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은 민족을 위해서
성경본문 : 에스더 4: 12-17
12. 그가 에스더의 말로 모르드개에게 고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15.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대로 다 행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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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개발원에서 하는 목회자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이중표 목사님의 손자한테서 무전기가 왔습니다. 무전기에서 “하비 하비” 그럽니다. 그러자 세상에, 이 어른이 어쩔 줄을 몰라하는 겁니다. 이렇게 할아버지와 손자와의 관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처럼 하나님과 그 자녀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즉, 존재 자체로서의 문제입니다. 손주가 할아버지에게 말을 하려고 하는 그 의도를 기쁘게 받듯, 하나님이 우리를 기쁘게 받으시는 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은 민족을 위해서 생명을 바쳤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한마디로 호민한 사람입니다.아브라함,야곱,모세,여호수아 모두 그런 사람들입니다. 민족을 구원한 사람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소원이 하나있는데, 지옥문 앞에서 따발총 들고 한국사람들을 지옥에 못 오게 하는 일입니다.
한 여자의 힘이 이렇게 위대할수 있을까요? 하와,들릴라,한나,라합,애굽산파,에스더는 대단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에스더가 어떻게 호민했는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에스더는 아주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제 아내가 아들을 딱 낳아놓고 보니까 그렇게 이쁠 수가 없더랍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을 보면 정말 하닷사(에스더)같이 예뻐보입니다. 목회자의 눈에 비친 성도들은 참 이쁩니다.
두 번째, 에스더는 그만 조실부모합니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고 안계신 것이 분명 자식에게는 충격이지만 그것도 핑계일뿐 다 자기하기 나름이라는 것은 에스더를 통해서 깨닫습니다. 생각해봅시다. 좋은 유전인자를 가지고 나쁜 환경에서 자란게 나을까요 아니면,나쁜 유전인자를 가지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게 나을까요? 유전인자의 문제냐, 환경의 문제냐 하는 겁니다. 자, 말을 바꿔봅니다. 이빨은 참 태어났는데 관리를 안한 사람하고, 별로 좋은 이빨은 아닌데 아주 잘 닦으면서 관리를 잘 한 사람하고 누구 이빨이 나중에 더 좋을까? 좀 복잡하죠? 요는 상황마다 다를수 있으니 제 하기 나름이라는 것입니다.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은 충분히 환경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요셉,모세를 봐도 그렇습니다. 다 제하기 나름입니다. 또한,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시고 하나님은 깨끗한 사람을 쓰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모르드개가 그녀를 딸같이 키웠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관계는 사촌지간입니다.
네 번째, 동족의식이 있어야 호민이 됩니다.
“너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고, 우리의 아픔이 너의 아픔이다.” 제가 미국 집회때 끝에 강조하는 것은 “민족을 잊지말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민족의 배신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삶에 나타나듯이 “함께의 고난은 혼자의 쾌락보다 나은 것”입니다.
다섯 번째, 호민은 기도로 되어지는 겁니다.
민족의 위기 앞에 에스더의 대안이 무엇이었습니까? 무조건 대들었나요? 무조건 임금님앞에 갔나요? 아닙니다. 그는 기도합니다. 중문교회의 저력이 있다면 그게 뭔줄 아세요? 밤만되면 백 여명의 부르짖는 기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은혜로운 말씀이 있다는 것도 저력입니다. 또, 해마다 년초에 전교인이 목사님과 더불어 3일을 금식하면서 성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만 하면 되는게 아니예요. 거기에 지혜가 붙어야 되요. 또, 거기에 또 용기가 붙어야 됩니다. 에스더는 임금님께 목숨을 걸고 나가서 지혜를 발휘합니다. “상감마마 저를 사랑하신다면 제가 잔치를 베풀테니 참석하시옵소서 !” 밑도 끝도 없이, 이쁜 것이 잔치를 베푼다니 얼마나 더 이쁘겠습니까?
“뭐해 줄까나? 뭐해 줄까나? 나라 절반이래도 주리라” 에스더는 때를 지켜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하만을 고발합니다. 훌륭한 지혜와 용기입니다. 에스더는 말합니다.”죽으면 죽으리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식입니다. 우리나라 식으론 죽기아니면 까무라치기다 라고 했겠지요.
오늘날 아내들이 남편에게 그렇게 하면 사랑 받지 않겠는가 생각해봅니다. 여러분 그냥 살지 말고, 조금 노력좀 해보면 좋겠어요. 그냥 밥을 먹어도 “여보 일찍 들어오세요.” “왜? ” “그냥 같이 밥 먹고 싶어서요.”라고 말해 보세요. 대접이 달라집니다.
마지막 한가지만 더 이야기 하면, 하만은 아주 잘 나가던 사람입니다.
그 나라의 최고 대신이었습니다.그런데 이사람이 모르드개와 이스라엘을 전멸 시키려고 하는 이유가 뭐냐? 한마디로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기분 나쁘다는 사실이 사람을 죽여야 할 일인가 ? 이것은 잘나가는 사람들이 조심해야 됩니다. 정말 교만이 뭐냐? 눈꼴 시다고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 그것 교만이예요. 즉, 사람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 그게 바로 교만입니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 에서 일본인들이 내린 결론이 뭔줄 아세요? “문명은 받아들여 개화 되어가되, 사무라이의 정신만큼은 지켜가자” 입니다. 오늘 이민족은 많이 개화됬습니다.그러나 민족 정신은, 호민하는 마음은 우리 마음속에서 항상 흘려가고 있어야 된다 이말입니다.
오늘이 6월 6일, 현충일 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없이 빛도 없이 이 민족을 위해서 죽어갔습니다. 그들이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민족에 이렇게 평안하게 잘 살수 있으리라고 하는걸 우리가 잊어 버리면 안됩니다. 그들의 순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의 풍요로움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