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山寺에서
제20회 작품상
최찬희
는개가 부슬부슬 내려앉는 저녁에 찾아든 선암사는 이미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인적 없는 산사에 총총 불을 밝힌 종무소에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가 확, 끼쳐왔다. 늦은 시각에 혼자 온 중년 여인을 곁눈으로 살피는 행자승이 내게 줄 법복을 들고 앞장서 방으로 안내하곤 이내 사라졌다. 어둠은 곧 사방을 삼켜버리고 나는 바삐 작은 방으로 몸을 숨겼다. 한 평 반 남짓한 쪽방 문고리를 걸고 따뜻한 방바닥에 누우니 내 방에 찾아든 것 같은 안온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산사의 어둠과는 확연한 대척점을 이루는 전등불의 생경함에 눈을 감았다. 곧,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천근 같은 잠속으로 스르르 빠져들었다.
똑, 똑, 똑 또르르……. 단아한 목탁 소리가 바로 머리맡에서 울리는 듯한 바람에 눈을 떴다. 탁, 탁, 탁, 나무를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도 들린다. 아, 사물고를 울리나 보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넘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소리를 따라갔다. 법고가 울기 시작한다. 삼라만상을 다 깨우고도 남을 만한 큰 울림이 끊어질 듯 잦아들더니 다시 활개를 치며 살아나곤 또다시 잦아들며 흐느낀다. 저 북 앞에서 잿빛 장삼 자락을 휘날리며 북채 놀림을 하실 스님의 몸짓도 그러할 것이다. 가람의 정적을 뒤흔들던 소리가 칼로 자른 듯 끊기더니 이내 범종이 뒤를 잇는다. 귀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머리로 울려 퍼지는 장중한 소리가 방바닥에 깔리어 진군하듯 쳐들어오는 바람에 누운 몸을 일으켰다.
밖은 아직 캄캄하지만, 어젯밤의 어둠과는 확연히 다른 기운이 들숨으로 훅, 들어왔다. 희미한 전등불이 여염집의 안마당 같은 공간을 드러내 주었다. 댓돌 위에 널브러진 고무신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여러 켤레가 있는 넓은 대청마루 옆방은 어쩐지 처사님들 숙소일 것 같다. 그 옆으로 나 있는 툇마루를 끼고 ‘ㅁ’자 모양으로 작은 방들이 둘러앉았다. 대웅전 쪽에선 벌써 예불을 시작한 모양이다. “시-비앙-삼-세-” 인간의 몸을 울려 나오는 소리가 은은하게 퍼진다. 댓돌 위에 올라앉은 신발들이 내게 눈인사를 건넨다. 옆방 댓돌 위에는 굽 낮은 여자 구두가 정물처럼 얹혀 있고, 그 옆방은 흙 묻은 운동화가 두 켤레, 또 그 옆에는 고무신이, 저쪽에는 남자 단화가 있다. 혼자 온 사람이 나뿐이 아니라는 위안을 댓돌 위에서 얻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방바닥에는 주전자와 컵이 놓인 상이 달랑 있을 뿐이고, 벽에는 요와 이불을 널어놓은 대나무 횟대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작지만 넓게 느껴지는 공간이다. 내 한 몸엔 충분히 넓은 방이다. 그동안 나의 공간을 채우고 있던 사람들의 무게를 줄곧 끌어안고 살아온 중년의 여인이 내 속에서 고개를 든다. 이제는 홀연히 놓을 줄도 알게 된 얼굴로.
“공양하십시오.” 행자승의 목소리가 문밖으로 지나간다. 6시다. 공양간으로 가는 길에 만난 수행자들은 한결같이 합장하며 말이 없다. 가는 곳마다 붙여 놓은 ‘묵언’이라는 글귀가 내게도 목소리를 허락지 않는다. 침묵, 그 말없이 들어 올린 연꽃 한 송이를 보는 듯하다.
공양간에서 부지런하게 운력보시를 하는 남녀 행자들의 파르스름한 민머리가 서늘하게 다가온다. 500년이 넘었다는 예스러운 대청마루는 한꺼번에 몇백 명은 족히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다. 때마다 이곳에 가득 차 공양을 했을 대중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노스님의 훈계 때문인가. 저들이 해놓은 밥과 나물을 편하게 앉아서 받아먹자니 문득, 미안한 마음도 든다. 일, 사람은 얼마의 생을 남겨두고서야 손에서 일을 놓을 수 있는가.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붙잡은 손 놓지 못하는 힘겨운 굴레에서 이젠 놓여나고 싶다.
어느새 절 마당에 일반인들이 하나둘, 올라오는 게 보인다. 아침햇살이 화사하게 퍼지는 경내를 천천히 걸었다. 630살이 넘었다는 백매, 선암매가 자태를 드러냈지만 이미 꽃잎은 지난 비와 함께 떨어져 땅바닥에 소복하다. 백매뿐 아니라 홍매와 산수유, 목련, 개나리도 꽃잎 진 자리가 벌써 파릇해졌다. 문득, 대웅전 아래 유난히 소담스럽게 핀 검붉은 목단이 눈에 들어왔다. 무량하게 쏟아지는 햇볕을 홀로 받고 선 자태가 어찌 저리 고혹한가. 홍매와 같이 곧 낱장으로 떨어져 내릴 예감이 뒤돌아서는 내 마음을 찔렀다.
‘뒤ㅅ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해우소가 나타났다. 300년이 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무거운 기와를 머리에 얹고 ‘정丁자’ 모양으로 버티고 선 모습이 늠름하다. 들어가는 넓은 입구부터 남과 여로 갈라져 2열로 배치된 구조도 흥미롭다. 꽤 여러 작가의 작품에 등장해서 이름난 곳이다. 김훈 작가는 “여기서 똥을 누어보면 비로소 인간과 똥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정호승 시인은 눈물이 나면 여기 와서 울라고 하였다. 쭈그리고 앉아서 실컷 울고 나면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들어 종소리를 울려준단다. 어찌 보면 무섭기도 한 오래된 뒷간을 냄새나는 곳이라는 선입견마저 비틀어 주는 작가들의 말에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곧 있을 불탄일에 앞서 영산재를 모시느라 분주한 종무소에서 차를 한 잔 빼 들고 산사의 담 아래쪽 산책로를 따라 숲길로 들어섰다. 아, 숲은 이미 유록빛 생명으로 아우성이다. 아름드리 졸참나무는 벌써 작은 소용돌이 같은 새이파리를 일제히 올렸다. 키 큰 편백숲의 뾰족한 연두 물결을 따라선 대숲은 아직도 새벽안개를 촉촉이 가두고 있다. 숲길을 지나 구부러진 담장을 돌아 나오다 느닷없이 나타난 노랑, 분홍, 보랏빛의 키 작은 야생화를 만났다. 문득, 이 모든 생명이 이 순간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합일감이 일었다. 한없이 작아진 존재가 더 조그만 것에서 받는 큰 위안이다.
일주문 밖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방의 뒷문을 열어놓으니 작은 방이 한결 환해졌다. 흙담이 보이는 뒷마당의 고즈넉한 운치가 방안으로 스며든다. 쌍계사 입구의 찻집에서 한 줌 얻은 햇 찻잎을 따뜻한 물에 우려냈다. 싱그럽고 구수하다. 술과는 다른 기세로 목구멍을 넘어가 살 속으로 퍼져나가는 기운을 즐기니 절로 눈이 감긴다. 일상의 번뇌가 사라진 아늑함이 오롯이 살아나더니 혼곤한 잠이 덮쳐왔다.
찬 공기에 눈을 뜨니 그새 비가 내리고 있다. 자박자박 아늑하게도 내린다. 빗소리의 운율이 음악처럼 감미롭다. 낙숫물 소리도 차륵차륵차르륵… 흥겹기도, 슬프기도 한 묘한 외로움을 끼치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병든 몸으로 사랑의 도피를 한 수도원에서 장 보러 간 조르주 상드를 기다리는 쇼팽이 생각난다. 혼자서 창가에 이마를 대고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다가 가만히 악보를 끌어다 <빗방울 전주곡>을 작곡하고 있던 그 적요함이 아마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5시쯤, 저녁 공양을 하고 나오자 어느샌가 불을 밝힌 연등길이 은은하다. 종무소의 불빛은 여전히 따뜻하고 마주치는 행자들 역시 묵언의 합장만 이어진다. 어느덧 저녁예불을 알리는 북소리가 안개비에 포위된 산사에 울려 퍼진다. 어디선가 산짐승 소리가 비명처럼 꺼억거린다. 저 영혼도 이제 곧 저 소리에 귀의하여 스스로 잠이 들겠지. 나도 이제 한층 더 밝아진 전등불 아래에 완벽한 혼자가 되련다.
무겁게 들고 온 책을 폈다. <소설 태백산맥 그 현장을 찾아서>라는 김종오의 1992년도 책이다. 조정래 작가가 태어나 자라난 이 선암사에서 읽기에 좋을 것 같아서 가지고 온 책이다. 어린 시절 소년 조정래가 목격한 ‘여순 사건’의 무자비한 살육의 현장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 그 헤아리기 힘든 많은 의문과 질문으로 탄생 된 글이 ‘태백산맥’이 아니던가. 그래서 작가의 상처는 값진 자산이다. 그 자산이 내게 있다면 어떤 상처였을까.
살아오는 내내 버릇처럼 안고 사는 속앓이가 있다. 복작복작 끓어오르는 그 욕구는 상처가 되어 건드리면 아프니까 그대로 덮어두고 살다 옹이가 되었다. 좀 더 과감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순수작가가 되고 싶은 욕구를 얼마나 다짐만 했었던가. 중년을 넘긴 지금까지도 벗어날 수 없는 감옥과도 같은 욕망이다. “돌은 단 두 개, 뒷돌을 앞으로 옮겨 놓아가며 스스로 혼자 힘으로 강을 건너는 것, 그것이 문학의 징검다리다.”라고 말한 조정래는 오히려 그곳에서 안주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화려한 감옥’이라고 얘기한 것이었을까. 문득, 이 끝없이 가여운 욕망에서 놓여나고 싶다. 어디선가 풍경이 울린다. 조계산을 등지고 휘돌아 친 바람이 내 가슴에도 쟁그렁! 소리를 내며 자지러진다.