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숨까지 다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전부여야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제자들 가운데서 가장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고,
예수님을 사랑했던 사도요한, 사랑의 사도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도요한을 통해서 쓰여졌습니다.
사도요한이 요한1서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가 그를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우리의 열정이
아니라,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 때문에... 받은 은혜에
감격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도바울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고후 5:15)
주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자발적으로 그 사랑을 받아서...
그 사랑에 감격해서... 자원하는 심령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하심입니다.
그냥 로봇처럼 입력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사랑을 받으시길 원하셨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셨냐면~ 하나님이 먼저 나를 위해 죽어 주셨어요.
그리고 그 사랑을 깨닿게 하심으로써, 그 사랑에 반응하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주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해야 됩니다... 라고 많이 듣죠?
그렇지만, 우리의 노력으로써 주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비결은,
주님이 나를 사랑해 주신 그 사랑을 바라볼때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두 팔 벌려 피 흘려 죽으셨는데요...
그 팔 벌리심은... 십자가는... 포옹이나 마찬가지에요. 내가 너희를 이렇게
사랑한다...
이것은 영적원리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길 원하십니까?
더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길 원하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을 뜨겁게 사랑하시는...
오늘, 지금 이 시간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여러분이 들으셔야 합니다.
2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나타나셨던 그 하나님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회전하시는 그림자도 없이...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신실하신 그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나의 목숨보다 내가 너를 더 사랑해!
그것을 예배 가운데 기도 하는 가운데 찬양가운데 깊이 그것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그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은혜 받은 자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자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너가 이렇게 해라... 이렇게 해라... 열심을 내라, 해서 나오는 열심은 오래가지
못해요
대게 부분적이에요.
그렇지만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진짜 열정은 축복받기 위해서..
복받기 위해서.. 상급받기 위해서 내는 열정보다 훨씬 고상한 것입니다.
주님의 그 사랑을 이제야 내가 알았습니다.
내가 몇 년의 세월을... 수십년의 세월을 돌아왔네요
너무나 많은 시간들을 이렇게 큰 사랑을... 내가 깨닿지 못하고,
너무나 많은 시간과 너무나 많은 년수,
나의 모든 세월들을 주님이 나를 이토록 사랑했음을...
내가 잊어버리고 살아왔음을... 내가 이제야 알았습니다.
하나님 내가 회개합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주의 궁정에서의 하루가 왕궁에서의 천년보다도 낮다'고 합니다.
여러분, 왕궁에서의 천년보다
주님과의 하루가 주님의 사랑을 느끼는 하루가 훨씬 복된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왕궁에서 천년만년 살아도 우리가 주님앞에 갔을때 아무것도 남는것이 없어요.
그렇지만 지금 이시간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 사랑에 다시 돌아가고,
그 사랑에 다시 돌아가고, 그 사랑을 다시 느끼기를 원합니다.
그 사랑을 내게 부어주시옵소서...
이러한 심령으로 우리가 주님앞에 나아가길 원합니다.
여러분 지금 열정이 많이 부족하신가요?
사랑이 좀 적으신것 같나요? 많이 잃어 버리셨나요? 전혀 상관 없습니다.
베드로를 보세요. 자기가 열정이 대단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내가 누구보다 더, 다른 사람은 주님을 다 버려도 내가 주님 사랑해요...
열정적으로 뜨겁게 주님앞에 나아갔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어요...
많은 연단 가운데... 베드로가 예수님의 사랑을 져 버렸습니다. 배신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많은 시간들을 예수님을 배신하고,
내 삶에 급급해서 부인했고, 믿음을 져 버렸어요.
자 여러분 주님께로 돌아오신다면, 다시 주님품에 안기신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주실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여러분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자기를 배신했던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 가셔서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던 것처럼
오늘 이시간의 고백을 주님께서 너무나 귀하게 여기십니다.
다만 크던 작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님앞에 나아오며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전에는 가장 큰 사랑으로 엄청난 사랑으로 주님앞에 나아왔지만,
주님을 배신하고 나서,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나서
아~ 나는 아무것도 아니였구나...
나도 한때는 정말 열심히 있었고, 누구보다 신앙이 좋다고 하는 수제자였는데
주님을 배신하고 나서 닭이 울었어요.
그것을 듣고 나서 밖에 나가서 심하게 통곡을 하면서 울었다고 했어요
그 울음이 뭐겠습니까? 얼마나 후회하고 회개 했겠습니까?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보았겠죠
나도 한때는 대단했는데...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면,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내가 주님을 사랑한것도 아니였구나... 다 가짜였구나...
여러분, 그것을 느낄때가 비로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시작 인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저 내가 주님 많이 사랑합니다... 라는 가식 필요 없습니다.
위장하지도 마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 눈물로... 그냥 하나님 앞에 나가서
‘주여 이제는 내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나 이제는 잘 몰라요
주님께서 아십니다. 주님께서 아십니다...’
‘주님께서 아십니다’를 헬라어로 보면 예수님께서 반복해서 물으셨을때의
실제 의미는... 우정 정도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줄, 주님이 아십니다” 라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자기 분수를 아는 거예요.
예수님을 져버리고, 배신했는데 어찌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겠습니까?
여러분 지금 이시간 회개된 베드로의 심령처럼,
우리 그러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주님을 의지해서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나아갑시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바라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축복만 바라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주님의 손만 바라보고... 주님의 영광만 좋아하고...
주님의 고난.. 주님의 아픔.. 주님의 눈물.. 애통.. 주님의 외로움.. 이런것은
싫어해요
그러나 여러분 진짜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진짜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아픔과 눈물을 사랑합니다.
진짜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영광과 주님이 우리에게 주실
영광스러운 어떤 상급만 바라 보는게 아니라...
오히려 애통과 주님의 아픔과 주님의 통곡과 주님의 눈물과 주님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해서
찢겨지는 주님의 마음에 동참하는 줄로 믿습니다.
“최후 승리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주님의 고난에 우리가 함께 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외로움에 우리가 동참해 드리겠습니다,
그 외로운 고통스러운 중보에... 주님의 고난,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기를 원합니다.
이시간 고백하며 나아갑시다
최후 승리 거두기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