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광로
여울 마 대 복
8월의 대구는 매일 용광로다.
주차장에 외제 승용차 한 대가 들어왔다. 주차장 끝자리 구석진 곳에 멈춰 섰다.
엔진 시동이 꺼지기를 기다렸다. 엔진 시동이 꺼지기 전에 다가가 주차요금을 받으려다 민망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멀찍이 서 있었다. 차안에서 내리기 전 가볍게 키스를 하는 건 보기에도 좋았다. 그러나 보는 내 자신이 민망스러워 뒤돌아서곤 했다. 보통 3분 이내에 차에서 내려온다. 그러나 주차장 끝자리에 선 승용차는 10분이 지나도 시동이 꺼지지 않는다. 차안에서 전화를 한다거나 티격태격 싸우느라 10여 분 늦게 내려올 수도 있어 참고 기다렸다. 나는 이미 주차확인증에 14시10분으로 적어놓고 있었다. 30분이 지났다. 이쯤 되면 휴발윳값, 매연의 피해, 차에서 질식사 등, 여러 가지를 생각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차 가까이 가서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았다. 유리창이 검은 색으로 되여 있어 눈을 바짝 대고 보아야 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남, 여는 뒤엉켜있어 생각건대 차안의 온도는 포항제철의 용광로보다 더 뜨거워 보였다. 밖의 온도는 37도지만 저들만의 온도는 이미 3000도는 되나보다. 젊은 시절 포항 제철을 방문했을 때 안내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리 나쁜 쇳덩어리라도 3000도의 열기에서는 다 녹아버립니다. 젊은이들의 연애도 용광로처럼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젊음 연인이여, 3000도의 용광로처럼 사랑하세요.”
한마디 던지고 뒤돌아섰다. 그러나 젊은이의 열렬한 사랑에 내 몸도 70대에서 갑자기 20대의 열기로 가득 찼다. 몇 대의 차들이 들어오고 나가긴 했지만 내 마음은 온통 구석진 곳에 있는 외제 승용차 안의 궁금증이었다. 중앙도서관 시계는 1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도 엔진 소리는 꺼질 줄 모른다. 여러 가지로 염려가 되어 또 차안을 들여다 보았다. 애무와 키스의 연속이었다. 차 유리창을 두드렸다. 반응이 없다. 주차관리인이라고 무시하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했다. 더 세게 두드렸다. 차 창문이 조금 열렸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이 없었어요? 내 차 안에서 내 맘대로도 못하나요?”
한마디 내 뱉고는 창문을 닫아 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잊었다. “허허허, 세상 많이도 변했네.” 중얼거리며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연애 시절의 추억이 뭉게구름 사이에서 솜사탕처럼 달콤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50년 전 일이다. 당시 군대에 있을 때 한 여자를 펜팔로 사귀어 1년여 동안 편지를 주고받다가 제대하여 처음으로 만난 곳이 명동성당 성모마리아 상 앞이었다. 천주교인은 아니었지만 서울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이라고 생각되어 첫 만남의 장소로 정했다. ‘그대는 하얀 손수건 , 나는 시집 한 권’이라는 표시로 갖고 만나자고 했다.
두 번째 만남은 동작동 국립묘지로 정했다. 당시 여자의 집이 말죽거리기 때문에 국립묘지 거리와는 가까운 곳이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달려가서 수많은 젊은 영영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음의 선서를 하고 사랑을 꽃 피운 행복의 장소이기도 하다. 스무 번쯤 만났을 때 관악산 등산을 택했다. 여자의 할머니가 정성스럽게 싸준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산등성이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하루 종일 쏟아놓은 이야기를 글로 썼다면 소설책 몇 권은 되었으리라. 아마도 일생을 살아오면서 진솔한 인생이야기를 그날만큼 진지하고 솔직하게,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름다운 산 경치도, 풀숲의 아름다운 꽃들도, 노래하는 새소리도, 우리들의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합창하는 목소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설령 해가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진다해도 우리들의 시간과 공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다. 어둠이 스멀스멀 서울시내 바닥에서부터 더듬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어둠도 우리를 떠밀지 못했다. 산은 집이요, 바위는 우리들의 안방이 되었다. 하늘은 엄마 품속 같은 포근한 솜이불이 되었다. 솜이불에 견우직녀가 만나는 은하수도 그려 넣고, 이정표가 되는 북두칠성도 그려 넣고, 우리들의 별, 샛별도 그려 넣었다. ‘복이와 문이’는 손을 꼭 잡고 선서를 했다.
“달님아, 별님아, 100년 소나무야, 천년, 만년 너럭바위야, 우리는 어떤 두려움도 없이 인생을 힘차게 살아가리라.”
100년의 약속, 사랑의 키스를 했다. 그 순간 부엉이가 하객으로 찾아와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른다. 별똥별이 남에서 북으로, 동에서 서쪽으로 하늘을 가르며 축하 메시지를 보낸다. 아침이 되니 ‘마대복, 이현문은 부부’라는 팻말이 관악산 꼭대기에 십자가처럼 커다랗게 세워졌다. 그 십자가를 지고 우리 부부는 50년을 한결같이 두려움 없이 용광로처럼 펄펄 끓는 젊음으로 살려고 노력해 왔다. 첫 사랑의 추억을 떠올리자 내 몸도 마음도 용광로가 되었다.
잠시, 귀퉁이에서 용광로처럼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용광로 승용차’를 잊고 있었다. 슬금슬금 다가가 보았다. 엔진시동이 꺼지지 않은 채 승용차도 용광로가 되어 펄펄 끓고 있었다. 도서관 시계를 보니 오후 2시에서 6시까지 무려 4시간 동안 사랑의 고속도로를 달려가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들의 관악산 첫 사랑의 밤처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시간이었다. 그러다간 차가 폭발할지도 모른다고 염려되었다. 나는 무조건 창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그리고 냅다 소리쳤다.
“젊은이여, 시동을 끄세요. 여기는 포항제철소가 아닙니다. 차라리 팔공산 갓바위에 가서 용광로의 첫날밤을 보내세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용광로 승용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주차장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나는 양손을 들어 힘차게 흔들어 주었다.
“젊은 사랑의 용사여, 인생을 용광로처럼 열정적으로 살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