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8장 구속사 강해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
1.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인도하신 데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세상 사람들과 구별시켜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야곱과 그의 식솔들을 여전히 가나안에 두어 그곳에서 한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민족으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였다면 상당한 문제점들이 발생했을 것이다.
첫째, 가장 염려되는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특성이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고 새로운 형태로서 존재하는 새나라를 건설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의식을 고양해 나가기 위해선 문화 양식이나 언어 등이 단일 체제를 이루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고자 한다면 의당히 가나안 사람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가나안 문화의 영향을 받아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특성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혹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존재 의식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가나안 사람들의 인위적이고 인간적인 삶의 방식을 받아들여 인본주의와 혼합된 민족 의식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혼합주의적인 문화 의식을 가지게 됨으로서 순수한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둘째, 이스라엘이 한정된 지역 공간인 가나안에서 하나의 거대한 민족을 형성하고자 한다면 의당히 가나안의 주민들과 세력 다툼을 벌려야 했다. 그러한 불상사가 발생할 경우 미처 하나의 민족적 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이스라엘은 주변의 강력한 세력을 가진 가나안의 원주민들과 세력 다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민족을 형성하기도 전에 멸망당할 우려도 적지 않다. 또는 주변의 강력한 나라들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색채를 지니기도 전에 역사상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리게 되는 불상사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가나안의 입지 조건으로 볼 때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색채를 형성해 나가기에는 매우 불안한 요소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애굽의 강력한 군사력을 이용하여 외적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생존을 보호하고 문화적으로 이스라엘을 세상 문화와 접촉하지 못하게 함으로서 고유한 민족적 존재 의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애굽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또한 요셉은 하나님의 의도를 충분히 알고 애굽 사람들이 목축업 하는 자들을 부정하게 여기는 점을 이용하여 이스라엘이 목축업을 주로 하는 민족인 것처럼 보여 애굽인들 스스로가 이스라엘과 교류하는 일을 거부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이스라엘의 순수성과 민족적 존재 의식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일을 이루시기 위해 이미 오래 전부터 요셉을 애굽으로 팔리게 하셨고, 각처에 심한 기근이 있게 함으로서 야곱의 식솔들이 애굽으로 이주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역사를 진행시켜 나가셨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세워 나가시기 위해,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성취해 나가시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역사를 진행시키시고 경영해 나가시는지를 볼 수 있다. 그동안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잇는 족장의 강력한 통치 방식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이라는 고유한 존재 의미를 형성해 오셨던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할례 정신을 근거로 가나안에서 민족적 색채를 분명히 밝히고 타 민족과 혼합되지 않은 상태로 하나의 민족으로 번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한 가족을 중심으로 한 족장 체제로부터 하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하는 민족적 체제로 그 통치 형태를 바꾸어 나가야 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역사적 시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이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생활 형태를 유지하며 하나의 민족으로 형성해 나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시기로 하신 것이다.
2. 야곱의 축복은 받은 요셉
야곱이 애굽에 이르러 그곳에서 기거한 기간은 17년에 불과했다(창 47:28). 이미 야곱은 가나안에서부터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 있었기 때문에(창 45:27 참고) 애굽에 거하고 있는 동안에는 별달리 할 일이 없었다. 이 기간 동안 야곱은 가나안을 떠나 올 때 브엘세바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애굽에서 구체적으로 성취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즉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창 46:3-4)는 약속과 같이 애굽에 도착한 야곱의 후손들이 평안하게 하나의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처럼 안정된 곳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면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은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을 바라보며 야곱은 지난 한 평생동안 소망하여 오던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점차 완성되어 가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야곱은 자신의 연수가 많아지자 기력이 쇠하고 열조에게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음을 알고, 요셉을 불러 자신의 시신을 가나안에 장사할 것을 명하였다(창 47:27-31). 얼마후 야곱이 노환으로 자리에 눕자 요셉은 애굽에서 난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데리고 야곱을 찾아갔다. 야곱은 가나안을 떠나 밧단아람으로 피신할 때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창 48:4)고 약속하신 말씀을 새삼 꺼내어 요셉에게 상기시키고 그 옛날 가나안에서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을 애굽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고 있음을 재확인시켜 주는 증표이며, 요셉이 애굽에서 얻은 두 아들은 그 약속이 성취된 증거하라고 기뻐하면서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야곱의 기업으로 삼겠다고 선언한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요셉의 아들들로서 장차 요셉이 야곱으로부터 받을 1지파 분에 해당되는 요셉의 기업을 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고 있다는 증표로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선물로 여김으로서 그들을 자신의 기업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이로써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야곱의 기업으로서 그들 역시 야곱의 아들들과 함께 야곱의 분깃을 각기 한 몫씩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요셉의 기업을 잇는 것이 아니라 야곱의 기업을 이을 자들로 특별히 선택을 받게 된 것이다(창 48:5). 야곱의 선언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국가 조직체로 면모를 갖추게 될 때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각기 한 지파로 분류되어 가나안에 입성한 후 야곱으로부터 각각 한 몫의 기업을 받게 됨으로서 성취된다(민 1:2-16 참고).
야곱이 요셉에게 특별히 두 지파의 기업을 준 것은 요셉을 특별히 사랑한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지만 야곱의 개인적인 판단에서 결정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미 야곱은 요셉을 잃은 아들로 여기고 많은 시간을 살아 왔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을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에 따라 요셉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덤으로 두 손자까지 얻은 것이다. 이로써 야곱은 하나를 잃은 줄 알았으나 하나님은 두 배로 야곱에게 돌려주신다는 사실을 기이히 여기고 하나님을 높이 섬기는 마음으로 요셉의 기업을 두 배로 늘려준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표시였던 것이다. 따라서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가나안에서 각기 한 지파씩의 기업을 받는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번성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