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환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매머드 잡는 남자』(푸른사상 소설선 48).
각각 다른 삶을 살아온 인물들의 상실과 역경이 생생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물들이 생존을 추구하는 절박함은 독자의 마음에 크고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2023년 7월 10일 간행.
■ 작가 소개
994년 중편 「타인의 침상」으로 『오늘의 문학』 신인작품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아르마딜로』 『영화 속의 남자』 『하늘채 사랑』 『길에게 묻다』 『불조직지심체요절』, 창작집으로 『찔레꽃 화장』 『살아 있는 돌』이 있다.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 해양문학상 은상을 받았다.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세 번째 창작집을 발간한다. 최근에 쓴 작품들 중에서 열 편을 골라 엮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중편소설 「안드로메다 가는 길」이다. 2009년 5월 22일부터 8월 6일까지 76일 동안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고, 그 후 3년쯤 지나서 썼으니 이 소설은 10여 년쯤 되었다. (중략)
나는 가끔 꿈을 꾼다. 비현실적인 허구 속 사람들이지만, 꿈속에서 나는 그들과 오랜 시간 같이했다. 작품이 끝난 다음의 후일담도 듣고, 허구가 아닌 현실에서 그들을 만났다. 소설에서는 슬프거나 우울해 보였던 인물들이 환장하게 흐드러진 봄꽃처럼 웃고 있었다.
이 글을 쓰는데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동안 가물어서 곡식이 죄다 시들시들하더니, 비가 많이 와서 생기가 돌고, 뒤늦게 들깨 모종을 심는단다. 나도 글 파종을 한다고 했다. 글을 심는 마음으로 작품집을 발간한다.
■ 추천의 글
매머드 잡는 남자의 모티브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현실, 하나는 역사. 현실이니 역사니 하는 말은 지나치게 광범위할 뿐 아니라 관념적이기까지 한데, 그렇다 하더라도 이길환 소설을 이 둘을 빼고 설명하긴 어렵다. 이길환의 현실과 역사는 말에 그치지 않는 구체성과 절실함이 내재되면서 그 작품에 뼈와 살을 구축하고 상상과 상징을 치장한다. 풍성한 자본이 드리운 깊은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실의 인간이 생존의 절박감에 내몰리면서 찾아내는 역사의 시공, 그 현실과 역사의 교직이 성실하고 진지하다. 묵직하되 가독성이 높다는 점도 매우 귀하다.
― 박덕규(문학평론가, 소설가)
■ 작품 속으로
나는 더욱 힘차게 산책로를 뛰어다니고 매머드 사냥에 열을 올렸다. 산책로에 서 있는 두 마리의 커다란 매머드를 향해 달려가서 돌창으로 찌르고 다리를 부여잡고 넘어뜨리는 시늉을 수시로 하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내가 진짜 구석기시대인 같다며 환호를 했고, 일부는 박수를 보냈다. 그때마다 나는 킹콩처럼 두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괴음(怪音)이었다. 관람객들이 더욱 우렁차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나는 답례를 하듯 커다란 매머드의 이빨에 매달려 거꾸로 재주를 넘었다. 관람객들이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매머드 잡는 남자」, 79쪽)
생산직으로 입사해서 관리직으로 전환해준다는 회사가 있다고 형에게 말하자 형은 내가 사회 경험이 없어서 그걸 믿는 거라고 했다. 형의 친구도 예전에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되지 않아 생산직에서 삼 개월만 근무하면 관리 파트로 옮겨준다는 말을 듣고 일했는데 삼 년이 되어도 생산직에서 근무했다고 했다. 어수룩한 사람은 그렇게 당한다며 형은 내가 생산직이라도 입사하려고 하자 극구 반대였다. 형의 말이 옳았다. 빽도 없고 돈도 없고 학벌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사람은 한 번 입사한 곳에서 쉽게 보직을 좋은 곳으로 옮길 수 없었다. 형도 생산 라인의 한 곳에서 십 년 동안 빠져나오지 못했다. 밤낮없이 라인을 따라 흘러가는 자동차의 차체를 따라가며 볼트를 조이고 용접을 하며 십 년 동안 일하고 얻은 것이 무급 정리해고였다. ―(「안드로메다 가는 길」, 2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