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완치 후 더 깊이 있는 찬양을 하는 박종로 장로 ©박종호 SNS 한국 복음성가의 대부라고 불리는 성악가 박종호 장로는 ‘하나님의 은혜’, ‘시편23편’ 등 수많은 찬양으로 큰 울림과 감동을 주어왔다. 그가 2016년 간경화와 간암을 극복했던 간증은 유튜브 영상으로 전해지며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 은혜를 주고 있다.
박종호 장로는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와 고등학교 및 서울대 성악과 동기로 대학 시절 세계적인 테너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을 가기 한 달 전, 하나님을 만났다. 성악의 길을 포기하고 복음성가 가수가 되기로 한 것이다. 당시 박종호는 오페라나 세상 음악은 길어봐야 1백 년이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은 영원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고작 1백 년짜리에 내 삶을 걸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이 세상의 어떤 음악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때부터 박종호 장로는 세계적인 성악가로서의 길을 버리고 찬양사역자로 30년을 살아왔다. 그가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그의 지도교수는 박종호 장로에게 미쳤다고 하며 서울대가 나은 세계적인 성악가인데 왜 그만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박 장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외에 모든 것이 배설물처럼 여겨졌다고 한다. 오페라, 성악이 다 의미 없고 오직 하나님만을 노래하고 싶었다. 생명을 노래하고 싶었다. 그는 당시 오백만 원, 천만 원으로 앨범을 만들 때 미국에서 몇억을 빚을 내서 앨범을 녹음하며 세상 음악보다 뛰어난 찬양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는 집안에서도 아버지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불교신도 회장이셨던 아버지께 “아버지 저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신학교 가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미쳤다며 집을 나가라고 해서 그날로 집을 나왔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리 만주에서부터 예수님을 믿어서 아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줬다.
박 장로는 영원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까 1백 년도 살지 못할 인생을 위해서 노래하겠냐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음대 교수들과 그의 친구들은 박종호를 부러워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면서 또한 많은 이들이 알아주는 유명인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와 대학 동기였던 조수미 씨는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을 보며 아쉬움이 생기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박 장로는 부러운 것은 없었는데 다른 것이 그를 더 힘들게 했다고 말했다. 휘트니 휴스턴 프로듀서, 디즈니영화 음악 감독들하고 찬양을 제작하고 그러니까 유명한 일간지와 인터뷰 할 기회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묻는 질문 중에 “잘 나갈 수 있었는데 어쩌다가 복음성가 가수가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이 자신을 많이 힘들게 했다고 한다. ‘그래 내가 망했다. 예수로 망했다.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이 영향력이 있구나’라는 갈등이 생겨서 힘들었다고 한다. 찬양할 때는 행복한데 이것을 이해 못 해줄 때 관계 속에서 힘들었던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만여 명과 함께 어떻게 그렇게 큰 집회를 열었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가시나무새로 유명한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씨와 ‘숲’이라는 콘서트에 갔는데 너무 화려한 공연에 많이 울었다. 공연에 관한 연구를 위해 작심하고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보았던 세상 공연을 보면서도 너무나 초라한 기독교 공연과 비교되어 많이 울었다고 한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세상보다 더 잘 할 수 있는데, 왜 즐길 수 있고 자유할 수 있는 문화가 없을까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는 그가 만난 하나님이 얼마나 멋있는 분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93년부터 그때 당시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공연장에서 찬양 콘서트를 시작했다. 전세가가 1천만 원일 그 때에 8천만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콘서트를 열었다. 1,700석이 꽉 찼지만 4,600만 원의 손해가 났다. 화려하지만 힘든 길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2016년 위기가 찾아왔다. 간경화로 거의 간 기능을 상실하고 암까지 발견된 것이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박종호 장로는 하나님께 따지듯 물었다. “하나님 내가 왜 이래야 합니까?”라는 원망이 생겼고, 그는 당시 어디에도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 같았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의사들은 박종호 장로에게 시한부 인생도 아닌 다 끝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깨닫게 된 것이지만 이 시련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결국 두 딸이 간을 주기로 했다. 남들보다 몸이 큰 만큼 간도 커서 간을 제공하는 자에게서 1kg의 간 이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1kg 이나 되는 간을 이식해준 본인은 정작 살아남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딸 두 명의 간을 떼어 붙여서 이식하기로 결정했다. 살아있는 두 사람의 간을 붙여서 이식하는 수술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가족임에도 간을 주는 게 무서워서 도망을 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왜냐하면 간을 이식하는 경우 기증자가 죽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막내딸의 간이 다행히 커서 막내딸의 간 만으로도 수술이 이루어졌다. 막내딸은 죽을까 두려웠던 순간을 참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가 기증하지 않으면 아빠가 죽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박종호 장로는 다시 살기 위해 16시간이라는 대수술을, 그리고 간을 제공해야 하는 막내딸은 12시간이라는 긴 수술을 받아야 했다. 결국 수술은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적으로 끝났다. 박종호는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자식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게 부모의 마음인데 자기가 살겠다고 딸을 잡아먹는 아비의 심정은 매우 참담했습니다.” 심지어 박 장로는 수술 후에 진통제 한 번 맞지 않았는데 막내딸은 엄청난 분량의 진통제를 맞아야 했을 정도로 딸의 수술 후 고통은 매우 컸다고 한다.
나중에 다 회복되고 나서 미국에 살고 있는 막내딸에게 문자가 왔다. “아빠가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요.” 박종호는 무균실에 누워있으면서 “나 때문에 왜 내 자식이 죽어야 하는가?”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게 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라는 심정이 절절히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박종호 장로는 수술비가 없어서 그를 위한 모금 운동까지 일어났었다. 음반의 큰 성공으로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알려졌지만, 박종호 장로는 당시 대부분의 수익금을 선교비로 보냈다. 어렵게 선교하는 이들을 돕고, 특히 예수전도단 선교사들이 해마다 건강검진을 하도록 도왔다. 매출에서 20%를 떼서 보내고 거기에 세금과 경비를 제하면 오히려 빚을 지기도 했다. 16년 동안 20억 원에 달하는 돈을 선교비로 보냈다고 한다. 예수전도단은 박종호 장로가 수술비가 없다는 거을 알고 2,500만 원을 모금해서 주기도 했다.
박종호 장로는 수술을 받으며 경험한 놀라운 일도 털어놨다. 수술이 끝나고 자신의 방 전체에 기도의 향이 휩싸이고 있는 것이 느껴진 것이다. 그 순간 자신이 세웠던 고아원의 아이들, 자신이 도왔던 선교사들이 기도하는 것이 보였고, 수많은 기도가 자신을 감싸서 자신을 만지고 있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박종호 장로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큰 공연보다는 아픈 이들을 위해서, 또 자신의 노래를 듣고 행복할 수 있는 자리라면 그런 자리에서 노래하고 싶다고 했다.
* C채널의 유튜브 영상을 참고해 정리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