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물이라도 자기 몫을 하지 않는 것은 없다. 아무리 하찮은 미물(微物)이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다 있다는 이야기다. 징그럽게 보이는 지렁이가 만일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지렁이가 많은 땅에서는 농사가 잘 된다.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분이 많고, 통기가 좋고, 수분 함량이 높기 때문이다.
지렁이는 땅에 떨어진 낙엽이나 생물 사체, 동물의 배설물 등을 먹고 소화시켜 환경도 깨끗하게 해주고, 식물이 필요로 하는 비료도 만들어준다. 또한 흙을 파면서 기어 다닐 때 만들어지는 땅굴은 공기를 잘 통하게 해준다. 흙이 부드러워지니 수분을 많이 포함할 수 있어 식물에게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훌륭하게 땅을 경작하는 농부가 바로 지렁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생물은 없다
지렁이가 없으면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채소가 풍성할 수 없다. 또 식물의 꽃가루받이에 일등공신인 꿀벌이 없다면, 맛있는 과일을 먹기도 어렵다. 지렁이처럼 바닷가 갯벌에 사는 갯지렁이도 오염물질을 처리해주는 착한 일을 한다. 자신은 살신성인(殺身成仁)하여 바닷새나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됨으로써 해양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시켜준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렁이나 꿀벌, 갯지렁이가 주목을 받지 못하듯, 바다에 살면서 그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던 단각류(端脚類 amphipod)라는 생물이 있다. 그러나 사이언스데일리(Science Daily) 4월 2일자 뉴스에 실린 기사로 단각류의 일종인 감마루스 무크로나투스(Gammarus mucronatus)가 세상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미국의 버지니아해양과학연구소(VIMS)와 지질조사소(USGS) 과학자들은 이 종이 해양생태계, 특히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는 수산생물이 많이 사는 해초밭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시켜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일반인들에게 단각류라는 이름은 아주 생소할 것이다. 단각류는 끝 단(端)에 다리 각(脚)자를 쓴다. 단각류는 동물분류학상 절지동물문 갑각강에 속한다. 절지동물은 몸이 딱딱한 외골격으로 싸여 있으며, 몸과 다리에 마디가 있는 동물 무리이다. 갑각류는 게, 새우, 바닷가재, 거북손처럼 단단한 외부골격을 가진 동물이 속한다.
옆새우로 불리우는 단각류
▲ 우리나라 남해에서 채집한 단각류의 일종 ⓒ김웅서
단각류는 새우처럼 보이며, 몸이 옆으로 납작한 것이 특징이다. 몸은 머리, 가슴, 배 3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머리 앞쪽 끝부분에는 2쌍의 안테나(촉각)와 1쌍의 겹눈이 있다. 가슴은 7마디로 되어 있으며, 각 마디마다 한 쌍의 가슴다리가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가슴다리는 턱다리로 먹이를 먹을 때 사용하고, 세 번째부터 일곱 번째 가슴다리는 걷는 데 사용한다.
배는 6마디이고 각 마디마다 다리가 한 쌍 있다. 앞쪽에 있는 3쌍의 배다리는 헤엄칠 때 사용하고, 뒤쪽에 있는 3쌍의 다리는 걸을 때 사용한다. 단각류는 세계적으로 약 2천700종이 알려져 있으며, 민물에 사는 종도 있으나 대부분은 바다에 사는 종들이다. 많은 단각류 중에 감마루스 종류는 몸이 옆으로 납작하다고 하여 우리 이름으로 옆새우라고도 한다.
이번에 주목을 받은 감마루스 무크로나투스는 연안이나 하구에 발달한 해초밭이나 갯벌, 염습지, 백사장, 또는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대형 해조류나 해양 동물의 표면에 부착해서 산다. 옆새우는 우리에게 직접적인 경제 가치가 있는 생물은 아니지만, 해양생태계에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수산생물의 주 먹이가 된다. 이들이 없으면 물고기가 우리 밥상에 오르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감마루스 무크로나투스는 환경 변화가 큰 연안에 사는 종인 만큼 영하 1도에서 영상 33도까지 광범위한 온도 변화에도 견딜 수 있는 내성을 가지고 있다. 몸은 연한 녹색이거나 녹색 빛이 도는 갈색을 띠고 있으며, 머리에는 붉은색 눈이 있다. 다 자라면 몸길이가 1.1~3.7㎜ 정도 되니 크기가 깨알만하다고 보면 된다. 겨울에는 하루에 0.04㎜ 정도 자라고, 봄에는 0.11㎜ 정도 자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성장이 빠를 때는 자기 몸길이의 10분의 1 정도가 자라니 엄청난 성장속도이다.
해조류의 과잉증식 막아 해초 보호 역할
연구자들은 이 옆새우들이 해조류(海藻類, seaweed)의 과잉 증식을 막아 경제적으로 중요한 수산생물들의 서식지가 되는 해초(海草, sea grass)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해조류와 해초는 얕은 바다에서 광합성을 하며 산다. 그러다보니 산에서 자라는 참나무와 소나무처럼 생존을 위해 서로 경쟁관계에 있게 된다. 만일 해조류를 먹어치우는 감마루스처럼 작은 초식성 단각류가 없다면, 해초를 뒤덮은 해조류가 햇빛을 차단해, 해초는 광합성을 하지 못해 살기 어려워질 것이다.
잘피나 거머리말 등 해초가 무성하게 자라는 곳은 가리비나 게들의 어린 개체가 자라는 유치원과 같은 곳이다. 또 해초밭에는 몸을 숨길 만한 곳이 많아 어류들의 은닉처로도 좋은 장소이다. 감마루스들이 해초의 경쟁 상대인 해조류를 먹어치우니 해초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수산생물들의 좋은 보금자리가 되는 것이다.
감마루스가 해초밭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지만, 세계 곳곳에서 해초밭이 줄어들고 있다. 이 연구에 참여하였던 버지니아해양과학연구소의 에메트 더피(Emmett Duffy)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비료를 사용한 결과 부영양화가 일어나서, 적조나 갈조와 같은 미세조류의 이상 증식이 발생한 것을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해초밭이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감마루스의 역할과 연안역의 수질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강조하였다.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하찮은 옆새우들도 바다에서 우리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 지렁이도 꿈틀하는 재주가 있고,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생물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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