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淳昌)을 아시나요?/ 전성훈
“순창이라는 지명을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순창이 전라남북도 어디 쯤 있는지 아세요?” 순창이라는 지명을 듣자 도무지 그 이름이 생소하여 어디에 있는지 도저히 가늠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떠오른 단어가 순창고추장이다. 아~아! 고추장으로 유명한 그 순창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도봉문화원 2016년 병인년 첫 역사문화 탐방에 따라나섰다.
봄이 오는 길목에 떠나는 역사 문화 탐방, 전라남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전라북도 끝자락 순창, 설레는 마음을 안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침나절에는 겨울의 잔재가 떠나가기 싫은 듯 용틀임을 하고 있어서 날씨가 쌀쌀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햇볕이 그리운 듯 추위에 떨고 서 있는 모습이 을씨년스러웠다. 버스가 서울을 벗어날 때까지 출근길과 겹쳐서 길이 엄청나게 막혔다. 버스가 신나게 달리지 못하고 천천히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에 가져간 아침 신문을 대충 훑어보았다.
조선 성종 임금 때 대학자였던 서거정이 ‘귀래정기(歸來亭記)’에서 ‘순창을 호남의 승지로 즐길 만한 산수와 기름진 토지가 있고 많은 새와 물고기가 있다’라고 읊었듯이 순창은 전국 십승지지(十承之地)의 한 곳으로 알려졌다. [순창군지]는 ‘순창’의 지형이 양(洋)의 모양을 하고 있으니, 양은 순박하므로 창성한다는 뜻에서 온 말이라고 설명한다. 예로부터 순창 사람은 어느 곳에 가서 살아도 반드시 순창으로 돌아오며 살아서 못 돌아오면 죽어서라도 돌아온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순창은 가인 김병로 선생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을 지내셨던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 선생은 일제 침탈 시대 창동에서 한동안 사시면서 독립운동에 자금을 지원하셨다. 그 인연으로 도봉구에는 가인초등학교, 가인지하차도, 가인 김병로 길이 있게 되었으니, 도봉구는 가인 선생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바로 그 가인 선생의 생가가 순창에 있다. 첫 탐방은 낙덕정(樂德亭)인데 덕정은 김병로 선생의 15대 선조로 문묘에 배향된 유일한 호남 선비인 하서(河西) 김인후 (金麟厚)선생이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후학을 기르며 은거하던 곳이다. 문화해설사가 순창의 유래와 인물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 해주었다. 설명 중에 순창을 둘러싸고 있는 강천산과 회문산 이름이 나오자, 그제야 5-6년 전 순창 강천산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배롱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해 여름 순창과 담양 일원을 찾아갔었다.
회문산이란 이름만 들어도 서럽고 애달픈 마음이 드는 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남부군’의 주 무대였던 회문산, 회문산은 지리산과 함께 현대 우리 역사의 슬픈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곳이다. 타의에 의해 강제로 남과 북이 갈라지고 6.25 동족상잔의 처참한 전쟁을 겪은 우리 민족. 한 민족끼리 서로 총부리를 맞대고 싸움을 하며 서로를 없애야 할 원수로 알고 죽음으로 몰고 갔던 전쟁의 참담하고 참혹한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었던 회문산의 빨치산들. 이제는 그들도 나와 같은 한 뿌리의 동포임을 느끼며 이 전쟁에서 죽은 남과 북의 모든 영혼들에게 잠시나마 위로의 기도를 올렸다. 회문산 ‘만일사’에는 조선왕조 창업자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 그리고 고추장에 얽힌 전설이 있다. 이성계가 먹었다는 고추장은 된장에 후추를 넣어 만든 고추장으로 요즈음 우리가 먹는 고추장과는 다른 모양이라고 한다.
된장을 넣지 않고 순창 고추장에 두부와 호박을 송송 썰어 넣고 끊인 호박고추장찌게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담백하면서도 맵지도 않고 그렇다고 고추장 냄새도 그다지 나지 않아 별미다. 뱃속을 든든하게 채우고 나니 나른한 기운이 찾아들었다. 하품을 한두 번 하고 나서 잰걸음에 음식점 뒷산에 있는 귀래정(歸來亭)에 올랐다.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조선 왕조 7대 왕으로 오르자 신숙주의 아우 신말주(申末舟)가 벼슬을 물러나 처가인 순창으로 낙향하여 귀래정이란 정자를 지었다. 옛 선비들 중에는 자연의 멋과 아름다움 속에 지조를 지키며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았던 분들이 많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분들을 만나기도 그런 분이 계시다는 소식 듣기도 어렵다. 그 만큼 살기가 피폐하고 각박해진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멈출 줄 모르는 욕심이 끝없이 분출되는 욕망의 시대가 쫙 펼쳐진 것인지 모르겠다.
귀래정을 뒤로 하고 섬진강변을 따라 구암정(龜岩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암정 가는 둑길에는 배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여름에 되면 배롱나무는 아름다운 고혹스런 자태를 뽐낼 것이다. 둑길 옆 밭에는 매화나무가 벌써 자그마한 꽃봉오리를 맺고 있었다. 봄의 전령 매화는 흐드러지게 봄 향기를 전하려는 자태를 보이며 하루 빨리 그 날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봄날의 따사로운 햇볕을 쬐인 수줍은 처녀 같은 섬진강은 반짝반짝 찬란한 은빛을 내면서 기나긴 겨울의 아픔과 설움을 하늘로 훨훨 날려 보내고 있었다. 둑길 아래 강변 쪽에는 여기저기 쑥이 쑥스러운 몸짓으로 날 보러오세요! 하고 유혹의 손길을 내밀고 있었다. 순창의 봄은 버리고 비우고 다시 태어나는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자연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도 그렇다. 거센 세파에 제 한 몸을 비우고 비워 한 시대를 건너 후세에 그 말씀과 행실을 전하는 높은 기상과 뜻으로 새롭게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2016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