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241편
*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및
선시(禪詩)
오도송(悟道頌)이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를
공부(功夫)하는
수행자(修行者)가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가운데(中) 하나를
오도송(悟道頌)
이라고 한다.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頌)은
게송(偈頌)의 하나로써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하면
고승(高僧)이
자신만의 깨달음(覺)을
노래(歌, 句)한 것이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며
고승(高僧)이
자신의 임종(臨終) 전에
남겨놓고 가는 노래(歌, 句)를
열반송(涅槃頌)이라고
한다.
게송(偈頌)이란
불교의 가르침(敎義)을
함축(含縮 집약)하여
표현(表現)하는
운문체(韻文體)의
짧은 시구(詩句 문자)를
말하는데
곧 선시(禪詩) 내지
또는 선어(禪語 문장)를
이르는 말이다.
본래(本來)
게(偈)와 송(頌)은
같은 의미로
《게(偈)》
라는 글자(字)는
산스크리트어(梵語)
《가타(gatha)》의
음을 빌려와(音借) 따서
만든 말이고
《송(頌)》
이라는 글자(字)는
《가타(gatha)》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깨달음(正等覺)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게송(偈頌)
즉,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頌)은
오랫동안
수련과정(修練過程)을
통해 함축된 의미로
세속(사바세계)의
사람(大衆)들에게
무엇인가를 전(傳)하고
말(說法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이며
후세(후학)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오랜 세월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선사(禪師)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佛道行)이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난(至難)하듯이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頌)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깨달음의 노래는
다시 한번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여기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頌)을
올려놓으니
행간(行間)의
곳곳(處處)에 숨겨져 있는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뜻을
함께 발견(發見)하고
공부(功夫)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찾아보시기 바램해 본다.
본론(本論)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 祖師)
선시(禪詩)와
임종게(臨終偈) 및
오도송(悟道頌) 설해(說解)
"
임종게(臨終偈)
천동 정각(天童正覺) 선사
夢幻空花 몽환공화
六十七年 육십치년
白鳥煙沒 백조연몰
秋水天連 추수천연
꿈 같고 허공꽃 같은
육십칠 년 세월이여
흰 새 날아가고 물안개 걷히니
가을물이 하늘에 닿았네.
"
위(上記)의
시(게송, 禪詩)는
굉지(宏智)
천동 정각(天童正覺)
선사(禪師) 스님의
시(게송, 禪詩)이다.
역대(歷代)
선사들의 임종게(臨終偈)로서
걸작(傑作)으로 꼽혀지거니와
수준 또한
최상급으로 분류된다.
앞에서
원오극근(佛果克勤) 스님이
"
아무 것도 해놓은 것 없거니...
"
라는 게송(偈頌)으로
자신의 평생을 술회했다면
천동 정각(天童正覺)
역시 " 꿈같고 환영같은 "으로
67년 세월을 회고한다.
정각도
원오와 마찬가지로
그의 문하엔
늘 1천명이 넘는 선객이
몰려들었다.
그에게 배우려는
선객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어려움을 겪었을 정도였다.
그런 그도
자신의 평생을
" 꿈같고 환영같은 " 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만
정각의 임종게가
원오와 다른 것은
바로 " 이미지어 "를 내세워
상징법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문학에서의 상징법은
시(詩)의 품격을 높여준다.
여기서
* 흰 새(白鳥)는
지적인 번뇌(迷理惑)이고
* 물안개(煙)는
감정적인 번뇌(迷事惑)를
의미한다.
그 흰 새가 날아가고
물안개가 걷혔다 함은
《확철대오》했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원오와 정각은
모든 것(諸法)을 여읜
" 각자의 세계 "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 둘이
세상인연을 떠나가는 터에
보여주는 것은
원오 극근 선사가
" 잘들 있게 " 라는 말로
담담함을
굉지 정각 선사는
" 가을 물이 하늘에 닿았네 "
라는 상징수법으로
" 깨달은 이가
돌아가야 할 길 " 을 암시적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시로
표현되고 있는 임종게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굉지 천동 정각
(天童正覺 1091~1157)은
중국 송(宋)나라 때
조동종(曹洞宗) 승려로서
속성은 이씨(李氏)로
어려서 출가하여
14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18세에 유행(遊行)하였다.
23세 때
허난성(河南省)의
단하산(丹霞山)에서
자순(子淳)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고 그 법통을
이었다.
후에
쓰저우(泗州)
보조사(普照寺) 등에 들어가
수행하였고
1129년
절강성(浙江省)
천동산(天童山)
경덕사(景德寺)에 들어가
약 30년 동안 머무르면서
불교 부흥에 힘썼다.
그의 선풍(禪風)은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의 대혜종고가
주창하는 간화선(看話禪)과는
달리 묵조선(默照禪)이었다.
저서(著書)로는
《굉지각화상어요 1권)》
《굉지각선사어록 4권)》
《굉지광록 9권)》등이 있고
특히《천동백칙송고
(天童百則頌古)》는 유명하다.
조동종(曹洞宗)은
중국 선종(禪宗)의 한 일파로
5세기 후반에
인도에서 건너온
달마(達磨) 대사가
그 시조이며
그로 부터
6대째 조사(祖師)
혜능(慧能) 대사에 의해서
기초가 확립되었다.
혜능을 비조로 하는
계통을 남종선(南宗禪)
이라고 하며
남종선이
다시 혜능 문하의
남악 회양(南岳懷讓)의 제자
마조도일(馬祖道一)에 의한
홍주종(洪州宗)과
역시
혜능 문하의
청원행사(靑原行思)의 제자
석두 희천(石頭希遷)에 의한
석두종(石頭宗)으로
발전하였다.
뒤에
홍주종에서는
위앙· 임제(臨濟) 등
2종(二宗)이
석두종에서는
조동(曹洞)· 운문(雲門)·
법안(法眼) 3종이 갈라져서
합계 5종(五宗)으로 분파하였고
임제종이
양기(楊岐)와 황룡(黃龍) 등
2파로 나뉘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5가 7종(五家七宗)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중국의 조동종은
석두종의 석두 희천으로부터
약산유엄(藥山惟儼)
운엄담성(雲嚴曇晟) 등을
거쳐서 출현한
동산 양개(洞山良价)와
그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
등
두 사람에 의하여
대성된 일파를 가리키며
그 명칭도
이 두 사람의 조사가 활동한
동산(洞山)과 조산(曹山)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파의 특색은
학인(學人)을 지도할 때
5위(五位)라고 불리는
게송(偈頌)을 사용했으며
종풍(宗風)이
면밀한 것으로 유명하다.
송(宋)나라 때에는
임제 의현(臨濟義玄)을
비조로 삼는
임제종에서 나온
대혜 종고의 간화선(看話禪)을
조동종에서 나온
굉지정각(宏智正覺)이
묵조선(默照禪)을 선양
하였으며
이때부터
이 2종파가 중국 선종을
대표하였다.
묵조선은
불교 선법(禪法) 중의 하나로
묵묵히 말을 잊고
본성을 관찰하면 밝은 본성이
저절로 묘한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중국 남송 초기에
조동종(曹洞宗)의
굉지 정각(宏智正覺)이
주창하였다.
이 명칭은
대혜(大慧)가
"
굉지의 선풍(禪風)을
묵념부동(默念不動)에만 그쳐
활발한 선기(禪機)를
잃고 있다.
"
비판한 것에서 유래한다.
굉지는 이에 대항하여
묵좌(默坐禪)하는 것만이
지혜의 작용을 활발히 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바른 길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지혜의 선(禪)을
《공안(公案,
불교 선종에서 선사(祖師)가
수행자에게 제시하는 과제》에
구애받아
맹봉난갈(盲俸亂喝)을
휘둘러 득의만면(得意滿面)
하는 간화선(看話禪)》이라고
반격하였다.
여기서
묵조선· 간화선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ㅡㅡㅡ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분명있을 것이다.
언제든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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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