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대교에서 강변 산책로로 내려가 물하고 가장 가까운 흙길을 택해 천수교 쪽으로~
저녁에는 이쪽 방향으로 두차례 달려봤지만 아침에는 진양호 방향으로만 가봤을 뿐인데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저녁에 남녀노소 인파가 몰려나와 북적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달력사진에서나 봄직한 고요한 강가의 풍경이 그려지고 있으니...
천수교를 아래로 지나고 난 뒤에 수변광장을 끝으로 길이 끊기는데 나불천이라는 냇물이 진주성과 광장을 가르며 남강으로 흐르기 때문.
광장을 돌아서 도로위로 올라가면 얼마지 않아 진주성의 서문이 나온다.
낮에는 2천원의 입장료를 받는다는데 지금은 무료.
지난주 밤에 둘러봤던 성내를 다시 보니 여러가지로 다가오는게 다르다.
먼저 지난번에 휙 지나쳤던 '충무공'동상, 당연히 이순신장군이려니 했더니 '김시민'장군이었네!
또 한분의 충무공이 계시다는 말은 들은적 있는 것 같은데...여기서!
촉석루까지 갔다가 돌아나오며 중심부에 있는 민속박물관 둘레를 돌아보고 다시 서문으로 빠져나와 남강을 달리고 시가지를 달려 숙소까지~
총 55분이 걸렸다.
낮에 사무실에서 자료를 뒤적여보니 400여년전 선조들이 겪었던 전쟁의 참화가 그대로 느껴진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너무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인 이곳에서 민관군이 목숨을 걸고 항전해 일본군을 대파했는데 그때 승전을 이끈 지휘관이 바로 충무공 김시민장군이었단다.
그런데 정말 가슴 아픈건 그 다음해, 10만이라는 대병력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온 왜군에 맞서 9일간 항전하다가 성이 함락되면서 7만명이 살육을 당했다고 한다.
그때 등장한 인물이 그 유명한 '논개', 당시 2차 진주성전투를 지휘했던 최경회의 후처였던 그녀는 장군이 전사하고 성을 함락한 일본군이 연 승전자축연에서 기생으로 들어가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를 안고 남강에 투신했다고 한다.
그 일이 있은지 수십년이 지나서야 기록에 등장하게 되고 또 그로부터 백여년이 지나서야 국가로부터 공인되었다고 하니 전쟁의 참화 못지않게 가슴아픈 역사의 한대목이다.
그저 교과서 속에서 글자로만 보던 역사를 이곳에서 발로 가슴으로 더듬어가고 있으니...
온종일 지나간 역사의 한대목이 가슴을 짓누른다.
퇴근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줄기차게 이어진다.
박이사, 김부장이랑 셋이 퇴근길에 진양호 아래 음식점에서 메기탕을 먹었는데 맛있게 먹어서도 그렇지만 평소보다 늦은 시각에 저녁을 먹다보니 8시가 되서도 배가 빵빵하다.
창밖의 비는 조금 수그러들었고 기상청 단기예보를 보니 딱 1시간 정도는 빗줄기가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내일 아침엔 엄청난 비가 예보되어 있고 저녁엔 환영만찬을 한다고 했으니 오늘 비를 맞고라도 뛰어주는 것이...!
숙소 사람들은 미쳤다고 혀를 내두르지만 이런 칙칙한날 TV만 보며 앉아있기도 그렇지 않은가!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쓰고 나와 옆건물 1층 주차장에서 감따기 100개(34,33,33)
최근 몇년간 100개를 채워본 기억이 없는데...
감따기를 마치고 나니 비가 거의 이슬비 수준으로 약해졌길래 남강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런날은 강변이 가장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일 듯.
아침처럼 천수교 아래를 지나 산책로가 끝나는 곳까지 갔다가 되돌아나와 희망교까지, 그리고 처음으로 희망교 다리를 건너서 맞은편으로 가본다.
실망스럽게도 그쪽은 자동차만 다닐만한 길로 이뤄져 있어 달려서는 더이상 갈 수가 없다.
셀프주유소의 기름값이 '1665원'이라는 것만 확인하고 턴!
강변도로 옆으로 공원길이 나 있는데 그쪽으로 잠시 달려보고 숙소로 귀환.
이번에는 50분 소요.
비가 살짝 약해졌을때 돌아다녔던 것이라 평소 때 땀에 젖은 것 정도밖에 젖지 않았다.
세탁기 돌려 빨래 빨고, 모처럼 신발도 빨아서 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