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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5:36-41 “36.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일전에 공구를 파는 대형 상가에 가 본 일이 있습니다. 공구들이 그렇게 다양하고 많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특히 망치가 그렇게 많기도 하고, 또 다양한 곳에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망치의 종류가 얼마나 많던지요! 독일의 피카드(Picard)라는 회사는 1857년부터 오늘까지 망치를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이 회사가 현재 생산하고 있는 망치 종류만 700가지가 넘는다는 것입니다. 또 망치의 용도가 얼마나 다양하던지요! 부수는데 쓰는 것, 못을 박는데 쓰는 것, 쇠를 두드려 연마하는 것, 두드리며 점검하는 것, 사람 살상하는 무기로 쓰는 것, 악기로 쓰는 것 그리고 판결용 고퇴까지 정말 다양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사실 망치는 그렇게 비싸거나 귀하게 여겨지는 공구는 아닙니다. 화려하거나 눈에 띠는 공구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요긴한 공구입니다.
성경에 이 망치처럼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이 여럿 나옵니다. 그렇게 주목받는 인물이 아니고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도 아니지만 없어서는 안 될 요긴하게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으로 마가를 들 수 있습니다.
마가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마가복음’입니다. 마가가 쓴 복음서라는 말입니다. 이 복음서는 제일 먼저 쓰여진 복음서입니다. 초대교회시절 성도들은 이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 저자들도 다 이 복음서를 읽었고, 이 복음서를 기초해서 자기들의 복음서를 썼습니다. 눈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정말 중요한 일을 한 것입니다.
마가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가 ‘마가의 다락방’입니다. 이 사람의 다락방이라는 말입니다. 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중요한 두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유월절 만찬을 베푸신 일입니다. 이 사건이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원형으로 해서 교회의 성만찬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령강림사건입니다. 오순절에 이곳에서 성령이 강림하셨고, 그리고 이곳에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마가의 다락방이 오늘의 기독교가 세워지는 일에 정말 중요하게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가는 사도가 아니었고, 성경에서 주인공처럼 중요하게 다뤄지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어서는 안 될 요긴한 인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망치같이 소중하게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마가라는 이름의 뜻이 바로 망치입니다. 그야말로 이름대로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망치처럼 주님께 요긴하게 쓰임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든지 주님께 요긴하게 쓰임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 마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우리가 망치처럼 요긴하게 쓰임을 받기 위해서 이 사람에게서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할까요?
준비된 사람
마가라는 인물을 이해하려고 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한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 사람의 집을 방문한 사건입니다.
눅 22:10-12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마가의 집으로 보내셔서 그곳에서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게 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그 때까지 제자들이 이 집에 대해 몰랐습니다. 아직 예수님께서도 방문하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하필이면 이 집을 택하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청을 받고 자기의 다락방을 내어주게 되었는지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사건부터 이 집이 제자들의 모임장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강림한 후 이 집은 아예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초대 예루살렘교회라고 부를 때 장소적으로는 바로 이 집, 이 다락방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마가의 성장과정을 유추해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마가의 집은 다락방이 있는 집이라는 점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성 안에 약 120명이 들어갈 넓은 다락방을 가지고 있을 정도의 집은 재력가의 집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마가는 어려서부터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을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마가는 예루살렘에 살면서 부자들이 받을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물론 유대인으로 율법교육은 잘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헬라어와 로마문화에 대한 교육도 잘 받았습니다. 후에 마가복음을 헬라어로 쓸 정도의 지적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후에 베드로가 로마에 와서 사역할 때 통역을 할 정도로 로마문화와 언어를 위한 교육도 받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마가의 다락방은 교회였다는 점입니다. 당시 초대교회의 최고 영적지도자들이 자기 집에 머물렀습니다. 예배와 기도모임을 위해 늘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집에 모였습니다. 마가는 어려서부터 이런 영적인 환경 가운데 성장했습니다. 특히 베드로를 따르며 영적 지도를 잘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가는 교육을 잘 받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쓰임을 받기 위한 준비를 잘 갖추고 있었습니다. 영적으로도 그렇고, 여러 가지 능력에서도 그렇습니다.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록]이 81회에서 ‘어쩌다’ 특집을 방영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어쩌다가 화제의 중심에 선 사람들을 소개하는 특집이었습니다. 어쩌다 졸업 사진계를 평정한 선생님, 어쩌다 청와대의 초청을 받은 부자, 어쩌다 수능금지곡 전문작곡가가 된 작곡가, 어쩌다 베스트작가 반열에 오른 작가, 그리고 어쩌다 춤 하나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사람 등이 유퀴저로 출연해서 토크 릴레이를 펼쳤습니다. 제가 이 특집을 보고 나서 한 가지 결론을 얻게 됐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어쩌다였지만 이미 이 사람들은 준비된 사람들이었다라는 것입니다. 늘 그 분야에서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왔고, 그래서 남다른 이력, 재능, 그리고 전문성을 갖춰왔습니다. 그러다 때가 돼서 빛을 보게 된 것 뿐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하는 말대로 ‘준비된 사람이 기회를 얻는 것’이라는 점을 입증해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준비된 사람들을 쓰십니다. 물론 완벽한 준비가 된 것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어느 정도 준비된 사람을 택하셔서 마지막 부족한 부분을 훈련을 통해 채우신 뒤에 쓰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쓰시더라도 쓰임 받을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변화된 사람
오늘 본문에 어떻게 보면 충격적인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39절을 보면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크게 싸웠고, 결국은 갈라섰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두 사람은 동역자로서 함께 사역을 잘해왔습니다. 특히 바울은 지금까지 바나바의 신세를 크게 졌습니다. 바나바가 10년 동안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던 바울을 사역의 현장으로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안디옥교회에서 함께 교회를 잘 이끌었고, 1차 전도여행도 함께 성공적으로 잘 다녀왔습니다. 더더욱 예루살렘교회가 바울을 비난할 때 변호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서로 심하게 싸웠고, 결국 갈라서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마가 때문입니다. 1차 전도여행 때 함께 했던 마가가 도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2차 전도여행 때 바나바는 또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했고, 바울은 안 된다고 하여 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마가는 왜 선교여행 도중에 하차를 하게 된 것일까요? 성경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이렇게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갔습니다. 이곳은 바나바의 고향입니다. 이곳에 친척들도 있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큰 열매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바나바의 친척들이 이 일행을 환대해주었을 것이고,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이니 당연히 환대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구브로를 떠나 배를 타고 밤빌리아 지역으로 가게 됐습니다. 이곳에서 기후가 좋지 않아서 고생을 하게 됐고, 구브로에서처럼 환대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전도의 열매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고생을 모르고 유복하게 자랐던 마가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의욕은 앞섰지만 신앙의 연단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하고 손을 들게 된 것입니다.
언젠가 벌에 대해 몰랐던 점을 알고 나서는 벌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벌은 매일 10회 정도 벌판으로 나가 꿀을 모은다고 합니다. 한 번 나갈 때마다 400개 정도의 꽃에서 작업을 하는데, 허탕을 치면 꽃을 제대로 찾을 때까지 약 4000번 까지 시도를 한답니다. 꽃이 전혀 보이지 않는 들판에서는 무려 12km정도 비행을 한다고 합니다. 특히 꿀 100g을 모으기 위해서는 1만2천개의 꽃을 찾아야 한답니다. 그리고 평생 지구를 무려 세 바퀴나 돌 정도의 길고도 긴 비행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벌은 강점은 지구력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날고 또 납니다. 그래서 먹이를 찾고 종족의 생명을 보존해 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런 지구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영적인 지구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해내야 합니다.
마가는 선교현장으로 뛰어들 뜨거운 열정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충성도 있었습니다. 선교에 특화된 특별한 은사와 재능도 있었습니다.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영적인 지구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도중하차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가는 달라졌습니다. 2차 전도여행에 다시 도전하기로 한 것입니다. 왜 마가는 다시 도전하기로 한 것일까요?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아마도 마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어머니 보기도 민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교인들 앞에 면목이 없었을 것입니다. 스스로 기도하고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여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더더욱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얼마 후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보고를 하기 위해 예루살렘교회를 찾았습니다. 마가는 직접 선교 보고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다시 선교현장으로 가겠다고 결단했고, 바나바가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가는 변화되었습니다. 어제의 마가가 아니었습니다. 골 4:10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 우선 바울이 후에 마가의 변화된 모습을 인정해서 함께 선교현장에서 사역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가도 바울과 함께 옥에 갇혔었다는 것입니다. 마가가 놀랍게 변화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져야 합니다. 새로워져야 하고 더 좋은 모습으로 변화되어져야 합니다.
헌신된 사람
마가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것들을 보고 자랐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자기 집을 교회로 쓰도록 내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행 1:13을 보면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라고 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으시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강림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신 뒤 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이 때 모였던 제자들이 약 120명이나 됐습니다. 그리고 약 열흘 후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교회가 세워지게 됐고 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게 됐습니다.
마가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그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고, 자주 집회가 열렸고, 매 주일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아예 자기 집에 머물며 기숙을 했습니다. 마가는 어머니가 자기 집을 이렇게 내어놓은 헌신을 지켜보았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행 4:36-37 말씀입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바나바가 자기 밭을 팔아 교회에 바쳤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재산을 바친 최초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바나바가 마가의 외삼촌입니다. 아마도 바나바는 자기의 누이 마리아가 집을 교회로 내놓은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도 교회에서 쓸 경비와 어려운 교우들을 섬기기 위해 재산을 바쳤던 것입니다. 마가가 어머니의 헌신도 보았고, 이제 외삼촌마저 재산을 바치는 헌신을 본 것입니다.
이제 자연스럽게 자신도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선 바나바를 따라 구브로에 가서 선교사역에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난 뒤에 바울을 돕는 신실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같이 옥에 갇히기도 하고, 바울이 로마 감옥에 수감된 뒤 그 명을 따라 많은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바울이 순교한 뒤에는 로마로 가서 베드로를 뒷바라지 했습니다. 통역을 했고, 베드로의 증언을 중심으로 마가복음을 썼습니다. 말년에는 이집트로 가서 선교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창립했고, 결국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 박해 때 새끼줄에 매여 불속으로 끌려가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주를 위해 자신을 다 드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가는 자신을 다 드려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야말로 헌신한 것입니다. 우리가 마가에게서 배워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헌신입니다.
저는 오래 전 주님을 영접하고 얼마 뒤에 한 찬송이 마음을 사로잡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늘 마음을 떠나지 않았고, 흥얼흥얼 따라 불렀습니다. 찬 311장입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이 찬송을 부르며 늘 무엇을 드려야 하나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내 인생을 다 드려야겠다고 결심하게 됐고, 결국 주의 종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참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몸을 주셨고, 그 후에도 참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또 주님께 달라고만 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드릴지 우리가 결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귀한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마가처럼 무엇인가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상도중앙교회 박봉수위임목사님 설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