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단풍을 보고 저녁에 낙엽을 줍네
[풀소리의 한시산책]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산영루(山映樓) 외
가을날/ 문태준
아침에 단풍을 마주 보고 저녁에 낙엽을 줍네
오늘은 백옥세탁소에 들려 맡겨둔 와이셔츠를 찾아온 일 밖에 한 일이 없네
그러는 틈에 나무도 하늘도 바뀌었네
정말 단풍철은 짧은 것 같습니다. 아침에 단풍을 보고 저녁에 낙엽을 줍고, 어영부영하는 동안에 나무도 하늘도 바뀌니까요. 제 글도 문태준의 시를 닮은 것 같습니다. 단풍이 한창인 철에 맞춰 글을 보내려고 했는데, 단풍이 저무는 철이 돼서야 원고를 탈고하니 말입니다.
저는 가을 단풍이 한창일 때와 봄날 봄꽃이 한창일 땐 우울한 일이 있다가도 어쩔 수 없이 행복하기만 합니다. 봄꽃이 한창일 땐 꽃그늘에서 술잔에 꽃을 띄우고, 가을 단풍이 한창일 땐 북한산으로, 남산으로, 고궁으로 단풍놀이를 갑니다. 내장산이나 주왕산처럼 멀리 갈 수도 있겠지만, 가까운 북한산도 제법 단풍이 좋으니 동네에서 전철 타고 버스 타고, 발품을 조금만 팔면 너무나 행복하게 단풍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단풍철 북한산 어딜 가도 좋지만, 딱 한 곳을 꼽으라면 저는 수문(水門) 터나 대서문(大西門)으로 올라가면 있는 최근에 복원된 산영루와 옆 청하동(靑霞洞) 부왕사(扶旺寺) 계곡을 꼽습니다.
날아갈 듯한 지붕을 한 산영루(山映樓)는 누각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넓은 반석과 폭포처럼 흐르는 계류가 누각 못지않게 너무나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청하동 부왕사 계곡은 이곳을 방문한 추사(秋史) 선생이 산 구경하기 제일 좋은 곳이라고 추켜올릴 정도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북한산 자체가 바위산이어서 매우 웅장하고 거친데, 이곳 부왕사 계곡은 오밀조밀하고 섬세합니다. 그리고 단풍나무가 빼곡히 있어 단풍철에는 그야말로 절경입니다. 더욱이 이곳은 산 중간에 있어 오르기도 힘들지 않습니다.
2017. 10. 22 부왕사 계곡
오늘 보고자 하는 한시(漢詩)는 추사(秋史) 선생이 단풍철에 산영루와 부왕사에 와 쓴 시(詩)입니다. 먼저 산영루 시를 볼까요.
산영루(山映樓)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나무마다 붉디붉게 단풍 든 숲 속에
돌아온 계류 다시 산허리를 감도네
아득한 종소리 비에 잠겨 쓸쓸하고
그윽한 염불소리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오래된 바위 전생을 기억하게 하고
깊은 산은 종일토록 둘러보게 하네
어스름 비안개 거리낌 없이 머무르고
띠 닮은 오솔길 나를 보며 멀어지네
一一紅林裏(일일홍림리)
廻溪復截巒(회계부절만)
遙鍾沈雨寂(요종침우적)
幽唄入雲寒(유패입운한)
石老前生憶(석로전생억)
山深盡日看(산심진일간)
煙嵐無障住(연람무장주)
線路向人寬(선로향인관)
2017. 10. 22 북한산 산영루
추사 선생이 어떤 분인지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글씨뿐만 아니라 그림과 시(詩), 문(文), 역사(歷史) 등 그 천재적 해박함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성리학(性理學)보다는 실학(實學)인 고증학(考證學)을 하고, 불교(佛敎)에 심취하였기에 그의 시는 다른 유학자들의 시에 비해 자유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물론 저의 주관적인 평가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졸기(卒記)’라는 게 있습니다. 유명 인사가 죽었을 때 사관(史官)이 그 인물에 대한 평가를 적어놓은 것입니다. 물론 뒤에 실록을 편찬하면서 가감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입니다. 사관이란 당대 최고의 젊은 지성들이 맡는 자리이니 졸기는 매우 비판적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인물에 대해서도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럼 추사 선생의 졸기를 보면서 추사 선생에 대하여 당대 젊은 지성들은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볼까요.
전 참판(參判) 김정희(金正喜)가 졸(卒)하였다. 김정희는 이조 판서 김노경(金魯敬)의 아들로서 총명(聰明)하고 기억력이 투철하여 여러 가지 서적을 널리 읽었으며, 금석문(金石文)과 도사(圖史)에 깊이 통달하여 초서(草書)·해서(楷書)·전서(篆書)·예서(隷書)에 있어서 참다운 경지(境地)를 신기하게 깨달았었다. 때로는 혹시 거리낌 없는 바를 행했으나, 사람들이 자황(雌黃, 비판)하지 못하였다. 그의 중제(仲弟) 김명희(金命喜)와 더불어 훈지(壎篪, 형제가 화목함)처럼 서로 화답하여 울연(蔚然)히 당세(當世)의 대가(大家)가 되었다. 조세(早歲)에는 영명(英名)을 드날렸으나, 중간에 가화(家禍)를 만나서 남쪽으로 귀양가고 북쪽으로 귀양가서 온갖 풍상(風霜)을 다 겪었으니, 세상에 쓰이고 혹은 버림을 받으며 나아가고 또는 물러갔음을 세상에서 간혹 송(宋)나라의 소식(蘇軾)에게 견주기도 하였다.
다시 시(詩)를 볼까요.
이 시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싶은 부분이 참 많습니다. 제가 이 시에 대해 해박하게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저보다 학문이 더 깊으신 분의 지적을 바라는 마음에서 제가 왜 이렇게 해석했는지를 알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독자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기에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뒤로 하고, 몇 구절만 얘기하겠습니다.
한시(漢詩)는 대구(對句)를 적절히 사용한다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이 시도 마찬가지지요.
遙鍾沈雨寂(요종침우적) 아득한 종소리 비에 잠겨 쓸쓸하고
幽唄入雲寒(유패입운한) 그윽한 염불소리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종소리는 비에 잠기고, 염불소리는 구름 속으로 들어갑니다. 멋있죠. 찰 ‘한(寒)’자를 어떻게 번역할까 며칠을 고심했는데, ‘쓸쓸하다’ ‘그치다’ 등의 뜻도 있으니, ‘들 入(입)’자의 의미를 살리려 약간 의역해서 ‘사라지다’로 번역을 했습니다.
煙嵐無障住(연람무장주) 어스름 비안개 거리낌 없이 머무르고
線路向人寬(선로향인관) 띠 닮은 오솔길 나를 보며 멀어지네
이 부분도 참 해석하기 어려웠습니다. ‘煙嵐(연람)’은 땅거미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도무지 해석을 할 수 없었습니다. 산에 비가 내린 뒤에는 안개가 끼기도 합니다. 그 사이 안개처럼 작은 입자의 비가 흩날리기도 하는데 순수 우리말로 ‘이내’라고 합니다. ‘煙(연)’은 바로 이 ‘이내’를 뜻하기도 하지요. 요즈음은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 외에는 ‘이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죠. 그래서 저는 ‘비안개’라고 풀어서 썼습니다. 물론 운율을 맞추려고 의도한 것도 있고요.
‘向人寬(향인관)’도 며칠을 고민하게 한 부분입니다. 직역을 하면 ‘나를 향해 관대하다’ 정도인데, 뭔 뜻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관대할 ‘관(寬)’자는 ‘멀어지다’라는 뜻도 있음을 알고, 저는 ‘머무를 주(住)’와 대비해서 ‘멀어질 관(寬)’으로 해석해보았습니다.
추사 선생이 산영루에 와 경치가 좋은 곳이니 시회(詩會)를 열고, 술도 한잔 들었겠죠. 그리고는 아마도 이곳의 중심 사찰로 근처에 있는 중흥사(重興寺)에서 묵었나 봅니다. 중흥사에서 쓴 시도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
산영루에 오기 전에 들렀는지, 온 다음에 들렀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부왕사(扶旺寺)에도 들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곳에서 지은 시 한 수를 같이 보겠습니다. 특히, 제가 앞에서 단풍 구경하기 참 좋은 곳으로 부왕사계곡을 추천하였으니, 가을 단풍을 생각하시면서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부왕사(扶旺寺)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산 구경하기 어디가 좋은고 하면
부왕사 오래된 절간이 거기라네
해 떨어져 노을 봉우리 물들여도
단풍 빛에 골짜기 어둡지 않다네
풍경소리는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새들도 그윽한 정취 함께 즐기네
바라볼수록 모두 묘하기만 하니
신령스런 풍광 극락인 듯하다네
看山何處好(간산하처호)
扶旺古禪林(부왕고선림)
日落峯如染(일락봉여염)
楓明洞不陰(풍명동불음)
鍾魚來遠近(종어래원근)
禽鳥共幽深(금조공유심)
漸覺頭頭妙(점각두두묘)
靈區愜道心(령구협도심)
2017. 10. 22 부왕사지에서 바라본 삼각산(북한산) 연봉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서리 맞은 단풍잎이 2월의 꽃보다 붉다(霜葉紅於二月花, 상엽홍어이월화)’고 했나요?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은, 초가을 음울(陰鬱)에 빠지곤 하는 저조차도 들떠서 산천을 헤매게 할 정도로 황홀한 풍경입니다
단풍은 설악산 대청봉으로부터 내려와서 우리 주변에선 북한산 꼭대기에서 천천히 내려와, 남산을 거쳐 고궁(古宮)에서 마지막으로 집니다. 설악산이나 북한산 꼭대기로 단풍 마중을 가지 않더라도, 산영루와 부왕사계곡에서 단풍 구경을 하시라고 권하고 싶었습니다. 이미 철이 지났지만 올해 지는 단풍이 아쉬우면 짬을 내어 고궁이라도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그곳엔 마지막 지는 가을의 흔적이 조금은 남아 있을 것 같네요. 다시 내년의 단풍을 기대하면서, 저물고 있는 가을을 ‘치어다 보며’, 김영랑의 시(詩)로 이번 한시산책을 마무리합니다.
오메 단풍 들것네
– 김영랑
“오메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라와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 보며
“오메 단풍 들것네”
필자소개
최경순
민주노총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과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에서 일했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공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