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이 갈라놓은 두 고장, '新라제통문'(신라와 백제의 연결로)으로 쉽게 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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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구천동 제1경인 라제통문을 포졸복장을 한 안내인이 가리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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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재'.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제법 많은 지명입니다. 충남 논산과 전북 임실에 있고, 전북 무주와 경남 거창을 가르는 고갯길도 빼재로 불립니다.
무주와 거창의 경계인 빼재는 유래와 이름도 여러 가지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사람이 이 고개에서 왜구와 맞서 싸웠고, 심지어 산짐승을 잡아먹으면서 전투를 벌이다 보니 뼈가 수북하게 쌓였다는 데서 '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또 이곳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경계였는데 워낙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고 수많은 전사자가 나와 빼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전해집니다. '뼈'가 서부경남식 발음인 '빼'로 소리 나면서 빼재가 됐다는 것입니다. 신풍령 또는 수재라고도 부릅니다. 수재라는 이름은 주변 풍광이 매우 아름다워 '빼어날 수(秀)'자를 써서 부른다는 유래도 있습니다.
해발 900m에 가까운 빼재를 관통하는 것은 국도 37호선. 백두대간 고갯길인 빼재는 대덕산과 덕유산 삼봉산으로 갈라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겨울이면 20~30㎝의 폭설이 예사로 내려 도로가 통제되기 일쑤였습니다. 커브 길도 많아 운전하기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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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개통한 빼재터널 입구. 경남 거창과 전북 무주를 연결한다. |
그런데 지난달 31일 새로운 터널이 개통됐습니다. 경남 거창군과 전북 무주군을 연결하는 국도가 훨씬 편리해진 것입니다. 2008년 335억 원을 투입해 시작한 '빼재터널' 공사가 완공 예정이던 2015년보다 빠르게 마무리된 것입니다. 국토교통부는 "거창과 무주를 오가는 시간이 20분 이상 단축된다"면서 "영·호남의 교류와 물류 흐름이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신라와 백제의 연결로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라제통문'입니다. 전북 무주군 설천면, 무주읍에서 무주구천동으로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이곳 역시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군대가 대치하던 곳입니다.
무주군청의 설명에 따르면 '통일문'으로도 불리는 라제통문은 무주군 설천면에서 무풍면으로 가는 도중에 설천면 두길리 신두마을과 소천리 이남마을 사이를 가로지르는 암벽에 뚫은 통문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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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 입구 오른쪽에 있는 거창 신씨 집성촌인 황산마을. 돌담길과 100년 가까이된 기와집이 고풍스런 멋을 자아낸다. 전민철 프리랜서 jmc@kookje.co.kr |
무주읍에서 동쪽으로 19㎞가량 떨어진 설천면은 옛날 신라와 백제의 경계에 위치해 두 나라가 국경 병참기지로 삼았던 곳입니다. 고대 한반도 남부의 동서문화가 부닥치고, 교류하던 관문이었던 셈입니다. 그 흔적은 라제통문이라는 유형의 사적 이외에도 생활 속에 남아 있습니다. 고려시대까지 행정구역이 달랐던 이곳은 같은 무주군에 속해 있지만 여전히 풍속과 문물이 다르다고 합니다. 언어와 풍습이 달라 '설천장날'에 가보면 사투리만으로 무주와 무풍 주민을 가려낼 수 있을 정도라는 게 무주군청의 설명입니다.
해발 약 1000m의 백두대간으로 갈라진 전북 무주와 경남 거창. 수년 전만 해도 무주군의 중학생들이 거창의 유명 고등학교로 유학을 왔고, 거창에서는 빼재를 넘어 스키를 타러 다녔습니다. 거창에는 국제연극제를 통해 더 많이 알려진 수승대가 있으며, 무주에는 구천동 이외에도 수많은 볼거리가 널렸습니다.
'신라제통문'이라고 부를 만한 빼재터널을 넘어 구천동 입구에 있는 라제통문까지, 거창과 무주의 구석구석을 밟았습니다.
# 덕을 품은 덕유산에 고요한 소통의 바람이 분다
- 거창 수승대 졸졸 흐르는 계곡물따라
- 전통 한옥 황산마을 돌담길따라 거닐고
- '신 라제통문' 빼재터널 지나니 무주 시작
- 37번 국도와 함께 달리는 구천동 33景
- 울긋불긋 단풍보다 숨은 전설이 더 화려
확장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88올림픽고속도로. 왕복 2차로에다 고개와 커브 길이 많아 고속도로라고 부르기는 조금 낯 뜨겁다. 88올림픽고속도로 거창IC에 내리면 수승대(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까지는 16㎞다. '빼재 드라이브'는 대전-통영고속도로 무주 IC에서 빠져나와 구천동을 거쳐 거창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거창읍에서는 무주·수승대 방면 이정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3번 또는 24번 국도를 타고 마리면 삼거리에서 37번 국도로 들어선다. 수승대는 덕유산 기슭에 있는 거창군 최고의 명소.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다. 백제에서 신라로 사신을 보낼 때 이곳에서 송별하는 일이 잦아 수송대라 불렀다. 백제의 국력이 쇠약해 사신이 돌아오지 못할 것을 슬퍼해 '수송대'라고 했지만 조선시대 퇴계 이황 선생이 이름을 수승대로 고쳤다고 전해진다.
■ 전통 한옥마을에서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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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번 국도를 따라 가다 만난 무주 구천동의 가을 단풍.(왼쪽), 구천동 11경인 파회 인근 기암절벽과 소나무. |
수승대 계곡의 물놀이가 불가능한 늦가을. 가장 볼 만한 것은 수승대 주변에 많은 전통마을 고택이다. 수승대 입구 오른쪽에는 거창 신씨 집성촌인 황산마을이 있다. 옛날 담장이 잘 보존돼 2006년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진흙과 돌을 섞은 토석담으로 굽이굽이 돌담길을 걷다 보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느낌이 든다. 마을 입구의 약 600년 된 느티나무는 황산마을의 역사를 증언한다. 1500년대부터 신씨 집성촌이 됐다고 전하지만 마을 전통한옥 대부분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지은 것들이다. 기와와 기와가 맞닿고, 처마와 처마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수승대 인근에는 조선 병자호란 때 충신으로 이름난 동계 정온 선생의 종택도 있다. 겹지붕(눈썹지붕)과 두 줄 박이 겹집의 형식이 독특하다. 솟을대문과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등 조선시대 남부지방의 양반집 형태를 잘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승대가 가장 북적이는 시기는 여름이다. 7월 말에서 8월 초에는 거창국제연극제가 열린다. 수승대의 빼어난 절경 속에 자연·인간 등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이 소개된다. 그러나 수승대의 늦가을에는 한적한 매력이 있다. 피서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계곡에도 거북바위와 청정 계곡에서 산책을 즐기는 여행자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이유다.
수승대의 명물은 거북바위. 바위가 계곡 중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계곡을 향해 뛰어들기 위해 몸을 움츠린 것 같다. 거북바위 사방으로는 퇴계 이황을 비롯한 옛 풍류가들의 시구가 가득 새겨져 있다. 수승대는 산책 장소로 부족함이 없다. 유형문화재 제422호인 관수루를 비롯해 요수정 구연서원 등 선비들의 옛 향기를 떠올릴 만한 공간이 모여 있다. 특히 요수정 주변으로는 미끈하게 뻗은 소나무가 숲을 이뤄 늦가을 찬바람을 더 상쾌하게 만든다. 늦가을 수승대의 계곡 물살은 사납지 않다. 계곡 중간에 놓인 다리에 서면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수승대에서는 금원산 자연휴양림이 가깝고, 황산마을에서는 민박도 가능하다.
■ 덕유산의 늦가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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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수승대 계곡. 오른쪽이 거북바위다. |
수승대에서 1001번 도로를 따라 거창군 북상면을 지나간다. 무주 이정표를 따라 곧바로 빼재를 넘을 수도 있지만 북상면에는 곳곳에 볼거리가 숨어 있다. 먼저 갈계숲. 북상면사무소에서 멀지 않다. 전통 숲 복원사업을 통해 숲과 정자가 어우러진 곳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2㏊의 면적에 평균 키가 20m 이상 되는 소나무가 빽빽하다. 수령이 최소한 200년 이상 된 것들이다. 숲 안에는 가선정 도계정 병암정 등 정자가 많다. 색이 바랜 단청과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난 기둥 등 오랜 세월의 흔적아 그대로 드러난다.
북상에서 송계사, 무주 쪽으로 달리다 보면 길 오른쪽에 갈계리 3층 석탑이 서 있다. 경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지만 너무 외진 곳, 논 사이에 서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1001번 도로에서 고개를 하나 넘는다. 거창군 북상면에서 고제면으로 가는 길이다. 제법 가파른 고개다. 빨간 단풍잎으로 단장한 가로수가 줄지어 있다. 산을 둘러보면 노란 단풍으로 진하게 물들었다. 고갯마루에서 차를 세우고 내려다보면 덕유산 자락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신기삼거리에서 37번 국도를 만난다. 설천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경남 함양군의 지안재와 비슷하게 S자로 굽이치는 도로다. 산꼭대기에서 카메라를 들었는데 커브길 중간에 대규모 묘지가 있다. 빼재터널 입구는 수내교차로다. 터널이 개통하기 전 도로인 신풍령을 넘는 길은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 무주구천동 33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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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동에 있는 철교.(위), 수승대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요수정. |
'신 라제통문' 빼재터널을 빠져나오면 전북 무주를 향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물론 수내교차로에서 신풍령에 올라 약수터에 차를 세우고 심장병이나 위장병에 좋다는 약수를 한 잔 마시면 더 좋다.
덕유산자연휴양림을 지나면 좌회전해서 구천동관광안내소로 갈 수 있다. 덕유 대야영장 인근으로 펜션과 숙소가 밀집해 있다. 덕유산국립공원사무소 주차장에서 구천동 16경인 인월담까지는 걸어서 약 30분. 계곡을 따라 걷지만 구천동자연관찰로를 통해 산책하는 기분으로 다녀올 수 있다. 37번 국도로 되돌아 나와 무주읍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무주덕유산리조트로 진입하는 길과 만난다. 계곡을 따라 계속 37번 국도로 달리면 구천동의 33경이 잇따라 나타난다.
구천동의 3대 명소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파회. 11경이다. 급류가 큰 바위에 부딪히고, 큰 소가 만들어지면서 절경을 빚어낸다. 바위 위에 노송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이름이 천년송이다. 바위 이름은 따라서 천송암. 신라시대의 고승이 흙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바위 위에 소나무 가지를 꽂았는데 지금도 그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살아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바로 옆에 12경인 수심대가 있으며, 조금 더 내려가면 수성대(제6경)가 나타난다.
33경 가운데 가장 찾기 쉽고, 많은 여행자가 모이는 곳은 제1경인 라제통문이다. 커다란 바위산에 높이 3m, 폭 10m의 통로를 뚫은 것이다. 포졸 복장을 한 안내인이 있다. 도로 폭이 좁아 차량 2대가 교행하기는 힘들 정도다. 라제통문은 삼국시대에 생긴 것이 아니라 일본강점기에 신작로를 내면서 뚫은 것이란 주장도 있다.
■ 무주 와인과 반디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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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곤충박물관 입구.(위), 무주반디별천문과학관. |
머루는 무주의 대표적인 특산물 가운데 하나. 머루를 활용한 와인 갤러리가 무주덕유산리조트 안에 있다. 머루의 재배 과정부터 와인 제조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시음행사도 가능하다. 무주머루 와인뿐만 아니라 세계의 각종 유명 와인에 대한 역사와 유물도 전시했다.
무주군청은 무주양수발전소를 건설할 당시 뚫은 작업용 터널을 무주머루와인 동굴로 활용하고 있다. 폭 4.5m에 높이가 4.7m에 이르는 동굴로, 길이는 300m 가까이 된다. 연평균 13~14도의 기온을 유지한다. 무주군의 와인농가가 생산한 와인을 숙성 보관하며, 와인족욕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이밖에 무주군에는 샤또무주와인체험, 칠연양조와인체험, 산들벗와인체험 등 여러 곳에 머루와인 체험장이 있다. 5000원가량의 회비를 내면 머루쿠키, 머루푸딩, 머루아이스크림 만들기에 참여할 수 있다.
라제통문에서 무주읍을 향해 달리다 보면 태권도원이 나온다. 아직 완공되지는 않았지만 내년 초 개장을 목표로 마무리공사가 진행 중이다. 4500석 규모의 경기장과 연수원 등이 들어선다.
반디랜드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메인 시설은 곤충박물관인데 반딧불이를 비롯해 2000여 종, 1만3500여 마리의 곤충 표본이 전시됐다. 박물관 진입로는 고생대에서 신생대까지 대표 화석을 복원한 동굴 형태로 꾸몄다. 야간에 방문했다면 무주반디별천문과학관도 들러볼 만하다. 800㎜ 반사망원경과 태양망원경 등을 갖추고 있다.
무주읍 주변에는 1930년대 평론가로 이름을 날렸던 김환태문학관과 조선시대 화가 최북을 기념하는 미술관이 있다. 무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천일폭포와 적상호수를 도는 적상산 드라이브 코스도 인기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