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어느 신부님의 추모일을 생각하다가, 예전에 읽은 그분 또래 신부님의 글을 구해 읽었다.
두 분은 1950년 한국전쟁 중에 순교하셨다.
1929년 7월, 당시 부제였던 윤달용 모세(1890-1950) 신부님(1930년 사제 서품)은 <성공회보>에 글을 올렸다.
<일꾼이 참으로 적은가> 성공회 선교를 위한 성직자 양성에 관한 고민과 일갈이었다.
그 전문을 연세대학교 Se Hoon Kim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올려,
나 자신과 오늘날 신학교, 성직자 사회를 돌아보고자 한다. (맞춤법과 문단 부분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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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꾼이 참으로 적은가>, 조선성공회보(139호 / 1929년 7월)
윤달용 모세
6월 회보에 나는 말하기를 수습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다는 제목으로서 하였었다. 그 제목 중에 교회의 일꾼은 신진청년이 더욱 필요하다는 의미도 말하였다.
이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의 일꾼이 되려 하는 사람이 참으로 적은가 그것을 좀 생각하여 보려 한다. 나의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서는 교회의 일꾼이 되어보려는 청년이 적은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신학원에 입학하여 보려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아니한 것을 보고 이와 같이 말한다. 교회의 일꾼이 되려면 먼저 신학원에 입학하여 상당한 기한 내에서 수련을 받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은 지금의 제도로서는 피하지 못할 사실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일꾼이 되려할 때에 다 신학원에 먼저 지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신학원에 지원하는 원인을 살펴보면 대개는 아래에 기록함과 같은 사실이 있는 것을 알겠다.
1. 중등학교에서 중도퇴학하고 다시 학업을 계속할 가망이 없는 때
2. 중등학교에 다니다가 학력이 능히 그 학과를 담당할만한 능력이 없는 줄로 안 때
3.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상당한 곳에 취직이 되지 못하여 놀고 있을 형편에 있는 때
4.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불행히 실패하여 놀고 있게 될 때
5. 전문 혹은 대학에 입학시험을 보았다가 합격이 되지 못한 때
위에 말한 것은 나의 본 바 일년간 과거의 경험에서 말한 것이요, 추측상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이를 생각하면, 신진청년 중에서도 신학원에 입학하여 수련을 받은 후에 교회의 일꾼이 되어 보겠다는 사람이 적다고 보고싶지 아니하다.
그러나 이러한 박약한 정신과 사상을 가진 사람은 자기는 일꾼이 되어보려고 하되 교회에서 요구하지 아니한다. 신학원은 어떤 사정에 인하여 불행한 경우에 빠진 사람을 구제하기 위하여 수용하는 곳이 아닌 것은 누구나 다 잘 아는 바라 하겠다. 만일, 이러한 사정으로 인하여 들어오고자 한다 하면 이는 부르심을 깨닫고 그 말씀에 응하는 자라고 볼 수가 도저히 없다고 말하겠다.
천주의 부르심을 깨닫고 그 말씀에 응하려 하는 자의 태도는 그러한 의지가 박약한 자에게는 나타내어 보이지 아니한다. 교회의 일을 보려 하는 동기 그것이 근본적으로 달라야 하겠다. 위에 말한 자와 같은 정신을 가진 자는 교회의 물질적 도움을 기대하는 마음이 머리 가운데에 먼저 일어났을 것이다. 교회에서 요구하는 바 일꾼이라 함은 그런 정신을 가진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조선사회의 상태를 보고 오 주께서 이 민중을 죄악 가운데에서 구원하시려 애쓰시는 것을 깨달은 자라야 하겠다. 그리고 이를 구원하시려 나를 부르시는 줄로 그 소리를 확실히 들은 자라야 하겠다. 이것을 철저히 깨달은 자는 위 선교회의 일꾼으로서 서 주시오 할 때의 태도 그것부터 현저히 다를 것이다.
자기의 학식을 버리는 자, 자기의 지위를 버리는 자 자기의 재산을 버리는 자, 자기의 영화를 버리는 자, 요컨대 자기의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무엇 하나라도 진토와 같이 여기며 전신과 같이 버리고 오는 자를 기대한다. 자기의 소유를 희생으로 제공하고 나아오려 하는 사람이야말로 교회의 일꾼으로 받을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정신이 전신에 충일한 자이면 신학원의 입학이 그다지 필요할 것도 없겠다. 성베드로는 성바오로와 같은 학자가 아니로되 그의 행하신바 일생의 활동이 종도 중 수위에 거할만하지 아니하였는가. 이런 정신이 있는 자이면 옛적이나 이제를 불문하고 학문 그것이 교역자됨의 제일 요건이 되지 아니할 것이다.
결국은 인물 그것에 있다. 물질적 방면으로만 달아나던 유다스의 일을 회고하면 이제도 역시 천국의 사업에 종사하려 하는 자의 거울이 된다고 말하겠다. 내가 이제 붓을 들어 몇 마디를 쓴 것은 장래 신학원에 입학하려 하실 분의 결심과 주의할 점을 말함이요, 현재의 일꾼의 태도와 정신을 비판함이 아닌 것을 양해하시면 다행이라 하고 붓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