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향해 걷습니다.
그런데 걷다 보니 「옥구읍성 450미터」라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잖아요. 여기까지 온 김에 읍성 구경을 하고 가기로 마음먹습니다.
지금은 「상평」이라는 마을이름으로 남아있지만 한참동안 향교골로 불렸겠습니다.
읍성은 고창읍성처럼 성벽이 잘 남아있는 것은 아니고, 자연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토성(土城)에 약간의 인공 성벽이 있는 정도이지만 옛 성내의 시가지 구도가 유지되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 합니다.
둥근 형태로 산이 둘러치고 있고 남쪽만 살짝 낮은, 그야말로 천혜의 읍성 지형이로군요.
그런데 남문이 있었다는 마을 입구는, 군산화물선 철로가 지나면서 성문이 없어진 것은 물론이고 철롯길(그나마 지금은 폐선된)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일제의 의도된 악의로 보입니다. 굳이 이렇게 지나지 않아도 되는 선로를 일부러 이 읍성 입구를 통과하게 한 것은 가장 잘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성을 능멸하려는 설계였던 것이죠.
지금 그 자리는 철로둑길 아래에 「상평이용원」이 있네요.
마음씨 좋은 이발소 아저씨가 흔쾌히 이발관 안팎을 사진 찍도록 허용해 줍니다.
들어서자마자 훅 끼치는 「바리깡」(이발기계)의 기름 냄새. 옛 이발소 의자, 손님이 앉아 기다리던 자리, 그렇죠, 머리를 감으려면 세면대가 있어야 하고, 물을 덥히는 연탄난로가 있어야지요.
난로의 온기가 종일 바람 맞으며 다니던 몸을 따뜻하게 감싸 줍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세면대가 '시멘트로 짓고 타일로 마감한 것'이 아니라 요즘의 씽크로 바뀐 것과, 면도칼을 쓱쓱 문질러 갈던 소가죽 벨트가 보이지 않는 것 정도 입니다.
온갖 소도구들이 예 그대로여서 갑자기 타임 슬립, 어릴 때 이발소 가는 것을 극구 싫어하던 기억 속으로 쑥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손님이 없어 문 닫을 판이라는 노(老)이발사에게 그래도 오래오래 계속 해달라고 부탁하고.
마을 안길은 2차선으로 노랑색 중앙선까지 그어져 있습니다!
넓은 마을안길을 여유 있게 걸어 중심지로 들어가면 상평초등학교가 넓은 부지에 자리 잡고 있지만 이미 폐교. 바로 이 자리가 옛 관아였을 것 같습니다. 옥구현청이 있었던 큰 마을, 옥구현의 중심지였다는 증거입니다.
마을의 가장 뒤쪽이자 가장 높은 곳에 옥구향교와 옥산서원이 함께 있습니다.
수많은 지방관장들의 선정비가 향교 앞마당에 즐비하게 서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객사 자리도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누군가가 차지하여 훼손하거나 하지 않고 말이죠.
꽤 많은 유물이 나왔다고는 하는데 전체를 복원하는 것은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듯.
성벽을 찾아보는 일은 하지 못합니다. 이젠 돌아가야 할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마을을 빠져나가 신작로로 나섭니다. ‘신흥마을 버스정류소’가 눈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다소 높은 이곳에서 내려다보니 거대한 수문공사가 한창인 대수로 언저리가 또 지척에 보이는군요. 그 자리도 매우 복잡하게 얽힌 주요 포스트 중 하나입니다.
카카오맵으로 보니 7백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못 말릴 극성(?)을 어쩌지 못하고 또 달려갑니다.
찾아간 현장은 도로와 아주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아까부터 몇 번이나 겹치고 교차하고 함께 오던 그 ‘폐수처리하천’이 여기까지 와서 대수로와 또 교차하고 있었군요.
공사현장은 폐수천의 둑쌓기 공사의 마지막 구간이어서 매우 혼란스럽고 정신없습니다.
원래 일제 때 지은 큰 수문 두 개가 기역자로 꺾인 형태로 서 있어서, 대수로의 물과 폐수하천의 물을 분리하여 흘려보내는 구조였던 듯합니다. 그렇다면 분명 두 물이 섞이지 않도록 통과시키는 하저 암거가 있을텐데 어두워서 잘 안 보입니다.
그보다도, 이미 커다란 수문 두 개는 따로 지어놓았고 물길 바꾸는 공사(폐수하천의 둑쌓기 공사도 그 일환이겠죠)가 주로 진행 중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겹치거나 하저를 통과하거나 하지 않도록, 즉 관리하기 쉽도록 ‘개선’하려는 것 같습니다.
(위 사진 : 수문을 향해 다가오는 대간선수로.)
(위 사진 : 폐수하천을 관리할(?) 새로운 수문.)
(위 사진 : 지금까지 쓰이던 옛수문. 두 개가 꺾인 채 함께 서 있다.)
(위아래 사진 : 수문의 이름판은 이미 간곳 없고...)
(위 사진 : '미제천잠관'이라 쓰인 암거 입구. 암거수로가 있기는 있었군요.)
(위 사진 : 폐수천? 출구.)
(위 사진 : 폐수천의 상류쪽.)
오래된 수문탑에 올라서서 돌아봅니다. 거미줄이 엄청나고, 이미 전력선 같은 것은 분리시켜 놓는 등 용도폐기 돼 있군요. 이 정도의 중요지점에 있는 큰 수문이면 틀림없이 ‘무슨무슨 제수문’ 이름이나 휘호를 새긴 돌판이 있었을 법한데… 간 곳 없습니다.
이곳의 지형, 앞으로 크게 달라질 것이 예측되네요.
공사 중 임시로 이리저리 물길을 돌려놓느라 흙둑을 쌓아 놓아 온 사방이 흙먼지입니다. 발 들여놓기 위험한 곳도 꽤 있습니다. 인근의 농부들은 각자 알아서 모터로 물을 퍼서 자기 땅에 대느라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거의 관리·감독이 되지 않고 있는 현장입니다.
(위 사진과 아래 사진 : 미제천잠관의 출구쪽.)
(위 사진 : 미제천잠관을 통과한 대수로의 하류. )
(위 사진 : 미제천의 상류. 이 아래를 대수로가 가로지르며 통과한다.)
(빛이 부족한 탓에 사진이 흐립니다.)
다음 답사는 이곳 하저암거('미제천잠관')의 출구에서 시작합니다.
이미 어두워진 거리에 불빛이 달려오기에, 보니, 버스입니다. 황망히 주워 타고, 정말 오늘의 일정을 마감합니다.
몇 차례 버스를 갈아타며 내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귀가.
그런데 운전하면서 안경을 찾으니 없습니다. 마지막 수문탑에 올라섰을 때 거기다 두고 온 것이 생각났습니다. 되돌아가 찾을 엄두는 내지 못 하고 달려오기 바빴군요.
집에 도착한 시각은 밤 아홉 시 반.
오늘 정말 수고 많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