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천태종은 고려시대, 국청사(國淸寺)라는 절에서
의천 대각국사(義天 大覺國師)에 의하여 처음 종단으로 개창되었습니다.
의천스님은 고려 문종왕(文宗王)과 이씨 왕후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나신 한 나라의 왕자님이셨습니다.
의천스님께서는 11세에 아버지이신 문종왕의 권유로
당시의 왕사(王師)였던 경덕(景德)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셨습니다.
그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의천 스님도 왕자의 신분과 부귀영화를 버리고
구도(求道)의 길을 선택하십니다.
출가 후, 스님께서많은 학인(學人)스님을 가르치시다가 31세가 되시던 해,
중국의 송나라로 법을 구하는 구법(求法)의 길을 떠나시게 됩니다.
그리고 14개월 동안 중국을 두루 돌아다니시며 당시 유명했던 선지식과 법을 논하고
천태법화사상을 공부하시어 과거 천태지자대사의 큰 뜻을 함께 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천태대사께서 수행하셨던 천태산에 올라 고려에 천태의 종풍을 크게 일으키실 것을 발원하시고
구법활동을 마치시고 다시 고려로 돌아오십니다.
귀국과 함께 의천스님께서는 중국의 송나라, 요나라, 그리고 일본 등으로부터
4700여 권의 서적을 수집하시고 이것을 기초로 고려 속장경의 근간이 되는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을 편집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과거 천태대사께서 그러하셨듯이
힘든 세파 속에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올바른 의지처를 마련해 주시고자
국청사를 중심으로 천태산에서의 발원(發願)에 따라 고려 천태종을 처음 개창하시게 됩니다.
당시 고려불교는 교리에만 치중하는 교종(敎宗)과 교리를 무시하고 참선만을 고집하는 선종(禪宗)이 서로
대립하여 자신의 우월함만을 내세웠던 시기였습니다.
그러한 때에 의천 스님께서 고려 천태종을 개창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고려 천태종의 개창은 서로 대립했던 교종과 선종을 하나로 통일함으로써 민심을 안정시키고
국민의 가치관을 올바로 세워 국가번영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함에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천스님께서 이 땅에 개창하신 고려 천태종은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숭유억불(崇儒抑佛)이라는
쇠퇴의 역사에 직면하게 됩니다.
조선 태종은 고려 때부터 11종(宗)으로 내려오던 모든 불교의 종파를 천태종, 율종, 법상종, 삼론종,
화엄종, 진언종, 선종의 7종으로축소시켰으며 이는 다시 세종에 들어서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이라는
양종으로 축소되는데 이때부터 천태종은 역사 속에 사라지게 됩니다.
첫댓글 천태종의 개창조가 의천스님이시군요.
새로운 사실입니다.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감사합니다
지금의 천태종과는 다른 정통의 천태종이었습니다.
새로운 사실이 아니고 역사의 사실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청련님
시기 적절하고 다해도 어지럽지 않고
딱 맞춤이 있네요.....
나오고 들어감에 딱이니 놀랄뿐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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