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이 뚜렷한 이나라에 사는 일은 극지에서 적도 부근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극지로, 되돌아가는 여행과 비슷했다.
이 여행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안 뒤부터 내게는 희망이라는 게 생겼다. '다시 봄'이라는. . . .
어릴적엔 노고지리하고 태양이 눈을 간지럽히는 봄이 너무 싫었던 때가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세상이 다시 생동감으로 충만한 봄이 너무 좋아 코끝에 와 닿는 달콤함에 흠뼉 취할 생각을 하면 너무 행복해지기 까지 하는 나. .
남미와 유럽, 그리고 미국을 마구 돌아다니는 여행을 하다 김연수의 책으로 돌아오자 마치 오랜 여행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안도와 편안함에 젖어 책으로 하는 아주 '멋진 산보의 시간'이 되었다. . .
그 때마다 기억 속의 나는 내게 참 낮선 사람이었다. . . . 서로가 약간의 용의를 내기만 하면 된다.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용의, 선뜻 도와주겠다는 용의, 여행의 행운이란 이런 두 사람이 만날 때 일어나는 불꽃같은 것. . . . . . . 낙수라는 건 추수한 뒤에 땅에 떨어져 있는 이삭. . . 어떤 일이 끝난 뒤에 남은 이야기를 비유. . . . . 가장 순수한 여행의 경험은. . . . . 그렇게 여행지에서 나와 같은 인간을 만날 때라고 생각(여행의 낙수, 반쯤 남은 생수 중에서). . .
이 글을 나는 22년 9월 11일 자정 쯤에 읽었다고. . . .이 장의 아래 빈 공간에 역시! 참 글 잘 쓴다. . . 라고 내가 썼다.
모든 존재가 끊임없이 다른 존재로 스며들면서 변한다는 것만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변하는 것만이 영원하다 중에서). . . 이 글이 끝에 나는 또 이 문장을 그대로 복기해 두었다. . . 작가의 생각에 동의 하면서. . .
여행에서 두번 다시란 없으니까. 다시 왔을 때 나는 그때의 그사람이 아닐 테니까 . . . . 여행이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여행을 통해 나는 비정함을 익혔다. 눈물 한방울 남기지 않고 그토록 찬탄하던 곳과 작별하는 법을 알게 됐으니까. . . . . . (떠나는 순간까지도 아쉬움은 남지 않게 중에서)
젊음이 소중하다고 남들이 말하거나 말거나 기필코 낭비하고 마는 그 무모함만은 부러웠다. . . . .
20대란 뭘 해도 능숙할 수 없고, 그래서 어떤 일에도 오래 매달리지 못하는 나이, 즉 서툴러서 쉬 싫증 내는 나이다. . . . .
여행 중에는 뭘 어떻게 하든 능숙해질 수 없다는 걸 실감. . . .서투른 자신을 보는게 싫다고 패키지 인생을 선택한다면?
(우린 모두 젊은 여행자 중에서)
혼자서 여행하는 일의 묘미는 바로 거기에 있다. 거기, 고단함에, 아침에 일어나면 또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막막하다.
책을 읽어도, 음악을 들어도, 걷고 또 걸어도 시간은 좀체 흐르지 않는다. . . . . 나는 스트레인저. . . .
어떤 사회적 연결 고리도 없는 단독자(단.독.여.행 중에서)
이다금 옛날 사진을 뒤지다기 초점도 안 맞고, 제멋대로 흔들인 불꽃 사진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찍어댔을 까?.. . . .
그건 어쩌면 그때 나라는 사람이 초점이 안 맞고 제멋대로 흔들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외로움도 너의 것 중에서)
모든 것을 다 살 수 없다면, 그럼 무엇을 살 것인가? 그건 마치 인생의 질문처럼느껴졌다. 모든 삶을 살 수 없다면,
그럼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그래서 나는 연필을 사기로 했다. 연필은 내게 가장 겸손하면서도
가장 큰 변화를 이끈는 도구이기 때문에(모든 삶을 다 살 수 없으니 나는 연필을 사겠다 중에서)
비행이란 누군가에게는 설렘이고 누군가에게는 지루함이리라고 짐작했다.
내가 탄 비행기에 슬픔에 잠겨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림이 있으리라고는, 또 그들이 평소에는 보지 못한 무너가를 바라보고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 세상에 그런 승객을 상상하는 조종사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했다. . . . . 자유는 남들이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한다.
더 많은 사람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나는 더욱더 자유로워진다. . . . (비행의 발견 중에서)
몇 개의 모래언덕을 넘어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조금 더 들어가니 어디를 바라봐도 풍경이 똑같아서 차라리 어떤 풍경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 나왔다. . . . .
감각의 대상이 사라지는 것과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나는 구분하지 못하리라는 것. . . . .
악은 결코 다른 악을 제거할 수 없다. 누군가가 그대에게 악을 행하거든 그에게 선을 행하여 선으로 악을 제거하라. . . . .
이슬람 국가에 의해 참수당한 일본인 인질 고토 겐지의 어머니 이시도 준코는
자신의 슬픔이 증오의 사슬을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 마음이야말로 꿈 속의 꿈과 같은 잔인한 영상을 버리고 우리가 찾아갈 곳이리라.(사막 조차 피로 물드는 시대의 도피처)
부르는 이가 없어도 소리를 내는 것, 심지어 듣는 이가 없어도 소리를 내는 것,
마치 파도처럼 혼자서 끊임없이 “예”라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주인이고 부처라는 걸. . .(순천만에서 바다의 대답을 듣다)
세계가 점점 평평해지는 동안, 가슴 설레는 일도 점점 줄어드는 것. . . (다른 세상으로 가는 완행열차)
인간이 멸종시키려고 가장 공을 들이는 동물은 같은 인간 종족이리라. . . . . 최근까지도 인간이 다른 민족을 멸절하려는 시도는 계속. . . . .관계의 끈이 모두 끊어지면 인간은 누구나 에트랑제가 된다. . .(멸종 위기에 놓인 ‘낯선 사람’=etrange)
차창에 앉아 있으면 내건 빨래, 집안에 있는 사람, 낮고 붉은 지붕이 다 보였다.
28번 트램에서는 리스본 사람들의 삶이 그토록 가깝게 있었다. . . . .
한 시대가, 한 생애가 끝나는 순간의 감정처럼 막대한 노스텔지어였다. . .(밀물처럼 밀려오던 리스본의 노스텔지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만이 나를 매혹시킨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 .
(다시 돌아와 내 눈 앞에 선 코끼리)
여행의 교훈은 내가 보는 세상이 이처럼 상대성의 원리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 . . .
알다시피 세상에서 두 번째로 어려운 일은 관공서 일을 보는 것이고,
첫 번째로 어려운 일은 외국에서 관공서 일을 보는 것이다. . .(여행의 불편함은 시차 같은 것)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은 더욱더 말똥말똥해졌다. 너무나 순수한, 비유하자면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외로움이 찾아왔다. . .
(위로의 테크놀로지)
조직은 인간을 난쟁이로 만든다는 것, 고독은 우리의 성장판이라는 것,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해야 할 일을 할 때
인간은 자기보다 더 큰 존재가 된다는 것(안중근의 손가락이 내게 들려준 말)
거기에는 우리 삶에 중요한 뭔가가 없었다. 그러니까 환승 구역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 . . .
대개 영원한 젊음이나 영생을 논함 말을 거는 이들은 우리보다 우리의 지갑에 더 관심이 많은 법이다. . .
(두바이에서는 나도 만수르인 양)
또 어쩌면 그런 이유로 혼자 떠난 것일텐데, 막상 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면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
불안해지는 건 왜일까? 혹시 인류가 멸망해서 나 혼자 살아남은 게 아닐까?. . . . . 그
저녁, 관광객들로 시끄러운 술집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며 내가 느낀 것과 같은 고독 말이다.
그 고독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익명의 존재로 남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내게는 그 즐거움을 만끽하는 재주가 있었다. . .
(오래전에 살라망카를 떠나왔지만)
소설에는 욕망을 지닌 주인공이 등장한다. 욕망하는 목표가 생기는 순간부터 그는 헤매이게 돼 있다.
이 ‘헤맨다’는 말을 그렇듯하게 표현하면 여행이 된다. 그래서 모든 이야기는 일상의 시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시공간을 찾아가는 여행담이라고 할 수 있다. . . . .
소설가는 평소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소설가가 여행지에서 제일 많이 하는 짓)
아메오토코, 즉 비를 부르는 남자. . . . . 아메온나, 비를 부르는 여자. . .
유흥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적답사기에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되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미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 . . . 보이는 게 예전과 같지 않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보이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의 세상은 모르겠지만,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바로 이것이다. 알면 달리 보인다.
즉 생각이 세상을 보는 방법을 결국에는 세상을 바꾼다. . . . . 이세상에는 아침에 구름이 되었다가 저녁에 비로 내리는 사랑도 있었던 것(운우지정)이다. . . (모처럼 여행인데 비가 내려 짜증난다면)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첫 문장). . . . .
군마현과 니가타현을 잇는 다이시미즈 터널 자체가 말하자면 눈 없는 세상과 눈 쌓인 세상을 이어주는 통로인 셈. . .
(터널을 빠져나와도 다시 이 우주라니)
황지우 시인의 "진실은 행간에 있다". . .
의식화의 두 가지 부작용으로 우선 오만해지고 독선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 이를 선지자 콤플렉스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 . . 두 번째 부작용은 음모론 콤플렉스. 눈에 보이는 세계를 불신하기 때문에 어떤 현상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 . .. .
한 사람을 둘러싼 리얼리티는 그의 성장 과정과 가치관에 따라 선별적으로 재구성된다.
그러므로 같은 리얼리티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각자의 리얼리티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 . . .
그러므로 관심법으로 알 수 있는 타인의 마음은 없다는 게 자명하다. 그럼에도 자꾸만 알아내고자 할 때 문제가 생긴다. . .. .
해석이나 매개 없이 전해지는 것(보이는 대로 볼 때 보이는 것)
혼자 식당에서 밥을 사 먹는 일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딱히 외로움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어도 매일 혼자서 저녁을 먹다 보면 결국 외로워진다. 호텔에서 바라보는 불빛이 외로운 까닭도 그 때문이다. 화려한 불빛은 몰랐던 외로움까지 불러내 한층 깊게 만든다. . . . . 호스텔에서 생각하는 인생이란 그 밤하늘과 같았다. 거기서 내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내가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면 외로움을 느낄 이유도 없었다. 우린 저마다 혼자이니까.
체크인과 체크아웃 사이에 우린 스쳐가는 것이니까. . .(체크인과 체크아웃 사이에 겨우 존재하는 것들)
본래의 쓸모는 완전히 상실했지만, 한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기록했다는 뜻밖의 쓸모가 나를 매혹시켰다. . . . .
여행이란 본디 외로워지는 일이니까. . . . . . 외롭지 않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다. . . (지구가 하나 뿐이라 다행이야)
열심히 사진을 찍고 돌아온 어느 여행의 경우, 사진으로 남은 기억은 면도날처럼 날카롭다.
하지만 너무 날카로웠던 걸까?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대화나 어디선가 풍기던 이국적인 냄새
혹은 여행지의 전반적 느낌 같은 건 송두리째 기억에서 잘려나간다. . . .
포토삽이 사진의 노출을 보정하듯 기억은 과거에 관한 판단을 보정한다.
좋았던 시절은 더 또렷하게, 나빴던 시절은 더 흜하게 혹은 그 반대로.
그제야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삶을 바라보는냐, 더 나아가서 어떻게 말하는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 (사진으로 다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들)
불편의 본질은 기다림이라는. . . . . . 여행지에서는 허기도 기다림의 일종으로 여기는 게 좋다. . . .
배가 고픈 한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 그 허기 속에 조금 더 머무를 수 있다면, . . . .진미를 경험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참을 수 없는 허기라는 사실. . . .(기다리면 저절로 희망이 생겨난다)
여행의 목적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꾸는 데 있다는 걸. . . .
그러므로 여행자란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바뀐 풍경은 낯설다. 새롭고 또 신기하다. . .
(모든 게 끝났으니 진짜 여행은 이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