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138)엘리야를 아십니까? 마17:9-13
구약의 마지막 성경이 말라기입니다.
말라기는 '나의 사자'(messanger) 또는 '나의 천사'(angel)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공식적인 선지자였고,
B.C.430년까지 주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예언 가운데 메시야가 오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서
마음을 준비하고 돌이키게 하겠다고 예언을 하였습니다.(말4:5-6)
그리고 예수님 직전에 세례요한이라는 분이 와서 메시야가 올 것을 예언하였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그러나요한을 엘리야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예수님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그 이유는?
1, 메시지에 대한 기준을 하나님에게 두지 않고 나의 마음에 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정확히 아는 분이기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따라 그 말씀을 거부하고
내가 좋아하는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이사야 시대에 성도들은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사30:10)라고 합니다.
비위를 맞추려고 예언하는 선지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언자로 자처하며 제 마음대로 말하면서 내 말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저주받아라,
너희 발현을 보지도 않은 채 멋모르고 제 생각에 끌려다니는
미련한 예언자들아! 허물어진 옛 성터나 돌아다니는 여우같은 것들이다.“(겔13:1-)
말씀은 내 마음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는 것입니다.
2, 목적을 천국에 두지 않고 이 땅에 두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는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천국을 바라보는 마음보다 더 큽니다.
마귀는 세상을 이용하여 진실한 신앙을 뺏으려고 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은 모두 하늘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1서 2:16)
신앙의 선진들은 이 땅을 나그네로 여기고 천국을 바라보았습니다.(히11:13-16)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난 것, 모세가 왕궁을 버린 것,
다니엘이 죽음을 선택한 것은 천국의 소망과 상급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과 천국에서 받는 것만 영원히 남습니다.
3, 성품의 변화보다는 소유에 목적을 두기 때문입니다.(갈5:22-24)
인간의 불행은 죄를 통해서 왔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덜 소유해서가 아니라 인격의 문제입니다.
인격이 바뀌는 것이 우선 인데 우리는 소유만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의를 위하여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죄가 제거되고 성령의 성품적인 열매가 맺힐 때에 복된 삶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5:22)
에덴의 회복은 죄가 제거된 의에 있습니다.
4, 세례요한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수용합시다.
메시지의 초점은 회개와 심판과 천국이었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를 기쁨으로 수용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엘리야인 요한을,
메시야인 예수님을 거부하는 똑같은 우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합니다.
심판의 메시지는 우리의 삶의 태도를 바꿉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면 이 땅에 미련을 갖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기쁜 메시지만 좋아하지 말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메시지를 수용합시다.
말씀 나눔
1, 나는 내가 원하는 메시지를 좋아하나 하나님이 원하는 메시지를 좋아하나?
2, 나는 이 땅의 복보다 인격의 변화와 천국에 목표를 두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