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1 일요가족법회 지안대종사 법문
금년 여름은 몹시 더웠는데 8월이 지나고 9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절기로 보면 가을이 시작된 것이지요.
세월이 이렇게 시절 따라 지나가는데 우리 사람이 생활하는 데 가장 일상적으로 많이 일어나는 일이 눈으로 보는 일이고 귀로 듣는 일입니다. 이건 성(聲) 자를 앞에 붙여서 聲色(성색)의 일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살아가는 생활 모습의 모든 것이 보고 듣는 일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불교 공부를 하다 보면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들이 수없이 많은데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어보라’라는 말이 있어요. 禪(선)법문에 나오는 말이지요. 지금까지 수없이 봐왔는데 그래도 못 본 게 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들어왔는데 그래도 못 들은 게 있다는 것이지요.
冶父道川(야보도천) 선사의 禪詩(선시)를 소개합니다.
園中花笑聲未聽(원중화소성미청)
뜰에 핀 꽃이 웃으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林中鳥涕淚難觀(임중조체루난관)
숲속에 새가 우나 눈물은 보이지 않는다.
竹影掃階塵不動(죽영소계진부동)
대 그림자가 계단을 쓰는데 먼지는 일지 않고
月穿潭底水無痕(월천담저수무흔가)
달이 연못 밑을 뚫어도 아무 흔적이 없구나.
園中花笑聲未聽(원중화소성미청)
정원에 피어 있는 꽃은 웃는데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林中鳥涕淚難觀(임중조체루난관)
숲속의 새가 우는데 눈물은 보이지 않는다. 볼 수가 없다.
앞서 말했듯이 일상의 타성에 젖어 매일 보고 듣고 하는데 못 보고 못 듣는 것이지요, 이것을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아직도 내가 나를 보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나를 몰라요. 내가 나에 대해서 알지 못한 것이 아주 부지기수로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알고 계시겠습니다마는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라 하는데 깨달음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 비유로 설명하지만 ‘내가 나를 아는 것이다.’라고 말해요. 서양 사람들이 19세기에 들어와서 불교를 접하고 나서 불교의 깨달음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기를 ‘불교는 자기 정체(identity)를 아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내 정체(identity)를 알게 하는 것이 불교의 깨달음이라는 뜻이죠. 그래서 ‘불교는 새로운 자아관념으로 자기를 바꾸는 자기혁명이요, 자아혁명이다.’리는 말을 해오기도 했습니다.
竹影掃階塵不動(죽영소계진부동)
대 그림자가 계단을 쓸고 있는데, 비를 가지고 마당을 쓸고 나면 먼지가 일어 나지만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아무리 쓸어봐야 먼지는 일어나지 않지요.
月穿潭底水無痕(월천담저수무흔가)
하늘에 떠 있는 달이 못에 비쳤어요. 달빛이 못에 비쳤으니까 빛이 연못의 물을 뚫고 들어갑니다. 그러나 물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죠.
위 偈頌(게송)을 통해 생각해 보면 불교 공부 – 수행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궁무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 마음 잘 쓰는 제일 좋은 것입니다. 인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 또 수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마음 잘 쓰는 것(善用其心)입니다.
일반적으로 흔히 학생들의 경우에 공부 잘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요. 그런데 불교 공부는 마음공부라고 돌려서 말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마음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잘 쓰는 거예요. 그래서 인품을 말할 때 공부를 얼마나 했느냐, 또 마음을 얼마나 잘 쓰고 있느냐는 것을 가지고 말하는 겁니다. 공부한 게 별로 없고 또 마음 잘 쓰는 게 별로 없으면 그 사람의 어떤 값어치랄까 인품의 격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불교수행의 가장 중요한 보편적인 덕목을 말한다면 누가 열심히 공부하고 누가 정진을 잘하고 누가 마음을 잘 쓰느냐는 것을 가지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항상 반성해야 될 문제입이다. 세속 생활도 공부의 경계로 잡아넣어서 말하면 삶 자체가 공부예요. 인생은 공부예요. 승속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한다면, 인생을 잘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공부 잘하고 마음 잘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貪瞋痴(탐진치) 三毒心(삼독심)을 어떻게 하면 극복해서 살아가느냐는 것이 마음 잘 쓰는 것입니다.
어느 날 사리불에게 어느 외도가 열반의 경지가 어떤 것이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이때 사리불이 대답해 주기를 “탐·진·치 삼독이 없어진 것이 열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 법회를 통해 가을을 맞이하면서 다시 한번 나를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켜 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오늘의 문제가 이것이고. 내일의 문제도 이것입니다. 매일 매일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나를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켜 갈 것인가?’ 입니다. 타성에 젖어있거나 이러면 안 되는 것이죠.
오늘 법문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첫댓글 🙏🙏🙏
고맙습니다 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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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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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변화 시킬 것인가? "
감사합니다
🙏🙏🙏
_(((나무아미타불)))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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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폭염이 잦아들고 약간 서늘한 공기,
귀한 법문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탐진치를 없애고, 마음을 잘 쓸 수 있기를 다짐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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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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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