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그림자(여불위와 조희)
이명철
세상사 모를 일이다. 그림자가 미치는 영향이 어디까지 일지. 그림자에 가려진 것들은 햇볕이 들면 그림자는 사라지고 실체가 들어난다. 그것은 여왕의 그림자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림자가 본체일 수 없는 것은 본체의 움직임에 따라 그림자의 움직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옛날 하(夏)나라 걸왕(桀王)은 말희(末喜)를 총애하다가 나라를 망쳤고,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달기(妲己)를 사랑하다가 은나라를 망쳤으며, 주령왕(周靈王)은 포인(褒人)이 바친 포사(褒姒)를 총애하다가 마침내 서주(西周)를 망쳤다. 목사인지 무당인지 40년 전에 그만 잘라냈어도 오늘날과 같은 화는 입지 않았을 것이다.
진왕 정(正)의 어머니 조희(趙姬)는 진시황제의 생모이다. 그녀는 여불위의 애첩이었으나 진나라의 공자 영이인(嬴異人)에게 바쳐진다. 진왕 정이 진시황이 된 후, 그녀는 진나라의 환관 노애와 밀통을 하였으며, 노애와의 사이에서 2명의 아이까지 두었다. 비밀이 없다고는 하나 자식이 있다는 말은 아직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타고난 분복(分福)이 있다. 복도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이다. 진시황의 생모와 놀아나는 노애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신하들과 함께 조용한 방을 차지하고, 날마다 술을 마시며 도박을 즐겼다.
하루는 도박을 하는데 이 날만은 웬 일인지 연달아 지기만 했다. 노애는 홧김에 연신 술을 마셨다. 또 지게 되자 판을 쓸고 새로 하자고 억지를 썼다. 그러나 중대부 안설도 취했기 때문에 단호히 거절하였다. 노애가 대뜸 호령한다. “네 이놈! 네가 어느 존전(尊前)이라고 감히 항거를 하느냐!” 동시에 노애는 손을 들어 번개같이 중대부 안설의 따귀를 갈겼다. 이에 대로한 중대부 안설은 노애의 관끈을 잡아 나꾸어 끊았다.
“이놈 봐라, 내가 누군 줄 알고, 나에게 대드느냐!”
중대부 안설은 노애의 흉악한 표정을 보자 그만 겁이 나서 방 밖으로 달아났다. 달아나다가 대정궁(大鄭宮)에서 어머니 왕태후와 술을 마시고 나오는 진왕 정과 마주쳤다. 깜짝 놀라 땅바닥에 엎드린 중대부 안설이 흐느껴 운다.
“어찌된 일이뇨? 자세히 고하여라!” 중대부 안설은 노애에게 뺨을 맞은 일과 또 노애가 ‘나는 진왕의 아버지뻘이라’고 하던 말까지 고해바치면서, “실인즉 노애는 고자가 아니라는 것, 그는 비밀히 왕태후와 관계해서 이미 아들을 둘씩이나 두었고, 지금 궁중의 밀실에서 기르고 있다는 것, 그들은 장차 진나라 왕위를 뺏으려고 역모까지 하고 있습니다.”라고 소상히 고해바쳤다.
진왕정은 신하 한 사람에게 비밀히 분부한다.
군사들은 일제히 사방 길을 막고 쥐 잡듯이 노애를 사로잡았다. 연후에 군사들은 다시 토끼 사냥하듯 노애의 부하들을 사로잡았다. 옥리(獄吏)들은 잡혀온 그들을 혹독하게 고문(栲問)했다.
노애는 자기 과거를 사실대로 다 불었다.
이에 진왕 정은 친히 대정궁으로 가서 궁중을 수색했다. 군사들은 밀실에 들어가서 왕태후와 노애가 간통해서 낳은 아들 둘을 들고 나왔다. 왕태후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녀는 두 자식을 살려달라고, 역시 자기 아들인 진왕 정에게 사정하지를 못했다. 왕태후는 문을 처닫고 쓰러져서 하염없이 울었다.
진왕 정은 좌우 신하에게 부대(布袋)를 가지고 오래서 그 속에 두 아이를 집어넣고 그 당장에서 친히 쳐 죽였다. 참혹하고도 징그러운 광경이었다.
그로부터 수천 년이 지난 작금의 사태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여왕의 그림자 뒤에는 이와 같이 무서운 불이 숨어 있는 것이다.
진시황이 죽고 그 아들 호해(胡亥)가 왕이 되었다. 조고(趙高)를 승상에 임명하였다. 환관 조고는 승상 이사(李斯)를 죽이고, 어느 날 조고는 호해 황제에게 사슴 한 마리를 바치며, “폐하, 제가 좋은 말 한 마리를 구했습니다.” 황제는 “이것은 사슴인데.....”하며 신하들을 바라봤다. 그러나 신하들은
“그것은 말입니다.” 속은 것인지 알고도 묵인한 것인지, 대낮 같이 밝은 지금에도 의심만 무성할 뿐 국민들의 분통만 터질 뿐이다.
조고는 “반란군이 쳐들어옵니다.”라고 황제를 겁을 주었다. 약점이 있어 협박을 당한 일인지 모를 일이다. 황제는 옆에 있던 환관에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왜 짐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가?” 환관이 대답했다. “제가 감히 말씀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황제께서는 지금까지 살 수 있었습니다.” 황제는 자살해버렸다.
조고는 황제의 옥새(玉璽)를 차고 거들먹거렸으나 신하들 중 누구도 그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시황제의 손자인 자영에게 옥새를 넘겼다. 자영은 한담을 시켜 조고를 찔러죽이고 삼족을 멸했다.
자영은 유방에게 항복하고, 유방은 자영을 항우에게 넘겨주었다. 항우는 자영의 목을 잘랐다. 항우 또한 오강에서 자결했다.
한비자(韓非子)를 죽인 이사(李斯), 사슴을 말이라고 가리킨(지록위마(指鹿爲馬) 조고(趙高)도 죽었다. 세상사 부귀영화(富貴榮華)가 다 허망하다란 걸 역사는 수없이 증명하여 주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밝혀질 줄 뻔히 알면서도 “모릅니다. 본 일도 없고 오지도 않았습니다.” 입만 뻥긋하면 거짓말을 해댄다. 캄캄한 밤중의 나무 밑에는 그림자가 없다. 산천은 여전히 침묵이고, 그림자는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