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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7편
집을 세우시고 자녀를 키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가정에서 쉼을 누리고 보호받는 복을 누리자
(찬송 시편 127편-악보는 맨 뒷쪽에)
2022-9-15, 목
맥락과 의미
시편 120-134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이 시편들을 불렀습니다. 123편부터는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때의 마음을 담은 시들이 계속됩니다. 이 시편들을 통해 우리가 어떠한 마음으로 매 주일 예배를 준비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사는 인생길 전체가 하나님 계신 곳으로 올라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시편들이기도 합니다.
127편은 우리의 가정을 세워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노래합니다. 1-2절은 자신의 힘으로 가정을 세우려는 사람들의 헛된 노력을 얘기합니다. 3-5절은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고 기르셔서 가정을 세우시는 것을 찬양합니다.
1.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으면 집을 세우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1-2절)
사람들은 집을 세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특히 오늘날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안정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합니다. 도시 생활에 필요한 많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야근도 하고 맞벌이도 하면서 힘들게 살아갑니다. 좋은 남편과 아내를 찾기 위해 스스로 준비도 하고, 여러 사람들과 교제도 하면서 애를 씁니다.
자녀를 낳으면 교육을 잘 시키는 것이 큰 일입니다. 좋은 대학에 보내서 안정된 직장을 갖고 좋은 사람과 짝을 지어주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영어와 수학 공부를 시키기 위해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내기도 합니다. 큰 비용을 감당하면서, 때로는 가족들이 떨어져 지내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면서 자녀 교육을 시킵니다.
오늘 시편은 가정을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사람의 수고가 모두 헛되다고 합니다. 집을 세우기 위해서는 사람의 수고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집을 세운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신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수고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신명기 28:30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집을 세워도 거기에 거하지 못한다고 가르칩니다. 가정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자녀를 교육하는 일에서 특히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기가 쉽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수고해도 그 결과는 헛될 뿐입니다. 그곳에 여러분이 평안히 거할 곳이 없을 것입니다.
세우고 난 뒤에는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혼자서 집의 안전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함께 모여서 도시를 이룹니다. 성벽을 쌓아서 적의 침입을 막습니다. 힘을 모아서 높은 성벽을 쌓습니다. 중간 중간에 망대를 두고 파수꾼을 배치해서 밤낮으로 감시를 합니다. 적이 침입할 낌새가 보이면 군대를 모아서 전쟁을 벌입니다.
하지만 가정과 도시의 안전을 지키시는 분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허물어집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면 약한 성도 더할 것 없이 안전한 곳이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러한 사례를 무수히 봅니다. 여리고 성은 뒤에 높은 산지를 두고 있는 천혜의 요새였고 큰 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군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7일 동안 성을 돌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수 6장).
하나님께서 성을 지키신 일도 있습니다. 아람 군대가 엘리사를 잡으러 도단 성에 군대를 보냈습니다. 국력이 쇠하고 있었던 북 왕국으로서는 이 군인들을 도저히 물리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말과 불병거를 보내셔서 그 성을 안전하게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적들의 눈을 멀게 해서 힘을 쓰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왕하 6장).
사람들은 가난을 면하고 부를 이루기 위해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종일 수고합니다. 그 결과 떡을 조금 얻어서 배불리 먹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수고해서 자기 힘으로 떡을 얻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감당하는 수고는 아담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저주입니다(창 3:17). 자기가 땀흘려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람으로 하여금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들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떡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수고 또한 헛됩니다. 노동의 대가로 떡을 얻는 것도 우리의 수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이 지혜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죽기 살기로 수고하지 않고 밤이 되면 단잠을 잡니다. 하나님께서 떡을 주실 것을 믿고서 안심하고 잠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일하십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잘 자고 일어난 사람은 은혜로 먹을 것을 공급받습니다. 자신과 가족에게 먹을 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감사합니다. 이런 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공급받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고 키우셔서 가정을 세우신다(3-5절)
3-5절에서는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자녀는 여호와의 기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지파 별로 땅을 나누어 살았습니다. 그 땅은 개인이나 집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70년에 한 번씩 땅의 소유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희년 제도를 둔 것이 이러한 점을 잘 보여 줍니다(레 25장).
자녀들 또한 가나안 땅과 같이 하나님께 속한 재산입니다. 우리가 복을 누리도록 잠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재산처럼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업을 주신 뜻을 잘 깨닫고 자식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는 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자식을 갖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요즘 같이 만혼이 많고 환경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는 참으로 실감나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식을 낳아 기르는 문제 때문에 혼인을 기피하기도 하고, 혼인한 뒤에도 일부러 자식을 갖지 않기도 합니다. 자식을 갖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큰 상이라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상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 또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지혜입니다.
젊었을 때 낳은 자식은 마치 군인의 손에 들린 화살과 같습니다. 1절에서 집을 세우고 성을 지키는 일을 얘기했는데, 자식을 잘 낳아서 기를 때 이런 일들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통해서 집을 세우고 지키는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화살이 많으면 적들이 침입해 올 때 안전하게 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젊은 시절에 자식을 많이 낳아서 잘 기르면 어떤 불안한 상황 가운데서도 가정이 안정되게 유지될 것입니다.
자식이 많은 사람은 마치 화살통에 화살이 가득한 군인처럼 안정감을 누립니다. 무기를 잘 갖춘 군인을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문에서 원수와 담판하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것은 재판을 받는 상황을 말합니다.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성문에서 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높은 곳에 장로들이 앉아서 재판관 역할을 합니다. 그 앞에서 당사자들이 나와서 잘잘못을 따집니다.
힘 없는 사람은 재판 과정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원수가 거짓 증거를 들이대서 부당한 공격을 가할 때도 있습니다. 재판장이 원수에게 매수되어 잘못된 판결을 내릴지도 모릅니다. 그런 때 자녀를 든든하게 거느리고 있는 사람은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장성한 자녀들이 노년의 부모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입니다.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상급입니다.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자식들을 잘 키우는 것도 헛될 뿐입니다. 자녀들이 가정을 지키고 부모를 보호하는 화살과 같은 존재로 자라나는 것 또한 하나님께서 행하셔야 하는 일입니다. 이 시편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자녀를 키워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3.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가정인 교회를 세우시고 복 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주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통하여 새로운 가정을 세워 나가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이냐? 너희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이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소수의 사람들, 멸시를 받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언약의 가정을 세워 나가셨습니다.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 “학식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느냐?” 이렇게 멸시를 받던 지역 사람들이었지만, 주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불러서 사랑하시며 주님의 교회를 친히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오늘날 개별 신자들의 가정에 주신 언약의 자녀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자녀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들의 부모가 되어 사랑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집인 교회도 주님께서 친히 세우시지 않으면 사람의 노력은 헛것이 됩니다. 목사와 장로가 힘써 말씀을 전하지만, 주님께서 그 말씀을 쓰셔서 깨우치시지 않으면 그 노력이 모두 다 헛것이 됩니다.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고,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다.”(고전 3:7)
믿고 복종할 일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신다, 자녀는 여호와의 기업이요 상급이다 하는 사실을 지식으로 알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굳게 믿고 말씀대로 행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가정을 세우는 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하게 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따라서 배우자를 대하고,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직접 일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고 친히 양육하여 주시기를 항상 기도합시다.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자녀를 날선 화살과 같이 다듬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에 새벽 이슬과 같은 다음세대 주의 청년들을 계속해서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가정을 세우고 사업을 경영하는 데에서 주님의 은혜만 의지하는 사람은 어떤 태도로 가족들을 대하며 직장 업무에 임해야 할까요?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솔로몬의 시”라는 표제가 붙은 이유
이 시편은 ‘솔로몬의 시’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알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받았는데,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의미입니다(삼하 12:24).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신다는 사실은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가르쳐 주시는 지혜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받아서 이 사실을 잘 알았겠지만, 그가 세운 가정은 결국 멸망했습니다. 세상의 꾀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방 세력과 혼인 관계로 연합하는 정책을 펴서 왕국의 힘을 키우려고 했습니다. 여러 이방 여인들과 혼인했고, 이방 신들을 섬겼습니다(왕상 11장).
그러한 방식으로는 자녀를 바르게 기를 수 없었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우상을 숭배하고 어리석기까지 한 악하고 무능한 왕이 되었습니다. 북쪽 지역의 반란을 효과적으로 다스리지 못해서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되도록 방치했습니다. 에굽의 침략을 받아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다 빼앗겼습니다(왕상 12,15장).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자, 하나님께 지혜로운 마음을 받은 솔로몬도 자녀를 바르게 기르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참고> 1-2절, ‘헛되다’(샤베)와 5절, ‘복되다’(아쉬레이)의 대비
1-2절에서는 “헛되다”는 말이 세 번 반복됩니다. 시의 마지막인 5절은 “복 주심”으로 끝이 납니다. 사람의 노력의 헛됨과 여호와의 복을 이와 같이 대비시켜서, 언약을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생생히 가르쳐 주십니다.
<참고> 1절, ‘집을 세운다’(바나-바이트)
성경에서 “집을 세운다”(바나-바이트)는 말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건축한다, 건물을 짓는다”라는 뜻이고, 둘째는 “자녀를 통해 가정을 세워 나간다”는 뜻입니다. 1-2절에서는 건물의 의미가 좀 더 강하지만, 3-5절에서는 자식을 통해서 가정을 세우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사무엘하 7:5에서,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에게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바나-바이트)?” 하는 말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이 경우에 “집”은 건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무엘하 7:11하-13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바나-바이트)…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여기서 집을 이룬다는 말은 자식을 통해서 왕가를 유지시키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참고> 2절, ‘수고’(에쩨브)의 떡
여기에서 말하는 “수고의 떡”은 부정적인 뜻을 강하게 담고 있습니다. “수고”(에쩨브)는 창세기 3:17에서 심판을 선언할 때에 나오는 단어입니다. “너는 종신토록 “수고”(에쩨브)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수고”라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저주가 담겨 있는 말입니다.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食物)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창 3:19)라는 말씀에 수고의 떡이 지닌 성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수고의 떡을 먹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심판 아래 있을 뿐 아니라 결국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 유튜브에서 “정영철 시편 127편”을 검색해서 들으며 연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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