴이: Letme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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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장어의 생활사 국내산 뱀장어는 한국에서 수천km 떨어진 서북 태평양에서 부화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알에서 깬 새끼는 댓닢 모양의 어린 뱀장어인 렙토세팔루스(①)상태로 해류를 따라 바다를 가로질러 강 어귀에 도달한다. 렙토세팔루스에서 변태한 뒤에는 실뱀장어(②)가 돼 보통 2월에서 5월 사이 무리를 지어 강으로 올라온다. 이때 잡아 기른 게 양식 뱀장어다. 성체가 된 뱀장어(③)는 바다로 나가 보통 700만~1200만 개의 알을 낳고 죽는다. |
한 생물이 변해 다른 생물이 되는
것을 화생(化生)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종에 대한 확고한 개념이
확립돼 있지 않았기에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생물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다. 곰이 변해 사람이
되고, 뱀과 닮은 가물치가 뱀으로
변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곤
했다. 발생 과정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뱀장어를 옛사람들이
화생의 범주에서 설명했던 이유다.
뱀장어의 산란습성은 20세기에 들
어서야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1922년 덴마크의 동물학자 요하네스
슈미트는 대서양 인근 뱀장어가
버뮤다 섬 부근 수심 2000m 이상의
깊은 바다에서 산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일본 도쿄대 해양연구소는
한국산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산 뱀장어의 산란장이 마리아나 열도와 필리핀 사이의 서북 태평양 깊은 바다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고 현재 후속 연구가 진행 중이다.
뱀장어는 민물에서 5~12년간 생활하다가 번식 가능한 나이가 되면 수천km나 떨어진 바다를 향해 기나긴
산란 여행을 떠난다. 이때의 뱀장어는 소화기관이 퇴화해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천신만고 끝에 산란장에
도착한 암컷 뱀장어는 바다 속에서 성적으로 급히 성숙해 산란을 마친 뒤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한다.
수컷 또한 정액을 뿌려 수정을 마친 뒤 죽는다.
옛사람들이 뱀장어의 알이나 산란장면을 볼 수 없었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아득히 먼 바다에서 성숙과
산란이 이뤄지니 관찰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가로막힌 순례길 깊은 바다 속에서 부화한 뱀장어는 어미와
전혀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다. 뱀장어의 유생은 무색투명한 모습인데 대나뭇잎처럼 납작하게 생겼다고 해서
댓닢 뱀장어라고 부른다. 이는 깊은 바다에서 해류를 따라 어미의 고향까지 쉽게 이동하기 위해 진화한
모양이다.
오랜 여행 끝에 강 하구에 도착한 댓닢뱀장어는 손가락 길이의 실뱀장어로 탈바꿈한다.
이곳에서 한동안 민물에 적응한 다음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 어두운 밤을 틈타 힘차게 강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다. 새로운 세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뱀장어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다른 수많은 생물에게도 그렇듯 인간의 간섭이
자연스러운 생활사를 망가뜨려 놓았기 때문이다. 뱀장어 양식은 치어를 잡아 기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실뱀장어가 몰려오는 시기가 되면 어선들이 하나둘 강어귀로 모여들어 최후의 한 마리까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촘촘한 그물을 늘어뜨린다. 그물에 잡힌 실뱀장어는 물고기를 가둬 기르는 시설인 축양장으로 옮겨지고
장어집으로 팔려나갈 때까지 좁은 수조 안에서 사료를 먹으며 살아간다.
다행히 어부의 그물을 피했다 하더라도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는다. 거대한 방조제가 강 입구를 가로막고,
보와 댐이 물길을 동강내고 있기 때문이다. 뱀장어들이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자연 하천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셈이다. 인류가 존재하기도 전부터 오랫동안 반복돼 온 뱀장어들의 순례를 막을 권리가
과연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이태원 / 서울세화고 생물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