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7월 4일, 마침 미국 건립 200주년 Bicentenial Year여서 학생 대표로 백 악관 잔디밭에 초대받아 Ford 대통령의 연설을 들었고, 조지타운 대학 대강당 에서는 록펠러 부통령의 연설을 앞 줄에서 듣고 악수하며 몇 마디 말을 나눈 때도 있었다.
링컨의 'of the people for the people by the people'은 물론, '국가가 무얼 해줄 까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까를 물어라 Ask not what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케네디의 이 한 구절도 있지만, 그 후의 지미 카터, 로날드 레이건, 클린톤, 부시 부자 父子, 오바마의 연설도 미국이 세계 최강의 나라임을 증명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딱히 대통령 레벨이 아니라도 어느 분야에서나 가령 학술, 과학, 영화 같은 예술 분야에서도 헨리 폰다, 캐서리 햅번, 제인 폰다 나 코미디언들은 언제 어디서고 마이크만 갖다대면 쉬운 말로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철학이 유머를 가미하여 쏟 아져 감탄을 했다. 스티브 잡스의 'Stay hungry, stay foolish'도 떠오른다.
귀국하여 역대 우리 대통령의 연설이나 일반 연설을 들을 때면 그 생각이 더 났 다.
그래서 2005년 한일정상 회담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의 스피치 라이터들을 만나 이제는 문화외교의 시대이다. 스피치에 시 한 줄을 넣어야 하는 이유를 몇 시간이나 말해 주었지만 3명의 스피치 라이터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돌아갔다. 청와대의 회담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한마디를 안해 주었는데도 우리 쪽 라이 터들에게 내가 골라 준 한 줄의 시와 그 정신을 회담과 스피치에서 말했다.
신문에서 9조원, 전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은 미국 억만장자 척 피니를 향하여 그간 자신의 큰 기부에 영향을 받았던 워런 버핏이 '그가 평생 이룬 업적은 내 가 죽고나서도 12년이 더 걸릴 정도로 위대하다'는 것을 보고, 그리고 돌아간 아버지에 대하여 빌 게이츠가 '그는 내가 되려는 전부이다'라는 한마디에 내가 미국에서 들어왔던 연설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살던 워싱톤에 왕복을 할 제면 도중에 한 도시를 들리기도 하는데 한 번은 시애 틀을 택했다. 스타벅스의 허름한 원조 카페가 볼거리이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 는 밤'도 있지만 빌 게이츠의 흔적을 보고 싶어서였다. 그가 매 해 세계 1위 부 호로 뽑힌다고 하나 그의 몇 몇 스토리가 마음을 더 끌었다.
십대에 반항아로 말을 안들어 아버지가 아들 얼굴에 물을 확 끼얹자 'Thanks for the shower' 하고는 집을 나가버렸고 하버드에 들어가서는 퇴학을 하겠다고 했 다. 엄마가 학장을 찾아가 아들을 설득해 달라고 간청하자 '그가 하려는 사업에 나도 투자하고 싶다'고 했던 건 유명한 이야기다.
애가 탔던 어머니가 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돌아갔고 그 아들은 어머니를 기리며 시애틀 도시의 길에 어머니 이름을 붙쳤다.
정부의 끈질긴 초빙으로 나는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워싱톤에서 귀국했고 몇 해 후 부시 대통령 부자가 다닌 보스톤 앤도버의 필립스 아카데미를 들어간 나의 아들은 '학교라는 시스템이 싫다'며 싱글맘의 애간장을 태운 시기였다.
그렇게 찾아간 시애틀 빌 게이츠 저택의 대문 앞을 서성였었다.
성공한 변호사인 아버지가 아들이 차고에 사업을 차리는데 재정으로 도와준 적이 없는데도 MS는 승승장구하여 세계적 거부에, 거대한 자선단체를 운용한 다는 걸 해외토픽으로 익히 보았으나, 그보다 사춘기 시절의 애타한 그 어머니 심정을 생각했었다.
세월이 다시 흘러 이제 95세 그의 아버지가 돌아갔고 아들의 멘트에는 이런 구 절이 있다. '아버지는 자신이 빌 게이츠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멋진 경험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실은 내가 평생에 걸쳐 해온 모든 것은 내 아버지처럼 되 기 위한 것이었다'
폭풍의 시대가 지나갔고 나의 아들 Andrew는 뉴욕 변호사로 굴지의 글로벌 로 펌 K&L Gates에서 활동하고 있다. 워낙은 K&L로 유명한데 빌 게이츠의 아버지 Gates 로펌과 합병하여 그 이름이 되었다고 아들에게 들었다.
아버지를 잃음에 감동의 그 멘트를 들으며 남은 사람의 심정도 생각하게 되지 만, 그런 연설이나 말이라는 것이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이나 일생에 걸친 깨우침이었구나~ 를 새삼 일깨우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