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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송구영신} 새로운 삶의 비결/고후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가장 찐한 열망, 가장 뜨거운 열망이 있다면, 그것은 변화에 대한 열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새로워지고 싶다. 변화 되고 싶다. 바꾸어지고 싶다.’ 그러나 그 변화가 싶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과거로 부터 해방되지 않는 한, 우리는 변화된 미래,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떠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과거로부터의 해방이,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예요.
우리 현대 심리학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성인 아이’라는 말이 있죠. ‘성인 아이, 어른 아이.’ 우리가 모두가 다 성인들인데, 대부분 다 성인들인데, ‘우리 안에 아직도, 어린아이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의 어떤 영향이, 지금까지 우리를 붙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어린아이 시절,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하십시다. 그 버림받은 아이는, 이 세상을 믿지 못해요. 아무도 믿지 못해요. 그 누구도 믿지 못해요.
어른이 되었지만, 그 안에, 우리 속에 믿지 못하는 아이가 그대로 있어요. 믿지 못하는 아이. 그리고 세상을 의심하는 아이. 이웃들을 의심하는 아이. 그 아이가 내 속에 있어서, 어른이 된 나를 붙들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나가지 못합니다. 우리 안에, 이런 아이의 모습, 우리의 성숙을 방해하고, 우리의 변화를 방해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나가지 못하도록, 우리를 붙들고 있는, 우리의 과거가 있습니다.
지나간 한해 동안에, ‘내 삶속에 어떤 얼룩진 오점이 있다.’ 그런 분들은, 할 수만 있다면, 그 과거의 기억들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새롭게 인생을 출발하고 싶은 그런 열망으로, 오늘 이 자리에 앉아 계실 것입니다. 전에 저를 가르쳐주신 선배 목사님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 일어났던, 그 6. 25동란, 6. 26전쟁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자기가 살던 마을에, 자기가 다니던 중학교가, 비행기 폭격을 맞아서, 학교 건물이 막 불에 타고 있었는데, 이분은 너무 너무 좋아서, 그냥 막 춤을 추었다는 거예요. 그래, 너무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아니, 목사님이 다니시던 학교 건물에 불이 났는데, 뭐가 그렇게 좋아서 춤을 추셨느냐고’ 그러니까, ‘학교가 불타면서, 자기 성적표가 불탈 것을 생각하니까, 그렇게 좋더래요’ 너무 너무 좋드래요.
네. 지금 시침 딱 때고 계신 분들은, 공부을 아주 잘 하신 분들인 모양이죠? 네, 과거의 기록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분들은, 할 수만 있으면 그 기록을 찢어버리고, ‘내 인생의 기록을 다시 쓰고 싶다. 내 인생의 기록을 다시 쓰고 싶다.’ 이런 열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우리가, 조금 전에 참회의 기도를 드렸는데,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참회의 기도는, 일반적으로 시편 51편으로 알려져 있죠. 다윗이, 참회하면서 쓴 기도문이죠.
다윗이 하나님 앞에, 참으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그렇게 인정받은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다윗의 생애 가운데도, 어느날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있었죠.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다윗의 범죄가 있었어요. 그 범죄후에, 자기의 가슴 아픈 심정을 기록한 참회의 기도가 바로, 시편 51편이죠. 그런데 그 참회의 기도 가운데 아주 인상 깊은,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우슬초로 저를, 씻겨 주십시요. 그러면 제가 정하리이다.”
‘우슬초로 저를, 씻겨 주십시요. 그러면 제가 깨끗해 질 것입니다.’ 우슬초라는 것은, 일종의, 스펀지와 같은 식물입니다. 옛날 구약시대에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려 제사를 드릴 때, 이런 제단 위에다가 양이나 염소를 놓고, 각을 떠요. 칼로 잘라요. 그러면 피가 흐르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가면, 피가 굳죠. 응고가 됩니다. 뭐 지금이야 세척제가 발달되었지만, 옛날에는, 세척제가 없으니까, 그 응고된 피를 닦을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꼭 하나, 우슬초를 가지고 있으면, 그 우슬초를 대면, 깨끗이 씻겨집니다. 깨끗이. 자 이런 그림을 연상하면서, 이 다윗의 기도를 다시 한번 들어보세요. ‘우슬초를 저를, 씻겨 주십시요. 그러면 제가 깨끗해 질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할 수만 있으면, 그렇게 내 과거를 지워버리고, 이제부터는 새롭게, 내 인생의 기록을, 이 새해 새롭게, 새로운 내 인생의 역사를 다시 쓰고 싶다.’ 그런 열망이 있지 않습니까? 그 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건 사실, 우슬초로도 안되요.
내 인생에 대한 죄의 기록, 실패의 기록, 가슴 아픈 악몽같은 과거의 기록들, ‘그것을 깨끗이 잊어버리자’ 라는 결심만으로 안되고, 우슬초를 가지고도 안돼요. 그것은, 그리스도 아니면 불가능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이라고 할 때에, 이 ‘새’ 라는 단어가,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워진’ 이라는 뜻이예요.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워진 피조물이다.’ 새로운 피조물. 아니, 예수가 누구이길래? 예수가 누구이길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고, 새로운 인생을 살수가 있다라고 선포할까요? 감히 바울이 이렇게 선포하고 있는 그 예수 그리스도, 그는 도대체 누구이실까요?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가장 중요한 절정의 사건은,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입니다.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고, 왜 예수는 부활하셔야만 했습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과거를 청산한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된 과거를 청산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 우리의 죄악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거룩한 피를 뿌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 흘리신 피, 그 보혈에 근거해서, 우리는 깨끗함을 얻습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다.” 라고 성경이 선포한 그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흘리심을 통해서 우리는 깨끗함을 얻은 것입니다. 거룩함을 얻은 것입니다. 용서함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 충분하지 못해요. 자, 우리가 용서를 받았다고 하십시다. 그러나, 이제부터 살아야 할 삶, 자신 있습니까? 금년 안에 자신 있습니까?
금년 한해, 작년의 과오를, 작년의 실수를 다시 되풀이하지 아니하고, 금년은 당당하고 거룩하게 살아갈 자신과 확신이 정말 있으십니까? 내 미래는 누가 보장합니까? 내 미래를 누가 약속합니까? 내 미래를 누가 이끌고 갈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십자가에서의 예수님의 죽으심은, 복음의 반쪽이예요. 복음의 나머지 반쪽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 그분는 왜 다시 사셨을까요? 그것은, 용서함 받은 나를, 지금부터 인도하실려고. 지금부터 나를 인도해 가실려고, 주님은 다시 사셨어요. 여러분,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이, 그 감옥안에서 가장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가장 기쁜 소식이 있다면, 뭘까요? 석방이겠죠. 석방. 자 그런데, 석방의 날이 왔어요. 아마도 춤을 추며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앞에는, 더 큰 과제가 있어요. 뭡니까?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양심의 감옥에서, 죄악의 감옥에서,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를 해방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한 가지 중요한 약속을 더하십니다. ‘감옥에서 출소한 죄수같은 나를, 이제부터 인도하시겠다고. 내 새로운 삶속에, 그분이 함께 걸어가 주시겠다고. 동행해 주시겠다고. 인도해 주시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 새로운 삶을 위해서,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이, 과거의 청산이었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보장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믿으십니까? 주님은 다시 사셨어요. 그리고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를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새해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주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신뢰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래 전에, 실제로 있었던 얘기라고 그래요. 미국의 어떤 초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너희들, 살아 있는 분들 가운데서, 너희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을 대보라?’ 어떤 아이는 윌슨 대통령의 이름을 대기도 했고, 어떤 아이는, 맥아더 장군의 이름을 대기도 했고, 또 어떤 학생은, 채프린같은, 유명한 희극 배우를 대기도 했고, 유명한 연예인의 이름을 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손을 들더니, 자기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 살아 있는 사람중에서 누구냐고 그랬더니, 이 학생이 손을 들고 말하기를 “지저스 크라이스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요. 그러자 선생님이, ‘아, 내 질문은, 살아 있는 분중에서 말이야! 살아 있는 분중에서 너희들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 누구냐고 물은 거야!’ 이때 그 어린 학생은, 담임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He still living, 그분은 아직도 살아계십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 부활하신 주님, 그분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가 사셨기에, 저와 여러분의 금년 한해, 새로운 한해의 길을, 그 주님이 인도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손을 잡고 가실 것입니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을 깊이 붙잡으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의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는 더 깊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고, 예수안에 들어오는 순간,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움의 완성이 아니라, 새로움의 시작이예요.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것, 그것은 새로움의 시작이예요
그리고 이제, 그 그리스도와 깊이 교제할수록,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나는 더 깊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금년 한 해, 그리스도를 닮은 새로운 존재로, 주님 앞에 서서, 주님의 기쁨이 되는 존재로,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통해서, 우리 주변에 이런 삶의 희망을 갖지 못한 이웃들에게, 거룩한 충격과,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삶을 위해서, 부활의 주님, 살아계신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인도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 새해 주시는 복음이 있습니다. 약속이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뭐에요?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을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할렐루야! 기도하시겠습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결심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할때,
‘하나님, 그렇습니다. 새로워지고 싶습니다. 더 깊이 새로워지고 싶습니다. 주님, 닮고 싶습니다.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존재로 이 한해 길,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우리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십시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 주신 말씀을 우리의 가슴에 담고, 새로운 한해 길을 출발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주님 함께해 주세요. 주님의 손 붙들고 걷겠습니다. 살겠습니다. 오 주님, 주님 앞에 서는날,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기도하시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새해가 밝았습니다. 2천 5년, 주후 2천 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주님 새로운 한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이 새로운 한해, 새로워지고 싶습니다. 아직 예수님 모르는 분이 오셨다면, 이 새해의 첫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주님으로 영접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절대로 새로워질 수 없는 나, 그래서 예수님 오시고, 내 죄를 짊이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거룩한 피 흘리셨사오니, 그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이, 더욱 새로워지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닮아가는 한해, 더 깊이 주님안에 새로워지는 한해 길을 걸어가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렇게 도와주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뢰하고 걷겠습니다.
마지막 날, 나를 부르시는 그날, 주 앞에 설 때에, 마지막 나팔소리 울려 퍼질 때, 주 앞에 부끄럽지 않은 존재로 설 수 있도록, 금년 한해 그렇게 주님 앞에 가까이 다가서는, 그리고 주의 뜻을 붙들고 내 삶속에 그 뜻을 이루는 거룩한 도구로, 쓰임받는 한해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