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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내음 물씬 푸새 남새 구첩반상 |
- 겨울 언 땅을 뚫고 돋아난
- 쑥 달래 냉이 부추 민들레…
- 무치고 데치고 삶거나 생으로
- 파릇파릇 향긋 쌉싸름한 향·맛
- 강인한 생명력 속 원기를 먹는다
식탁 위에 봄의 대향연이 펼쳐진다.
인동(忍冬)을 끝낸 봄의 전령들이, 식탁 위에 모여 풍성한 봄의 노래를 들려준다. 겨울의 언 땅을 뚫고 올라온 봄나물이, 그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우리에게 지금 나눠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초대해 봄 냄새 가득한 구첩반상 '봄나물 한상'을 차린다. 향긋한 쑥국에 구수한 냉이된장국, 깊은 풍미의 취나물 된장무침과 알싸한 달래무침, 들큰한 봄동김치와 흙내 가득한 정구지 겉절이, 쌉쌀한 머위 쌈에 식감 좋은 원추리 숙채, 어린 톳과 서실 등 봄 해초무침. 게다가 특별손님으로 초대한 도다리뼈회, 그와 함께 싸먹을 취나물·민들레 생채와 머위장아찌, 달래양념장. 3월 봄날이 고스란히 식탁에 올랐다.
바야흐로 봄이 자지러지고 있다. 산과 바다와 들판이 봄바람에 온통 푸르게 풍성해지고 있는 것.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초록의 푸새(산과 들에서 나는 나물)와 남새(밭에 심어 가꾼 나물)가 일렁일렁 일렁이는 것을 본다. 지천으로 봄나물이 곱디고운 생명의 움을 틔우고 있다.
봄나물을 만나기 위해 봄볕 맞으며 텃밭으로 간다. 몇 년 전부터 부산 서구 서대신동 꽃마을 근처에 몇몇 지인과 채마밭을 가꾸고 있다. 철 따라 푸성귀를 먹을 만큼 수확하고, 혹시 남으면 이웃과 나눠 먹는다. 농약은 물론 비료조차 주지 않기에, 그 수확물은 거칠고 조악하기만 하다.
그래도 밭둑에는 쑥이랑 냉이, 원추리 등속이 고개를 내밀고, 머구(머위) 새싹과 아시정구지(어린 부추), 방아 어린잎들이 빨간 발을 수줍게 내밀고 있다. 이들을 한 끼 식사 찬거리로 채취한다. 어떤 놈은 풋풋하고, 어떤 놈은 향긋하고, 어떤 것은 알싸하고, 또 어떤 놈은 흙냄새 가득하다. 그들은 제각각의 성정으로 제각각의 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푸새와 남새의 봄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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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장시장 봄나물전. 봄나물이 "저 좀 보셔요! 저 좀 보셔요!" 아우성 치는 봄날이다. |
몇몇 모자란 나물을 보기 위해 오시게장과 기장시장 채소전을 둘러본다. 반송이나 기장의 아낙네들이 직접 기르고 뜯은 푸새나 남새를 이고지고 와서 파는 곳이다. 장에 들어서자마자 풋풋한 푸성귀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장터가 온통 봄나물로 푸르고 싱싱하다.
기장시장 입구. 칠순을 훌쩍 넘긴 노파의 채소전에서 "씬내이(씀바구)가 참 좋네~"라고 중얼거리자 "아이고~ 처사님이 나물 이름을 어찌 그리 잘 아는교?" 한다. 신이 나서 이건 고들빼기, 저건 원추리, 요건 쑥부쟁이, 취나물, 달래, 돌나물, 돌미나리… 봄나물 이름을 줄줄이 꿰며 호명한다. 그럴 때마다 봄은 한 걸음씩 사람들 가슴으로 따뜻하게 다가온다.
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봄나물들이 제각각 앙증맞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따스한 봄 햇살 한 줌과 봄바람 한줄기를 사람 손에 꼬옥 쥐여준다. 이렇게 봄나물은 우리에게 봄이 오는 소리를 들려준다. 그 봄의 소리에 우리는 춘곤증을 이겨내고,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풀어내며, 봄의 원기를 탱탱하게 채운다.
'밥은 집 밥이 제일'이라 했던가? 오래도록 음식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음식은 역시 '집에서 해먹은 것이 가장 맛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평소 선호하는 식재료에, 가장 익숙하고 편한 조리법으로, 양념과 조미의 강약을 자신에게 맞춘 음식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먹을 수 있기에 그렇다.
식구들과 팔을 걷어붙이고 나물을 장만한다. 생채는 묵은 이파리를 정리하고 깨끗이 씻어 채에 밭쳐놓고, 숙채는 나물 따라 물 온도와 삶는 시간을 구별하여 삶아놓는다. 해초는 떫은맛을 없애기 위해 바락바락 주물러 주거나 살짝 데쳐서 준비한다. 그리고 나물의 종류와 식성에 따라 각각의 양념을 준비해 둔다.
봄나물의 양념 베이스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간장과 참기름 ▷간장과 식초 ▷된장과 참기름 ▷액젓 베이스이다. 여기다 마늘과 고춧가루, 조미료 등을 가감하여 음식을 만드는데, 저마다의 풍미나 식감 등 나물의 성정을 고려하여 양념을 쓰면 되겠다.
■어매! 먹는 사람도 봄물 들겠네
이렇게 차려낸 '봄나물 밥상' 앞에 자리한다. 밥상에는 온통 향긋한 푸성귀 냄새가 진동한다. 밥상 위로 풍성한 봄이 아른아른 펼쳐진다. 푸들푸들 살아 오르는 봄나물들로, 먹는 사람마저 푸른 봄물이 들 지경이다.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일별하며 한 가지씩 먹어본다. 우선 뜨거운 쑥국 한 술 떠먹어 본다. 강렬하다. 봄나물 중에서도 특히 자기 목소리를 강하게 내는 것이 쑥이다. 짙고 깊은 향의 쑥국 한 모금으로 봄의 입맛은 단번에 되돌아온다. 그만큼 잃어버린 식욕을 찾는데 쑥국만한 것도 없을 듯싶다. 냉이 된장국을 떠먹는다. 구수한 된장과 냉이가 어우러져 입맛을 돋워준다. 냉이는 '봄에 먹는 인삼'이라 했다. 그 정도로 다양한 영양소가 풍부하여, 봄 건강 챙기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부추는 봄 들판의 구수한 흙냄새가 사람 입맛을 당기게 하고, 달래무침은 아직까지 꽃샘바람의 맵싸함이 묻어있다. 취나물은 아삭한 식감에 상쾌한 풍미가 풍성하고, 데친 원추리는 달래장에 찍어 먹으면 들큰한 맛이 꽤 괜찮다.
방아 어린잎은 차라리 박하처럼 달콤하면서 허브처럼 깊은 향을 내뿜고 있다. 데친 머위를 젓국에 쌈 싸먹으니 비린내와 쓴맛이 살짝 받치는데, 구수하고 짭짤한 젓국이 어우러지며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렇게 봄나물은 저마다 개성이 강한 미각으로 봄을 깨우고, 우리 식탁에 봄 햇살을 잔뜩 데려다 놓았다.
서실은 봄 바다에서 채취하는 해초. 바다아낙들이 직접 파도 속에서 채취하는 귀한 식재료다. 몸체가 실처럼 얇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바위에서 떡잎처럼 이파리가 돋는 어린 톳과 함께 대표적인 봄 바다나물. 멸치젓갈에 서실과 마늘, 땡초, 설탕, 고춧가루를 넣고 살살 무치면 봄 바닷냄새 그윽한 서실무침이 된다. 어린 톳 무침도 마찬가지. 그들이 쏟아내는 갯내음은 온 식탁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다. 식감도 꼬들꼬들, 보들보들 흥미로워 더욱 좋다. 거기에 상큼한 '감태 김'을 찢어 흰 쌀밥을 얹고, 그 위에 달래장 올려 한입 먹으면 '바다음식의 화룡점정'이다.
■바다의 봄맛도 함께 느껴요
봄철 생선회는 봄나물 생채와 함께 쌈을 싸먹으면, 나물의 쌉쌀하면서도 진한 향과 어우러져 식욕을 돋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초대 손님 '도다리뼈회'를 취나물 생채 위에 넉넉히 얹고 콩된장양념에 한 입 싸서 먹는다. 입 안 가득 바다 봄바람과 들판 봄바람이 만나 서로 희롱한다. 달큰하고 쫄깃한 '도다리뼈회'와 향긋하고 진한 '취나물'의 상쾌함이 어우러져, 입안은 벌써 농염한 봄이 무르익는다. 민들레 어린잎도 싸 먹어본다. 기분 좋은 쌉쌀함이 된장양념 속 참기름과 어울려 입맛을 제대로 돋워준다. 그 사이로 오독오독 도다리회가 재미나게 씹힌다.
뒤이어 따끈한 흰 쌀밥에 달래장을 끼얹어 쓱쓱 비빈다. 비빌수록 알싸하면서도 향긋한 달래향이 분수 터지듯 뿜어져 나온다. 양념의 달콤새콤함, 한 방울 떨어뜨린 참기름이 어우러져, 기가 막힌 맛의 조화를 이루어낸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고 상큼함에 입맛이 제대로 돌아온다.
봄나물은 식탁 위에서 파릇파릇, 향긋하고 쌉쌀한 향과 맛으로 사람의 입맛을 기껍게 한다. 이렇게 무쳐 먹고, 데쳐 먹고, 된장국에 넣어 먹고, 생으로 먹으면서, 봄의 기운으로 봄을 이겨내는 것이다. 자! 파릇파릇 싱그러운 봄나물 봄 식탁으로, 건강하고 맛있는 봄을 마중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