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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이 노래, 다시 한번 부릅시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계 19:11)
장엄한 선율이 담긴 <전승가>는 미국의 장막 집회에서 널리 부르던 전통적인 찬양에서 비롯했다. 어느 날 줄리아 워드 하우(1819~1910)에게 친구가 “그 감동적인 가락에 멋진 가사를 붙여 줄 수 있겠어?”라고 제안했다. 줄리아는 워싱턴 D.C.의 윌러드 호텔 침대에 누워 친구의 제안을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연필을 집어 들고 종이에 가사를 써 내려갔다. 그러고는 다시 잠들었다. 줄리아는 그 노래가 유명해질 것이라고 짐작조차 못했다.
이렇게 새로 탄생한 이른바 <공화국 전투 찬가>는 1862년 2월 1일 『디 애틀랜틱』지에 처음 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신문과 군인 찬송가에도 소개됐다. 남북 전쟁 당시 연합군은 이 노래의 가락에 맞추어 행군했다. 리비 교도소에 갇힌 연합군 포로들은 승전 소식을 듣자 일제히 울음을 터뜨리며 <전투 찬가>를 불렀다. 그 사건이 에이브러햄 링컨의 귀에 들어갔고 링컨은 눈물을 흘리며 “이 노래, 다시 한번 부릅시다!”라고 외쳤다.
‘영광 영광 할렐루야’라는 후렴으로 친숙한 이 승리의 찬가는 요한계시록 14장 17~20절을 가사의 기초 삼았다. 1절 가사는 다음과 같다.
영광 중에 오실 주님 모습 나는 보았네
진노 가득한 포도즙 틀을 밟아 버리고
그의 무서운 분노의 칼 풀어 버렸네
진리는 이기리
리비 교도소의 포로들이 머지않아 얻게 될 자유를 기대하며 이 찬양을 불렀듯, 주님께서 하늘 구름 가운데 나타나 자신의 충성스런 백성을 자유롭게 하실 때 어린양의 피로 구속받은 무리 또한 모두 기쁘게 외칠 것이다. 이 감격스런 최후의 승리를 기뻐하며 찬양하는 무리 속에 나와 여러분도 함께 있기를, 아멘.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2차 10/40 미션 프로젝트에 많은 교우가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2월 2일
기다리는 시간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최소한의 물품만으로 버티는 패스파인더 생존 캠프에 참가해 본 적이 있는가? 캠프가 끝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기분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런 캠프에서 혼자서 며칠, 몇 주, 몇 달 혹은 몇 년을 지내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상상하기도 싫을 것이다. 그런데 알렉산더 셀커크(1676~1721)는 그런 일을 겪었다. 스코틀랜드 뱃사람이자 왕실 해군 소속이던 셀커크는 남태평양의 한 무인도에 조난당했다.
젊은 시절 그는 싸우기 좋아하는 말썽꾸러기였다. 선원이 되어서도 그의 성격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큰 대가를 치렀다. 1704년, 그가 탄 배가 칠레에서 677km 떨어진 후안페르난데스 제도에 며칠 정박했다. 생수와 기타 물자를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안 그래도 선박의 안전성이 미심쩍었던 셀커크는 물이 새는 배를 타고 계속 항해하느니 차라리 섬에 머물겠다고 투덜거렸다. 스트래들링 선장은 마침 잘됐다 싶어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소총, 손도끼, 칼, 냄비, 성경, 침구류와 옷가지 등을 건네준 뒤 그를 두고 떠났다. 셀커크는 외로움, 고통, 후회 속에서 4년 4개월을 버텼다. 마침내 1709년 2월 2일, 듀크와 더치스라는 두 선박이 그 무인도에 왔다가 그를 구출했다.
이 애처로운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다니엘 디포가 쓴 유명한 소설이 바로 『로빈슨 크루소』(1719)이다. 셀커크의 이야기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셀커크는 그 배를 계속 타느니 섬에 있는 게 낫겠다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선장은 그의 말을 생각보다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경솔하게 말을 내뱉는 사람은 셀커크와 비슷한 일을 겪을 수 있다. 그러니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결코 꺼내지 말아야 한다.
셀커크가 구조된 과정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 땅에서의 기다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끝이 올 것이다. 듀크와 더치스가 나타나 따분한 섬에서 그를 구해 내었듯 그리스도께서도 구름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본향으로 데려가실 것이다. 그러니 기다리다 지쳐서는 안 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태영/전주은 선교사 부부(서인도네시아)
훈련마다 많은 청년이 1000명선교사 운동에 참여하도록
2월 3일
말씀 전파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계 1:11)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쓰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과거 하나님은 모세를 비롯한 선지자에게 영감을 주셔서 각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도록 하셨다. 사도 요한은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계 1:11)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이후로 성경이 출판되고 보급된 과정은 가히 극적이다.
독일인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8~1468)는 대장장이, 금세공인, 인쇄공이자 출판인이었다. 1439년, 그는 유럽에서 최초로 이동식 활자 인쇄술을 고안했다. 첫 출판물이 성경은 아니었지만 그가 남긴 가장 중요한 업적이 성경 인쇄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인류에게 위대한 유산을 남긴 구텐베르크는 1468년 2월 3일, 고향인 독일 마인츠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발명품은 출판 업계에 혁명을 일으켰고 서기 1,000년대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발명품으로 꼽힌다. 또 종교 개혁자들의 저술을 보급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구텐베르크 이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20세기 정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은 “구텐베르크가 모든 사람을 독자로 만들었다면, 제록스(미국의 프린터기 제조사)는 모든 사람을 출판인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더 최근에 이르러는 퍼스널 컴퓨터가 모든 사람을 작가로 만들었고, 인터넷이 모든 사람을 교열자와 평론가로 만들었다. 한마디로 오늘날 우리는 언제나 독자, 출판인, 작가, 교열자, 평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촌 시대를 맞아 수많은 언어와 역본으로 출간된 성경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해석과 왜곡된 내용을 동시에 접할 수 있다는 맹점도 존재한다.
말씀 전파란 말씀의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인쇄물이든, 전자 서적이든, 음성 파일이든 그 방식은 다양하다. 그러나 더 큰 의미에서 전도란 성경 그 자체가 스스로 증언하여 인간을 왜곡과 편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건전한 성경 해석의 기본 원칙을 알고 있어야 한다.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성경을 가르쳤듯(행 8:26~40) 우리도 다음과 같은 부르심을 받았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해성/백관희 선교사 부부(네팔)
네팔 중앙교회 및 선교센터 설립이 잘 추진되도록
2월 4일
날아다니는 재단사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잠 22:3)
오스트리아 태생의 프란츠 라이헬트는 프랑스에서 재단사이자 낙하산 분야의 개척자였다. 입을 수 있는 낙하산을 새로 개발한 그는 경찰과 수많은 협상을 거친 끝에 에펠 탑에서 마네킹으로 테스트할 기회를 얻었다. 마침내 1912년 2월 4일 오전 7시 정각, 그는 에펠 탑에 도착했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바로 자신이 직접 뛰어내리기로 한 것이다. 걱정에 빠진 친구와 관중이 그를 말렸지만 그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밧줄 등의 안전장치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무런 속임수 없이 내 발명품의 진가를 보이고 싶다.”고 답했다.
이전의 마네킹 실험이 실패한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던 경비가 1층에서 라이헬트를 저지했지만 결국 그는 친구 두 명과 촬영 기사 한 명을 데리고 지상에서 57m 떨어진 곳에 올라섰다. 라이헬트는 십자형으로 팔을 뻗기만 하면 낙하산이 펴지리라 장담했다. 오전 8시 22분, 기자 30명과 수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장비를 점검했다. 바람의 방향을 살피고 40초가 흐른 뒤 뛰어내렸다. 반쯤 펴진 낙하산은 그의 몸을 감싸 버렸고 라이헬트는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부검 결과 라이헬트는 바닥에 떨어지기 전 심장 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날아다니는 재단사의 비극적인 결말이었다.
로니 올드햄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탁월함은 남보다 더 지혜롭고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더 크게 꿈꾸고 더 큰 상상력을 발휘할 때 생겨난다.” 그러나 “더 큰 위험을 감수”한다는 말에 대해서는 더 신중해야 한다. 위험 감수가 꼭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보다 앞서 경험한 이들의 조언과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도 모른다. 무언가 모험을 감행한다면 늘 하나님의 뜻을 잣대로 삼고 절대 거기서 벗어나지 말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권순범/강지희 선교사 부부(대만)
국립타이중과기대 캠퍼스 선교를 위해(6년차 사역)
2월 5일
홍수 지질학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창 7:19~20)
수많은 과학자와 신학자가 창세기 6~8장의 홍수 이야기를 부정한다. 그들에게 노아 홍수 이야기는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하는 바빌론 홍수 이야기와 다를 바 없는 신화에 불과하다. 그와 반대로 노아 시대 이후의 구약, 신약 성경 기록자들은 노아와 대홍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시 104:6~9; 마 24:37~39; 히 11:7; 벧전 3:20; 벧후 2:5; 3:6).
1867년 2월 5일 자 『애드벤트 리뷰 앤드 사바스 헤럴드』에서 D. T. 부르도는 ‘지질학과 성경’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전했다. 기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참된 지질학은 성경만큼이나 사실적이며 성경과 모순되지 않는다. 진리가 진리와 상충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이들은 지질학과 성경 사이에 불일치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더 이상한 것은 성경을 믿는다는 이들 중에 명백한 성경적 사실과 충돌하는 지질학의 견해를 채택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이 성경과 조화를 이룬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부르도가 진술한 기사의 과학적 근거는 독학 지질학자인 조지 매크레디 프라이스(1870~1963)에 의해 입증됐다. 프라이스는 자신의 여러 저술에서 지질 주상 단면은 느린 진화 과정이 아니라 세계적인 홍수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그는 “옛 진화론 체계를 바닥부터 쓸어버려서” 다른 창조론자들의 체계를 세우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선언했다. 홍수 지질학에 대한 그의 뛰어난 업적은 수많은 비재림교인 창조론자에게 인정받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지질 주상 단면이 수백만 년 동안 지속되는 여러 진화 시대에 걸쳐 형성되었다고 믿는다. 또 인류가 출현하기 전에 수없이 많은 원시 형태의 생명체가 존재했다가 소멸했다고 믿는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아담과 하와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죽음은 이미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창 3장). 그와 반대로 대홍수에 대한 성경의 이야기는 아담의 죄를 통해 세상에 죽음이 생겼다는 성경의 가르침(롬 5:12)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야만 구원의 계획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운성/조선희 선교사 부부(대만)
도움받는 교회에서 도움 주는 교회로 성장하기를
2월 6일
인격체이신 성령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성령의 본성은 매우 신비로우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소개된 부분만 이해할 뿐이다. 초기 재림교회도 이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재림교인들이 성령을 인격체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이 되어서였다. 1896년 2월 6일, 엘렌 화잇은 호주에서 “미국의 형제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편지에서 성령이 “신성의 제삼위”이라고 표현했다. 2년이 지난 1898년, 화잇은 유명한 저서 『시대의 소망』에도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애드벤트 리뷰 앤드 사바스 헤럴드』 1896년 6월 9일 자에서 그 당시 편집장 조지 C. 테니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우리는 성령을 묘사할 수 없다. 요한계시록, 에스겔, 기타 성경에 나타난 모습과 성령을 언급할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분은 단순히 하나님의 마음에서 발산되는 것 그 이상이라고 생각된다. 성경은 성령을 인격체라고 언급하며 그렇게 대한다. 사도들은 성령을 언급하면서 복을 빌고 있으며 주님께서는 성령이 독립적이고 인격적인 존재로서 교사, 지도자, 위로자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성령은 숭배의 대상이며 하늘의 지혜이고 무소부재 하신다. 그러나 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생각할 때 떠오르는 문제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
로마서 8장 26~27절에서 바울은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증언한다. 성령께서는 고유의 인격을 지녔다고 바울은 말한다. 그는 “성령의 생각”이라는 표현을 썼다. 따라서 성령이 하나님의 생각에서 발산되는 추상적 에너지일 것이라는 추정은 맞지 않다. 이런 추정이 옳다면 ‘성령의 생각’이란 ‘하나님의 생각의 생각’인 셈인데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성령은 단순한 에너지에 그치지 않는다. 성령은 하나님의 강력한 조력자로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심판하시며(요 16:8)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시고(롬 5:5) “모든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이끄신다(요 16:13). 그뿐 아니라 성령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진성/김종숙 선교사 부부(튀르키예)
이스탄불 현지인 청년 교회 세우기 프로젝트를 위해
2월 7일
우리의 놀라운 대제사장
“그리스도께서는 참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히 9:24)
그리스도인이라면 구원에 관한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 지금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재림의 때에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실 것인가? 십자가와 재림의 때에 관해서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손쉽게 답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분이 지금 하늘 성소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하시는지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많지 않다.
이 교리에 관한 해석을 잘 설명한 초기 재림교회의 기사 중 하나가 바로 1846년 2월 7일 자 『데이스타』 특별판에 소개된 ‘모세의 법’이라는 O.R.L 크로저의 글이다. 여기서 크로저는 네 가지 기본 개념을 강조했다. 첫째, 다니엘서 8장 14절의 “성소”는 하늘의 성소 또는 성전이다(히 9:24; 계 11:19). 둘째, 하늘 성소는 모세의 성소에서 예시하듯 문자적으로 두 칸, 즉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 있다(히 9:1~9). 셋째, 그리스도는 하늘 성소의 대제사장이며 십자가에서 흘린 자신의 피로 우리를 속죄하신다(골 1:20; 히 9:1~23). 넷째, 다니엘서 8장 14절에 언급된 2,300주야라는 상징적 기간이 끝날 때 예수님은 성소에서 지성소로 이동하여 나라를 받으셨다(단 7:9~14). 크로저는 이후의 기사에서 그리스도가 지금 문자적인 새 예루살렘의 성전을 정결케 하고 계시는 한편(히 9:22~23),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영적인 성전을 죄로부터 정결케 하신다고 설명했다(고전 3:16~17; 6:19~20).
이런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모든 죗값을 치르셨다면 왜 지금도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중재하셔야 하는가?’ 물론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당사자 스스로가 원하지도 않는데 구원받을 수는 없다.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으로 자기를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자신의 희생으로 이룬 은덕을 자비롭게 나누어 주신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놀라운 계획이 준비된 것이다.
주님, 주님께서 마련한 구원의 계획을 우리가 누리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저의 죄를 위해 베푸신 십자가의 희생을 받아들입니다. 제 삶의 대제사장이 되어 주소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1000명선교사 운동
선교지에 파송되어 있는 선교사들의 건강을 위해
2월 8일
미리 마련된 속죄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 55:1)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쳤는데 계산할 돈이 없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돈이 없어 설거지를 해야 한다면 상당히 창피할 것이다.
1949년 2월 8일, 메이저스 캐빈 그릴이라는 뉴욕의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프랭크 맥나마라는 계산서를 받자마자 지갑을 두고 온 사실이 떠올랐다. 난처한 상황을 간신히 해결하기는 했지만 이때부터 그에게는 현금을 대체할 만한 지불 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변호사인 랠프 슈나이더, 친구인 알프레드 블루밍데일과 함께 맥나마라는 마침내 다이너스 클럽 카드를 개발했다. 주로 여행과 유흥에 사용하는 카드였다. 과거에도 정유 회사나 백화점에서 독자적인 카드를 발행한 적이 있지만 범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신용 카드는 다이너스 카드가 최초였다.
미국 인구 조사국에 따르면 2000년에 이르러 미국에서만 14억 3,000만 개의 신용 카드가 사용되고 있었다. 신용 카드는 먼저 구매하고 나중에 지불하는 결제 방식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구약 시대에 회개하는 죄인들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죗값이 전부 지불된다는 보증에 의거해 실제적인 죄 사함을 받았다. 구약에서도 구원은 유효했고 에녹, 모세, 엘리야는 그리스도께서 죗값을 치르기 수백 년 전에 승천했다. 그런데 만약 그리스도께서 실패했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도 알다시피 그리스도는 인성을 취하셨고 죄 지을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었다. 만일 그분이 실패했다면 “사탄이 승리했을 것이며 이 세상은 그에게 패배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위하여 그분은 “실패하여 영원히 패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셨다.” “영원히 패배”할 때 그 결과가 어느 정도일지 우리는 알 수 없고 추측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를 구원하고자 대가를 치르셨고 거기에는 그 앞서 구원받은 구약의 백성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찬양을 드릴 뿐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빚은 없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더 큰 값을 지불하셨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롬 5:20). 그분의 은혜롭고 값진 선물에 감사하고 즐거워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민섭/김순임 선교사 부부(대만)
PCM 선교사들의 건강과 사범대 캠퍼스 사역을 위해
2월 9일
영감적인 유산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롬 16:22)
영감의 말씀은 선지자들이 성령께 한 자 한 자를 다 받아쓴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 물론 그런 경우도 간혹 있었지만 대체로는 선지자 자신이 용어를 선택해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엘렌 화잇은 “내가 계시를 받으면서 본 것들을 기록할 때 주님의 성령을 의존하지만 내가 본 광경들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언어들은 나 자신의 것이며 천사가 직접 나에게 말한 대목은 시작과 끝에 언제나 인용 부호를 붙여 놓는다.”(1기별, 37)라고 설명했다.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들은 비서나 문서 작성을 위한 도우미를 고용했다. 가령 예레미야에게는 바룩이 그 역할을 맡았다(렘 36장). 로마서도 바울의 편지이지만(롬 1:1) 직접 기록한 이는 더디오이다. 엘렌 화잇도 처음에는 남편에게 나중에는 편집 보조원에게 도움을 받았다. 과거에 화잇이 기록한 문서를 모으고 정리하여 새로운 작품을 편찬하는 일도 그들의 몫이었다. 화잇의 책은 대부분 이전에 작성한 글을 엮은 것인데 그 모든 과정은 화잇이 지도했다. 1915년에 화잇이 작고한 뒤로는 유산관리위원회가 그 일을 맡았다.
1912년 2월 9일, 엘렌 화잇은 최종 정리된 유언장과 증언에 서명하고 자체적으로 지속되는 위원회를 구성했다. 최초의 위원은 윌리엄 C. 화잇, 클래런스 C. 크리슬러, 찰스 H. 존스, 아서 G. 대니얼스, 프랭크 M. 윌콕스였다. 위원회에게는 “위탁받은 책과 원고를 활용하고, 나의 원고를 편찬하여 발행할” 책임이 주어진다고 엘렌 화잇은 유언했다. 미래에 교회가 마주할 문제와 필요에 따라 자신의 글을 엮어 새로운 편찬본을 제작하기를 바란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든 엘렌 화잇의 글이든 같거나 비슷한 구절이 다른 곳에서 또 보인다고 해서 놀랄 필요가 없다. 이 글들은 최초에 기록될 당시와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분의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것처럼 경외심을 품으며 말씀을 읽고 연구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정태/김성진 선교사 부부(베트남)
베트남 선교 프로젝트를 위해(10가지 프로젝트)
2월 10일
예언을 위한 GPS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사 30:21)
특정 장소를 찾아가기 위해 골머리를 앓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GPS 기술의 발전과 보급 덕택에 생활과 여행이 훨씬 편리해졌다. 위성 기반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미국 공군이 처음 운용하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1993년 2월 10일, 미국 비행가협회는 1992 로버트 J. 콜리어상의 수상자로 GPS 개발 팀을 선정했다. 콜리어상은 미국 항공인에게 가장 명예로운 상이다. 틀림없이 GPS는 오늘날 가장 핵심적이고 유용한 기술 가운데 하나이다.
GPS 장치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 주며 경로를 이탈하거나 놓쳤을 때는 경고하고 바로잡는다. 영적으로도 비슷한 것이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길” 되시며(요 14:6)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에 충실하도록 지켜 주신다(요 16:13~14).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사 30:21)이라고 하나님은 약속하신다.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기 위해 사용하시는 가장 중요한 장비는 바로 예언의 은사이다.
재림교인들은 하늘 집으로 향하는 여행길에서 최후 시련의 과정을 헤쳐 가도록 엘렌 화잇의 영감적인 글이 예언적 GPS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화잇의 글은 우리가 성경에 더 충실하도록 돕는다. GPS 장치는 단지 옳은 길을 제시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화잇의 글은 성경을 대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성경에 충실하도록 하기 위한 도구이다. 화잇의 글은 하나님 말씀의 참뜻을 곡해하지 못하도록 성경 해석에 울타리를 쳐 준다. 이 울타리를 싫어하는 비평가와 수정주의자들은 성경을 제멋대로 왜곡하기 위해 엘렌 화잇의 예언적 권위를 깎아내린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예언을 묵과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 70인에게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 10:16). 엘렌 화잇이 거짓 선지자라면 그를 거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참선지자라면 오늘날 우리를 위한 거룩한 메시지를 겸허히 받들어야 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송해섭 선교사(네팔)
답차 선교센터 내의 삼육학교 설립을 위해
2월 11일
죽게 되었다가 나은 상처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계 13:3)
역사적으로 재림교회는 요한계시록 13장 3절이 특정 교황 개인이 아닌 로마 교회 체제를 언급한다고 여겼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전쟁은 로마 가톨릭의 권위에 정면으로 맞섰다. 1798년, 교황 비오 6세가 프랑스군에게 끌려가 투옥된 이후로 교황권은 130년 넘게 그 어떤 세속적 권위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죽게 되었던 상처”를 입었던 그 세력이 1929년 2월 11일 라테란 조약과 함께 극적으로 회생했다. 피에트로 가스파리 추기경과 이탈리아 총리 베니토 무솔리니가 맺은 해당 조약에서는 바티칸 시티를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고 교황을 그 지역의 수장으로 세운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1984년에는 교황의 정치적 입김이 한층 강해졌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미국과 교황청 간에 정식 수교를 맺은 것이다. 바티칸이 세계정세의 패권을 거머쥐기 위해 어떠한 전략을 사용하는지 맬러카이 마틴은 자신 저서 『피의 열쇠』에서 낱낱이 밝혔다. 『타임』지가 1994년 올해의 인물로 요한 바오로 2세를 선정한 것도 전혀 놀라울 게 없었다. 2015년에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미 국회에서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연합”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의 교회만을 세우셨고” 그 교회가 바로 “베드로의 후계자 그리고 그와 성찬을 나누는 주교로 구성된 가톨릭교회로 이어졌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후에 진행된 초교파적 대화와 다양한 종교 간의 대화에서는 여러 종교를 로마 가톨릭과 연대시키려고 노력했다.
교회와 국가 모두의 우두머리인 교황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가 없다. 종교와 세속적인 권력의 결탁으로 과거에 종교 자유가 위태해졌고 마지막 때 그런 일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계 13장). 자유는 잃어버린 뒤에야 그 가치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모두의 종교 자유를 위해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세담/박유진 선교사 부부(대만)
설립 5주년이 된 루주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도록
2월 12일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시 57:7)
어떤 장애물은 너무 커서 극복하기 어렵고 어떤 역경은 너무나도 길어서 견디기 어려워 보인다. 큰 시험을 마주할 때면 이렇게 자문해 보자. ‘장애물이 나를 넘어서게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니면 내가 장애물을 뛰어넘을 것인가?’
패니 크로스비로 알려진 프란세스 제인 크로스비는 1820년 3월 24일, 뉴욕주 퍼트넘에서 태어났다. 생후 6주 만에 의료 사고로 시력을 잃었음에도 크로스비는 크나큰 장애물을 극복한 모본으로 사람들에게 용기를 선사했다. 겨우 8살의 나이에 크로스비는 이미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아,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 나는 볼 수 없으나 / 세상을 향해 굳게 다짐했네. / 나는 만족하겠노라고.” 평생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라운 특권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천국에 가서 제 눈으로 가장 먼저 기쁘게 바라볼 얼굴은 주님의 얼굴이 될 테니까요.” 패니 크로스비는 9,000편에 가까운 시와 찬미를 남기고 1915년 2월 12일에 잠들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던 찬양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의 1절 가사는 다음과 같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뜬세상 사는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그침 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찬송을 통해 크로스비는 자신과 수많은 사람의 영적 삶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엘렌 화잇도 다음과 같이 권면했다. “교육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노래의 가치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가정에서 감미롭고 순결한 노래를 부르라. 그러면 비난의 말이 줄어들고 격려와 희망과 기쁨을 북돋는 말이 늘어날 것이다. 학교에서도 노래를 부르라. 그러면 학생들은 하나님과 교사와 친구들과 더 가까워질 것이다”(교육, 168). 가정과 학교에서 이 조언을 따를 뿐 아니라 하루 종일 마음으로 멋진 찬양을 부르며 영적 기운을 북돋아 보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경원/조효정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2기 선교사들을 배출한 파키스탄 1000명선교사 운동을 위해
2월 13일
사랑하는 이들의 구원을 위하여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네가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네가 깰 때에 너와 더불어 말하리니”(잠 6:20~22)
가족들이 한동안 같은 신앙 안에서 동일한 가치관과 생활 방식을 유지했던 그리스도인 가정이 많을 것이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교회에 가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고등학교나 대학에 진학하면서 자녀들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일이 많다. 그 이후로 부모는 아이들의 마음에 신앙이 자리 잡고 있었던 과거를 추억하며 그리워한다. 그들은 자녀의 마음을 돌이켜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1867년 초, 제임스 화잇과 엘렌 화잇 부부는 미시간주 그린빌에서 6주간 머문 다음 그리로 이사 왔다. 둘째 아들 제임스 에드슨 화잇의 신앙을 염려하여 엘렌 화잇이 1867년 2월 13일에 보낸 편지에는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다.
네가 세상에서 높은 지위를 얻기보다 겸손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더 나은 삶을 위해 네 품성을 연마했으면 한다. 덧없는 이 작은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은 그리 중요치 않단다. 다가올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데 최고의 관심을 기울이기 바란다. 곧 사라질 이 고통스럽고 보잘것없는 세상에 몰두하는 바람에 충성스럽게 순종하는 이들에게 약속된 영생을 빼앗길 수는 없지 않겠니?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기 바란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충성스럽고 헌신적인 군사로 네 이름이 기록된다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이를 위해 나는 매일 기도한단다. 너의 마음이 온전히 구주께로 향하기를 소망한다.
회심이나 회복이 필요한 가족이 있는가? 혹시 본인이 그렇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세상에서 높은 지위를 얻기보다 겸손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임을 알 수 있다. 가족 모두가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가족들이 한때 간직했던 성경의 가치를 되찾고 그 위에 굳게 서도록 최선을 다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하늘 선교사(튀르기예)
선교지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도록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사랑은 마음을 녹이는 불길이고 상상력을 이끄는 바람이며 영혼을 씻기는 물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함께할 시간이 부족해 항상 아쉬워한다.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는 그대를 더 빨리 만나 더 오래 사랑을 나누리.”라는 로맨틱한 말도 있지 않은가!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는 사랑과 애정을 기념하는 특별한 날이다. 전설에 따르면 성 발렌티누스가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를 그리스도인으로 회심시키려다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곳에서 발렌티누스는 동료 수감자 아스테리우스의 눈먼 딸을 낫게 하는 기적을 행한다. 처형되기 전날 저녁 그는 최초의 ‘밸런타인 카드’를 작성했는데 거기에는 ‘당신의 발렌티누스’라는 서명이 적혀 있었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결혼할 수 없던 군인을 위해 발렌티누스가 비밀리에 그리스도인을 위한 결혼식을 베풀었다고 한다. 당시 클라우디우스 2세는 결혼하면 좋은 군인이 될 수 없다고 믿었다는 설이 있다.
시간이 흘러 벨런타인데이는 로맨틱한 애정과 친밀한 우정의 상징이 되었다. 카드, 꽃, 초콜릿 등의 선물을 보내는 문화는 영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빠르게 퍼졌다. 미국 축하카드협회에 따르면 밸런타인데이마다 미국에서만 1억 9,000만 장에 이르는 카드가 전달된다고 한다. 절반은 배우자가 아닌 가족 구성원에게 보내지며 대부분은 아이들이 그 대상이다. 학교 활동에서 손수 만드는 카드까지 포함하면 10억 장에 가깝다고 한다. 밸런타인 카드를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 교사라는 점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우리가 하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그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밸런타인데이에 소중한 사람에게 사랑과 애정을 표현하고 보여 주면 어떨까? 어려울 때 도움을 베풀었지만 지금은 서먹한 사람에게도 감사를 전하면 어떨까? 메시지와 함께 보내는 소박한 선물로 그들이 나에게 특별한 존재임을 알릴 수 있다. 반응에 연연하지 않고 사랑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리비아가 사회적 안정을 찾아 한국인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도록
2월 15일
마지막 때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
수백 년간 수많은 성경 주석가가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을 연구해 왔다. 그러나 근현대사를 통틀어 1785년 2월 15일 프랑스의 루이 알렉상드르 베르티에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교황 비오 6세를 감옥에 가둔 일만큼 인상적인 사건은 없었다. 프랑스의 교회를 무너뜨리던 혁명 세력이 눈에 거슬렸던 교황은 혁명을 비난하고 반대 세력을 지원하기까지 했다. 그러자 로마를 정복한 프랑스 군대는 교황의 세속적 권위를 무너뜨렸고 교황은 죄수 신분으로 이곳저곳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비오 6세는 1799년 발랑스의 어느 성채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바티칸의 권위는 1929년이 되어서야 회복됐다.
성경 주석가들은 교황의 투옥이 1,260년간 이어진 교황권의 종말이라고 해석하며(계 11:3; 12:6; 단 7:25; 계 11:2; 12:4; 13:5) “마지막 때”의 시작이라고 본다(단 8:17; 11:35, 40; 12:4, 9; 8:19). 이 충격적인 사건은 성경의 예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다니엘서에는 인봉 된 시간에 관한 예언 두 가지가 등장하는데 하나는 2,300주야이며(단 8:14, 19, 26~27) 다른 하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이다(12:4~7). 이것이 풀렸고 이후로 범상한 시간(그리스어로 ‘크로노스’)은 끝나고 종말의 시간(그리스어로 ‘에스카톤’)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듯 엄숙한 시기가 시작됐고 사람들은 이 사실을 더 분명히 자각했다.
세계 곳곳의 설교자들은 때에 관한 예언들의 성취와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의 우주적 징조의 성취를 강조했다(마 24:29~31; 눅 21:25~28). 그러나 그리스도는 생각만큼 빨리 오시지 않았다. ‘마지막 때’는 2세기 이상 지연되고 있다. 열 처녀의 비유처럼(마 25:1~13) 신랑이 늦어질수록 기다리는 이들은 지치고 잠에 빠져든다. 그러나 비유에서는 신랑이 늦게나마 반드시 도착할 것이라고 전한다. 만일 영광의 날이 200년 전에도 ‘임박한 일’이었다면 지금은 훨씬 가까운 일이 된 것이다. 그 당시의 재림 신자들이 품었던 기대보다도 지금 우리가 더 뜨겁게 열광해야 하는 것이다. 그날이 늦어진다고 해서 복된 소망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석희/전은경 선교사 부부(몽골)
몽골 1000명선교사 분원장 아바 목사와 1기 선교사 30명을 위해
2월 16일
이집트의 매혹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유명한 영화 <십계>를 본 사람이라면 고대 이집트의 웅장한 광경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학자들은 이집트를 다스렸다고 알려진 파라오를 170명 정도 찾아냈다. 그중 수많은 묘지는 도굴꾼들에게 약탈당했다. 그런데 1922년 11월 4일, 영국의 이집트학자 하워드 카터가 이끄는 고고학 팀이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했다. 9세 나이로 왕위를 물려받아 18세에 사망한 투탕카멘은 기원전 1332~23년에 이집트를 다스렸다.
1923년 2월 16일 하워드 카터의 조사 팀은 봉인되었던 투탕카멘의 묘실에 들어갔다. 그곳은 금으로 덮여 있었고 보호 목적의 신비로운 상징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돌로 된 관 속에는 손상되지 않은 미라가 143가지의 보석으로 덮여 있었는데 그중에는 푸른 줄이 그어진 유명한 황금 가면도 있었다. 무덤이 공개되고 10년 가까이 지나서야 카터는 모든 출토품의 사진 작업과 목록 작성을 끝마쳤다. 5,398가지나 되는 목록에는 왕좌, 활, 나팔, 연 무늬 성배, 음식, 술, 샌들, 리넨 속옷, 내세로 떠나기 위한 돛단배가 있었다.
신비로운 고대 이집트인은 카, 바, 아크라는 세 가지 영혼을 믿었는데 인간의 몸은 이 세 영혼의 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체가 없으면 “세 영혼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존재가 사라져 버린다.”고 믿었다. 다양한 의식과 기도, 미라 제조 과정은 사후 세계에도 몸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한 절차였다. 무덤 또한 기본적으로 내세로 최대한 편하게 여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열 재앙은 이집트의 미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출 7~11장). 이집트의 미라와 달리 하나님은 자기를 따르는 이들에게 완전히 새롭고 영화로운 몸과 생명을 주시고 자신과 함께 하늘에서 살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20~21). 참으로 복된 약속이며 놀라운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신영천/김혜림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캄보디아 재림교회의 근본적 말씀 부흥을 위해
2월 17일
배신의 앞잡이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창 49:17)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겪은 일(창 3:6)로 한 가지가 확실해졌다. “우리는 하나님이든 사탄이든 둘 중 한 존재를 위한 복음 전도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1870~80년대에 탁월한 재림교인 설교자였던 더들리 M. 캔라이트(1840~1919)는 자신의 삶을 통해 이 사실을 극적으로 예증했다. 그는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다소 불안했고 세 차례나 교회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러다가 1887년 2월 17일, 자신의 요청으로 미시간주 옷세고의 교회 녹명책에서 끝내 자신의 이름을 지웠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일찍이 1880년 10월 15일에 엘렌 화잇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
어느 정도 예견한 일이지만 그대의 선택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와의 관계를 끊기로 한 이상 나도 한 가지 부탁하겠습니다. …우리 사람들에게 접근하지 마십시오.
…진리를 믿는 형제는 놔두고 당신 혼자 가십시오. 세상과 세상의 친구를 선택한 이상 당신이 선택한 그들과 함께하십시오. 다른 이들의 마음을 더럽히지 말고 사탄의 특수 요원을 자처하여 훼방하지 말란 말입니다.
화잇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캔라이트는 재림교회와 엘렌 화잇에게 맹렬한 비판을 퍼부었다. 비판은 우리의 방향과 믿음을 어지럽힌다. 우리는 매우 조심스럽게 대처해야 한다. 화잇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영적으로 시들어 가는 사람을 몇 명 보았다. 그들은 한동안 자기 형제들을 바로잡으려고 주시하며 시간을 보냈다. 갖가지 약점을 찾아내 그들과 부딪혔다. 그렇게 하는 그들의 관심사는 하나님도 하늘도 진리도 아니고 단지 사탄이 원하는 자리, 즉 남의 일에만 기울어져 있다. 자신의 영혼에는 관심이 없고 스스로의 잘못은 제대로 보지도 못한다. 남의 잘못에만 정신이 팔려 자신의 영혼과 마음을 돌아볼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면 그들은 하늘에 갈 수 없다. 그런 사람은 하늘에 가서도 주님의 잘못을 찾으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신앙과 비난은 공존할 수 없음을 명심하자. 비판을 멈추고 믿음을 쌓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윤권/나영주 선교사 부부(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 삼육대학의 재정적 자립을 위해
2월 18일
배틀크리크의 화재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재림교회 화재 사건에는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물을 부어도 휘발유를 부은 것처럼 번지더군요.” 미시간주 배틀크리크 위크스 지방의 소방장이 전했다.
왜 배틀크리크 소방서는 1902년 발생한 재림교회 화재를 진화하지 못했을까? 20세기 초에 존 H. 켈로그가 자연이 하나님의 연장이라는 범신론적 견해를 펼치면서 교회는 혼란에 빠졌다. 켈로그와 그의 일당은 교회 전체를 쥐고 흔들려 했다. 배틀크리크에는 교회 활동이 몰려 있고 문제도 넘쳐 났다. 대총회, 리뷰 앤드 헤럴드 출판사, 거대한 배틀크리크 요양원, 배틀크리크 대학, 웅장한 다임 교회가 모두 그곳에 모여 있었다.
이 점을 우려했던 엘렌 화잇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대총회와 기타 기관을 옮기라고 조언했다. 1901년 11월에 화잇은 “아무런 개혁 조치가 없다면 출판사에 재앙이 닥칠 것이고 세상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1902년 2월 18일, 배틀크리크 요양원에 화재가 발생했다. 그러나 켈로그는 여러 다른 장소에 작은 건강 개혁원을 많이 짓는 대신 그 자리에 요양원을 더 크게 재건하기로 마음먹었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저서 『살아 있는 성전(The Living Temple)』을 5,000부 인쇄해 달라고 리뷰 앤드 헤럴드 출판사에 주문했다. 그러나 그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출판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파괴되었다. 1902년 12월 30일의 일이었다.
1903년 1월 5일, 엘렌 화잇은 배틀크리크의 교인들에게 편지했다. “출판사 화재 소식을 대니얼스 목사에게 들었습니다. 그 큰 피해를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놀라운 소식은 아니었습니다. 지난밤에 본 계시에서 배틀크리크를 향해 천사가 불의 검을 뻗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일깨우기 위해 종종 비극을 활용하신다. 그러나 따끔한 맛을 보지 않고도 그분의 예언에 귀 기울인다면 참으로 복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성현/손미현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사춘기에 접어든 사랑의 집 아이들이 예수님 안에서 잘 성장하도록
2월 19일
우리의 잠재력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전 9:10)
세상에는 큰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고 존재감이 없는 사람도 있다. 천재는 타고난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우리는 어디까지 재능을 물려받고 어디까지 계발할 수 있을까? 세계사에 족적을 남긴 이들의 삶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1878년 2월 19일, 토머스 에디슨은 축음기를 발명하여 20만 521번째 미국 특허를 따냈다. 축음기 덕분에 음악을 녹음하고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축음기는 에디슨이 따낸 1,093개의 특허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에디슨은 자신의 유명한 격언들에 담긴 흥미로운 인생관을 실천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신의 역량을 전부 발휘한다면 말 그대로 스스로에 대해 깜짝 놀랄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수고스러운 노력의 가치에 대해서는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내에 대해서 에디슨은 종종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은 포기하는 것이다. 성공을 향한 가장 확실한 길은 ‘한 번 더’ 하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인생의 수많은 실패는 자신이 얼마나 성공에 가까운지 모르고 포기하기 때문이다.”라는 말도 남겼다. 그는 실패조차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공의 기본 요소가 정직, 창의성, 철저함, 인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전 9:10)라고 솔로몬은 조언했다. 선지자 예레미야도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렘 48:10)이라고 경고했다.
현대 문명은 수고하며 큰 성과를 내기보다 쾌락과 게으름에 쉽게 빠진다. 인생 자체가 그 목적인 듯이 보이며 미래 세대에 도움이 될 유산을 남기려는 사람도 드물다. 그저 그런 것과 피상적인 것을 탈피한 사람에게 복이 있다. 우리의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분께 고용되어 그분을 위해 일하듯 매사에 최선을 다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석곤 선교사(몽골)
교직원들의 신앙 성장과 선교 사명을 위해
2월 20일
난잡한 결혼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전 7:2)
아담과 하와를 창조한 하나님께서는 결혼을 신성하고 지속적인 일부일처제도로 정하셨다(창 2:24; 마 19:4~6).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결혼을 왜곡해 버린 사람들과 집단이 생겨났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존 험프리 노이즈이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설교자이자 사상가였던 그는 1844년, 버몬트주 퍼트니에 유토피아적인 종교 집단을 조직했다. 그리고 1848년에는 뉴욕 북부의 오나이다로 장소를 옮겼다.
노이즈는 예일 대학교 신학과에서 공부하던 당시 예수의 재림이 서기 70년에 이미 이루어졌으며 우리는 영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1834년 2월 20일, 노이즈는 자신이 죄로부터 자유롭다고 주장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를 얽매는 제도와 이기심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설교하면서 일부일처제도 하나의 족쇄라고 주장했다. “먹고 마시는 것을 제한하지 않듯 거룩한 공동체에서 성관계를 제한할 필요가 없다. 전자와 같이 후자도 부끄러울 이유가 없다.” 퍼트니 공동체와 오나이다 공동체는 자유로운 사랑이나 난잡한 결혼 관계를 실행했다. 모든 남자는 모든 여자의 남편이 될 수 있으며 모든 여자는 모든 남자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태어나는 아이는 공동체에 속했다. 아버지도 모른 채 태어난 아이는 젖을 떼자마자 어머니에게서 떨어져야 했다. 1880년에 해체되기 전까지 300명 넘는 사람이 그 조직에 속했다.
참된 종교에서는 인류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가 인류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노이즈는 몰랐다. “하나님에게서 비롯한 종교만이 하나님께로 이끄는 종교이다”(소망, 189). 노이즈가 창시한 이른바 죄 없는 공동체는 죄의 본능을 마음껏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종교의 필수 조건은 한 분이신 하나님께만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출 20:3). 그와 마찬가지로 결혼도 한 배우자에게 평생 충성하는 것이다(고전 7:2). 하나님과 배우자에 대한 충성을 이기심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 성실함은 우리가 가꾸어야 할 사랑의 표현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조성규/최지혜 선교사 부부(대만)
싸루찬아이 국제교회가 자립 건물을 가질 수 있도록
2월 21일
네가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엘렌 화잇과 그의 쌍둥이 자매인 엘리자베스(리지) 뱅스는 친하게 지냈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엘렌 화잇은 예수께 생애를 바쳤으나 리지는 종교에 별 관심이 없었다. 엘렌은 여러 번 그에게 호소했다. 그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것은 1891년 2월 21일, 리지가 세상을 떠난 해에 쓰인 편지이다.
“나는 예수님과 그분의 다함없는 사랑을 전하는 게 좋아서 나의 온 영혼을 그 일에 바치고 있어.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 자비는 물론 그분이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모두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아. 그분의 귀한 사랑은 내가 볼 때 틀림없는 사실이야.
…리지, 예수님을 믿지 않겠니? 그분이 너의 구주라는 사실, 너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의 소중한 생명을 버리면서 그 사랑을 증명하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겠니? 단순히 예수님을 너의 소중한 구주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야.
…사랑하는 리지, 대단한 것이 필요한 게 아니야. 네가 가난하고 힘들고 괴로워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람 모두를 향해 손짓하셔. …너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이 너를 구하려고 펼쳐져 있어. 질병과 죽음의 침상에 누워 있을 때에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친구들이 슬퍼하지만 너를 구원할 수는 없어. 의사도 너를 구해 줄 수는 없어. 하지만 영원한 삶을 선물하고자 자기 목숨을 내주신 분이 계셔. 예수님이 너의 고백을 듣고 회심을 받아 주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 주실 것을 믿기만 하면 돼. 예수님이 너를 위해 간청하고 계셔. 예수님을 믿고 그분께 네 자신을 맡기지 않겠니? 내 팔로 너를 붙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품 안으로 이끌 수 있다면 좋겠구나.
…복된 친구인 예수님과 함께라면 죽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여기서 눈을 감았다가 뜨면 곧 천국일 테니까. 그럼 우리는 다시 만나서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거야”(편지, 1891. 61).
오늘 하루 이 애정 어린 호소를 마음 깊이 간직하며 지내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북한 선교
탈북인 34,000명의 선교를 위해
2월 22일
성경이면 충분하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신경(信經, creed)’이란 사람들의 생각과 삶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종교적인 신조와 원칙을 간결하고 권위 있게 표현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성경에 근거했다는 수많은 기독교 신경이 도리어 성경의 권위와 가르침을 훼손하고 말았다. 이를 염려한 19세기 설교가 한 명은 성경만을 기독교의 유일한 신경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846년 2월 22일, 인디애나주 포트웨인에 있는 제2장로교회에서 찰스 비처(1815~1900)는 ‘성경만으로 충분하다’라는 주제로 두 가지를 강론했다. 첫째, 신경은 성경만으로 충분하며, 둘째, 성경을 보완하는 다른 신경은 모두 배교로 이어지는 계단이라는 것이다. 성경을 연구할 때 우리는 유용한 도구와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데 바로 “가장 강력한 증거는 본문 그 자체에 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그는 진술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에 근거해 비처는 성경의 네 가지 목적을 지적했다. (1) “교훈”, 즉 성경은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총제적인 기초”이다. (2) “책망”, 즉 성경은 “오류를 차단하고 근절하기 위한 총제적인 기초”이다. (3), “바르게 함”, 즉 성경은 “교회 운영의 모든 체계를 포괄하는 규율의 총제적인 기초”이다. (4) “의로 교육하기”, 즉 성경은 “흔히 경험적인 신앙이라 불리는 개인의 경건을 위한 훈련과 교육의 총체적인 기초”이다. 비처는 “진리를 더 많이 가르칠수록 오류는 더 많이 죽어 버린다.”라고 말했고 부모들에게 아이들의 “말랑말랑한 토양 위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능력을 불어넣어서 살아 있는 말씀이 깊이 심어지게 하라.”고 호소했다.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지니고 있는 폐쇄적인 신경과 달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는 기본 교리에 관하여 수정 가능한 성명서(statement)를 채택할 뿐이다. 이 신념들의 수정은 우리의 유일한 신경인 성경에 근거해야만 한다. 성경은 교회의 어떤 문서로도 보완할 수 없는 유일한 능력이자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지훈/신은주 선교사 부부(미얀마)
미얀마가 민주화를 이루어 복음이 속히 확산되도록
2월 23일
예수님은 자격 없는 존재를 사랑하신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윌리엄 W. 프레스콧(1855~1944)은 영향력 있는 교육가, 편집인, 행정가로 재림교회 교육 체제 형성에 힘썼다. 1893년 2월 23일 자 『대총회 일간 회보』에서 프레스콧은 “우리 교리는 모두 복음에 대한 올바른 지식에 근거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신 인격적 구주라는 신념에서 비롯한다.”라고 진술했다. 발행일을 알 수 없는 『예수 안에서 승리』라는 자신의 소책자에서 프레스콧은 다음과 같이 영감적인 글을 남겼다.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다는 말은 쉽게 믿을 수 있다. 하지만 그분이 왜 나를 사랑하시는지 그 이유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이유가 없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나 자신이 아니라 그분을 바라보면 답은 쉽게 풀린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은 그분의 본질이다. 사랑이 그분의 전부이다. 사랑은 그분을 두르고 있는 공기와 같다. 그분은 살아 계시므로 사랑하시는 것이다. 그분의 사랑은 받을 자격 있는 자가 아니라 자격 없는 자를 향한다. 그래서 나까지도 사랑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각 사람에게 임하신다. 각 사람에게 다가가실 만큼 그분의 마음은 크고 그분의 사랑은 위대하고 그분의 지식은 넓다. 무한히 많은 별에 이름을 붙이신 그분은 내 이름도 알고 계신다. 내가 겪은 일을 알고 계신다. 내가 시험당할 때 그분은 나를 불쌍히 여기신다. 내가 그 사랑의 유일한 목적이기라도 하듯 그분은 나를 사랑하신다.
…매일 아침 나는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매일 아침 나는 그분께 사랑을 드리고 그분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한다. 매일 아침 나는 ‘주님의 사랑이 저를 감싸고 끌어당깁니다.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그분께 말한다. 나는 언제라도 그분을 떠날 자유가 있지만 부드러운 비단 줄과 같은 그 사랑에 이끌린다. 그분과 함께하지 않는 일은 하나도 하고 싶지 않다. 그분은 사랑의 막대기로 나를 지도하신다. 그분과 가장 가까워질 때 삶은 즐겁고 달콤하다.
그분은 그대를 사랑하신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 사랑의 뜰에 마음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장 좋은 것을 놓치는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현규/최선아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복음 서적으로 구도자들이 진리를 깨닫도록
2월 24일
평화의 중재자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아씨시의 프란체스코는 가장 존경받는 가톨릭 ‘성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부유한 이탈리아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208년 2월 24일 미사에 참석해 사제가 낭독하는 열두 제자를 향한 예수의 가르침(마 10:5~10)을 들었다. 그날부터 프란체스코는 자신을 바쳐 가난한 삶을 살기 시작했고 떠돌이 전도자로 다니다가 ‘작은 형제회’라는 수도회의 수도사가 되었다. 프란체스코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그 유명한 <평화의 기도>는 그리스도인을 깊은 성찰로 이끈다.
주님, 저를 주님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사옵나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 될 기회를 주셨다(마 5:13~14).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오늘 그리고 그 후로도 매일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빛나기를 바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영식/조효정 선교사 부부(몽골)
선교사의 초심을 잃지 않도록
2월 25일
고난당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눅 23:46)
온 우주를 통틀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가장 위대한 기념비이다.
스티븐 N. 해스컬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나타난 사랑의 깊이는 영원한 세월이 흘러도 다 헤아릴 수 없다. 거기서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과 사탄의 끝없는 이기심이 서로 맞닥뜨렸다.”라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치르신 희생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이라도 느껴 보고 싶은 사람이 많다.
마르틴 헹엘의 책 『십자가』에서는 로마 시대의 십자가형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 준다. 십자가는 그야말로 가장 잔인하고 야만적인 처형 방식으로 로마 시민이 아니라 외국인 반역자와 중범죄자, 강도들에게만 적용됐다. 희생자들은 완전히 벌거벗겨져서 가장 노골적인 수치와 모욕을 당했다.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고전 1:23)이라는 바울의 이야기가 이상할 것도 없다.
2004년 2월 25일에 개봉된 멜깁슨의 유명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는 유다의 배신부터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수난을 극적으로 재현했다. 가장 폭력적이면서도 강렬하다는 평을 받은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영화의 초점은 십자가의 참된 의미보다는 예수 그리스도가 겪은 십자가형의 신체적 잔혹성에 더 치중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손과 발에 박힌 못 때문이 아니라 우리 각 사람을 구원하려는 자신의 위대한 열망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셨음을 잊지 말자.
십자가에서는 놀라운 변화의 능력이 흘러넘친다. 그러므로 “날마다 시간을 내어 그리스도의 생애를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는 특별히 그분의 지상 생애 마지막 순간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각 장면을 분명하게 포착해야 한다. 이렇게 그분의 가르침과 고통, 인류의 구속을 위한 그분의 무한한 희생을 명상하면, 믿음이 강해지고 사랑이 샘솟고 그분의 정신에 더 깊이 물들 것이다. 마침내 구원받고 싶다면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참회와 믿음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소망, 83).
이 영감적인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원상/김수경 선교사 부부(방글라데시)
다카 도시감화력센터 건축을 위한 후원금 모금을 위해
2월 26일
공개적인 망신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시 62:12)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지만 그중에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유명한 실수들도 있다. 2017년 2월 26일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이전의 코탁 극장)에는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다시 말해 2017년 오스카 시상식에 참가한 연예인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전 세계 3,300만 시청자가 들뜬 마음으로 행사를 지켜보았다. 무대에서는 진행자 워런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가 각 부문 수상자를 발표했다. 진행자들은 <라라랜드>를 작품상으로 호명했고 해당 영화 제작진이 무대로 몰려와 조각상 트로피를 받았다.
수상자들이 무대에서 서로 얼싸안으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을 때 <라라랜드> 제작자인 조던 호로위츠가 마이크를 잡더니 사실은 <문라이트>가 수상작이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호로위츠와 제작진은 진짜 수상자들에게 트로피를 건네주었다. 정신없는 브라이언 컬리넌이 진행자 비티에게 작품상 이름이 담긴 봉투 대신 여우주연상 이름이 담긴 봉투를 전달하는 실수를 저질러서 생긴 일이다. 2017년 오스카 시상식은 수상자보다는 이 중대한 실수가 더 큰 화제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또 다른 황당한 사건이 2015년 12월 20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도 벌어졌다. 행사의 열기가 고조됐을 때 진행자 스티브 하비가 콜롬비아의 아리아드나 구티에레스를 우승자로 발표했다. 전 우승자인 파울리나 베가가 그에게 왕관을 씌워 주고 어깨띠를 둘러 주었다. 하지만 몇 분 뒤 하비는 자신의 발표에 실수가 있다고 밝혔고 파울리나는 영광스런 왕관을 아리아드나에게서 영원히 벗겨 버린 뒤 필리핀 출신인 피아 워츠바흐에게 씌웠다. 그 왕관은 아리아드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시 7:11)이시며 “공의로 세계를 심판”(시 9:8)하시므로 이와 같은 실수나 공개적인 망신을 당할 일이 없다. 바울은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확언한다(고후 5:10).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모든 일이 공정하게 판정되며, 부당하고 불필요한 깜짝 사건은 하나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정함과 충실함이 하나님의 심판을 떠받치고 있다. 그분은 절대로 과하게 형벌하시거나 예정된 상을 철회하지 않으신다. 각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따라 정직하게 보상받을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갑숙 선교사(말라위)
한국연합회의 후원으로 건축 중인 두 곳의 교회를 위해
2월 27일
영원한 상급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사 53:11)
1988년 2월 27일 토요일이었다. 런던에서 니컬러스 윈턴(1902~2015)이라는 사람이 BBC의 유명한 주간 방송 프로그램인 ‘대츠 라이프’의 방청객석 맨 앞줄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방송 현장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특집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TV 진행자 에스터 랜전은 윈턴의 부인 그리트가 다락방에서 찾아낸 스크랩북을 소개했다. 그동안 잊고 있던 스크랩북에는 윈턴이 나치 치하의 체코에서 구출해 낸 유대인 어린이들의 기록, 사진, 명단, 서류가 담겨 있었다.
이야기는 1939년으로 거슬러 간다. 그 당시 29세였던 윈턴은 고향 런던을 떠나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로 건너갔다. 거기서 낮에는 증권 중개인으로 일하며 밤에는 아이들을 구출해 기차에 태워 영국으로 보냈다. 전쟁이 터져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을 때까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그가 구출한 어린이는 총 669명이었다. 이 영웅적인 행동을 윈턴은 50년이 다 되도록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1948년에 결혼한 아내도 다락방에서 스크랩북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그가 벌인 구출 활동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날 방송을 마무리하면서 사회자 랜전은 방청객 가운데 윈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이 있으면 일어나 보라고 했다. 스튜디오 방청객 대부분은 윈턴에게 구출받았던 어린이였고 윈턴은 깊은 감격에 목이 메었다. 성인이 된 그 아이들은 그때부터 윈턴을 명예 아버지로 여겼다. 2002년 12월 31일, 윈턴은 자신의 행적으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게 기사 작위를 받아 니컬러스 윈턴 경이 되었다. 2014년 10월에는 체코 정부가 수여하는 국가 최고 훈장상을 받았다. 2015년 7월 1일, 윈턴은 106세의 나이로 잠들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한다. 그분은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구하고자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어두운 죄악 세상에 오셨고 머지않아 우리를 하늘로 데려가실 것이다. 심지어 그분은 “아버지, 제가 있는 곳에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이 사람들이 저와 함께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했다(요 17:24, 쉬운). 그분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만남인가? 각 시대, 각 나라에서 구원받은 모두가 한자리에 모일 것이다. 여러분도 그분을 꼭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BMW KOREA
에티오피아 나사렛 직업훈련학교 건축이 잘 진행되도록
2월 28일
영원한 언약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출 31:16)
미약한 시작이 창대한 결실로 이어질 때가 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방대한 출판 사업이 그랬다.
윌리엄 밀러는 ‘위대한 안식일에 관하여’라는 자신의 강의에서 “우리가 이어받은 안식일은 영원한 표징이며 매주 첫째 날에 준수해야 한다.”라고 진술했다. 밀러주의자 설교가였던 토머스 M. 프레블은 이 진술에 반박하는 기사를 『이스라엘의 소망(Hope of Israel)』이라는 정기 간행물 1845년 2월 28일 자에 기고했다. 잠시 후 프레블은 이 원고를 확장하여 소책자로 간행했고 책 이름을 『‘계명에 따라’ 제일일이 아닌 제칠일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를 알려 주는 책』(1845) 이라고 지었다.
프레블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1) “아담에게 주어진 안식일은 한 가지뿐이며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안식일도 한 가지뿐이다”(히 4:4~11). (2) 십자가에서 폐지된 것은 태초에 주어진 도덕법의 안식일이 아니라 예식법에 해당하는 안식일들이다. (3)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여 분명 주일의 첫째 날을 축일로 지켰지만 결코 그날을 안식일로 지키지는 않았다. (4) 사도 시대 이후 안식일이 일요일로 바뀐 것은 “때와 법”을 고치려 드는 작은 뿔의 작품이다(단 7:25). (5) “하나님의 자녀가 참된 이스라엘이라면” 우리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6)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를 지키는 것이다.
매사추세츠주 페어헤이븐 출신의 조지프 베이츠는 프레블의 글을 읽고 나서 제칠일 안식일을 받아들였고 나중에 자신도 안식일에 관한 소책자를 발행했다. 안식일 준수 재림주의자가 된 베이츠는 옛 밀러주의자들이 안식일을 받아들이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그에게 영향받은 이들 중에는 그 당시 신혼부부였던 제임스 화잇과 엘렌 화잇, 훗날 본 교단의 지도적인 안식일 신학자가 된 J. N. 앤드루스도 있었다.
하나님과 그분의 충성스런 자녀 사이의 영원한 언약인 제칠일 안식일은 시대를 초월해 인류에게 하나님의 복을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통로이다. 이날을 거룩하게 지키면서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을 기념하고(히 4:4~11), 앞으로 영원히 계속될 안식일(사 66:22~23)을 미리 맛보는 특권이 그대에게도 주어졌다. 그대의 숨 가쁜 삶에 안식일은 새로운 의미를 가져다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동혁/김아림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따게오 삼육학교 교사들을 위한 제자 훈련이 확산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