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
전유철(소설가 ․ 평택잔다리족구회장)
-1부.
족구이야기
<제5장> 족구공이 있는 곳에 ①
- 족구공이 있는 곳에 행복도 함께 있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두운 밖을 보니 하루 종일 내릴 기세였다.
성구는 아침을 먹고 서둘러 평택 전철역으로 향한다. 전철을 타고 서울에 갈 참이다. 천안까지 전철이 다니고 있으니 참 편하다고 생각하며 성구는 플랫폼에서 전동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서울방향으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꽤 많다.
잠시 후, 전철이 도착하고 사람들을 따라 성구도 안으로 들어선다. 벌써 좌석은 차 있어 앉을 자리가 없다.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빗속을 달리고 있는 전동차. 다가온 가을풍경이 창밖에서 금세 멀어지고 있다. 들녘에는 벼가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화창한 날씨였으면 더 서정성 짙게 보였을 거라고 생각하며 성구는 지금 찾아가는 족구 경기장을 떠올려 본다.
한 시간이 넘게 걸려 전동차는 청량리 역에 도착했다.
성구는 택시를 타고 동대문구 실내체육관으로 향한다. 십여 분이 경과하자 목적지에 도착하고, 그는 경기장 안으로 들어선다. 이미 경기가 시작되었는지 함성들이 들린다. 경기장코트가 보이고, 체육관 실내에 걸린 현수막들이 성구의 눈에 들어온다.
‘르까프배 sbs족구최강전’, 평택시 태양스포츠단, 삼성전자 족구단, 현대자동차 족구단, ‘르까프 족구최강 풀리그전’ ‘대한족구연맹’ 등의 글귀를 단 현수막들이 곳곳에 걸려있어 경기장의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코트 안에는 이미 선수들이 열띤 경기를 펼치고 있다. 저 앞에 선수들이 생동감 있게 움직인다. 녹화방송으로만 보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실내체육관의 불빛과 선수들의 외침과 공이 튀는 소리와 관중들의 함성 등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어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지금 경기를 하고 있는 팀은 GM대우자동차와 현대자동차라는 것을 성구는 유니폼을 보고 알아챈다. 점수판을 보니 3세트가 진행 중이다. 한 세트씩 나누어가졌다는 뜻이다. 경기가 백중하게 진행되고 있다. 자동차 업계의 대결이다. 두 팀 이외에도 자동차 업계 팀으로는 경기도 화성의 기아자동차와 경기도 평택의 쌍용자동차 팀이 족구세상을 호령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는 종반으로 접어들자 GM대우차 쪽으로 기울고 있다. 강만규 선수의 파워넘치는 공격이 방패를 뚫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 선수의 뛰어차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다이나믹한 몸놀림에 감탄을 하게 된다. 공중에서 공을 차고나서 회전하는 몸놀림에서 스포츠 예술을 만끽한다.
경기는 결국 강만규 선수가 있는 팀이 이겼다. 첫 경기가 끝난 거였다. 곧 2경기가 시작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다음은 평택시 태양스포츠단과 서산 팰콘의 경기였다. 성구는 이곳에 오기 전에 자신이 살고 있는 연고지 팀이 경기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터라 더욱 기대가 되었다. 낯익은 선수들이 코트에 나와 연습을 하고 있다.
경기장 밖에서는 정찬마 방송해설위원이 녹화방송을 위해 분주히 지휘하고 있다. ‘르까프배 SBS족구최강전’은 전국족구연맹에서 주관하는 대회로 매년 이루어지고 있다. 전국에서 예선을 거친 팀들이 리그전 방식으로 최강전을 갖는 거였다. 경기방식도 5인제 쓰리 터치 투 바운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경기의 박진감과 다양한 공격과 수비방식을 위해 필요한 것 같다고 성구는 생각한다.
르까프배 이전에는 ‘스타배 SBS족구최강전’이 있었고, ‘MBC ESPN 스타배 파워리그 족구대회’, ‘Xports 족구최강전’ 등이 진행되고 있으니 바야흐로 족구의 중흥기를 맞은 거였다. 머지않아 지상파 방송에서도 족구경기를 볼 날이 있으리라.
잠시 후, 경기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연습하던 선수들이 코트 밖으로 나와 대기실로 들어간다. 먼저 태양스포츠단의 소개로 진행된다.
우리나라 최강부 중 유일하게 회사소속이 아닌 클럽 팀으로 구성된 태양 팀이다. 순수 동호회 팀들은 소속회사 팀들과는 달리 함께 모여서 연습하기도 힘들 것인데, 그만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자체를 높이 평가해야 할 거였다. 쌍용자동차와 더불어 평택 족구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태양 팀의 선수소개가 진행된다.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뛰어가며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엔드라인에 도열한다. 공격수 김상돈, 황보영식, 임광산, 세터 장경수, 수비수 이경수, 홍현표, 최영호 등이 한 명씩 호명된다.
다음은 서산 팰콘의 선수들이 호명된다. 성구가 아는 선수는 공격수 김남형 하나뿐인 듯하다. 충남 서산에 있는 공군 소속의 선수들이다. 그러니까 현역 군인들이 모인 팀이다.
주심과 부심도 일일이 호명된다. 부심에는 여자선심도 있다. 흰색 유니폼을 입은 여자선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소개가 끝나고 각자의 엔드라인에 일렬로 도열해서 양 팀이 멀리서 서로 마주보면서 다부진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다.
주심 호각소리와 함께 두 팀이 시계반대 방향으로 각자 오른편 사이드라인을 따라 네트 앞으로 천천히 뛰어가며 악수를 나눈다. 다시 주심 호각소리와 동시에 선수들이 중앙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각자의 포지션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윽고 시작 휫슬이 울린다. 경기 시작부터 불꽃 튀는 공방전이 펼쳐진다. 김상돈 선수의 노련미와 김남형 선수의 파워가 대결한다. 넘어차기를 하는 임광산 선수의 패기도 만만치 않다. 넘어차기 공격을 하여 바운드된 공이 사이드라인 옆으로 높이 날아가면 어느새 수비수가 따라가 받아낸다. 코트 안에 바운드시키는 실력이 환상적이다.
수비수들은 날렵하게 뛰고 또 뛰며 때로는 넘어지며 공을 받아낸다. 수비수들은 날아오는 공을 향해 개처럼 열심히 뛴다. 그럼에도 놀랄 정도로 정확히 공을 받아낸다. 정말 수비수들은 개처럼 뛰어서 정승처럼 받아내는 거였다.
그렇게 잘 받아내면 득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공격수는 역회전 발날 페인트를 쓰고 또는 짧은 연타를 넣는다. 아니면 완전히 키를 넘겨버리던가 각 깊은 공격을 하는 거였다. 매번 노바운드로 공격하는 솜씨가 대단하다.
두 팀은 라이벌답게 용호상박이다. 누가 더 네트 가까이 공을 띄우느냐가 득점의 향방을 가늠한다. 수비가 원만해도 결국 세터가 네트 가까이 띄우지 못하면 득점할 수 있는 공격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결국 1세트는 힘겹게 태양 팀이 이겼다. 확성기를 통해 들리는 음악소리가 실내를 쩡쩡 울린다. 관중석의 응원소리도 경쾌하다. 관중석이 꽉 차지 않은 것이 아쉽다고 성구는 생각한다. 족구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면 관중석은 차게 되겠지. 돈을 내고 입장할 날이 분명 있겠지. 성구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며 그렇게 생각해 본다.
음악방송이 커지고, 감독들의 마지막 지시와 함께 선수들이 다시 코트로 들어선다. 2세트도 불꽃이 튀고 있다. 득점 하나 하나가 소중하다. 한 점을 얻을 때마다 선수들의 파이팅과 기쁨이 넘쳐흐른다.
서브를 넣는 모습도 진지하다. 서브는 수비를 하기 위해 넘겨주는 공이 아니라는 것을 이곳에 와서 성구는 느낀다. 서브는 분명 공격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의 수비를 불안하게 할 수가 있는 거였다. 요즘의 배구처럼 서브는 계속 발전해야 하고 더욱 진화해야 할 과제였다.
2세트는 서산 팰콘이 안정적인 수비와 공격으로 끝내 이기고 말았다. 마지막 세트로 돌입하고 다시 공방전이 이어진다. 경기는 막바지로 치닫는데 약속시간이 다가와 성구는 자리를 뜰 수밖에 없다. 약속시간이 이미 늦었는데 조금만 더 보자고 하던 차에 많이 늦어지고 말았다. 그는 못내 아쉽다. 두 팀의 승패를 보지 못해도 멋진 경기를 관람했다는 기쁨만으로 만족해야지. 성구는 볼일이 있는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경기장을 나오며 그렇게 생각한다.
체육관을 빠져오는 성구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코트 밖으로 멀리 도약하는 공을 향해 개처럼 뛰어가는 수비수들의 모습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발길을 옮기며 중얼거린다. ‘개처럼 뛰어서 정승처럼 받아라!’
-계속-
첫댓글 연재가 늦어져서 독자분들께 대단히 미안합니다. 담부터는 좀더 부지런해져야겠습니다. 족구시간을 줄을 수도 웂고...ㅠ.ㅠ 참고적으로, 위 소설의 싯점은 약 2년 전입니다.
너무나도 잘읽었습니다.저두 동대문체육관에 많이갔었는데..심판진으로..
ㅎㅎㅎ기다려지네여..
목을빼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광진연합회에서 도움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