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반지 끼고
위례신도시가 위치한 남한산성 아랫녘에는 너른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바로 그 옆쪽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주 공원을 드나드는 편인데 잔디 위에 토끼풀들이 나날이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줄기로 땅을 기어가고 거기에서 뿌리가 생기고 그 뿌리로 땅을 움켜잡으며 번식해가는 생명력이 끈질긴 토끼풀은 잔디밭을 야금야금 점령해 가는 중이다.
오늘 산책길에 소복하게 토끼풀꽃이 꽤 많이 돋아있는 것을 발견한 남편이 뜻밖에 허리를 구부려 토끼풀꽃을 따내는 것이었다. 이때다 싶어 꽃반지 하나 만들어주시죠 이왕이면 끼워 주시구요? 내 나이를 잊었는가. 나는 소녀처럼 종알거렸고 손을 내밀었다. 그도 나이를 잊었는가. 자연스레 내 손가락에 토끼풀꽃을 끼워주었다. 이런 일은 자주 오지 않는다. 사진을 찍었다. 공원길을 내려와 다시 낮은 언덕길을 올라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나는 꽃반지를 들여다보며 소녀로 되돌아간 듯 나풀거렸다. 오랜만에 여가수 은희의 ‘꽃반지 끼고’ 를 흥얼거렸다.
생각 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준 꽃반지 끼고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그 오솔길
이제는 가버린 가슴 아픈 추억
그대가 만들어 준 이 꽃반지 슬픈 밤이면 품에 안고서 눈물을 흘리네 그대가 보고 싶어
그대는 머나먼 저 하늘의 저 별
내 이십대 초반. 가수들이 통기타 반주에 맞추어 진솔하게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었다. 송창식을 비롯한 통기타 가수들이 인기의 절정이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집안에 누구의 것이든 기타 하나쯤 있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너나 나나 대여섯 개 코드 정도는 알고 있는 게 상식이기도 했다.
나 역시도 그 대열에 끼어들었다. 자주 들락거리던 서점주인 아저씨가 꽤 기타를 잘 치신다는 소문을 들은 뒤로 서너 명 친구들과 함께 조르고 졸라 기타를 배웠다. Am Dm G7 C 등 네 개 코드로도 노래가 가능한 꽃반지 끼고는 처음 기타를 배우는 초보들을 위한 책 첫 페이지에 있었다.
그대가 만들어준 꽃반지 끼고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그 오솔길. 감성이 출렁출렁 파도처럼 넘쳐 올라 아슬아슬하던 이십대임에도 불구하고 서너 번의 짝사랑 말고는 사랑이란 걸 경험해보지 못한 내게 그 가사와 음률은 얼마나 낭만적이고 사랑스러웠던가. 이제는 가 버린 가슴 아픈 추억. 이 가사에서조차도 이별보다는 사랑에 마냥 들뜨고 기대에 가득차서 노래를 불렀다. 이별의 가사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말이 맞는다. 가수의 맑고 고운 음성까지도 순수하고 애잔한 사랑 그 자체였다.
이십대 후반에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경남 일광 바닷가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직장 사람들을 초대하였다. 짓궂은 직원 하나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내 노래를 신청하였다. 소극적이었던 나는 대충 넘어가려고 못 들은 척 분주히 주방과 거실을 오가며 음식을 날랐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반복해서 박수를 치면서까지 나를 재촉하였다. 그냥 지나갈 것 같지 않은 낌새가 감지되었고 당황한 내게 갑자기 제일 먼저 떠오른 노래가 바로 ‘꽃반지 끼고’ 였다.
떨리는 음성으로 간신히 노래가 끝났을 무렵 젊은 직원 하나가 화살을 날리듯 직설적으로 말했다. 새색시께서는 참으로 용감하십니다. 그 노래를 이 자리에서 부르시다니. 주인집에서 잔치를 위해 빌려준 너른 거실 가득 앉아있던 손님들의 함성과도 같은 웃음소리가 지나갔을 때에도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눈치 채지 못한 채 그냥 웃어넘겼다. 잔치가 끝나고 자리에 누워 하루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돼서야 노래 가사를 차근차근 생각해보았다. 이제는 가버린 가슴 아픈 추억. 세상에! 새색시가 과거의 아픈 사랑을 떠올리는 노래를? 뒤늦은 창피함과 후회로 잡을 못 이루었지만 어쩌랴.
꽃반지 끼고.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토끼풀꽃이 흰 물감을 붓으로 찍어놓은 듯 깔린 들판이 보이고 동네 아이들이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모여앉아 있다. 5월 초순 무렵이다. 공기놀이며 고무줄놀이가 싫증났다 싶으면 우리는 밭둑이나 산기슭으로 달려갔으니까. 하얀 토끼풀꽃으로 반지를 만들어 서로에게 끼워주고는 기쁨에 겨워했다. 손재주가 좋은 언니들은 꽃줄기를 교차시켜 엮어서 화관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동생들에게 씌워주었다. 특히 얼굴이 곱상했던 내 친구 정주와 윗집 석분이는 언니들이 제일 먼저 화관을 씌워주고는 좋아라 박수를 쳤다. 둥글넙적한 얼굴의 나는 맨 나중에야 차례가 돌아왔지만 그래도 예쁘다고 박수를 쳐주었다. 모두들 고양이 세수를 한 얼굴에 옷은 누추하고 꾀죄죄한 모습일지언정 화관을 쓴 얼굴에 웃음 하나만은 공주 못지않았다.
좀 더 커서 아니 늙어가기 시작할 오십대 중반에 토끼풀 꽃에 대한 추억이 있다. 한창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십대처럼 여기저기 쏘다녔을 무렵, 군포에 양귀비꽃 군락지가 있다기에 놀러갔었다. 양귀비 꽃길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다가 잠시 쉬려고 둔덕 너른 자리에 멈췄다. 오월 오후 햇살이 보석처럼 빛을 내며 비스듬히 비춰들고 토끼풀꽃이 양탄자처럼 깔려 바람에 살랑이고 있었다. 어찌나 넓게 토끼풀꽃이 퍼져 자라났던지, 햇살과 바람이 어찌나 부드럽고 찬란하던지 이 세상이 아닌 환상의 나라에 당도한 느낌이었다. 누군가 내 손을 잡는다면 곧바로 그를 사랑하게 될 것 같았다.
우리들 중 사교댄스를 배운 친구 둘이서 춤을 추었다. 목과 팔과 다리가 길었던 친구는 교만하게 보일정도로 목을 길게 뽑고 허리를 뒤로 되도록 많이 꺾어 우아한 자세로, 세상풍파를 다 지나온 듯 깊은 골짜기 어둑함 같은 눈동자를 지닌 친구는 상대를 부드럽게 받쳐주면서 힘이 있는 동작으로 춤을 추었다. 처음이 아닌 듯 영화 속의 사랑하는 남녀처럼 자세와 표정이 진지했다. 사진을 찍는 내내 내 가슴이 뛰었다. 질투가 잠시 지나가기도 했으나 렌즈 속 그 빛나는 풍경을 능가하지는 못하였다
노안이 심해진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야 꽃반지를 끼고 찍은 사진을 제대로 보기 위해 돋보기를 끼었다. 일부러 주홍빛 잔디꽃들 위에 꽃반지를 낀 손을 올려놓고 찍었으므로 괜찮은 사진이 나왔을 거라고 상상하면서 말이다. 사진을 보는 순간, 쿵 하고 내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진을 찍는 동안 왜 남편이 자꾸 손에 힘을 빼라고 했는지도 알겠다. 나이 먹은 손은 손에 힘을 주고 펼수록 주름이 많아지는 법.
주름이 많고 마른 손가락에 꽃반지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순식간에 십대에서 육십대로 돌아온 내 머쓱한 웃음이 저녁밥상을 차리는 내 구부정한 뒤를 따라다니며 놀려대던 오월 그날. 감성이 충만한 소녀가 아닌 현실파 중늙은이가 된 나는 이렇게 노래 가사를 바꿔보았다.
생각난다 그 위례길 그대가 만들어 준 꽃반지 끼고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그 오솔길
그곳은 그대와 나 잊지 못할 추억
그대가 만들어 준 이 꽃반지 외로운 밤이면 꺼내 보면서 그대를 그리네 그대가 보고 싶어
그대는 하나뿐인 내 소중한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